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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있는 사람이란?

by 마을지기 posted Mar 18,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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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로마서 5:1-5
설교일 2007-03-18
설교장소 구미안디옥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주일


■ 성서 본문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또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지금 서 있는 이 은혜의 자리에 [믿음으로] 나아오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게 될 소망을 품고 자랑을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환난을 자랑합니다. 우리가 알기로, 환난은 인내력을 낳고, 인내력은 단련된 인격을 낳고, 단련된 인격은 희망을 낳는 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을 통하여 그의 사랑을 우리 마음 속에 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5:1-5)


■ 들어가는 말씀

동족의 원수 바빌론이 망한다는 환상에, 이사야는 허리가 끊어지는 것 같은 아픔을 맛보았습니다. 마음이 아프기는 했지만, 그것은 이사야가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일은 아니었지요. 일단 그 일은 덮어 둡니다. 사실은 이것이 ‘하나님의 사람’이 가질 수 있는 마음이지요. 하나님의 자녀 중 일부가 망한다는 데 대해서 마음이야 아프지만,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다면, 거기에는 당연히 깊은 뜻이 담겨 있을 겁니다.

마음이 아프기는 하지만, 이사야는 바빌론이 망함으로 말미암아 자기 겨레가 드디어 해방이 될 것임을 힘 있게 선포합니다. “아, 짓밟히던 나의 겨레여, 타작마당에서 으깨지던 나의 동포여, 이스라엘의 하나님 만군의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신 것을, 이렇게 내가 그대들에게 전한다”(이사야서 21:10). 이스라엘이 해방이 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우리 속담에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했습니다. 이사야의 예언이 바로 그겁니다. 이 말대로, 고생하던 이스라엘 백성이 해방의 기쁨을 맞이하게 됩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 참 옳은 말이지요. 그런데 이 간단한 말을 참 멋지게 풀이해준 분이 있습니다.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로마서 5장 3절과 4절에 보면 바울이 이런 말을 합니다. “우리는 환난을 자랑합니다. 우리가 알기로, 환난은 인내력을 낳고, 인내력은 단련된 인격을 낳고, 단련된 인격은 희망을 낳는 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생 끝에 낙이 오는 것은 맞는데, 그 과정이 어떻게 되느냐, 이것을 바울이 기가 막히게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고생하던 사람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희망을 얻게 되는가, 이 주제를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희망이 있는 사람이라면 첫째는 ‘환난’을 겪습니다. 그 다음 두 번째는 그 환난 덕분에 ‘인내력’을 얻습니다. 세 번째는 그 인내력 덕분에 ‘단련된 인격’을 얻습니다. 이렇게 인격이 단련된 사람에게 비로소 ‘희망’이 보입니다.

■ 환난

희망 있는 사람이 공통적으로 겪게 되는 첫 번째 과정이 ‘환난’입니다. “환난은 인내력을 낳고, 인내력은 단련된 인격을 낳고, 단련된 인격은 희망을 낳는”다, 했습니다. 고생했다고 다 출세하고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고생했다고 모두 끝이 잘 풀리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고생을 통해서 인내심을 얻어야 하고, 인내심을 가짐으로 해서 인격이 단련되어야 하고, 단련된 인격이 있을 때 비로소 희망이 있습니다. 그런데, 고생했다고 다 희망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고생하지 않고 희망을 찾는 것은 어렵습니다.

우리가 지금 사순절 절기를 지키고 있습니다만, 사순절이란 게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고난 받으신 것을 기억하고 우리도 그 고난에 동참하기 위해서 기도하고 다짐하는 절기이지요. 우리가 사랑하는 예수님도 부활의 대사건을 맞이하시기 전에 고난을 겪으셨습니다. 죽음까지 당하셨습니다. 희망 가운데 가장 큰 희망이 아마도 ‘부활’일 것입니다. 부활이란 것이 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고난과 죽음을 거쳐서 오는 것이다, 이것을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셨습니다.

혹시 여러분이 환난 가운데 있습니까? 혹시 지금 고난을 받고 있습니까? 고생보따리를 잔뜩 지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희망이 있습니다. 지금 고생하고 있는 것을 오히려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에, 고생 안 하고 성공한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복의 근원’이라고도 하고 ‘믿음의 조상’이라고도 하는 아브라함도 천신만고 끝에 ‘열국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축복을 ‘쟁취’해서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조상이 된 야곱도 자기 일생을 일컬어, “험악한 세월”(창세기 47:9)이라고 표현할 정도입니다. 예수님의 복음을 전 세계에 퍼뜨렸던 바울도 ‘고생’이라 하면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습니다. 바울이 고생한 이야기 한 번 들어보십시오. “유대 사람들에게서 마흔에서 하나를 뺀 매를 맞은 것이 다섯 번이요, 채찍으로 맞은 것이 세 번이요, 돌로 맞은 것이 한 번이요, 파선을 당한 것이 세 번이요, 밤낮 꼬박 하루를 망망한 바다를 떠다녔습니다. 자주 여행하는 동안에는, 강물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 사람의 위험과 도시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의 위험을 당하였습니다. 수고와 고역에 시달리고, 여러 번 밤을 지새우고, 주리고,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추위에 떨고, 헐벗었습니다”(고린도후서 11:24-27).

■ 인내

고생 없이는 되는 일이 없습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주님의 자녀들을 통하여 역사를 이루시려 하는 과정은 더 그렇습니다. 그러나 고생이 그냥 고생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고생을 통하여 ‘인내력’을 얻어내야 합니다. ‘인내력’을 얻어내지 못하는 고생은 ‘헛고생’입니다. 아고보서 1장 3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낳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냥 ‘시련’은 낳을 것이 없지만, ‘믿음의 시련’ 곧 믿음 안에서 겪는 시련은 ‘인내’를 낳게 되어 있습니다.

전도서에 보면 전도자가 ‘덧없는 인생’에 대해서 말하는데, 5장 16절에서 17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이 온 그대로 돌아가니, 바람을 잡으려는 수고를 한들 무슨 보람이 있는가? 평생 어둠 속에서 먹고 지내며, 온갖 울분과 고생과 분노에 시달리며 살 뿐이다.” 온갖 울분과 고생과 분노에 시달리며 사는 인생을 가리켜, 전도자는 “비참한 일”이라고 합니다(전도서 5:16). 똑같은 고생이라도 하나님 안에서 하면 ‘인내’를 낳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나서 하는 고생은 그야말로 ‘비참한 일’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고생과 환난이 다 희망의 거름이 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 안에 있어야 고생이 인내를 낳습니다. 믿음 안에서 하는 고생이라야 ‘인내’로 승화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산행을 좋아하시는 분이 있겠습니다만, 어린아이들들 산에 데리고 가는 일이 있잖아요? 산에 가면 고생을 하지요. 그러나 부모의 보호 아래 산을 타는 아이는 그 산행을 통해서 건강과 인내심을 얻습니다. 그러나 부모 없는 아이가 혼자서 산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고 할 때, 그건 참 비참한 일입니다. 세상 고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먹고 사느라고 고생하고, 자식 때문에 고생하고, 예기치 않은 일로 고생하고, 때로는 악마의 계교에 빠져 고생을 하더라도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하는 고생은 인내를 낳습니다. 그러니까 간단히 말해서, 신앙생활을 잘 하면서 하는 고생은 ‘고생’이 아니라 ‘훈련’이지만 신앙을 떠난 고생은 그냥 비참함 자체입니다.

■ 인격 단련

이렇게 얻게 된 ‘인내’를 통하여 어디로 가게 되는가, 그 다음 단계는 ‘인격 단련’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3장 5절에 이런 권면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인도하셔서, 여러분이,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것과 같이 사랑하고, 그리스도께서 인내하시는 것과 같이 인내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인내를 배우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천하에 귀하신 분인 예수님도 고생을 통하여 인내력을 얻으셨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우리도 배워야지요. 야고보서 1장 4절을 봅시다. “여러분은 인내력을 충분히 발휘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이 완전하고 성숙한 사람이 되십시오.” 완전한 인격은 ‘인내’가 만들어내는 산물입니다.

내공이 높은 분들은 다 통하는 데가 있는 것 같습니다. 부처님도 이렇게 말씀하셨답니다. “증오보다 더 큰 과실이 없고 인내보다 더 강한 것은 없으니 내가 이리저리 애쓰는 것은 인내를 배우는 것.” ― 나왕 겔렉 린포체(정승석 역), 《행복한 삶 행복한 죽음》(도서출판 초당, 2004), 78쪽. 부처님이 온갖 고행을 찾아가며 겪은 것은 ‘인내’를 배우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도 그랬고, 부처님도 그랬으니, 우리야 더 말할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 맺는 말씀

다시 요약해서 말하면 고생에서 인내를 얻고, 인내에서 인격이 단련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희망이 있습니다. 거꾸로 말하면, 고생해보지 않은 사람은 참을 줄 모르고, 참을 줄 모르는 사람은 인격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습니다. 인격이 제대로 형성 안 된 사람에게는 아무런 희망이 없다는 말이지요. 이렇게, 인격이 단련된 사람에게 딱 어울리는 말이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것입니다.

“환난은 인내력을 낳고, 인내력은 단련된 인격을 낳고, 단련된 인격은 희망을 낳는”다. 이 말을 한 직후에 바울은 중요한 말 한 마디를 덧붙였습니다. “이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로마서 5:5). 희망이 있는 사람은 지금의 현실이 아무리 암담하더라도 슬퍼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뻐합니다. 9회 말에 역전홈런을 쳤을 때처럼 짜릿함을 맛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스가랴서 9장 12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로잡혔어도 희망을 잃지 않은 사람들아, 이제 요새로 돌아오너라. 오늘도 또 말한다. 내가 네게 두 배로 갚아 주겠다.” 희망이 있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두 배로 갚아 주신다고 했습니다.

전도자는 말합니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는, 누구나 희망이 있다. 비록 개라고 하더라도, 살아 있으면 죽은 사자보다 낫다”(전도서 9:4). 저와 여러분은 확실히 살아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품안에 있지 않습니까? 비록 우리가 지금 고생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고생이 인내를 낳고, 인내를 통해서 인격이 단련된다면, 지금의 고생은 고생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두 배로 갚아 주시기 위해서 훈련시키시는 과정입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의인 열 명이 없어서 망했지만, 하나님 안에서 희망을 간직하고 있는 여러분이 있는 한, 이 나라는 망하지 않습니다. 희망이 있습니다. 이 땅의 교회가 날이 갈수록 타락하고 쇠락해갈지라도, 신앙의 순수성을 잘 지켜내고 있는 여러분이 있는 한, 우리 교회는 희망이 있습니다. 비록 여러분의 가정경제가 어려울지는 모르지만, 이것저것 골머리를 앓고 있는 일이 있을지 모르지만, 고생을 통하여 단련된 인격을 유지하고 있는 한, 여러분의 가정은 희망이 있습니다.

이제, 저와 여러분이 오직 주님만을 소망으로 삼아, 주님께서 주시는 희망을 가지고, 그 어떤 고생이나 환난도 기쁘게 참는 가운데, 단련된 인격을 가지고 최후의 승리를 얻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1. 20140720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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