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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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지기 2009-06-14 19:4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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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갈라디아서 5:22-26 
설교일 2009-06-14 
설교장소 구미안디옥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오순절 


■ 성서 본문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인내와 친절과 선함과 신실과 온유와 절제입니다. 이런 것들을 막을 법이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께 속한 사람은 정욕과 욕망과 함께 자기의 육체를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삶을 얻었으니, 우리는 성령이 인도해 주심을 따라 살아갑시다. 우리는 잘난 체하거나 서로 노엽게 하거나 질투하거나 하지 않도록 합시다.

<갈라디아서 5:22-26>


■ 들어가는 말씀

갈라디아서가 말하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인내와 친절과 선함과 신실과 온유와 절제입니다. 오늘은 이 가운데서 ‘기쁨’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람이 사는 목적이 무엇이겠습니까? 밥을 먹고, 일을 하고, 사랑을 하고,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고…, 하는 이 모든 일들이 기쁨을 위해서 하는 일이지요. 그래서 성경에서도 “항상 기뻐하십시오!”(데살로니가전서 5:16) 하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을, 저는 세 가지 정도로 정리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첫째는 물질적인 기쁨, 둘째는 정신적인 기쁨, 그리고 셋째는 영적인 기쁨입니다.

■ 물질적인 기쁨

먼저, 물질적인 기쁨은 세상에 사는 모든 존재가 다 누릴 수 있는 기쁨입니다.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들도 이런 기쁨을 느낍니다. 배가 고플 때 밥을 먹으면 기쁩니다. 아름다운 옷을 사 입으면 기쁩니다. 좋은 자동차를 사면 기쁩니다. 새 집을 사서 이사 갈 때도 기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스킨십을 가지는 것도 기쁜 일입니다. 어떤 철학자들은 이런 기쁨을 저급한 쾌락이라고 해서 경계하기도 합니다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런 기쁨도 우리가 많이 누려야 합니다. 우리에게 기쁨을 주는 것이라면 가급적 많이 확보해야 합니다. 일부러라도 만들어야 합니다.

예수님도 이런 기쁨을 소홀히 여기시지 않았습니다.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먹을까, 걱정하지 말라’고 하시면서도, 배고픈 사람들을 보시면 어떻게든 먹을 것을 구해주시려고 애를 쓰셨습니다. 잔칫집에 포도주가 떨어졌을 때는, 사람들의 흥을 돋우기 위해서 포도주까지 만들어주셨습니다. 어부들이 밤새 고기를 잡지 못해 애를 태울 때는 물고기가 있는 곳을 알려주심으로써 그들을 기쁘게 해주셨습니다.

아이들이 컴퓨터 게임에 빠져 있다고 걱정하는 부모들이 많은데, 무작정 걱정하고 막으려고만 할 것이 아니라,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 그걸 살펴보아야 합니다. 요즘 청소년들에게는 기쁨이 없습니다. 너무 찌들려 있습니다. 아이들도 사람이기 때문에 기쁨을 누려야 하는데, 어디 가서 기쁨을 맛볼 기회가 없기 때문에, 단시간에 빠져들 수 있는 게임을 선택하는 것이지요. 먹여주고 입혀주고 학비 대주는데 뭐가 걱정이냐, 그런 이야기를 부모들은 합니다만, 그런 것들이 해결된다고 사람이 기쁨을 얻는 것은 아니지요.

■ 정신적인 기쁨

그래서 우리가 두 번째로 생각해야 할 것이 정신적인 기쁨입니다. 저는 매주 화요일 저녁에 독서모임에 나가는데, 대여섯 명에서 열 명쯤 되는 사람들이 책을 읽고 와서 토론을 하는 모임이지요. 참 재미있습니다. 책을 읽고 거기서 기쁨을 얻는 것은 정신적인 기쁨이지요. 이것은 물질적인 기쁨보다 더 큰 것 같습니다. 거기는 옷 잘 입고 오는 사람이 없습니다. 맛있는 것만 찾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냥 책에서 기쁨을 찾는 거예요.

이 이 모임을 마치면 다 같이 밥을 먹으러 가는데, 제일 싼 집으로 갑니다. 아무거나 먹어도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가 밥 먹으러 갈 때는 더치페이(Dutch pay)가 원칙입니다. 자기 밥값은 자기가 내는 것이지요. 그런데 최근 몇 주 동안 연달아 밥을 얻어먹었습니다. 한 번은 운전면허를 딴 사람이 있어서 그 사람이 밥을 샀고, 그 다음에는 한 초등학생 학부모가 자기 아들이 학교에서 친 시험에서 전 과목 백 점을 맞았다고 샀고, 지난주에는 고등학교 선생님이 학교 체육대회에서 자기 반이 준우승을 했다고 샀습니다.

좋은 책을 읽음으로써 감동을 얻는 것, 운전면허를 딴 것, 아이가 전 과목 백 점을 맞은 것, 자기 반 학생들이 체육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운 것, 이런 것들은 물질적인 기쁨은 아니지요. 생기는 것은 별로 없는 일들이지만, 그저 마음이 기쁜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정신적인 기쁨인데, 이런 것들이 물질적인 기쁨보다 더 깊고, 더 오래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신적인 기쁨이 물질적인 기쁨보다 크다는 것은 잠언에 보면 분명히 나옵니다. “서로 사랑하며 채소를 먹고 사는 것이, 서로 미워하며 기름진 쇠고기를 먹고 사는 것보다 낫다”(잠언 15:17). 기름진 쇠고기를 먹는 것은 물질적인 기쁨입니다. 서로 사랑하는 것은 정신적인 기쁨입니다. 또 “다투며 성내는 아내와 함께 사는 것보다, 광야에서 혼자 사는 것이 더 낫다”(잠언 21:19)고 했습니다. 광야에서 혼자 살면 물질적인 기쁨은 얻지 못합니다. 그러나 다투며 성내는 아내와 함께 살면서 정신적인 기쁨을 깨는 것보다는 그게 낫다는 뜻입니다.

■ 영적인 기쁨

그런데 진짜 기쁨은 다른 데 있습니다. 영원한 기쁨, 곧 영적인 기쁨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시지요. “이 물을 마시는 사람은 다시 목마를 것이다.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속에서, 영생에 이르게 하는 샘물이 될 것이다”(요한복음서 4:13-14). 물질적인 기쁨이든, 정신적인 기쁨이든, 시간이 지나면 다시 목이 마르지만, 예수님께서 주시는 기쁨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기쁨입니다.

옛날 한나라는 여자가 아이를 낳지 못해서 마음고생이 많았습니다. 한나의 남편은 엘가나라고 하는 사람이었는데, 그에게는 한나 외에도 브닌나라는 아내가 또 있었습니다. 브닌나에게는 자식들이 있었지만, 한나에게는 자식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를 드리고 난 뒤에 한나가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 아이가 사무엘 아닙니까? 이스라엘 역사에서 정말 큰일을 해낸 위대한 사사지요. 한나가 사무엘을 낳고 나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님께서 나의 마음에 기쁨을 가득 채워 주셨습니다. 이제 나는 주님 앞에서 얼굴을 들 수 있습니다. 원수들 앞에서도 자랑스럽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구하셨으므로, 내 기쁨이 큽니다.”(사무엘기상 2:1).

엘가나의 두 아내 이름이 참 재미있습니다. 자식이 있는 아내의 이름은 ‘브닌나’인데, 이 이름의 뜻은 ‘홍보석’입니다. 반면에 자식이 없는 아내, ‘한나’라는 이름의 뜻은 ‘풍성한 은혜’입니다. 그러니까 ‘브닌나’는 물질적인 기쁨을 상징합니다. 이에 비해서 ‘한나’는 영적인 기쁨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결과는 어땠습니까? 브닌나는 물질적인 기쁨, 그것을 얻는 것으로 끝났습니다. 그러나 한나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영원한 영적인 기쁨을 맛보았을 뿐만 아니라 물질적인 기쁨까지 덤으로 얻었습니다. 영적인 기쁨을 추구하는 것의 매력이 여기에 있습니다.

솔로몬도 그랬지요. 하나님께서 ‘네 소원을 말해보아라’ 하셨을 때, 재물이나 장수(長壽)를 구할 수도 있었습니다. 또 정신적인 기쁨을 얻기 위하여 ‘원수 갚기’를 구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하나님의 영광, 곧 영적인 기쁨을 구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에게, 영적인 기쁨은 물론이고, 거기다가 물질적인 기쁨과 정신적인 기쁨을 모두 주셨습니다.

시편 4편에 보면 시인이 이런 노래를 부릅니다. “주님, 우리에게 큰 복을 내려 주십시오. ‘누가 우리에게 좋은 일을 보여줄 수 있을까?’ 하며 불평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 주님의 환한 얼굴을 우리에게 비춰 주십시오. 주님께서 내 마음에 안겨 주신 기쁨은 햇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에 누리는 기쁨보다 더 큽니다.”(시편 4:6-7). 주님의 얼굴을 우리에게 비추어달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적인 기쁨인데, 이 기쁨은 햇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에 누리는 기쁨, 곧 물질적인 기쁨보다 더 크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영적인 기쁨은 어떻게 얻을 수 있습니까? 그 답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넘치는 기쁨을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의 기쁨을 넘치게 하려면 주님을 만나면 됩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너희가 근심에 싸여 있지만, 내가 다시 너희를 볼 때에는, 너희의 마음이 기쁠 것이며, 그 기쁨을 너희에게서 빼앗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요한복음서 16:22). 지금 우리가 근심에 싸여 있을지라도, 지금 우리가 기분이 꿀꿀하고 우울할지라도, 예수님께서 우리를 보실 때에는 기쁨이 넘치게 됩니다.

■ 맺는 말씀

오랫동안 억울하게 감옥에서 고생한 신영복 선생께서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큰 슬픔이 인내되고 극복되기 위해서 반드시 동일한 크기의 커다란 기쁨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작은 기쁨이 이룩해내는 엄청난 역할이 놀랍다.” ― 신영복, 《감옥으로부터의 사색》(돌베개, 2008), 47-48쪽. 큰 고통에 빠져 있을 때, 큰 슬픔에 잠겨 있을 때, 엄청난 걱정에 싸여 있을 때, 그 질곡으로부터 빠져나오기 위해서 꼭 그만큼 큰 기쁨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아주 작은 기쁨이 거대한 시름을 사라지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애써서 기쁜 일을 찾아야 합니다. 쇼핑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분들이 있지요. 흔히 낭비벽이 있다고 합니다만,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그런 분들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른 데서 기쁨을 찾을 데가 없으니까, 쇼핑이라도 해서 마음을 즐겁게 해야 하는 것이에요. 안 그러면 더 큰 문제가 생기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뇌에서 그런 명령을 내리는 겁니다. 어디서든 사람은 즐거움을 찾지 않으면 견디지 못합니다.

그런데 기쁨이라는 것은, 물질적인 것에서 찾는 것보다는 정신적인 것에서 찾는 것이 더 크고, 그것이 사람을 더 건강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정신적인 것에서보다는 주님을 통하여 영적인 기쁨을 찾는 것이 더 본질적인 것입니다. 그것이 영원한 기쁨입니다. 주님을 만남으로써 성령의 열매인 영원한 기쁨을 얻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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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2 성령의 열매(6) - 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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