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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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지기 2007-05-27 16: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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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사도행전 2:4-13 
설교일 2007-05-27 
설교장소 구미안디옥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오순절 


■ 성서 본문

그들은 모두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어서, 성령이 시키시는 대로, 각각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하였다. 예루살렘에는 경건한 유대 사람이 세계 각국에서 와서 살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말소리가 나니, 많은 사람이 모여와서, 각각 자기네 지방 말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서, 어리둥절하였다. 그들은 놀라, 신기하게 여기면서 말하였다. “보시오, 말하고 있는 이 사람들은 모두 갈릴리 사람이 아니오? 그런데 우리 모두가 저마다 태어난 지방의 말로 듣고 있으니, 어찌 된 일이오? 우리는 바대 사람과 메대 사람과 엘람 사람이고, 메소포타미아와 유대와 갑바도기아와 본도와 아시아와 브루기아와 밤빌리아와 이집트와 구레네 근처 리비아의 여러 지역에 사는 사람이고, 또 나그네로 머물고 있는 로마 사람과 유대 사람과 유대교에 개종한 사람과 크레타 사람과 아라비아 사람인데, 우리는 저들이 하나님의 큰 일들을 방언으로 말하는 것을 듣고 있소.” 사람들은 모두 놀라 어쩔 줄 몰라서 “이게 도대체 어찌 된 일이오?” 하면서 서로 말하였다. 그런데 더러는 조롱하면서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 하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 들어가는 말씀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는 ‘유식한’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대개가 일자무식의 ‘까막눈’들이었지요.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렇게 무식한 사람들이 외국어를 유창하게 좔좔, 좔좔, 구사하는 겁니다. 그것도 외국어 하나가 아니라 제2외국어, 제3외국어까지 거침없이 나옵니다. 한 사람이 여러 나라 말을 했는지, 여러 사람이 각기 다른 언어로 말했는지 분명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외국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다 자기 나라 말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알아들었습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하면, 지난 주일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사라지셨다고 했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약속하신 것이 하나 있습니다. “머지않아 너희가 성령을 받게 될 것이다.” 이 약속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때는 오순절이었습니다. 오순절이란 이스라엘 최대 명절인 유월절이 지나고 50일 되는 날이지요. 오순절도 이스라엘에서 상당히 큰 절기입니다.

■ 처음 오순절

오순절이 되어서, 제자들은 모두 한 곳에 모여 있었습니다. 그 때, 갑자기 하늘에서 세찬 바람 소리가 나더니, 그들이 앉아 있는 온 집안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리고 솟아오르는 불길 같은 것들이 그들 각 사람 위에 내려앉았습니다. 그들은 모두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그들의 입에서 방언이 터져 나왔습니다. 당시에 예루살렘에는 세계 각국에 나가서 살던 유대인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히브리어가 아니라 각자 자기가 살던 지방 말로 알아들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 그것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성령을 받으면 특별한 능력이 생겨난다는 것인데, 외국어를 구사하는 것도 성령의 능력 가운데 하나이겠지요. 성령의 능력은 정말로 무한합니다. 성령을 받으면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일들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 말씀에서 중요한 것은 제자들이 토플이나 토익을 몇 점정도 맞을 정도로 외국어를 잘 했느냐,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제자들이 말을 했을 때, 외국에서 온 사람들이 그 말을 알아들었다는 것입니다.

글쎄요, 저나,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여러분이나, 언제 성령을 받아서 갑자기 생소한 외국어를 유창하게 말할 수 있게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아직까지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성령을 받지 못하였는가, 그런 것은 또 아닙니다. 우리도 다 성령을 받았습니다. 은사가 각기 다를 뿐이지요. 그리고 외국어 말씀을 드렸는데, 지금도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외국인들이 충분히 알아듣게 할 수 있습니다. 그것도 아무나 되는 일이 아니고 성령을 받은 사람들만 가능한 일입니다.

■ 예배의 언어

우리 장로님은 국제회의에 자주 다녀보셔서 잘 아시겠습니다만, 일반 국제회의와 크리스천 국제회의가 다른 점이 하나가 있습니다. 일반 국제회의는 대개 영어로 진행이 되는데, 통역 서비스를 해주지 않는 회의에는 반드시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이라야 참가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통역 서비스를 하게 됩니다. 앞에서 누가 발언을 하면 헤드폰을 쓰고, 자기 나라말로 듣게 되지요.

오는 9월에 태국 치앙마이에서 아시아 태평양 지역 YMCA 총회가 열리게 되는데, 아마 저도 참여하게 될 것 같습니다. 그때도 일부 통역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여러 나라의 크리스천들이 모여서 예배를 드릴 때 보면, 통역이 없어도 모두 다 은혜롭게 예배를 드립니다. 우리는 ‘예배’ 하면 주로 설교를 떠올리게 되고, 실제로 설교가 예배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지만, 세계 각 나라에는 그렇지 않은 예배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예배 인도자와 회중, 그리고 회중과 회중이 몸짓이나 찬송으로 메시지를 주고받는 일이 많습니다. 물론 거기에도 가사와 구문이 있지만, 외국인들이 그것을 자세히 알아듣지는 못해도 모두 다 같은 느낌과 감동을 받으면서 예배를 드립니다. 우리도 가끔 뜻 모를 찬송을 부르면서 은혜를 받지 않습니까? “ubi caritas et amor, ubi caritas Deus ibi est.” 이게 라틴어인데, 단어 하나하나의 뜻은 몰라도 감은 잡을 수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예전에 우리가 불렀던 “Wa Wa Wa E-mi-mi-mo”도 마찬가지입니다. “Wa Wa Wa E-mi-mi-mo Wa Wa Wa A-lag-ba-ra Wa-o Wa-o Wa-o!” 이것은 나이지리아 말로 된 찬송인데, 무슨 뜻인지 아무것도 몰라도 성령이 내려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아무것도 몰라도 정말 더 크게 은혜를 나누는 순서가 있습니다. 이따가 우리도 하겠지만, 성찬 예식입니다. 예수님의 몸을 나누고, 예수님의 피를 나누는 성만찬예식에서는 더더구나 통역이 필요 없습니다. 모두 한 자리에서 나누어 먹는 빵은 영어를 몰라도, 프랑스어를 몰라도, 중국어를 몰라도, 그것은 예수님의 살입니다. 함께 나누어 마시는 포도주도 그렇습니다. 다른 나라 말, 한 마디도 몰라도 그것은 예수님의 피입니다. 이런 일이, 성령의 능력이 아니고 어떻게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순수한 마음과 사랑으로 예배를 드릴 수 있다면 초대교회의 사도들 못지않게 성령을 받은 것이고, 그들처럼 기적을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 몸의 언어

이런 기적은 또 있습니다. 우리 동양 사람들은 손 모으기를 잘 하지요. 처음 만난 사람들끼리 인사할 때 합장을 하고 허리를 숙입니다. 이것도 대단한 ‘기적의 언어’입니다. 이것도 성령의 언어입니다. 이것을 불교 의식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손을 모으는 것은 음과 양의 일치를 뜻하는 것이고, 양과 음이라는 것은 하늘과 땅을 말하는 것이지요. 동시에, 이것을 기독교식으로 말하자면 하나님과 사람을 뜻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외국 어느 나라를 가든지, 어떤 사람을 만나든지, 두 손을 모으고 허리를 굽혀 보십시오. 그 누구도 적대시하지 않습니다. 그 어떤 사람도 경계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사랑의 표시요, 존경의 표시요, 호감의 표시입니다. 전혀 낮 모르는 외국인과도 통할 수 있는 ‘성령의 언어’입니다. 우리도 전에, 장로님께서 공과공부 할 때 한 번 했던 기억이 있지요. 합장을 하면서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찬송을 불렀습니다.

지금 다시 한 번 해보겠습니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주시기 바랍니다. “주여” 하면서 두 손을 하늘을 향하여 폅니다. “나를” 하면서 두 손을 가슴에 얹습니다. “평화의 도구로” 하면서 양팔을 벌립니다. “써 주소서” 하면서 두 손을 모으고 허리를 굽힙니다. 앞을 향해 서서. 다 같이 한 번 해보겠습니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이제는 오른쪽으로 돌아서시기 바랍니다. 다시 합니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이제 다시 오른쪽으로 돌아서십시오. 다시 하겠습니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다시 오른쪽으로 돌아서십시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제자리로 돌아서서 한 번 더 하겠습니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지금 이 자리에 외국인들이 함께 있다고 해봅시다. 그분들이, 제가 하는 설교는 못 알아들어도, 우리가 몸으로 드리는 찬양을 통하여서는 우리와 같은 은혜를 나누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것은 초대교회에서 일어났던 기적과 똑 같은 기적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초대교회의 사도들처럼 주님의 능력을 힘입은 제자들입니다.

지난 5월 11일에 제가 다녔던 대학교 졸업 25주년 동문들과, 당시 저희를 가르치셨던 교수님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사은회를 가졌습니다. 제가 존경하는 교수님 앞에 가서 인사를 드렸더니, 80이 넘은 그분이 절 보고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야, 이놈 이거 여전하구나, 야. 그거 좋은 거니까 너,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하라.” 무슨 말씀인가 싶어서, “예?” 했더니, “이거 말이야, 이거!” 하면서 제가 인사하는 흉내를 내셨습니다. 평소 저도 잘 모르고 있었는데, 제가 존경하는 분들에게 인사를 할 때, 두 손을 모으고 허리를 굽히며 인사를 하는 모양입디다. 손을 앞으로 모아 합장하는 것은 아니고, 양 손을 허리쯤에서 모아 잡고 인사를 하는 것 같은데, 25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니 눈에 띄었겠지요.

■ 맺는 말씀

사랑의 표시, 존경의 표시는 자기도 모르게 몸으로 드러납니다. 마음이 그렇게 되어 있으면 몸으로 표현되어 나타나게 되어 있지요.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손을 모으는 습관을 가지는 것은 나쁘지 않습니다. 그것이 성령의 언어입니다. 늘 허리를 굽히는 습관, 역시 성령의 언어입니다. 우리 모두 성령의 언어를 체득해서, 늘 기적을 일으키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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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9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1098 벌거벗은 이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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