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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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지기 2008-12-28 15: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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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누가복음서 2:41-52 
설교일 2008-12-28 
설교장소 구미안디옥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성탄절 


■ 성서 본문

예수의 부모는 해마다 유월절에 예루살렘으로 갔다. 예수가 열두 살이 되는 해에도, 그들은 절기 관습을 따라 유월절을 지키러 예루살렘에 올라갔다. 그런데 그들이 절기를 마치고 돌아올 때에, 소년 예수는 예루살렘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그의 부모는 이것을 모르고, 일행 가운데 있으려니 생각하고, 하룻길을 갔다. 그 뒤에 비로소 그들의 친척들과 친지들 가운데서 그를 찾았으나, 찾지 못하여,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가서 찾아다녔다. 사흘 뒤에야 그들은 성전에서 예수를 찾아냈는데, 그는 선생들 가운데 앉아서, 그들의 말을 듣기도 하고, 그들에게 묻기도 하고 있었다. 그의 말을 듣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그의 슬기와 대답에 경탄하였다. 그 부모는 예수를 보고 놀라서, 어머니가 예수에게 말하였다. “얘야, 이게 무슨 일이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찾느라고 얼마나 애를 태웠는지 모른다.” 예수가 부모에게 말하였다.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습니까? 내가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을 알지 못하셨습니까?” 그러나 부모는 예수가 자기들에게 한 그 말이 무슨 뜻인지를 깨닫지 못하였다. 예수는 부모와 함께 내려가 나사렛으로 돌아가서, 그들에게 순종하면서 지냈다. 예수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에 간직하였다.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고,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을 받았다.

<누가복음서 2:41-52>


■ 들어가는 말씀

오늘은 성탄 후 첫째 주일입니다. 성탄절은 주현절이 오기까지 계속되는데, 매년 1월 6일이 주현절이니까, 내년 1월 5일까지 우리는 성탄절로 지키게 됩니다. 성탄절에 우리가 서로 축복도 많이 나누어야 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일은 2천 년 전에 태어나신 예수님을 생각하고, 그분으로부터 우리가 무엇을 배울까 생각하고 실천하는 일일 것입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많지만, 그 가운데서도 오늘은 예수님의 소년시절의 일화를 통하여 우리가 본받아야 할 점들을 몇 가지 찾아보겠습니다.

■ 아버지의 집을 내 집이라고 생각하는 것.

예수님의 부모는 해마다 유월절에 예루살렘으로 갔는데, 예수님이 열두 살이 되는 해에도, 그들은 유월절 절기를 지키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절기를 마치고 돌아올 때에, 소년 예수는 예루살렘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의 부모는 그것도 모르고, 일행 가운데 있으려니 생각하고, 하룻길을 갔습니다. 그 때에야 비로소 그들은 친척들과 친지들 가운데서 그를 찾았지만 찾지 못하였고,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가서 찾아다녔습니다.

사흘 뒤에야 그들은 성전에서 예수를 찾아냈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는 예수를 보고 놀라서 물었습니다. “얘야, 이게 무슨 일이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찾느라고 얼마나 애를 태웠는지 모른다.” 이때 예수가 부모에게 말하였습니다.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습니까? 내가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을 알지 못하셨습니까?” 그러나 사람들은 예수가 한 그 말이 무슨 뜻인지를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머니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에 간직하였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성전을 가리켜서 ‘내 아버지의 집’이라고 하셨습니다. 사실 이 말은 ‘큰일 날’ 말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모두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지만, 예수님 당시에는 그런 말을 하면 안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버지라면 자기는 신의 아들이라는 말인데, 그 당시에 ‘신의 아들’이라 하면 임금들을 가리키는 말이었거든요. 어쨌든 예수님 덕분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었고, 하나님의 집을 ‘내 집’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나와 앉아 있는 것은, 첫째는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이고, 둘째는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을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참으로 복된 자리입니다. 지난주간에 우리가 성탄일을 보냈습니다만,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구원’ 하면 얼른 감이 안 잡힐 수 있겠습니다만, 마태복음서 11장 28절 말씀을 보면 쉽게 이해가 됩니다. “수고하며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은 모두 내게로 오너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

교회는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곳이어야 합니다. 우리 아버지의 집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초청하시는 집이기 때문입니다. 돈 없는 사람도 오라고 하신 곳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집에서는 매번 좋은 옷을 입지 않아도 됩니다. 졸리면 자도 됩니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아버지에게 달라고 하면 됩니다. 아버지를 도와서 일할 게 있으면 편안한 마음으로 하면 됩니다. 회사에서 하는 일은 월급을 받고 하는 일이기 때문에 부담이 됩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아버지의 일을 하는 것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내 아버지의 일이기 때문에 그냥 편안한 마음으로 하면 됩니다. 설령 뭘 하다가 잘못 돼도 다 용서가 됩니다.

■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사흘 동안이나 무엇을 하고 계셨는가, 소년 예수는 성전에서 선생들 가운데 앉아서, 그들의 말을 듣기도 하고, 그들에게 묻기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말을 듣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그의 슬기와 대답에 경탄하였다”고 했습니다. ‘경탄’이라는 말은 놀라고 감탄했다는 뜻이지요. 겨우 열두 살밖에 안 된 소년이, 그것도 유다에서 가장 ‘깡촌’에 해당하는 나사렛에서 온 소년이, 그 당시 내로라하는 쟁쟁한 학자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을 감동하게 할 수 있을까, 이것을 우리도 배워야 합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뻔한 일’로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지 못합니다. 상대가 예측하지 못한 ‘반전’이 있어야 감동을 줄 수 있지요. 영화나, TV에서 방영하는 연속극도 그렇지 않아요? 작가가 결말을 어떻게 엮어갈지 훤히 들여다보이면 재미가 없습니다. 짜임새 있게 갈등상황을 만들어가다가 클라이맥스에 이르러 그 모든 상황을 한꺼번에 뒤집어버릴 결말을 잘 만들어야 능력 있는 작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좁은 문’ 이야기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거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그 길이 널찍하여서, 그리로 들어가는 사람이 많다”(마태복음서 7:13). 넓은 문으로 들어가는 삶에는 감동이 없습니다. 남들이 다 다니는, 뻔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서 거기서 반전을 만들고 성공을 이루어내야 감동을 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성전에 모인 학자들에게 무슨 말을 해서 그들을 놀라게 했겠습니까? 성경을 달달 외워서 그랬겠습니까? 아니면 남들이 다 하는 성경해석을 줄줄이 풀어놓아서 그랬겠습니까? 제가 보기에 그런 것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가운데, ‘율법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하신 대목이 많이 나옵니다. 예를 들면 마태복음서 5장에 나오는 산상설교가 그런 것이지요. “옛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살인하지 말아라. 누구든지 살인하는 사람은 재판을 받아야 할 것이다’ 한 것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자기 형제나 자매에게 성내는 사람은, 누구나 심판을 받는다. 자기 형제나 자매에게 얼간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누구나 공의회에 불려갈 것이요, 또 바보라고 말하는 사람은 지옥 불 속에 던져질 것이다”(마태복음서 5:21-22). 예수님께서는 아마도 학자들에게 그런 말씀을 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감동했겠지요.

전에 한번 말씀드렸습니다만, 한국 가톨릭 초기에 백정 출신의 황일광(1756~1801)이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양반 신도의 방 안에 들어가 함께 앉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매우 감격해서, 이렇게 말했답니다. “내게는 천당이 둘 있는데, 하나는 지상에 있고 다른 하나는 내세에 있습니다.” ― 길희성, 《보살 예수》(현암사, 2005), 30쪽. 백정이라면 양반들이 말도 섞지 않으려고 하던 시절에, 함께 한 방에 앉아 대화를 나누고 예배를 드릴 수 있으니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이겠습니까? 이런 게 다 예수님께서 허물어버린 벽이지요.

■ 하나님과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는 것.

오늘 본문 52절에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고,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을 받았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사랑도 받고, 사람의 사랑도 받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가 즐겨 부르는 노래도 그렇게 되어 있지 않습니까?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하지요. 맞습니다. 우리는 모두 사랑을 받아야 할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고난도 당하셨지만 사랑도 많이 받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마르다와 마리아의 집에 가셨을 때, 마르다는 정성껏 음식을 준비했고,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밑에 앉아서 초롱초롱한 눈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자기 전 재산을 털어 향유를 사서 예수님의 발에 부어드렸습니다. 그리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예수님의 발을 닦아 드렸습니다. 예수님께서 무덤 속에 계실 때는 새벽 미명에 무서움을 무릅쓰고 여자들이 무덤을 찾아올 정도로 예수님은 극진한 사랑을 받으셨습니다.

우리 주변에도 사랑을 듬뿍 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만, 사랑 받는 사람들을 보면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할 줄 아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한없는 사랑을 베풀었기 때문에 그렇게 큰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지요. 사랑이라는 것이 꼭 준 사람에게 도로 받는 것은 아니고 이 사람에게 주고 저 사람에게 받는 경우도 많지만, 어쨌든 수지타산을 맞추어보면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많은 사랑을 받습니다.

■ 맺는 말씀

저는 오늘, 예수님으로부터 세 가지를 배우자고 말씀드렸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집을 내 집이라고 생각하고 편하게 찾자는 것, ▶둘째,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면서 살자는 것, 그리고 ▶셋째는, 사랑 받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더 많이 사랑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오늘이 올해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우리가 얼마나 예수님처럼 살았는지 돌이켜보고, 새해에는 더 많이 예수님을 닮기 위하여 힘을 모아야겠습니다.
» 예수님처럼
921 완전한 용서
920 지켜보시는 하나님
919 이런 한 해가 되게 하소서!
918 "따로 외딴 곳으로 와서 좀 쉬어라!"
917 몸으로 담 허물기
916 예수님의 동지가 되십시오!
915 예수님과 사귀십시오!
914 "새 포도주는 새 가죽부대에!"
913 좋은 직업 찾기
912 희망 있는 사람이란?
911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휴식
910 어버이 바울
909 척척 이루어지는 계획 세우기
908 세 가지 복
907 혁명
906 이제 다시 시작이다!
905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904 "죽음아, 너의 독침이 어디에 있느냐?"
903 이런 한 해가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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