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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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갈라디아서 5:22-26 
설교일 2013-05-26 
설교장소 한울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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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서 본문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인내와 친절과 선함과 신실과 온유와 절제입니다. 이런 것들을 막을 법이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께 속한 사람은 정욕과 욕망과 함께 자기의 육체를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삶을 얻었으니, 우리는 성령이 인도해 주심을 따라 살아갑시다. 우리는 잘난 체하거나 서로 노엽게 하거나 질투하거나 하지 않도록 합시다.

<갈라디아서 5:22-26>


■ 들어가는 이야기

오늘이 벌써 5월 마지막 주일입니다. 5월 한 달 동안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동안 제자리에서 묵묵히 소임을 다하신 여러분에게 하늘의 은혜와 땅의 축복이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직 달은 5월이지만 낮 기온은 한여름입니다. 이때쯤 되면 사고도 많이 나고 싸움도 많이 납니다. 온라인 게시판이나 토론장에서도 다툼이 많습니다. 날은 갑자기 더워졌지만 우리 몸은 아직 적응이 안 돼서 그럴 겁니다. 오늘이 성령강림 두 번째 주일인데, 해마다 성령강림절이면 갈라디아서 5장에 나오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에 대해서 이야기를 많이 하지요. 많이 듣기는 했지만 아홉 가지를 다 기억하기도 어렵고 우리 삶에서 적용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친절하게도 이걸 세 가지로 요약해주었습니다. 갈라디아서 5:26에 나오는 말씀이 그겁니다. 첫째는 잘난 체하지 말라는 것이고, 둘째는 서로 노엽게 하지 말라는 것이고, 셋째는 질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씩 살펴봅시다.

■ 잘난 체하지 않아도 됩니다.

첫째, 잘난 척하는 문제입니다. 세계적으로 이름이 난 문인들이 많지만 그 가운데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독일의 대문호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8.28.~1832.3.22.])입니다. 이 사람은 우리나라 역사를 기준으로 하면 영조대왕 때 태어나서 정조와 순조 임금 때 활동을 한 사람입니다. 보통 천재들은 오래 살지 못하고 단명한 일이 많은데, 이 양반은 꽤 오래 살았습니다. 여든 네 살까지나 살았습니다. 괴테가 젊을 때 쓴 역작이 있는데, 그게 여러분이 잘 아시는 《젊은 베르테르의 고뇌》(1774)입니다. 스물다섯에 썼습니다. 그런데도 어찌나 생각이 깊고 넓은지, 최소한 마흔은 넘어서 쓴 것 같습니다. 유부녀를 사랑하다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것이 스토리인데요, 아무튼 이 책에 보면 사람에 대한 묘사, 자연에 대한 묘사, 사회구조에 대한 묘사 등이 놀라울 정도로 예리합니다. 거기서 주인공 베르테르가 어떤 여자에 대해서 평을 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 여자는 자기자랑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자기가 귀족 집안 출신이라고 자랑합니다. 고향 자랑도 빼놓지 않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열심히 자기자랑을 늘어놓아도 사람들이 인정을 해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때는 이미 봉건사회에 대한 맹종에서 벗어나서 사회 분위기가 시민사회 쪽으로 넘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귀족 타령을 하는 것을 마뜩찮게 여기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사람들은 말했지요. ‘그까짓 귀족 나부랭이가 뭐 대단하다고….’ 그리고 고향 자랑에 대해서도 콧방귀를 뀌었습니다. ‘잘난 것도 없는 게 저런 거나 자랑하지…’ 하는 식이었습니다. 그런데 베르테르는 그 여자의 신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 여자는 귀족 출신이 아니라 그 인근지역의 하급관리의 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처신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주인공은 이렇게 씁니다. “그런 족속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 괴테(임홍배 역), ≪젊은 베르테르의 고뇌≫((주)창비, 2012), 44%쪽. 대개 보면 잘난 것이 없는 사람이 자기자랑을 많이 합니다. 잘난 게 없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자기를 들추어내려 하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그것은 역효과를 냅니다. 세상 그 누구도 잘난 체하는 사람은 안 좋아합니다. 밥 비엘은 이렇게 말합니다. “잘난 체하고 건방지면 사람들은 나의 실패를 기뻐하지만, 겸손하게 봉사하면 모든 사람이 나의 성공을 기뻐한다.” - 밥 비엘(임신희 역), ≪큰 사람을 만드는 작은 원칙≫(크레도 미션, 2002), 253쪽.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은 너무나 잘하고 계시지만, 자기자랑은 어떤 경우에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 서로 노엽게 하지 않아도 됩니다.

둘째, 바울은 서로 노엽게 하지 말라고 합니다. 노엽게 한다는 것은 화나게 한다는 것이지요. 여기서 가까운 왜관에 박춘식이라는 천주교 신부님이 사십니다. 이분이 몇 해 전에 겪었던 일입니다. 사시는 데가 워낙 골짜기라 휴대전화가 잘 안 터져서 늘 불편했습니다. 이동통신사에 전화를 걸어서 사정을 말했습니다. 그쪽에서는 ‘예, 예!’ 하더니 아무런 소식이 없더랍니다. 그 사람들도 장사하는 사람들인데, 한 사람을 위해서 설비를 더 준비하는 게 타산이 안 맞아서 그랬겠지요. 그러나 신부님은 다시 전화를 했습니다. 상담원이 기분 나쁠까봐 아주 조심스럽게 조용조용 말했습니다. “여보세요! 내가 경찰서장이라도 고객을 이렇게 대하실 겁니까? 당장 와서 봐주시겠지요. 우리나라는 힘없고 돈 없는 사람이 살기 어려운 곳이라고 하는데 그래서는 안 되지 않겠어요? 제가 뭐라도 좀 사 드릴까요? 그러면 도와주실 건가요?” 당장 그 다음날 두 젊은이가 작은 트럭을 타고 신부님이 사시는 곳까지 왔습니다.

그 사람들은 장비로 측정도 하고 시험도 했습니다. 날도 더운데 이 사람들이 너무 고마워서, 신부님은 시원한 맥주와 안주를 내오며 고맙다고 인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신부님이 마당에 세워져 있는 트럭을 지나치다가 트럭 위에 놓인 작업일지를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그날 서비스해야 할 사람의 이름이 여럿 적혀 있었는데 신부님의 이름이 넷째 자리에 있었습니다. 신부님이 눈이 밝았던 모양입니다. 거기 이름 옆에 볼펜으로 휘갈겨 적혀 있는 것을 보고 말았습니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성질 더러븐 고객.” 하도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다 보니까 자기들 나름대로 메모를 해둔 모양인데, 신부님은 못 본 척했답니다. 전화 두 번으로 ‘더러븐 고객’이 됐는데, 전화를 세 번 또는 네 번 했다면 작업일지에 뭐라고 적혀 있을까 그게 조금 궁금해서 그냥 싱긋 웃고 말았다는 이야기입니다. - 박춘식, ≪창세기 55장 9절≫(연인M&B, 2009), 33쪽. 제가 보기에 신부님은 전혀 성질 ‘더러븐’ 고객이 아니었습니다. 아주 점잖게 대해주신 것이지요. 요즘 고객들을 상대하는 이런 분들을 감정노동자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들의 애로사항도 하나둘이 아닙디다. 부모자식 사이, 형제자매나 친척 사이, 친구나 이웃 사이에도 서로 노엽게 하지 말아야 하지만, 이런 분들에게도 가능하면 친절하게 응대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지옥은 우롱당한 여자의 분노를 담을 수 있을 만큼 크지 않다.” - 베르나르 베르베르(이세욱 역), ≪웃음2≫(주식회사 열린책들, 2011), 70%쪽. 우리가 우롱해도 좋을 사람은 세상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 질투하지 않아도 됩니다.

셋째, 바울은 질투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질투’(嫉妬)라는 말을 사전에 찾아보니까 이렇게 풀이되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잘되거나 좋은 처지에 있는 것 따위를 공연히 미워하고 깎아내리려 함.”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남편이 다른 여자를 자기보다 더 좋아한다고 의심될 때 상대 여자에 대하여 미워하고 깎아내리려 한다면 그것이 질투입니다. 또는 직장에서 동료가 자기보다 훨씬 잘나갈 때 그를 미워하고 시기하는 것도 질투입니다. 질투심이 마음속에 똬리를 틀고 있으면, 그 사람은 질투의 대상을 만신창이가 될 때까지 비난합니다. 그런데 사실 질투를 한다는 것은 그 상대를 마음속으로 가장 흠모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자기가 가장 하고 싶던 일을 누군가가 이미, 그것도 훌륭하게 해놓았을 때, 자기가 가장 얻고 싶었던 것을 누군가가 가로채버렸을 때, 자신이 최고의 목표로 삼고 있던 일을 누군가가 이미, 그것도 괄목할 만큼 훌륭하게 달성하였을 때, 사람들은 입과 펜으로 욕을 퍼붓습니다. - 위치우위(심규호 유소영 역), ≪사색의 즐거움≫(이다미디어, 2010), 310쪽.

사실 질투란 것이 어느 정도는 필요합니다. 자신에 대한 채찍이 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스포츠 경기를 할 때 상대 선수가 잘하는 것에 대한 경쟁심이 없으면 그 사람은 발전하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여자 또는 다른 남자를 만나든 말든 무관심하다면 그것도 문제가 있습니다. 문제는, 사전에도 나오는 것처럼, ‘공연히 미워하고 깎아내리려 하는 것’이지요. 지나친 경쟁심, 지나친 질투는 상대에게 해를 주기 전에 자기 자신부터 먼저 상하게 합니다. 지나친 질투는 불안감을 증폭시킵니다. 걱정을 키웁니다. 그 결과 극도의 스트레스가 만들어지지요. 그 끝은 뭡니까? 자기 몸이 망가져버립니다. 중국의 예술평론가 위치우위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질투는 거짓을 낳고, 거짓은 질투를 더 강하게 만든다. 질투와 거짓이 한 데 섞이면 때로 상상을 초월하는 화학반응을 일으킨다.” - 위치우위(심규호+유소영 역), ≪사색의 즐거움≫(이다미디어, 2010), 307쪽. 질투의 전쟁이 시작되면 자기가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자기암시에 걸립니다. 그 와중에 ‘거짓’이 살금살금 틈을 타고 들어오지요. 그렇게 되면 엄청난 파괴력이 생기는데, 그 파괴력은 상대보다 자신을 먼저 망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 맺는 이야기

오늘 저는 세 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잘난 체하는 것, 남을 노엽게 하는 것, 질투하는 것, 이런 것들은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사실 이 세 가지는 모두 자기방어를 위하여 나오는 행동입니다. 그런데 잘난 체하지 말아야지, 남을 화나게 하지 말아야지, 질투하지 말아야지, 하고 마음을 먹어도 잘 안 됩니다.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이런 것들은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 말아야 한다는 당위성 때문에 그런 것들을 피하는 것보다, 그런 것들은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라는 것을 알 때 피하기가 훨씬 쉽습니다. 중국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누가 너에게 해를 끼치거든 앙갚음을 하려 애쓰지 말고, 그저 물가에 앉아 기다려라. 머지않아 그 사람의 시체가 떠내려가는 것을 보게 될지니.” - 베르나르 베르베르(이세욱 임호경 역),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주식회사 열린책들, 2011), 581쪽. 자기가 잘난 체하지 않아도 이유가 타당하면 남들이 먼저 칭찬을 해줍니다. 남을 노엽게 하지 않아도, 벌 받을 사람은 자연스럽게 자기가 뿌린 씨를 거둡니다. 굳이 질투하지 않아도 세상은 순리대로 돌아갑니다. 내가 어떻게 해보려고 몸부림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알아서 조치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신명기 32:35에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원수 갚는 것은 내가 하는 일이니, 내가 갚는다.” 이제 저와 여러분은 잘난 체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남을 화나게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질투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깨달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일을 주님께 맡기고 오직 평화 가운데 사시기를 축복하며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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