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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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지기 2007-06-13 00: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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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창세기 39:8-9 
설교일 2007-06-12 
설교장소 구미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행사 
[2007.6.12 화 구미교회, 구미시찰 교사강습회 파송예배]

■ 성서 본문(창세기 39:8-9)

그러나 요셉은 거절하면서, 주인의 아내에게 말하였다. “주인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맡겨 관리하게 하시고는, 집안 일에는 아무 간섭도 하지 않으십니다. 주인께서는, 가지신 모든 것을 나에게 맡기셨으므로, 이 집안에서는, 나의 위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나의 주인께서 나의 마음대로 하지 못하게 한 것은 한 가지뿐입니다. 그것은 마님입니다. 마님은 주인 어른의 부인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내가 어찌 이런 나쁜 일을 저질러서, 하나님을 거역하는 죄를 지을 수 있겠습니까?”

■ 들어가는 말씀

이번 여름성경학교 주제가 ‘우리는 청지기’이지요.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겨 주신 보석보다 귀한 자녀들을 청지기로 키우자, 이런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아이들에게, ‘청지기란 이런 것이다’ 하고 아무리 말로 가르치려고 해도 아이들은 그저 갑갑할 뿐입니다. 별로 효과가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교재를 가지고, 아무리 기발한 교구를 가지고 수업을 해도, 거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교사가 청지기의 모습을 보여주면 됩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자동으로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자기들 나름대로 멋진 청지기의 모습을 창조해낼 수 있습니다.

■ 멋진 청지기 요셉

그래서 성경에서 찾아봤습니다. 가장 훌륭한 청지기의 모습이 어디에 있을까, 성경에 나오는 인물 가운데서 누가 청지기 노릇을 가장 멋지게 했는가, 뒤져 봤더니 요셉이란 사람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요셉에 대해서는 다들 잘 아실 테니까, 다른 이야기는 하지 않겠습니다. 요셉 이야기 가운데 가장 흥미 있는 부분이 보디발의 아내와 ‘썸씽’이 있을 뻔 했던 장면이지요. 이 장면을 보고 보통은 이런 결론을 내립니다. ‘성공하려면 여자를 조심해야 하는 거야.’ ‘간음을 하지 말아야 하는 거야.’ ‘음욕을 품지 말아야 하는 거야.’ 물론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여기서 조금 더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이 대목에서 요셉의 ‘성윤리’보다는 ‘직업윤리’가 더 빛이 난다는 것입니다. 요셉은 단순히 남의 아내와 잠자리를 같이 하는 것을 거부한 것이 아닙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에게 한 말은 상당히 중요합니다. “주인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맡겨 관리하게 하시고는, 집안일에는 아무 간섭도 하지 않으십니다. 주인께서는, 가지신 모든 것을 나에게 맡기셨으므로, 이 집안에서는, 나의 위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나의 주인께서 나의 마음대로 하지 못하게 한 것은 한 가지뿐입니다. 그것은 마님입니다”(창세기 39:8-9).

주인 보디발은 요셉에게 모든 살림살이를 다 맡겼습니다. 마음대로 하라고 허락했습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청지기로서 최고의 대접과 대우를 받으며 일한 셈입니다. 다만 한 가지, 주인을 범하는 것은 안 된다, 이건데, 이것은 그야말로 기본이지요. 그러니까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를 범하지 않은 것은 ‘여자’를 범하지 않은 것이라기보다는, 주인을 범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 말이나, 저 말이나 결과야 똑 같습니다만, 요셉 자신을 절제하게 만든 ‘의식’은 ‘성윤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직업윤리’에서 나온 것 같습니다.

요셉은 피가 끓는 청년이었습니다. 여자에 대한 생각이 없었을 리가 없고, 때로는 음욕이 발동했을지도 모릅니다. 젊은 청년에게 ‘성욕’이 없다면 그것은 ‘거룩한’ 것이 아니라 ‘모자란’ 것입니다. 요셉이 ‘모자란’ 사람이었을 리는 없습니다. 프로이트 이론에 따르면 성욕이 왕성한 사람이 일에 대한 의욕도 크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요셉은 청지기로서 자기 직무에 충실했기 때문에 실족하지 않고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요셉이 이집트의 총리가 되었지요. 그때도 그렇게 오랫동안 총리로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따지고 보면 요셉의 이러한 ‘직업윤리’ 덕이었을 것입니다. 총리란 자리가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 아닙니까? 이집트의 바로는 모든 나라 살림을 요셉에게 다 맡겼습니다. 바로가 요셉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네가 나의 집을 다스리는 책임자가 되어라. 나의 모든 백성은 너의 명령을 따를 것이다. 내가 너보다 높다는 것은, 내가 이 자리에 앉아 있다는 것뿐이다”(창세기 41:40). 자기 위에 있는 왕만 범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었습니다. 요셉은 철저한 직업윤리를 가졌기에 왕의 자리를 탐내지 않았고, 강대국 이집트의 최고 청지기 직인 총리 노릇을 성공적으로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청지기란 바로 이런 자리입니다. 사실 요셉은 주인을 잘 만났던 사람이지요. 주인 잘못 만나면 이런 멋진 청지기직을 잘 감당해낼 수 없습니다. 이렇게 보면 하나님은 세상에서 가장 멋진 주인입니다. 다른 것은 다 청지기인 우리 마음대로 해도 됩니다. 다만 한 가지, 하나님을 거역하지만 않는다면, 모든 것이 허락되어 있습니다. ‘Let it be!’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그냥 놓아두시기 때문에 우리는 무엇이든 우리 마음대로 하면서 마음껏 우리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것입니다.

■ 어떤 청지기가 될 것인가?

지난 6월 2일 토요일 저녁에 금오산에서 음악회가 있었습니다. 그때, 우리 여름성경학교 노래를 많이 만들었던 백창우 선생도 왔었고, 안치환, 김원중, 김현승, 홍순관…, 이런 분들이 와서 공연을 했는데, 정말 멋있는 공연이었습니다. 그 가운데서 홍순관 씨가 했던 말이 참 인상이 깊었습니다. 이 양반이 이런 말을 합디다. “무대 위의 연주자들 때문에 관객이 숨을 제대로 못 쉬면 그것은 평화가 아니다. 학교 때문에 학생들이 숨을 제대로 못 쉰다면 그것도 평화가 아니다.”

그 양반이 자기가 생각해낸 말인지, 어디서 들은 말인지는 모르지만, 저는 그 때 속으로 ‘아멘!’을 외쳤습니다. 이 말을 다른 데 적용시켜보면 대체로 다 잘 어울립니다. ‘부모 때문에 자녀들이 숨을 제대로 못 쉰다면 그것은 평화가 아니다.’ ‘회사 때문에 직원들이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한다면 그것은 평화가 아니다.’ ‘정부 때문에 국민들이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한다면 그것은 평화가 아니다.’ ‘교회 때문에 성도들이 숨을 제대로 못 쉰다면 그것은 평화가 아니다.’ 이것을 우리 교사들에게 적용시켜본다면 ‘교회학교 때문에 또는 교사 때문에 학생들이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한다면 그것은 평화가 아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전에 우리 어릴 때만 하더라도, 훌륭한 선생님은 어떤 선생님인가 하면, 아이들을 꼼짝 못하게 제압하는 선생님이 훌륭한 선생님이었습니다. 수업시간에 선생님만 열심히 말하고 아이들이 조용하면, 그것을 ‘수업 분위기가 좋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얼핏 보면 평화인 것 같지요. 조용하니까 거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이런 것을 가리켜서 라틴어로 ‘Pax Romana’라고 합니다. ‘로마식 평화’라는 말인데, 로마가 그 주변 국가들을 다 장악해서 그 어느 나라도 로마 앞에서는 꼼짝을 못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것을 지금 미국이 흉내 내고 있습니다. 이를 가리켜서 우리는 ‘Pax Americana’라고 부릅니다. 미국은 자친 ‘경찰국가’라고 하지요. 자기들이 세계 질서를 잡아야 하기 때문에 그 어떤 나라도 자기들에게 대들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꼼짝 말고 내 말 들어라, 이거예요. 말 안 듣는 나라는 ‘악의 축’이라고 낙인을 찍어버리고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서 숨을 못 쉬게 만듭니다. 미국 때문에 여러 나라들이 숨을 제대로 못 쉬니까, 그것은 평화가 아닙니다.

■ Let it be!

그 사람들 가운데서 특히 조지 부시가 예수를 잘 믿는다고 하지 않아요? 그러나 미안하지만 그것은 예수님의 뜻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힘으로 사람을 제압해서 평화를 이루려고 했던 분이 아닙니다. 그러려면 미쳤다고 그 고통을 당하시면서 십자가에 달려서 돌아가셨겠습니까? 그렇게 능력 많으신 예수님인데, 그까짓 것 기적 한 방이면 사람들을 꼼짝 못하게 하실 수 있을 것 아닙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걸 싫어하셨습니다.

군병들이 예수님을 잡으려고 했을 때,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 칼을 빼들었지 않습니까? 이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지요. ‘Let it be!’ 그냥 둬라, 이 말이에요. 어린이들이 예수님께 몰려왔을 때도, 제자들은 아이들을 쫓으려고 하셨지만, 예수님은 아이들을 막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Let it be!’ 그냥 두라는 말이에요. 아이들 몰려오는 것, 시끄럽고 귀찮지 않아요? 물리쳐버리면 조용하고 질서가 있을 겁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시끄러워도 괜찮으니 ‘Let it be!’ 순리대로 놓아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귀한 어린이들, 학생들을 맡은 우리 교사들이 어떻게 해야 하느냐, 답이 나왔습니다. 가장 좋은 교육은 ‘Let it be!’ 그냥 두는 것입니다. 교사가 분위기를 잡아서 아이들을 조용하게 시켜서 어딘가로 이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하는 대로 그대로 두고 따라가는 거예요. 이것이 큰 원칙입니다.

■ 맺는 말씀

이제 오늘 드린 말씀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먼저, 성경에 나와 있는 인물들 가운데 청지기 중의 청지기는 요셉이었습니다. 요셉은 모든 것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었습니다. 단 한 가지, 주인의 자리만 탐내지 않으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도 요셉과 같은 청지기 직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자리만 탐내지 않으면 됩니다. 여러분에게 맡겨주신 어린이들 또는 학생들을 소신껏 섬기면 됩니다. 여러분의 신분이 주인이 아니라 청지기라는 것만 잊지 않으면 마음껏 자유롭게 일할 수 있습니다.

▶그 다음, 그렇다면 우리는 청지기로서 무슨 일을 해야 하는가? 우리는 ‘평화’를 이루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평화란 무엇인가? 힘으로 제압해서 조용히 시키는 것이 평화가 아닙니다. 옛날에 로마가 군사력으로 당시 세계를 꼼짝 못하게 했듯이, 요즘, 미국이 자기들에게 대드는 나라들을 괴롭혀서 숨도 못 쉬게 하듯이, 상대를 힘으로 제압하거나 권위로 누르는 것은 평화일 수 없습니다. ‘로마식 평화’나 ‘미국식 평화’가 아니라 ‘예수님의 평화’를 우리는 이루어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그러면 예수님 방식의 평화란 무엇인가?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Let it be!’ 그냥 그대로 두어라, 입니다. 아이들이나 학생들을 막지 말라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한 가지만 빼고 다 허락하셨듯이, 청지기인 우리도, 우리가 맡은 학생들에게, 한 가지만 빼고 다 허락해야 합니다. 그 한 가지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주인으로 받드는 것, 그것 단 한 가지입니다. 이것만 양보하지 않는다면 다른 것은 다 허락해도 됩니다. 아니, 그렇개 해야 합니다.

이제, 제가 바라기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한 가지만 빼고 다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허락하셨듯이, 여러분도 여러분이 맡은 어린이나 학생들에게 한 가지만 빼고 다 허락하고 최대한의 자유를 주는 멋진 청지기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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