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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전도사

by 마을지기 posted Dec 23,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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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이사야서 40:1-11
설교일 2007-12-23
설교장소 구미안디옥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대림절


■ 성서 본문

“너희는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 위로하여라!”
너희의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예루살렘 주민을 격려하고, 그들에게 일러주어라.
이제 복역 기간이 끝나고, 죄에 대한 형벌도 다 받고,
지은 죄에 비하여 갑절의 벌을 주님에게서 받았다고 외쳐라.”
한 소리가 외친다.
“광야에 주님께서 오실 길을 닦아라.
사막에 우리의 하나님께서 오실 큰길을 곧게 내어라.
모든 계곡은 메우고, 산과 언덕은 깎아 내리고,
거친 길은 평탄하게 하고, 험한 곳은 평지로 만들어라.
주님의 영광이 나타날 것이니, 모든 사람이 그것을 함께 볼 것이다.
이것은 주님께서 친히 약속하신 것이다.”

한 소리가 외친다.
“너는 외쳐라.”
그래서 내가 “무엇이라고 외쳐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을 뿐이다.
주님께서 그 위에 입김을 부시면,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든다.
그렇다. 이 백성은 풀에 지나지 않는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 있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시온아,
어서 높은 산으로 올라가거라.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예루살렘아,
너의 목소리를 힘껏 높여라.
두려워하지 말고 소리를 높여라.
유다의 성읍들에게 “여기에 너희의 하나님이 계신다” 하고 말하여라.

만군의 주 하나님께서 오신다.
그가 권세를 잡고 친히 다스리실 것이다.
보아라, 그가 백성에게 주실 상급을 가지고 오신다.
백성에게 주실 보상을 가지고 오신다.

그는 목자와 같이 그의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들을 팔로 모으시고, 품에 안으시며,
젖을 먹이는 어미 양들을 조심스럽게 이끄신다.

〈이사야서 40:1-11〉


■ 들어가는 말씀

오늘은 대림절 넷째 주일입니다. 드디어 촛불이 네 개가 다 켜졌습니다. 우리가 기다리던 예수님께서 아주 가까이 와 계십니다. 앞으로 이 촛불은 내년 1월 6일 주현절이 오기까지 계속해서 네 개가 다 밝혀지게 될 것입니다.

귀한 손님이 집에 오시기로 되어 있으면 준비를 하게 됩니다. 마당도 쓸고, 집안 구석구석 청소를 하지요. 대통령이 어느 지방을 방문할 때 반드시 선발대가 먼저 내려옵니다. 대통령이 지나가게 될 길을 점검하고, 각종 행사의 준비상태를 점검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오실 때도 준비가 필요합니다. 오늘 읽은 구약성경 이사야서 40장 말씀이, 주님께서 오시기 전에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 하는 지침입니다.

이사야는 이 말씀에서,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사람들에게 세 가지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가 ‘주님의 백성을 위로하라’는 것이고, ▶두 번째는 주님께서 우리 하나님임을 ‘크게 외치라’는 것이고, ▶세 번째가 하나님께서 와 계시는 곳으로 ‘초청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틀어서 말하면 우리 보고 ‘희망 전도사’가 되라는 것입니다.

■ 위로하라!

이사야는 1절에서 말합니다. “너희는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 위로하여라!” 백성이 왜 위로를 받아야 합니까? 그 이유가 2절에 나와 있습니다. “예루살렘 주민을 격려하고, 그들에게 일러주어라. 이제 복역 기간이 끝나고, 죄에 대한 형벌도 다 받고, 지은 죄에 비하여 갑절의 벌을 주님에게서 받았다고 외쳐라.” 백성들이 고통을 받을 만큼 받았고, 하나님의 벌도 받을 만큼 다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위로’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슬퍼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 하나님이 그들을 위로하실 것이다”(마태복음서 5:4). 이 말씀의 취지는 ‘슬퍼해야 복을 받는다’는 것이 아니라 ‘위로 받는 사람이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거꾸로, 위로 받지 못하는 사람은 슬픈 사람입니다. 마음에 상처를 입었는데도 아무도 위로해주는 사람이 없다면, 몸이 아픈데도 아무도 위로해주는 사람이 없다면, 그것처럼 슬픈 일도 없습니다.

성경에 보면 ▶이삭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다음에 리브가와 결혼을 했고, 그것을 통하여 어머니 잃은 슬픔을 위로 받았습니다.(창세기 24:67). ▶요셉은, 복수 당할까봐 두려워 떠는 형들을 위로함으로써 ‘대인’의 모습을 보였고, 형들은 큰 짐을 내려놓았습니다(창세기 50:21). ▶룻은 보아스의 위로를 받고 팔자를 고쳤습니다(룻기 2:13). ▶자식을 낳지 못해 괴로워하던 한나는 남편의 위로를 받고 기도할 힘을 얻었습니다(사무엘기상 1:8). ▶다윗은 아들을 잃은 밧세바를 위로함으로써 새 아들을 얻었고, 그렇게 얻은 아들이 이스라엘의 큰 임금이 되었습니다(사무엘기하 12:24). ▶이유도 모른 채 세상에서 가장 고생을 많이 했던 욥은, 길고 긴 고통의 터널을 뚫고 나온 후에, 형제와 자매와 친구들의 위로를 받았습니다(욥기 42:11).

전도서 4장 1절은 말합니다. “나는 또 세상에서 벌어지는 온갖 억압을 보았다. 억눌리는 사람들이 눈물을 흘려도, 그들을 위로하는 사람이 없다. 억누르는 사람들은 폭력을 휘두르는데, 억눌리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사람이 없다.” 위로 받아야 할 사람들이 위로를 받지 못하는 세상은 지옥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사명을 생각하지요? 가난한 자의 해방, 세계 복음화 등등, 큰 것만을 자꾸 생각하는데, 옛말에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했습니다. 그 첫 걸음이 ‘위로’입니다. 우리가 상처 받은 이웃들을 위로하기를 기뻐한다면,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충분히 제 구실을 다하고 있는 것입니다.

■ 크게 외치라!

오늘 구약 본문 6절부터 8절까지 말씀입니다. 하늘의 소리가 있었습니다. “너는 외쳐라.” 그래서 이사야가 물었습니다. “무엇이라고 외쳐야 합니까?” 그랬더니 대답이 들려오는데, 그 대답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을 뿐이다. 주님께서 그 위에 입김을 부시면,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든다. 그렇다. 이 백성은 풀에 지나지 않는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 있다.”

희망 전도사가 되기 위해서 우리는 세상을 향해 외쳐야 합니다. 뭐라고 외쳐야 합니까? 이사야의 말씀을 요약하면 이겁니다.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 있다.” 세상은 절망을 말하지만, 영원한 희망이 우리에게는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희망을 가지고 있을 때 사람들은 생기 있고 발랄합니다. 얼굴에서 광채가 납니다. 최악의 경우, 그 희망이 앞으로 실현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적어도 희망이 있는 동안만은 사람들에게 생기가 생깁니다. ‘마지막 입새’라는 작품을 기억하시지요? 병실 창밖의 잎사귀 한 개가 언제 떨어질지 모르지만, 떨어지기 전까지는 마음의 평안을 유지할 수 있는 겁니다.

우리는, 우리 이웃들에게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다’고 외쳐야 합니다. 이 세상이 절망과 낙심으로 가득 차 있다고 할지라도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희망이 있습니다. 인류 역사상 하나님의 말씀이 죽어 있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한 순간도 빠짐없이 살아 있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앞으로도 영원히 살아 있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빛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희망이 될 것입니다.

사람들이 절망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고쳐지지 않을 것이라고 하는 비관론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낙심하는 것은 엉망진창인 이 상태가 영원히 계속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있는 한 그럴 리는 없습니다. 모든 계곡은 메워지고, 산과 언덕은 깎아 내려지고, 거친 길은 평탄하게 되고, 험한 곳은 평지가 될 것입니다(이사야서 40:4).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함께 보게 될 것입니다(5).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낙담하고 있을 때도 우리는 희망을 전해야 합니다. 희망 전도사가 되어야 합니다.

■ 초청하라!

이사야서는 말합니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시온아, 어서 높은 산으로 올라가거라.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예루살렘아, 너의 목소리를 힘껏 높여라. 두려워하지 말고 소리를 높여라(40:9). 목소리를 힘껏 높여서 무엇이라고 외쳐야 합니까? 그 답이 10절에 나와 있습니다. “여기에 너희의 하나님이 계신다!”

사람들은,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사야는 “여기에” 하나님께서 계시다고 선포합니다. ‘여기에 하나님이 계시다’고 하는 것이 곧 ‘임마누엘’입니다. 이천 년 전에 태어나신 예수님의 이름이 ‘임마누엘’입니다. 아기 예수가 누워 있는 거기에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장성한 예수가 다니는 그 길에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장 잘 표현한 노래가, 우리가 잘 아는 ‘Ubi Caritas’입니다. “사랑의 나눔 있는 곳에 하나님께서 계시도다.” 사랑의 나눔이 있는 곳이라면 그 어디나 하나님이 계십니다.

내일 저녁에 우리는 성탄 잔치를 열 것입니다. 음식으로 사랑을 나눌 것입니다. 각자 준비한 선물로 사랑을 나눌 것입니다. 서로 위로하며 사랑을 나눌 것입니다. 서로 격려하며 사랑을 나눌 것입니다. 서로 힘을 주며 사랑을 나눌 것입니다. 그런 자리가 하나님께서 계시는 자리입니다. 이사야는 그것을 외치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이 계신다!”

여러분, 전도하기 힘들지요? 하기는 해야 하겠는데, 말이 잘 안 떨어지지요? 전도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교회 나오너라!’ 하는 것이 전도가 아닙니다. 주님의 자녀들을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안내하는 것이 전도입니다. “하나님이 여기 계신다!” 하고 안내하는 것입니다. 내일 저녁이 일 년 중 가장 전도하기 쉬운 날입니다. “여기에 사랑의 나눔이 있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함께 가 봅시다!” 이 말로 충분합니다. 듣는 사람들이 따라오고 안 따라오고는 그분들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그저 안내만 하면 됩니다.

■ 맺는 말씀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긍정적으로 말하고, 긍정적으로 행동하자는 말을 많이 하지요. 좋은 일만 생각하는 사람을 ‘낙천주의자’라고 부릅니다. 힘든 문제에 봉착해도 낙천주의자는 말합니다. “열심히 하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도전해나갑니다. 그리고 결과는 그가 생각한 대로 되는 일이 많습니다. 한편, 항상 “이거 참 큰일 났군!” 하고 야단법석을 떠는 사람은 걱정거리가 끊이질 않습니다. 된다고 생각하면 되지만, 안 된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 사토 도미오(오현숙 역), 《행복하다고 말하면 진짜 행복해진다》(대한교과서(주), 2005), 109쪽.

그러나 우리는 낙천주의자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주의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아무리 암담한 현실 앞에서도 ‘희망’을 가집니다. 아무리 괴로운 일이 있어도 하나님께서 회복시켜 주시리라는 ‘희망’을 가집니다. 아무리 억울한 일이 있어도 하나님께서 바로잡아 주실 것이라는 ‘희망’을 가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희망 전도사’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강림을 맞이하면서 우리는 ▶첫째, 위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살아 있다는 확신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셋째, 하나님이 여기 계시다고 자신 있게 초청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주님의 크신 은총이,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언제나 희망을 전하는 여러분 위에 충만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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