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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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지기 2008-04-20 13:3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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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로마서 8:1-11 
설교일 2008-04-20 
설교장소 구미안디옥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기념주일 


■ 성서 본문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정죄를 받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성령의 법이 당신을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하여 주었기 때문입니다. 육신으로 말미암아 율법이 미약해져서 해낼 수 없었던 그 일을 하나님께서 해결하셨습니다. 곧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아들을 죄된 육신을 지닌 모습으로 보내셔서, 죄를 없애시려고 그 육신에다 죄의 선고를 내리셨습니다. 그것은, 육신을 따라 살지 않고 성령을 따라 사는 우리가, 율법이 요구하는 바를 이루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육신을 따라 사는 사람은 육신에 속한 것을 생각하나,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은 성령에 속한 것을 생각합니다. 육신에 속한 생각은 죽음입니다. 그러나 성령에 속한 생각은 생명과 평화입니다. 육신에 속한 생각은 하나님께 품는 적대감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법을 따르지 않으며, 또 복종할 수도 없습니다. 육신에 매인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 여러분 안에 살아 계시면, 여러분은 육신 안에 있지 않고, 성령 안에 있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살아 계시면, 여러분의 몸은 죄 때문에 죽은 것이지만, 영은 의 때문에 생명을 얻습니다. 예수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분의 영이 여러분 안에 살아 계시면, 그리스도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신 자기의 영으로 여러분의 죽을 몸도 살리실 것입니다.

〈로마서 8:1-11〉


■ 들어가는 말씀

오늘은 나라에서 정한 장애인의 날이기도 하고, 우리 총회가 정한 장애인주일이기도 합니다. 사실 똑 같은 사람을 두고 ‘장애인’이니 ‘비장애인’이니 하고 나누는 것 자체가 썩 마음에 들지는 않습니다만,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이 살기가 워낙 힘이 드니까 이런 날도 정했겠지요.

■ “문이 없어도 자동차는 갑니다!”

요즘 TV 광고에 이런 카피[문구]가 있지요. “문이 없어도 자동차는 갑니다. 헤드라이트가 없어도 자동차는 갑니다.” ― 금호타이어 광고. 타이어 회사의 광고입니다. 물론 헤드라이트 없는 자동차나 문짝을 떼어놓고 다니는 자동차를 보기는 어렵습니다만, 우리 주변의 수많은 기계들 가운데서는 중요하게 취급하지 않아도 본연의 기능을 수행하는 데 크게 지장이 없는 것들도 많이 있습니다.

요즘은 찾아보기가 쉽지 않습니다만, 옛날 텔레비전이 처음 나왔을 때는, 보통 TV 케이스가 있었습니다. 다리가 네 게 달려 있고, 브라운관 앞에는 여닫이문이 있었지요. 그런데 케이스의 문짝이나 다리가 고장이 나더라도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 요즘 나오는 신형 기계들이라고 해서 크게 다를 것은 없습니다. TV든지 세탁기든지 어떤 가전제품이든 껍데기에 약간의 손상이 가 있는 것은 본 기능을 수행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사람도 그렇습니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수많은 신체 가운데 일부분이 문제가 있다고 해서 사람구실을 못하는 것은 아니지요. 허우대만 멀쩡해가지고 사람구실 못하는 짝퉁 인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짝퉁 인간들의 행실을 꼬집거나 고쳐주자, 하는 ‘짝퉁 인간의 날’은 없는데, 몸에 이상이 있는 ‘장애인의 날’은 있습니다. 이것은 그만큼 사람들이 겉모습만 보고 산다는 이야기겠지요.

■ 장애인 차별 금지법

‘장애인도 똑 같은 사람이다. 차별해서는 안 된다’ 하고 아무리 외쳐 봐도, 장애인들 알게 모르게 차별하는 이 고약한 버릇이 안 고쳐지니까, 우리나라 국회에서 장애인 차별 금지법이라는 것을 만들었습니다. 공식 명칭이 『장애인 차별 금지 및 구제에 관한 법률』인데, 이 법률이 2008년도 4월 11일, 며칠 전에 효력을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이 법을 보면, 여러 분야에서 장애인을 차별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① 고용에서의 차별, ② 교육에서의 차별, ③ 공공시설 및 건축물 이용에 있어서의 차별, ④ 대중교통수단 이용 및 이동에 있어서의 차별, ⑤ 정보접근 및 의사소통의 이용에 있어서의 차별, ⑥ 성에 있어서의 차별 및 여성장애인에 대한 차별, ⑦ 생활시설에서의 차별, ⑧ 정치적 차별, ⑨ 경제적 차별… 등등. 아주 구체적으로 장애인 차별을 금지하고 있는데, 얼마나 잘 지켜질지는 두고 보아야 하겠습니다.

사실 우리 교회도 예배실에 들어오기 위해서 계단을 이용해야 하는데, 참 마음이 아픕니다. 이거 얼른 해결해야 합니다. 우리 다 함께 기도해야 할 큰 기도 제목입니다. 비장애인들이 생각할 때 별거 아닌 문제도 장애인에게는 상당히 신경 쓰이는 것들이 많습니다. 예배드릴 때, 성경공부 할 때, 친교 프로그램을 가질 때… 등등. 모든 분야에서 장애인 차별이 없어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나라에는 올해에 와서야 장애인 차별금지법이 생겼습니다만, 성경에서는 수천 년 전부터 장애인 차별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레위기 19장 14절에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듣지 못하는 사람을 저주해서는 안 된다. 눈이 먼 사람 앞에 걸려 넘어질 것을 놓아서는 안 된다. 너는 하나님 두려운 줄을 알아야 한다. 나는 주다.” 또 신명기 27장 18절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눈이 먼 사람에게 길을 잘못 인도하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 하면, 모든 백성은 ‘아멘’ 하십시오.”

왜 이렇게 성경이 장애인 차별을 철저히 금지하고 있는가, 출애굽기 4장 11절에 답이 있습니다.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냐? 누가 말 못하는 이를 만들고 듣지 못하는 이를 만들며, 누가 앞을 볼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거나 앞 못 보는 사람이 되게 하느냐? 바로 나 주가 아니더냐?” 이 말씀의 뜻은 사람의 몸의 장애가 주님 때문에 생겼다는 뜻이 아닙니다. 장애인들도 내가 낳은 귀한 내 자식이다, 이겁니다.

예수님께서 활동하신 내용을 보십시오.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퍼지는 곳마다 갖가지 병을 앓는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귀신 들린 사람들과 간질병 환자들과 중풍 환자들이 몰려들었습니다. 그때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고쳐 주셨습니다. 물론 이 일을 보고, 예수님의 능력이 정말 대단하시다, 하고 감탄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예수님께서 그들의 병을 고쳐주신 것은 예수님의 ‘능력’을 나타내 보이시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예수님은 병자들과 장애인들을 차별 없이 사랑하신다고 하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 그리스도의 사람

자, 그러니까 몸에 장애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는 따질 일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 같이, 너희도 완전하여라”(마태복음서 5:48).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완전한 인간이 되는 데 있어서 몸의 장애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완전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겠습니까?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니까 당연히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면 완전한 사람이겠지요.

오늘 신약성경 본문에 보니까,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했습니다(9).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려면 그리스도의 영을 품고 살아야 한다는 말이지요.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영 곧 성령은 어떤 영인가, 6절에 답이 있습니다. 성령은 생명과 평화의 영입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으면 생명과 평화가 넘치는 사람이 됩니다. 우리가 올해의 기도 제목으로 삼은 것이 “온 생명을 충만케 해주십시오!”였지요.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면 우리 온 생명이 충만하게 됩니다. 몸도, 마음도, 영도 건강하게 됩니다.

우리가 흔히 ‘건강’ 하면 몸의 건강을 생각하지요. 우선 눈에 보이는 것이니까 당연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몸이라는 것은 밥만 잘 먹는다고 건강해지지 않습니다. 비타민 많이 먹는다고 건강해지지 않습니다. 그런 것들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마음’입니다. 잠언 17장 22절에 보면 “즐거운 마음은 병을 낫게 하지만, 근심하는 마음은 뼈를 마르게 한다”고 했습니다. 잠언 14장 30절에는 또 “마음이 평안하면 몸에 생기가 도나, 질투를 하면 뼈까지 썩는다”라고 했습니다. 몸의 건강은 마음 곧 정신으로 유지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시간이 많고 일이 헐렁해도 마음이 편치 않으면 그게 악성 스트레스가 됩니다. 그러나 아무리 일이 많고 바빠도 마음이 편안하면 일 자체가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시인 곽노순은 이런 말을 합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다 할 수 있었기에 기쁜 것은 건강이라 한다.” ― 곽노순, 〈혹은 성스러운 산으로 들어가라〉 중. 곽노순, 《신의 정원》(도서출판 네쌍스, 1995), 198쪽.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즐겁게 하는 그것이 ‘건강’이라는 말인데, 그것은 곧 정신의 문제지요.

우리가 늙는 것도 그렇습니다. 베일런트라는 학자는 “노화 프로세스는 학습된다”라고 주장합니다. 우리 다 늙기 싫지요. 그런데 늙는 것도 마음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천천히 곱게 늙어가지만, 우울증에 빠지거나 정서불안으로 불행한 사람은 노화가 빨리 진행됩니다. 그러면 병에 걸릴 위험성이 자연히 높아지겠지요. 실제로, 만성질병에 걸리거나 일찍 죽은 사람들은 대부분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그러나 스트레스 자체는 병의 원인이 아닙니다. 베일런트의 말은, 사람이 병에 걸리는 것은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유연성을 상실해버렸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 사토 도미오(오현숙 역), 《행복하다고 말하면 진짜 행복해진다》(대한교과서(주), 2005), 62-63쪽.

몸의 건강 문제나 늙는 것은 다 마음에 달려 있다는 이야기지요. 즐거운 마음을 가지고 살면 그만큼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잠언 18장 14절 말씀이 그겁니다. “사람이 정신으로 병을 이길 수 있다지만, 그 정신이 꺾인다면, 누가 그를 일으킬 수 있겠느냐?”

그러나 저와 여러분은 염려할 것이 전혀 없습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 8장 9절에서 바울이 말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여러분 안에 살아 계시면, 여러분은 육신 안에 있지 않고, 성령 안에 있습니다.” 육신의 병은 정신으로 커버[제어]할 수 있지만, 정신의 좌절이 오면 이제는 세상의 그 어떤 방법으로도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살아 계시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좌절’을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정신이 꺾이는 것을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사야가 말했습니다. “주님께서 너를 늘 인도하시고, 메마른 곳에서도 너의 영혼을 충족시켜 주시며, 너의 뼈마디에 원기를 주실 것이다. 너는 마치 물 댄 동산처럼 되고, 물이 끊어지지 않는 샘처럼 될 것이다”(이사야서 58:11).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지요.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다”(요한복음서 4:14). 그리스도의 사람은 원기가 샘처럼 솟아오릅니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습니다. 독수리의 날갯짓처럼 충만한 에너지가 넘쳐납니다.

■ 맺는 말씀

이제 말씀을 정리합니다. 자동차 문짝이 찌그러졌어도 차는 갑니다. 기계에 흠집이 있어도 돌아가는 데는 문제가 없습니다. 사람도 몸의 장애는 ‘사람구실’을 하는 데 전혀 장애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장애인을 차별하면 안 됩니다. 아니, 좀 더 적극적으로 장애인의 처지가 되어서, 몸이 불편한 분들이 불편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신경을 써야 합니다.

몸의 질병이나 장애가 있고, 없고를 떠나서 우리는 주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처럼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완전한 사람이란 살아서 활동하시는 주님의 영을 속에 모시고 사는 사람입니다. 주님의 영, 곧 성령을 모시고 사는 사람은 정신의 좌절을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런 사람은 언제나 밝고 즐거운 마음을 가지게 되고, 그 밝은 마음이 몸속에서 썩어가는 뼈마디까지 낫게 만듭니다. 우리 속에서 활기찬 생명력이 마르지 않는 샘처럼 콸콸 솟아납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따르는 묘미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람이 가지는 특권입니다.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사람’으로서 성령의 에너지를 넘치도록 누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1102 내 인생 광내기
1101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1100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1099 벌거벗은 이사야
1098 사무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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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도의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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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5 온 생명을 충만케 해주십시오!
1084 믿음의 어머니들
1083 합심하여 무슨 일이든지 구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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