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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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시편 65:9-13 
설교일 2007-11-18 
설교장소 구미안디옥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감사절 


■ 성서 본문

주님께서 땅을 돌보시어,
땅에 물을 대주시고,
큰 풍년이 들게 해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손수 놓으신 물길에,
물을 가득 채우시고,
오곡을 마련해 주시니,
이것은, 주님께서 이 땅에다가
그렇게 준비해 주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또 밭이랑에 물을 넉넉히 대시고,
이랑 끝을 마무르시며,
밭을 단비로 적시며,
움 돋는 새싹에 복을 내려 주십니다.
주님께서 큰 복을 내리시어,
한 해를 이렇듯 영광스럽게 꾸미시니,
주님께서 지나시는 자취마다,
기름이 뚝뚝 떨어집니다.
그 기름이 광야의 목장에도 여울져 흐르고,
언덕들도 즐거워합니다.
목장마다 양 떼로 뒤덮이고,
골짜기마다 오곡이 가득하니,
기쁨의 함성이 터져나오고,
즐거운 노랫소리 그치지 않습니다.

〈시편 65:9-13〉


■ 들어가는 말씀

어제, 우연히 어느 다른 교회의 주보를 보게 되었습니다. ‘교회소식’에 보니까 교우들에게 숙제를 하나 주었는데, 그게 뭐냐 하면, 다음 주일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여 하나님 앞에 감사한 일을 적어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건 우리도 몇 년 전에 해본 적이 있습니다만, 그 교회에서 요청하는 것은 조금 달랐습니다. 감사한 일을 적는데, 자기 나이만큼 적으라는 것입니다. 열 살짜리는 열 가지, 스무 살짜리는 스무 가지, 서른 살짜리는 서른 가지…. 환갑이 된 분은 예순 가지를 적어야 하겠지요.

감사할 수 있는 숫자야 개인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그 교회에서 요구하는 것은 나이가 들수록 감사할 일이 많아져야 한다는 것이겠지요.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나이가 들어갈수록 감사할 일이 늘어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나이가 들어갈수록 점점 인생이 고되다고 느끼고 있습니까? 제가 보기에 이것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경제적인 형편이 나아지느냐, 생활 여건이 나아지느냐, 그런 문제는 아닙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우리의 신앙이 얼마나 성숙해져 가는가, 그 문제입니다.

오늘 구약성경 본문 말씀 11절에 보니까 시인은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주님께서 큰 복을 내리시어, 한 해를 이렇듯 영광스럽게 꾸미시니, 주님께서 지나시는 자취마다, 기름이 뚝뚝 떨어집니다.” 여러분의 한 해는 영광스러운 한 해였습니까? 여러분의 2007년은 기름이 뚝뚝 떨어지는 한 해였습니까? 이 질문에 대해 우리 모두 ‘예, 그렇습니다!’ 하고 대답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분도 있겠지요.

그렇다면 뭐가 문제이겠습니까?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큰 복을 내리시기를 바라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살아가는 한해, 한해가 영광스러운 한해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삶에 기름이 뚝뚝 떨어지기를 소망하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이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면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겠지요. 그 문제가 무엇이겠습니까? 11절 말씀을 다시 읽습니다. “주님께서 큰 복을 내리시어, 한 해를 이렇듯 영광스럽게 꾸미시니, 주님께서 지나시는 자취마다, 기름이 뚝뚝 떨어집니다.” 어디에 기름이 뚝뚝 떨어진다고 했습니까? ‘주님께서 지나시는 자취마다’ 기름이 떨어집니다.

만일 우리 삶이, 기름이 뚝뚝 떨어지는 윤택한 삶이 아니라, 황폐하고, 메말라 있는 삶이라면, 그것은 우리가 주님께서 지나시는 자취를 따라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 그렇다면 주님께서 지나시는 자취에는 어떤 복된 일이 일어나는가, 오늘은 그것을 한 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 첫째, 주님께서 지나시는 자취마다 ‘살림’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한번은 예수님께서 나인이라는 성으로 가시게 되었습니다(누가복음서 7:11-17). 그때도 제자들이 옆에 있었고, 예수님 주위로 사람들이 몰려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문에 가까이 이르셨을 때에, 사람들이 죽은 사람 하나를 메고 나오고 있었습니다. 죽은 사람은 어떤 과부의 외아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사람의 어머니를 보시고, 가엾게 여기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울지 마세요.” 그리고 앞으로 나서서, 관에 손을 대셨습니다. 관을 메고 가던 사람들이 멈추어 섰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젊은이야, 내가 네게 말한다. 일어나라.” 그랬더니 죽은 사람이 일어나 앉아서, 말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사실 죽음이란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지요. 오히려 하나님께서 주신 복이기도 합니다. 사람이 죽지 않고 천년만년 산다고 해보세요. 그것처럼 지옥도 없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지구도 견뎌 내지를 못하겠지요. 사람이고 동물이고 식물이고, 적당할 때 죽는 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죽은 아들의 어머니를 보시고 가엷게 여기셨다고 했습니다. 그 과부의 아들은 ‘제때에’ 죽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살리신 겁니다. “젊은이야, 내가 네게 말한다. 일어나라.”

예수님께서 마르다와 마리야 자매를 사랑하셨다고 했지요. 이 자매에게 오라버니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나사로인데, 나사로가 그만 중한 병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마르다와 마리아는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서 말했습니다. “주님, 보십시오.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이 앓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틀이나 지나서야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다. 내가 가서, 깨워야겠다.” 제자들이 말했습니다. “주님, 잠들었으면, 곧 일어나게 되겠지요.” 예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나사로는 죽었다. 가자.”

예수님께서 도착하셨을 때는 나사로가 무덤 속에 있은 지가 벌써 나흘이나 되어 있었고, 동네 사람들이 마르다와 마리아를 위로하러 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서 마르다가 맞으러 나가서 말했습니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오라버니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라도, 주님께서 하나님께 구하신다면 하나님께서 다 이루어 주실 줄 압니다.” 예수님께서 마르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오라버니가 다시 살아날 것이다.” 마르다가 다시 말합니다. “마지막 날 부활 때가 되면 다시 살아나겠지요.”

예수님께서는 비통하게 여기시면서 무덤으로 가셨습니다. 무덤은 동굴이었고, 그 어귀는 돌로 막아져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돌을 옮겨 놓아라!” 마르다가 말했습니다. “주님, 죽은 지가 나흘이나 되어서, 벌써 냄새가 납니다.” 사람들이 돌을 옮겨 놓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을 우러러 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아버지께서는 언제나 제 말을 들어주시지요?” 이렇게 말씀하신 다음에, 큰 소리로 외치셨습니다. “나사로야, 나오너라!” 죽었던 사람이 나왔습니다. 손발은 천으로 감겨 있고, 얼굴은 수건으로 싸 매여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를 풀어 주어라!”

우리는 나사로가 무슨 병에 걸려 죽었는지 모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을 때 죽은 사람의 몸에 어떤 변화가 생겨서 어떻게 살아나게 되었는지, 그것도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에서 죽은 생명이 살아났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지나시는 자취마다 ‘살림’의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 둘째, 주님께서 지나시는 자취마다 ‘평화’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방금 마르다와 마리아 자매의 오라버니 이야기를 말씀드렸습니다만, 이 마르다와 마리아 자매는 예수님과 상당히 가까운 사이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다니 지방을 지나실 때면 이 집에 묵어가셨던 것으로 보이는데, 언니 마르다와 동생 마리아 사이에 보이지 않는 갈등이 조금씩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언젠가 예수님께서 이 자매들의 집을 방문하셨을 때의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시니까 동생인 마리아는 주님의 발 곁에 앉아서 말씀만 듣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언니 마르다는 여러 가지 접대하는 일로 분주하였습니다. 그래서 마르다가 예수님께 와서 말했지요. “주님,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십니까? 가서 거들어 주라고 내 동생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마르다에게 대답하셨습니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너는 많은 일로 염려하며 들떠 있다. 그러나 주님의 일은 많지 않거나 하나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택하였다. 그러니 아무도 그것을 그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나는 일하는데 왜 너는 가만히 앉아서 말씀만 듣고 있느냐?’ 이것이 마르다의 원망이었습니다. 언니의 말도 맞지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의 편을 들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의 결론은 ‘말씀이 우선이다!’ 이겁니다. 갈등이 왜 일어납니까? 두 개의 가치가 부딪칠 때 분쟁이 일어나고 다툼이 일어나지요. 이때 둘 사이의 우선순위가 정립되면 갈등은 일순간 해소됩니다. 예수님의 판단은 언제나 ‘말씀 우선’입니다. ‘말씀’을 가장 귀하게 여기면 평화는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처음부터 예수님은 ‘평화의 왕’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실 때 하늘에서 천군천사들의 노래도 ‘평화의 노래’였습니다. “더없이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주님께서 좋아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로다”(누가복음서 2:14). 생애의 마지막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실 때 사람들의 부른 노래도 ‘평화의 노래’였습니다. “복되시다,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임금님! 하늘에는 평화, 지극히 높은 곳에는 영광!”(누가복음서 19:38).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파송하실 때도, 그들에게 이르셨습니다.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이 집에 평화가 있기를 빕니다!’ 하고 말하여라. 거기에 평화를 바라는 사람이 있으면, 너희가 비는 평화가 그 사람에게 내릴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그 평화가 너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누가복음서 10:5-6). 이처럼 예수님 자신의 삶 자체가 평화로 시작해서 평화를 전하다가 평화로 마친 것이었습니다.

■ 셋째, 주님께서 지나시는 자취마다 ‘풍성함’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뒤였습니다(요한복음서 21:1-6). 시몬 베드로와 다른 제자 몇 사람이 한 자리에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선생님이 십자가에 달려 무기력하게 돌아가신 뒤였기 때문에, 그들은 실망과 허탈감에 빠져 있었을 겁니다. 그 자리에서 베드로가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고기를 잡으러 가겠다!” 그랬더니 다른 제자들도 “우리도 함께 가자” 하며 따라 나섰습니다. 그들은 나가서 배를 탔습니다. 그러나 그 날 밤, 그들은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동틀 무렵이 되었습니다. 그 때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바닷가에 들어서셨지만, 제자들은 그분이 예수이신 줄을 몰랐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이보시오, 무얼 좀 잡았소?” 그들이 대답했습니다. “못 잡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지시오. 그리하면 잡을 겁니다.” 그 말씀대로 제자들이 그물을 던지니까, 고기가 너무 많이 걸려서, 그물을 끌어올릴 수조차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빵 다섯 개를 가지고 오천 명이나 먹이셨고, 빵 일곱 개를 가지고 사천 명이나 먹이셨습니다. 또 잔칫집에서 포도주가 모자라 쩔쩔 맬 때, 예수님께서는 맹물을 가지고 최상품의 포도주를 만들어서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셨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계시는 곳에는 무엇이나 풍성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라고 하시는 대로만 하면 먹을 것이 넘쳐난다는 말입니다.

■ 맺는 말씀

오늘 구약성경 본문 11절을 다시 읽습니다. “주님께서 큰 복을 내리시어, 한 해를 이렇듯 영광스럽게 꾸미시니, 주님께서 지나시는 자취마다, 기름이 뚝뚝 떨어집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주님께서 지나시는 자취마다 ▶‘생명 살림’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평화’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무엇이든 풍성하게 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올 초에 우리가 함께 기도하기로 한 제목을 기억하시지요? “오직 주님을 소망으로 삼아 새 힘을 얻게 해주십시오!” 여기서 주의할 말이 있습니다. ‘주님도 우리 소망 가운데 하나로 삼아’가 아닙니다. ‘오직 주님을 소망으로 삼아’입니다. ‘내 생각’을 소망으로 삼으면서 시간 나면 주님도 생각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부귀영화’를 소망으로 삼아 살다가, 조금 양심에 찔리니까 예수님도 소망으로 삼아보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주님만을 소망으로 삼을 때, 이 모든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 주님께서 지나시는 자취마다, 죽을 생명이 살아나고, 평화가 오고, 물질도 풍성해집니다.

여러분이 ‘오직 주님을 소망으로 삼아’ 주님의 자취를 따라 움직임으로써, 여러분이 가는 곳마다 죽을 생명이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가는 곳마다 평화가 넘쳐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가는 곳마다 세상에서 쓸 물질도 풍성해지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한 해, 한 해를 살아갈 때 우리는 시인처럼 고백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큰 복을 내리시어, 한 해를 이렇듯 영광스럽게 꾸미시니, 주님께서 지나시는 자취마다, 기름이 뚝뚝 떨어집니다.”

주님께서 항상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1102 내 인생 광내기
1101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1100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1099 벌거벗은 이사야
1098 사무엘처럼
1097 안디옥 공동체
1096 주님의 문
1095 아기야, 칼이 되어라!
1094 성령의 언어
1093 왜 어린이를 복되다 하는가?
1092 오직 주님을 소망으로 삼는 사람
1091 우상에 대하여
1090 내가 이 일을 지체 없이 이루겠다!
1089 우리 가운데에 하나님의 나라를!
1088 희망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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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5 온 생명을 충만케 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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