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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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호세아서 2:18 
설교일 2011-01-16 
설교장소 한울교회 
설교자 최영실 
설교구분 행사 
■ 성서 본문

그 날에는 내가 이스라엘 백성을 생각하고,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의 벌레와 언약을 맺고,
활과 칼을 꺾어버리며 땅에서 전쟁을 없애어,
이스라엘 백성이 마음 놓고 살 수 있게 하겠다.

<호세아서 2:18>


■ 들어가는 이야기

매년 1월 셋째 주일, 그러니까 오늘은 우리 교단의 모든 교회가 지키는 여신도주일입니다. 여신도주일을 맞이하여 우리 교회와 온 세상의 여신도들과, 그 여신도들과 더불어 행복을 누리는 사랑하는 모든 성도들 위에 주님의 놀라운 은총과 평화가 함께 있기를 기원합니다. 오늘은 우리 교단 여신도연합회에서 준비해서 보내준 설교문을 가지고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이 설교는 성공회대학교의 최영실 교수님께서 작성하신 것입니다. 그 뼈대와 내용을 그대로 제가 대신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2011년 우리 한국기독교장로회 여신도회는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호 2:14-23, 롬 11:36, 마 6:10)를 표어로 정하였습니다. 이것은 올해 우리 교단 전체의 신앙 표어이기도 합니다. 오늘의 본문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그 뜻에 따라 실천하는 우리 여신도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 호세아서 이야기

우선 호세아서의 본문을 보겠습니다. 사실 여성들이 호세아서를 접하면 여간 거북한 것이 아닙니다. 남편을 배반한 ‘음란한 여인’으로 묘사되는 ‘고멜’의 이야기와, 남편을 버리고 정부들을 쫓아갔지만 결국 버림당하는 여인의 이야기가 처음부터 너무나 적나라하게 묘사되어(호 2: 1-13)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호세아서에서 남편을 배반한 ‘음란한 여인’과 ‘창녀’로 지칭되는 사람은 실제로는 ‘여성들’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제사장들과 예언자들, 그리고 백성의 지도자들입니다.

예언자 호세아는 주전 8세기, 여로보암이 북 왕국을 다스리던 때, 곧 주전 782-753년에 활동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을 하나님과 결혼한 ‘아내’로 비유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이집트의 압제에서 해방시켜 ‘광야’의 길로 이끌었을 때에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둘만의 ‘밀월’을 즐기며, 기쁨을 누렸던 관계로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주신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먹게 되자, 먹는 대로 배가 불렀고 배가 부를수록 마음이 교만해지더니 마침내 하나님을 잊어버렸습니다(호 13:5-6). 그리고 ‘정부’(情夫)들을 쫓아다니며 음행을 했습니다(호 2: 1-5).

물질의 풍요와 강대국의 군마에 의존하는 것, 이것이 바로 ‘정부’와 놀아나는 것이며, 바알 신인 ‘우상’을 섬기는 일입니다. 호세아서에서 하나님이 가장 문제 삼은 죄는 강대국을 등에 업고 동족 간에 싸우며 피를 흘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지파들 간에 살육이 일어났던 ‘기브아’와 ‘길갈’에서부터 죄가 시작되었다고 말합니다(호 9:9, 15). 그리고 군사를 일으켜 이스라엘의 경계를 침략하던 유다와, 이에 맞서 강대국 앗시리아로 달려가던 이스라엘을 모두 심판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유다의 통치자들은 경계선을 범하는 자들이니, 내가 그들 위에 나의 분노를 물처럼 쏟아 부을 것이다. 에브라임이 도움을 구하러 허무한 것을 뒤쫓아갔으니, 에브라임이 심판을 받아, 억압을 당하고 짓밟혔다. 그러므로 나는 에브라임에게는 좀으로 유다 가문에게는 썩이는 것으로 칠 것이다”(호 5:10-12).

호세아서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바알 신들에게 분향하며 귀고리와 목걸이로 몸단장을 하고 정부를 좇아간’ 여자로 비유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잊어버린 그 세월만큼 모든 벌을 내릴 것’(호 2: 12-13)이라고 말합니다. “이제 내가 그의 정부들이 보는 앞에서 부끄러운 곳이 드러나도록 그를 벗겨도, 내 손에서 그를 빼낼 사내가 하나도 없을 것”(호 2:10)이라고 선언합니다. 그리고 결국은 ‘정부들’로 묘사된 이웃 강대국들로부터 오히려 버림을 당하고 약탈당할 것이라고 말합니다(호 2:6). 하나님은 이렇게 탄식하십니다. “온갖 외세가 국력을 삼키는데도 에브라임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도 깨닫지 못한다”(호 7:9).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이제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멸망하고 말까요? 아닙니다. 호세아서의 하나님은 자애로운 어머니와 같이 ‘걸음마를 가르쳐 주고, 품에 안아서 기르고, 업고 다니며, 가슴을 헤쳐 젖을 물린’(호 11: 3-4) 분입니다. 어머니와 같은 그분은 결코 이스라엘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그분은 이스라엘을 향해 이렇게 외칩니다. “에브라임아,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이스라엘아, 내가 어찌 너를 원수의 손에 넘기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처럼 버리며, 내가 어찌 너를 스보임처럼 만들겠느냐? 너를 버리려고 하여도, 나의 마음이 허락하지 않는구나! 너를 불쌍히 여기는 애정이 나의 속에서 불길처럼 강하게 치솟아 오르는구나”(호 11:8).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한 깊은 사랑을 가지고 그들이 살 길을 제시해 주십니다. 그것은 바로 모든 우상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는(호 6: 1) 일입니다. ‘묵은 땅을 갈아엎고, 정의를 뿌리고 사랑의 열매를 거두는 것’(호 10:12)입니다. 다시는 ‘앗시리아에게 살려 달라고 호소하지 않고, 군마를 의지하지 않는 것’(호 14:3)입니다. 호세아는 이스라엘이 우상들을 버리고 완전히 돌아오면, 하나님께서 유다와 이스라엘에게 복을 주며 구원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구원 사건은 유다와 이스라엘이 하나가 되는 일입니다. “그 때가 되면, 유다 자손과 이스라엘 자손이 통일을 이룩하여, 한 통치자를 세우고, 땅에서 번성할 것이다”(호 1:11).

■ 마태복음서 이야기

우리는 지금까지 호세아서를 통해서 나타난 하나님의 뜻을 들었습니다. 이제 마태복음의 본문(마 6:5-15)을 보겠습니다. 이 본문은 예수님의 ‘산상설교’로 알려진 마태복음 5~7장 안에 들어 있습니다. 흔히 산상설교는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윤리적 계명, 혹은 이 땅에서는 이룰 수 없는 유토피아적인 것으로 간주해 왔습니다. 그러나 산상설교는 실제로는 ‘제자들’을 향해서가 아니라 당시 자신들이 하나님을 잘 알고 의를 행한다고 자처했던 율법주의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한 말입니다. 이것은 산상설교가 끝났을 때 예수의 가르침이 ‘자기들의 율법학자와 같지 않아서 놀랐다’(마 7: 29)고 ‘군중들’이 말한 것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산상 설교를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율법주의자와 바리새파 사람들을 두고, 하나님의 법을 불법으로 이용하는(마 7:23) 불의한 자들이라고 외칩니다. 그리고 산상설교의 첫 부분(5:21-26)에서는 율법주의자들이 갈릴리의 동족을 이방인이라고 욕하며 착취하던 것을 비판합니다. 그리고 위선적인 예배와 제물 드리는 일을 그치고, 도리어 ‘시급히’ 억압하고 착취한 그 형제를 찾아가서 용서를 빌고, 한 푼도 남김없이 되돌려 주는 회개의 행동을 통하여 참된 화해를 이루라고 명합니다(마 5:26).

또 본래는 더 큰 보복을 막기 위해서 만들어진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탈리온의 법’을 갈릴리의 동족을 보복하는 데 이용하는 예루살렘의 율법주의자들에게 예수님은 절대로 ‘보복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보복 대신에 도리어 ‘달라는 사람에게 주고 꾸려고 하는 사람을 물리치지 말라’(마 5: 38-42)고 명합니다. ‘네 이웃은 사랑하고 네 원수는 미워하라’(마 5:43)는 거짓 교설을 만들어서 동족에 대한 적개심을 조장하던 율법주의자들에게 ‘모든 사람들에게 차별 없는 자비와 사랑을 베푸는’(마 5:45-48) 하나님의 뜻을 일깨워 줍니다. 그리고 ‘원수에 대한 미움’이 아니라 도리어 그들을 사랑하며 위하여 기도하라(마 5:44)고 촉구합니다.

산상설교의 두 번째 부분(마 6-7장)에서 예수님은 하나님께 예배와 제물을 드리고, 자선을 베풀며 기도하고 금식하는 일에 몰두하던 바리새파 사람들의 위선을 비판합니다. 특별히 마태복음 6:5-15에서 예수님은 위선적인 기도를 드리며 오직 자신의 안일과 무엇을 먹고 마실까를 위해서만 간구하던 위선적인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그런 기도를 그치라고 촉구하며 그들이 드려야 할 참된 기도에 관해 말해줍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당신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며 당신의 나라가 임하시며,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하늘에서처럼 땅위에서도…”(사역).

이 기도문에서 예수님께서 요구하신 것은 바로 ‘나의 이름’ ‘나의 나라’ ‘나의 뜻’이 아니라 ‘당신의 이름’ ‘당신의 나라’ ‘당신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십자가의 수난을 앞두고 예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드린 기도와 같은 맥락에 서 있습니다. “나의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해주십시오.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해주십시오”(마 26:39).

오늘 우리가 드려야 할 기도도 단지 나와 가족의 안녕과 부를 위한 것이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나의 뜻’이 아니라 오직 ‘당신의 뜻’ 곧 ‘하늘에 계신 아버지’ 그분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간구해야 합니다. 그런데 마태복음서에 따르면 이 ‘하늘의 아버지’는 결코 가부장적인 아버지가 아닙니다. 그리고 다른 이념이나 사상, 종교를 가진 사람들을 차별하고 죽이는 그런 분도 아닙니다. 도리어 그 분은 ‘악한 사람’에게도 똑같이 해와 비를 주시며, 자비와 사랑을 베푸는 분입니다(마 5: 45).

무엇보다 ‘하늘의 아버지’는 당시의 법 체제 때문에 죄인의 멍에를 지고 신음하던 사람들에게 무죄를 선언해 주며 그 멍에를 벗겨 주시는 분(마 12:7)입니다. 의를 자랑하던 바리새파 사람들이야말로 사실은 율법을 불법으로 이용함으로써 아무 죄도 없는 힘없는 사람들로 하여금 ‘걸려 넘어지게 만든 자들’(마 18:1-9, 5:29-30)이라고 폭로합니다. 그리고 바리새파 사람들이야말로 하나님으로부터 더 많은 죄를 거저 용서받은 자들임에도 불구하고 동족과 형제의 잘못을 용서하지 않는 불의한 자라고 심판합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향한 ‘하늘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지를 이렇게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너희가 진심으로 형제자매를 용서하여 주지 않으면 내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해 주지 않을 것이다’(마 6:15, 18:35).

우리가 보는 새번역 성경에 나오는 ‘형제자매’는 희랍어 원문과는 좀 다릅니다. 원문에는 ‘자매’라는 말은 없고 ‘형제’라는 말만 있습니다. 성서에서 ‘형제’라는 말은 남북으로 갈라진 유대 민족을 지칭합니다. 산상설교는 북쪽 이스라엘과 남쪽 유다가 갈라져 반목하다가 결국 동족상잔의 전쟁을 일으켜서 로마 제국에 의해 패망하게 된 주후 67-70년의 ‘유대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당시 로마 제국의 체제에 동조하면서 부와 권력을 누리던 헤롯 가문의 부자들은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던 갈릴리 사람들을 ‘강도’와 ‘폭도’로 매도했습니다. 그리고 ‘살인자’와 ‘국가를 소란하게 만드는 자’라는 죄목을 붙여 로마 제국에 밀고하여 죽였습니다. 그리하여 로마 제국의 압제에 맞서 일어난 유대 독립전쟁은 도리어 동족인 형제가 형제를 죽이는 전쟁이 되었고, 결국 그로 인해 예루살렘 성과 성전은 모두 적국 로마의 군대에 의해 짓밟히고 유대민족은 패망하고 말았습니다.

■ 우리 이야기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호세아서와 마태복음서의 두 본문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뜻이 무엇인지 함께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한 핏줄, 한 자매형제가 강대국의 패권다툼에 휘말려 남과 북으로 갈라져 동족상잔의 전쟁을 치룬 지 어느덧 60년의 긴 세월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많은 권력자들이 분단 이데올로기를 만들어서 보복과 미움을 가르치며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해 왔습니다. 이로 인해서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일하던 많은 사람들이 누명을 쓰고 옥에 갇히고 고문을 당하고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렇게 분단의 땅에 흘린 피와 눈물의 희생을 통해 ‘권력자를 끌어내리고 부자를 빈손으로 되돌리는’(눅 1:52-53) 참된 평화가 마침내 이 땅에서 꽃피기 시작했습니다. 분단의 장벽이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금강산을 찾아가고, 봉수교회에서 손을 맞잡고 눈물 흘리며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위해 함께 예배 드렸습니다. 그것이 바로 어제 그제의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웬일입니까? 남북 간에 왕래가 끊어지고, 개성공단에서 일하던 분들이 대거 철수하기 시작했습니다. 남북 정상 사이에 어렵게 합의한 성명서는 휴지조각이 되었고, 동족을 정죄하고 비방하는 ‘삐라’를 날려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한미연합군이라는 이름으로 서해안에서 군사훈련을 하던 중에 천안함 사건이 터졌습니다. 연평도에서 총탄이 오가고 무고한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죽임을 당했습니다. 곳곳에서 ‘북을 응징’하고 몇 배로 보복해야 한다는 소리들이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 와중에서도 세계교회협의회(WCC)는 연평도 사건과 관련하여 “무력으로는 결코 한반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라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남북 간의 대화와 회담을 촉구했습니다. 이렇듯 제 2의 전쟁으로 치달을지 모를 이 위기 앞에서 한국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을 말하고, 무슨 설교를 했을까요?

한반도의 평화는 결코 ‘무력’으로는 해결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아니 우리 여신도회는, 지금 시급히 남과 북이 서로 만나 평화적으로 ‘하나 되는 길’을 다시 찾을 수 있도록 앞장서야 합니다. 강대국의 무력에 의존하여 동족인 형제자매를 억압하고 욕하는 일을 시급히 멈추도록 해야 합니다. 북에 있는 사람들도 하나님께서 ‘해와 비를 똑같이 내려주시는’ 그분의 자녀들임을 선포해야 합니다. 그리고 형제자매를 욕하고 억압하는 불의를 멈추도록 해야 합니다. 호세아서를 통해서 하나님은 강대국의 무력에 의존하여 동족을 억압하는 자들을 심판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마태복음서를 통해서는 ‘너희가 남을 용서해 주지 않으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잘못을 용서해 주지 않으실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마 6:15).

하나님의 심판은 민족 전체의 패망으로 실현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동족 간의 보복과 미움과 전쟁으로 말미암아 결국 예루살렘 성과 성전이 모두 로마의 칼날 아래 짓밟힐 것을 아시고 눈물을 흘리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오늘 너도 평화에 이르게 하는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터인데! 그러나 지금 너는 그 일을 보지 못하는구나. 그 날들이 너에게 닥치리니, 너의 원수들이 토성을 쌓고, 너를 에워싸고, 너를 사면에서 죄어들어서, 너와 네 안에 있는 네 자녀들을 짓밟고, 네 안에 돌 한 개도 다른 돌 위에 얹혀 있지 못하게 할 것이다”(눅 19:42-44).

민족이 망하여 고난을 겪을 때마다 가장 고통을 당하는 사람은 바로 ‘임신한 여자들과 젖먹이들’(눅 21:23)입니다. 우리는 이미 동족상잔의 전쟁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여자들이 남편과 자식을 잃고 비통한 삶을 살아왔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땅의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어머니들이 눈물과 고통을 겪었는지를 보았습니다. 여신도 여러분,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간절히 마음을 모아 기도해야 합니다. “당신의 뜻이 이 땅 위에 이루어지소서!”

■ 맺는 이야기

기도는 단순한 ‘말’이 아닙니다. 그것은 불의를 되돌리고 하나님의 의를 세우려는 구체적인 ‘행동’입니다. 남과 북을 갈라놓고 적대시하는 거짓 교설과 교리를 깨뜨리고, 자비와 사랑에 바탕을 둔 새로운 법을 만들어야 합니다. 강대국의 억압과 제제를 풀고,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악용하여 무고한 사람들을 정죄하고 억압하고 착취하는 모든 행위를 근절시키고 정의를 세워야 합니다. 물질과 무력을 신봉하며 강대국을 좇아가는 불의를 돌이키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에만 자비의 하나님이 우리를 회복시키시고 남과 북이 하나가 되는 참된 구원의 사건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아멘.
1101 양심을 깨끗하게 만드는 제물
1100 벌거숭이가 됩시다
1099 칼 이야기
1098 머리로 알기 vs 몸으로 알기
1097 예배와 봉사, 무엇이 먼저인가?
1096 고향으로 가자
1095 "애써 주님을 알자!"
»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1093 의로운 백성, 비틀거리는 백성
1092 생각에서 행동까지
1091 이슬처럼 내리는 은혜
1090 새내기들의 다짐
1089 하나님 어머니
1088 가슴을 헤쳐 젖을 물렸다
1087 주머니가 구멍난 까닭
1086 "언제까지 그러실 겁니까?"
1085 노예로 살기, 주인으로 살기
1084 "너희를 구하여 내겠다!"
1083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1082 “신을 벗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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