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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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하박국서 1:2-4 
설교일 2012-12-09 
설교장소 한울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기념주일 

■ 성서 본문

살려 달라고 부르짖어도
듣지 않으시고,
“폭력이다!” 하고 외쳐도
구해 주지 않으시니,
주님, 언제까지 그러실 겁니까?
어찌하여 나로 불의를 보게 하십니까?
어찌하여 악을 그대로 보기만 하십니까?
약탈과 폭력이 제 앞에서 벌어지고,
다툼과 시비가 그칠 사이가 없습니다.
율법이 해이하고,
공의가 아주 시행되지 못합니다.
악인이 의인을 협박하니,
공의가 왜곡되고 말았습니다.

<하박국서 3:2-4>


■ 들어가는 이야기

눈이 많이 왔습니다. 우리 지역에서는 흔치 않은 일이지요. 시인 구상 선생이 이런 시를 썼습니다. 제목이 〈初冬의 抒情〉 곧 초겨울의 서정인데요, 내용은 이렇습니다.

첫눈을 맞을 양이면
행복한 이에겐 행복이 내려지고
불행한 사람에겐 시름이 안겨진다.

― 구상, ≪홀로와 더불어≫(황금북, 2002), 29쪽.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쌓인 눈을 보면서 행복이 몰려옵니까, 아니면 시름이 깊어집니까? 조금 불편하기는 하겠지만 겨울에 눈이 많이 오는 것은 크게 볼 때 좋은 일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내리시든지, 그것을 감사하게 받아들임으로써 감사한 일이 점점 많아지게 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기원합니다. 추운 날씨 가운데서 지난 한 주간 동안도, 여러분 모두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내일, 12월 10일은 세계 인권선언일(Human Rights Day)입니다. 1948년 12월 10일에 열린 국제 연합 총회에서 세계 인권 선언이 채택되었고, 1950년 12월 4일에 열린 국제 연합 총회에서 매년 12월 10일을 세계 인권 선언일로 기념하기로 결의하였습니다. 그 이후 전 세계 각국에서는 이 날을 세계 인권 선언일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국제인권기념일’이라고도 합니다. 이에 따라 교회에서는 12월 둘째 주일을 인권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인권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 “폭력이다!”

오래 전에 인터넷에서 떠돌던 이야기입니다만, 사실 여부는 확인해보지 못했습니다. 그냥 옛날이야기려니 하며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중국에서 일어났던 일입니다. 어떤 여성 버스기사가 승객들을 태우고 가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아직도 여성 버스기사가 드물지만 중국에는 혁명 이후부터 여성의 사회활동이 활발했습니다. 어쨌든 버스를 운행하던 중에 남자 세 사람이 타더니 여성 버스기사에게 수작을 걸기 시작합니다. 운전에 방해가 될 정도로 성추행을 했습니다. 그런데도 승객들은 누구 하나 나서서 말리지 않았습니다. 보다 못한 한 40대 남자가 그러지 말라며 남자들을 제지했습니다. 괴한들은 버스 안에서 남자를 때렸습니다. 그러더니 버스를 세우고는 여자 운전사를 데리고 내렸습니다. 그리고는 숲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여성 기사를 능욕했습니다. 세 남자와 기사가 다시 버스로 돌아왔습니다. 기사가 아까 그 40대 남자에게 욕을 하며 내리라고 했습니다. 그 남자는 어이가 없어서, 왜 그러시느냐고, 난 당신을 보호하기 위해 그랬는데 이런 법이 어디 있느냐고 항의했습니다. 그러나 기사는, 당신이 뭔데 남의 일에 간섭을 하느냐며, 안 내리면 출발하지 않겠다고 버텼습니다. 그래도 남자가 안 내리니까 승객들은 남자를 끌어내리고 그가 가지고 있던 가방도 창밖으로 던져버렸습니다. 그런 뒤 버스는 출발했습니다. 잠시 후 급커브 길이 나타났을 때 기사는 속도를 줄이지 않고 오히려 가속페달을 밟았습니다. 버스는 낭떠러지로 떨어졌고, 승객들은 괴한들과 함께 모두 죽었습니다. 끌어내려진 중년남자 혼자 목숨을 건졌습니다.

성경 이야기로 가봅시다. 하박국 예언자는 하나님께 극렬하게 항의하고 있습니다. “살려 달라고 부르짖어도 듣지 않으시고, ‘폭력이다!’ 하고 외쳐도 구해 주지 않으시니, 주님, 언제까지 그러실 겁니까?”(하박국서 1:2). 살려달라고 부르짖어도, ‘폭력이다!’ 하고 외쳐도, 그 누구 하나 관심을 가지지 않는 무서운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이런 삭막한 세상을 보시고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대를 무엇에 비길까? 마치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서, 다른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과 같다. ‘우리가 너희에게 피리를 불어도 너희는 춤을 추지 않았고, 우리가 곡을 해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마태복음서 11:16-17). 옆에서 곡을 해도 외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세상, 지금이 바로 그런 세상입니다. 혹시 미국 대공황 이야기 들어보셨습니까? 대공황은 1929년 10월 24일 뉴욕 증권시장의 주식 대폭락으로부터 시작되어 1933년까지 이어졌습니다. 1930년 12월 11일 뉴욕의 유력한 은행인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은행이 파산해서 50만 명이 예금을 찾을 수 없게 되었고, 1931년 한 해 동안 은행이 2,300개나 문을 닫았습니다. 1933년에는 실업자가 1,600만 명에 이르렀습니다. 끔찍한 시기였습니다. 어제 심상정 의원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만, 그 기간 동안 자살한 사람이 인구 10만 명당 20명이었습니다. 그게 남의 이야기 같습니까? 이명박 정권 지난 5년 동안 몇 명이나 자살했는지 아십니까? 인구 10만 명당 43.3명이 자살했습니다. 세계 최악의 상황이라고 하는 미국 대공황 때보다 더 많은 서민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 “언제까지 그러실 겁니까?”

우리가 그런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2009년에 쌍용자동차에서 직원 3천여 명을 해고했습니다. 그 사람들이 아직까지 복직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이 추운 겨울인 지금도 철탑 위에 올라가서 부당해고를 철회하라고 절규하고 있습니다. 해고된 사람들 또는 가족 가운데서 스물 세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2011년 1월부터 2012년 4월까지 쌍용차 해고사건 관련 희생자가 10명이 넘는데, 그 기간 동안 언론에서는 이 문제를 몇 번이나 다루었는지 아십니까? 조선일보 2건, 중앙일보 3건, 동아일보 1건입니다. 그리고 방송에서는 KBS가 2건, MBC가 2건, SBS가 1건, 이게 끝입니다. 그나마 한겨레와 경향신문이 관심을 보였는데요, 한겨레가 78꼭지, 경향신문이 75꼭지로 기사를 다루었습니다. 사람이 죽어나가고 있는데도, 철탑 위에서 얼어 죽을지 모르는데도, 폭력이라고, 죽겠다고 소리를 치는데도 우리나라 언론들은 귀를 닫고 있습니다.

부당해고를 철회하라며 철탑 위에 올라가서 벌써 20일째 추위에 떨고 있는 사람들은 12월 19일만 기다립니다. 왜 그럴까요? 대통령이 바뀌면 뭔가 좀 달라지지 않을까, 그런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있는 것이지요.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막기 위해 매일같이 시달리고 있는 강정마을 사람들과 활동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공권력에 의해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도 그렇습니다. 대통령이 바뀐다고, 정권이 바뀐다고 세상이 당장 낙원으로 변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거기에라도 희망을 걸어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상황이 너무 절박하지 않습니까? 며칠 전에 제주감옥에 갇혀 있는 예수회 이영찬 신부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완전한 정의를 찾기보다 명백한 불의부터 막자”(문규현 신부의 전언). 정권이 바뀌지 않으면 더 많은 신부들과 활동가들이 감옥으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자연을 사랑하기 위해,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이 죄 없이 감옥에 들어가는 것은 막아야 할 것 아니겠습니까?

■ “반드시 오고야 만다!”

“어찌하여 나로 불의를 보게 하십니까? 어찌하여 악을 그대로 보기만 하십니까? 약탈과 폭력이 제 앞에서 벌어지고, 다툼과 시비가 그칠 사이가 없습니다. 율법이 해이하고, 공의가 아주 시행되지 못합니다. 악인이 의인을 협박하니, 공의가 왜곡되고 말았습니다”(하박국서 1:3-4). 이렇게 가슴을 치며 하박국 예언자가 하나님 앞에 하소연했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침묵하고 계셨습니다. 그러다가 하박국이 숨이 넘어갈 지경이 되어서야 하나님은 대답하십니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정한 때가 되어야 이루어진다. 끝이 곧 온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것은 공연한 말이 아니니, 비록 더디더라도 그 때를 기다려라. 반드시 오고야 만다. 늦어지지 않을 것이다”(하박국서 2:3). 그 ‘정한 때’가 언제입니까? 그 ‘때’는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뚝 떨어뜨려 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손발이 없습니다. 팔다리도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느냐고요?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일하십니다. 그 ‘때’는 하나님의 일꾼들인 우리가 오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깨어서 일어나는 때, 그 때가 바로 ‘정한 때’입니다.

전에도 두어 번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독일의 신학자 마르틴 니묄러(Martin Niemoeller)의 말을 다시 한 번 소개합니다. 독익의 히틀러가 폭정을 이어갈 때 이야기입니다. “나치는 우선 공산당을 숙청했다. 나는 공산당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에는 유대인을 숙청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에는 노동조합원을 숙청했다. 나는 노조원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에는 가톨릭교도를 숙청했다. 나는 개신교도였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에는 [그들의 칼끝이] 나를 겨누었다. [그러나] 그 순간이 이르자 내 주위에는 나서줄 사람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이 말을 가지고 어떤 네티즌이 이렇게 고쳐서 글을 올렸습니다. “그들이 시민단체 활동가들을 수배했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시민단체 회원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시위하러 나온 유모차 엄마들을 기소했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촛불집회에 가지 않았으니까. 그들이 전교조를 압수수색했을 때 나는 항의하지 않았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시민들을 불태워 죽였을 때 나는 방관했다. 나는 철거민이 아니었으니까. 마침내 그들이 내 아들을 잡으러 왔을 때, 그때는 나와 함께 항의해줄 그 누구도 남아 있지 않았다.”

■ 맺는 이야기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사람들은 예수님을 따르면서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들고 시위를 벌였습니다. 그들이 외친 구호는 “호산나!”였습니다. ‘호산나’가 무슨 뜻입니까? ‘우리를 구원해 주십시오!’라는 말이지요. 이제 더는 못 살겠으니 제발 새 나라 곧 하나님의 나라를 열어달라는 요청입니다. 지금도 ‘시위’ 하면 높은 사람들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지만, 그때도 그랬습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이 예수님께 시비를 걸었습니다. 왜 이렇게 민중을 선동하느냐는 것이었지요. 그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지를 것이다”(누가복음서 19:40). 불의를 보고 침묵하는 사람은 돌멩이보다 못한 사람이다, 이겁니다. 대통령선거가 열흘 남았습니다. 침묵하지 마시고 한 사람도 빠짐없이 신성한 표를 던짐으로써 이 불의한 시대를 심판해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100 양심을 깨끗하게 만드는 제물
1099 벌거숭이가 됩시다
1098 칼 이야기
1097 머리로 알기 vs 몸으로 알기
1096 예배와 봉사, 무엇이 먼저인가?
1095 고향으로 가자
1094 "애써 주님을 알자!"
1093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1092 의로운 백성, 비틀거리는 백성
1091 생각에서 행동까지
1090 이슬처럼 내리는 은혜
1089 새내기들의 다짐
1088 하나님 어머니
1087 가슴을 헤쳐 젖을 물렸다
1086 주머니가 구멍난 까닭
» "언제까지 그러실 겁니까?"
1084 노예로 살기, 주인으로 살기
1083 "너희를 구하여 내겠다!"
1082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1081 “신을 벗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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