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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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지기 2007-07-09 03:4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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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호세아서 11:1-4 
설교일 2007-07-08 
설교장소 구미안디옥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주일 


■ 성서 본문

“이스라엘이 어린 아이일 때에,
내가 그를 사랑하여
내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냈다.
그러나 내가 부르면 부를수록,
이스라엘은 나에게서 멀리 떠나갔다.
짐승을 잡아서 바알 우상들에게
희생제물로 바치며,
온갖 신상들에게
향을 피워서 바쳤지만,
나는 에브라임에게
걸음마를 가르쳐 주었고,
내 품에 안아서 길렀다.
죽을 고비에서 그들을 살려 주었으나,
그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였다.
나는 인정의 끈과 사랑의 띠로
그들을 묶어서 업고 다녔으며,
그들의 목에서 멍에를 벗기고
가슴을 헤쳐 젖을 물렸다.

[호세아서 11:1-4]


■ 들어가는 말씀

우리가 하나님을 부를 때 보통은 ‘하나님 아버지’라고 하지요. 그러나 이것이 유일한 호칭은 아닙니다. 옛날 가부장 사회에서 아버지의 권위가 가장 크니까 그렇게 불렀던 것인데,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꼭 아버지 같은 분인 것만은 아닙니다. 때로는 아버지처럼 두려운 분으로, 위엄 있는 분으로 묘사되기도 하지만, 어머니 같은, 인자하고 사랑 많고 정이 많은 모습으로 나오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사실 오늘 은혜를 나누려고 하는 호세아서의 이 말씀은 지난 1999년 3월 14일 주일에 함께 생각했던 본문인데, 제목을 바꾸어서 오늘 한 번 더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아르헨티나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어떤 소년이 마약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마약이란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오지가 참 어렵지요. 마약에 빠진 사람은 자기의 재산이 있다면 그것을 다 팔아서라도 마약을 사려고 하고, 그것도 안 되면 도둑질을 해서라도 마약 주사를 맞아야 합니다. 이 소년도 마약을 사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자기 집에서 돈을 요구하다가 안 되니까 외가로 가서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에게 마약 살 돈을 요구했습니다. 어떤 어른이 마약 산다는 데 돈을 줍니까?

당연히, 소년의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도 거절했습니다. 중독증을 참지 못한 소년은 그만 두 노인을 죽여 버렸습니다. 마약에 눈이 뒤집힌 소년에게는, 이 노인들이 자기를 낳아 주신 어머니의 부모님이었다는 사실도 안중에 없었습니다. 결국 소년은 재판을 받고 감옥에 가게 되었습니다. 사형 선고가 내려졌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죽어 마땅하다’고 입을 모아 욕을 했습니다. 물론 아무도 감옥에 찾아가 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웃들은 물론, 그 소년의 식구들까지도 멀리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감옥으로 찾아간 소년의 어머니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소년에게 말했습니다. “얘야, 그래도 나는 너를 사랑한다. 나는 너를 용서한다.” 어머니는 매일같이 감옥을 찾아가 아들을 면회했습니다. 아들이 감옥 음식을 싫어한다고 해서, 갈 때마다 따듯한 음식을 준비해 가지고 아들을 찾았습니다.


이 소년이 그 후에 회개를 했는지 잘 알지는 못하지만,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이런 것이 어머니의 사랑이로구나!’ 하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자식이 죽을죄를 지었어도, 끝까지 자식을 사랑한 사람이 어머니였습니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감독자로 생각했습니다. 하늘에서 팔짱을 끼고 세상을 내려다보시면서, 세상에 사는 사람들을 향해, ‘요놈들이 얼마나 잘 하나 어디 두고 보자’ 하시면서 일일이 체크하시다가, 마지막 날에 무서운 형벌로 심판하시는 분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면 혹시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자녀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감독자의 사랑이 아니라,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자기 친정 부모를 죽인 원수일지라도, 그 원수가 자기 자식인 까닭에, 자기가 죄인의 어머니인 까닭에,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그를 사랑한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도 이와 같습니다. 죽을죄를 지은 자식을, 사랑으로 감싸시며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오늘 구약성서 본문의 내용입니다. 다시 한 번 읽겠습니다.

“이스라엘이 어린 아이일 때에, 내가 그를 사랑하여 내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냈다. 그러나 내가 부르면 부를수록, 이스라엘은 나에게서 멀리 떠나갔다. 짐승을 잡아서 바알 우상들에게 희생제물로 바치며, 온갖 신상들에게 향을 피워서 바쳤지만, 나는 에브라임에게 걸음마를 가르쳐 주었고, 내 품에 안아서 길렀다. 죽을 고비에서 그들을 살려 주었으나, 그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였다. 나는 인정의 끈과 사랑의 띠로 그들을 묶어서 업고 다녔으며, 그들의 목에서 멍에를 벗기고 가슴을 헤쳐 젖을 물렸다”(호세아서 11:1-4).

■ 낳아주신 하나님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아직 어린아이일 때에 그를 사랑하여 이집트에서 불러내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이 수백 년 동안 이집트에서 종살이를 했지요. 이런 수렁에서 하나님은 모세를 시켜서 백성들을 구출하셨습니다. 그 이전에도 물론 백성을 사랑하셨지만, 이스라엘의 역사를 아이의 성장과정으로 생각해보면, 그 이전 시대는 철없이 물불 못 가리던 시절이었고, 사실은 이때부터가 본격적인 역사의 시작입니다. 출애굽은 이스라엘이 새롭게 태어난 사건입니다.

인생도 그렇습니다. 사람의 인생은 하나님을 알게 된 이후부터 새롭게 시작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이나, 겉으로 보기에는 비슷할지 모르지만, 그 본질에 있어서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기 전에는 세상에서 어느 것이 악인지 어느 것이 선인지, 어느 것이 진실인지 어느 것이 거짓인지,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게 되면 영적인 눈을 뜨게 됩니다. 그제야 비로소 하나님께서 무엇을 기뻐하시는지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새로운 삶으로 인도해 주시는 분입니다. 제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을 알기 전까지는 껍데기 인생입니다. 사람이, 자기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깨닫기 전까지는 눈이 있으나 보지 못하고, 귀가 있으나 듣지 못하고, 입이 있으나 제대로 된 말을 하지 못합니다. 우리도 예전에 그랬습니다. 그런 우리를 하나님께서 부르셔서 당신의 자녀로 삼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들쳐 업으셨을 때부터 우리의 운명은 바뀌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를 깨우쳐주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세상에 태어났었는지조차도 모르고, 허깨비처럼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주님의 자녀임을 깨닫게 됨으로써, 아버지 하나님의 보호를 받으면서, 어머니 하나님의 보살피심을 받으면서 살게 되었습니다.

우리 인생에서 때때로 울어야 할 때도 있지만, 이제 우리의 울음소리는 공허한 울림이 아니라, 들어주는 이가 있는 울음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의 울음소리는 공허한 울음소리입니다. 허공에 외치는 울음소리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배고파서 울 때에는 하나님께서 먹을 것을 주시고, 편치 않아서 울 때는 하나님께서 친히 진자리 마른자리를 갈아주실 것입니다.

■ 길러주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셔서 우리 인생을 180도로 바꾸어놓으셨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우리를 길러 주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 말씀 3절에 보면 “나는 에브라임에게 걸음마를 가르쳐 주었고, 내 품에 안아서 길렀다”고 했습니다. 또 4절에는 “나는 인정의 끈과 사랑의 띠로 그들을 묶어서 업고 다녔으며, 그들의 목에서 멍에를 벗기고 가슴을 헤쳐 젖을 물렸다”고 했습니다.

처녀들은, 젖가슴이 조금이라도 노출되면 대단히 수치스럽게 생각하지요. 그러나 어머니의 젖가슴은, 그것이 아이를 위해 사용될 때라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노출되어도 상관이 없습니다. 요즘 신세대 엄마들은 아이들을 등에 잘 업고 다니려 하지 않지만, 하나님은 “인정의 끈과 사랑의 띠로” 우리를 묶어 업고 다니십니다. 그리고 “가슴을 헤쳐” 우리에게 젖을 물리십니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등에 업혀 있는 상태입니다. 그리고 배가 고플 때는 하나님의 젖가슴을 어루만지며 젖을 먹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등에 업힌 아이는 세상의 위험을 모릅니다. 알 필요도 없습니다. 모든 것을 어머니께서 알아서 지켜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등에 업혀 있다는 것을 안다면, 전혀 걱정할 일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하며 염려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는 하나님

어머니들은, 자식을 낳아 주시고 길러주실 뿐만 아니라, 절대로 버리지 않으십니다. 아르헨티나의 그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세상 사람들이 다 아이를 욕하고 외면할지라도, 어머니만은 자식의 편입니다. 하나님도 그렇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우리를 욕하고, 우리를 버릴지라도,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비록 우리가 타락했다고 하더라도, 우리를 꾸짖으시고 때리실지언정, 우리를 버리시지는 않으신다는 말입니다.

호세아서 11장 8절에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에브라임아,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이스라엘아, 내가 어찌 너를 원수의 손에 넘기겠느냐? … 너를 버리려고 하여도 나의 마음이 허락하지 않는구나. 너를 불쌍히 여기는 애정이 나의 속에서 불길처럼 강하게 치솟아 오르는구나.”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는 것은, 우리가 깨끗해서가 아닙니다. 죄를 짓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잘나서 못 버리시는 것이 아니라, 못났지만, ‘하나님의 마음이 허락지 않아서’ 못 버리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살판이 났지요. 하나님께서 불러 주셨으니, 누가 뭐래도 하나님의 자녀들이지요. 때를 따라 먹여주시고, 입혀주시고, 보호해 주시고, 길러 주시니 걱정할 것도 없지요. 더구나, 절대로 버리지 않으신다고 하셨으니, 죄를 짓든 뭐를 하든 마음대로 살아도 되게 생겼습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자식의 도리가 무엇입니까? 부모를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이 자식으로서의 최선의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우리 어머니는 내가 잘못해도 야단 한번 치시면 그만이야. 더 이상은 어떻게 못해. 그러니 내 마음대로 살아야지.” 만일 자녀들이 요렇게 생각한다면 부모는 억장이 무너지지요. 제대로 된 자식이라면, 어머니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읽는다면, 어머니를 기쁘시게 해 드리는 자식이 되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어머니들이 자식에게 뭐 대단한 것을 바랍니까?

자식이 어릴 적에는 자식에 대한 꿈도 많고 기대도 많지요. 우리 아이가 세상에서 제일 똑똑한 것 같고, 출세를 해도 단단히 할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세상일이라는 게 어디 그렇게 뜻대로만 됩니까? 유치원 다니고 초등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대통령 아니라 그보다 더한 것도 될 것 같이 생각되던 아이지만, 중학교에 가고 고등학교에 가고 점점 커 갈수록 부모의 기대도 소박해지기 마련입니다. 결국에는 “저게 제 앞가림이나 잘 하면서 살게 될까?” 하는 걱정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그렇다고 자식에 대한 기대를 깨라는 것은 아닙니다. 최선을 다해서 키워야지요.

어쨌든, 부모가 자식에게서 얻고자 하는 것은 기쁨입니다. 자식의 출세 자체가 아닙니다. 자식이 출세를 하기는 했는데, 기껏 키워준 부모는 안중에도 없고, 자기가 잘나서 출세했다고 생각한다면, 말은 안 해도 속으로는 상당히 섭섭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언제 부모의 마음이 기쁜가, 뭐니 뭐니 해도, 자식이 부모의 공을 알아줄 때 부모는 가장 기쁩니다. 낳아주심에 대해 감사하고, 온갖 희생을 다 겪으면서까지 길러주신 데 대해, 자식들이 감사한다면, 부모는 그것만으로도 기쁩니다. 그게 가장 큰 효도입니다.

■ 맺는 말씀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첫째,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 삼아 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하면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둘째, 우리는 하나님의 보호하심 아래에 있는 것을 감사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셋째, 우리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 어머니를 새롭게 만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100 양심을 깨끗하게 만드는 제물
1099 벌거숭이가 됩시다
1098 칼 이야기
1097 머리로 알기 vs 몸으로 알기
1096 예배와 봉사, 무엇이 먼저인가?
1095 고향으로 가자
1094 "애써 주님을 알자!"
1093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1092 의로운 백성, 비틀거리는 백성
1091 생각에서 행동까지
1090 이슬처럼 내리는 은혜
1089 새내기들의 다짐
» 하나님 어머니
1087 가슴을 헤쳐 젖을 물렸다
1086 주머니가 구멍난 까닭
1085 "언제까지 그러실 겁니까?"
1084 노예로 살기, 주인으로 살기
1083 "너희를 구하여 내겠다!"
1082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1081 “신을 벗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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