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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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지기 2013-10-21 16:5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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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마태복음서 11:16-19 
설교일 2013-10-20 
설교장소 우리교회수양관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주일 


[오디오파일 듣기/내려받기]

■ 성서 본문

“이 세대를 무엇에 비길까? 마치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서, 다른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과 같다.

‘우리가 너희에게 피리를 불어도 너희는 춤을 추지 않았고,
우리가 곡을 해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았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말하기를, ‘그는 귀신이 들렸다’ 하고, 인자는 와서,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니, 그들이 말하기를 ‘보아라, 저 사람은 마구 먹어대는 자요, 포도주를 마시는 자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다’ 한다. 그러나 지혜는 그 한 일로 옳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마태복음서 11:16-19>


■ 들어가는 이야기

오늘 우리는 5년 만에 교회 수련회에 와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이렇게 좋은 장소를 마련해주시고 아름다운 만남을 허락해 해주셨습니다. 이곳에서 묵은 1박2일의 경험이 저와 여러분의 삶에서 멋진 추억이 되기를 바라고, 아울러 여러분의 삶이 이 일을 계기로 해서 더욱 풍성해지게 되기를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 청산에 살까, 바다에 살까?

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고려가요 가운데 ‘청산별곡’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에 살어리랏다 멀위랑 달래랑 먹고 쳥산애 살어리랏다. 얄리얄리 얄랑셩 얄라리 얄라’ 하며 시작하는 작품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오래된 고전이라 해석이 분분하지만 이 노래의 가사를 요즘 말로 풀어보면 대체로 이런 뜻입니다. ‘살고 싶다, 살고 싶다, 청산(靑山)에 가서 살고 싶다. 머루랑 다래랑 따먹으면서 청산에서 살고 싶다. / 울어라, 울어라, 새야. 자고 일어나 울어라, 새야. 너보다 시름 많은 나도 자고 일어나면 울음이 나온다. / 이끼 묻은 쟁기를 들고 하염없이 바라보던 그 새가 오늘도 내 눈앞에서 날아가는구나. / 어찌어찌 한낮은 다 갔다마는, 올 사람도 없고 갈 데도 없는 밤은 또 어찌한단 말인가. / 어디다 던지던 돌인가, 누구를 맞히려던 돌인가. 미워할 사람도 없고 사랑할 사람도 없는 이 사람이 그 돌에 맞아 울고 있다. / 살고 싶다, 살고 싶다. 바다에 살고 싶다. 해초랑 조개랑 먹으면서 바다에 살고 싶다. / 가다가, 가다가 어느 외딴 부엌에 들르니, 사슴이 어딘가에서 해금을 켜고 있구나. / 배불뚝이 독들아, 어디 독주나 좀 빚어보아라. 조롱박꽃 누룩냄새가 나를 붙잡으니 안마시고 어찌할꼬. 얄리얄리 얄랑셩 얄라리 얄라….’ 이 노래를 지어서 불렀던 사람이 얼마나 외로운 사람이었는지, 억울한 대접을 받으면서 얼마나 고된 삶을 살았던 사람인지 짐작하실 것입니다.

■ 제삼의 선택

이 노래에 보면 먹는 것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머루랑 다래랑 먹으면서 청산에 살고 싶다’ 했고, ‘굴이랑 조개랑 먹으면서 바다에 살고 싶다’ 했습니다. 머루와 다래가 어떻게 나는 것입니까? 사람이 농사를 지어서 얻는 것들이 아니지요. 자연에서 그냥 자라는 것들입니다. 굴이나 조개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에는 양식(養殖)을 해서 먹기도 하지만, 옛날에는 그런 일이 없었습니다. 사람의 손길이 필요 없이 저절로 자라는 것들입니다. 쌀이나 보리나 옥수수나 감자 등, 우리가 식량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은 대부분 노동의 산물입니다. 그러나 머루나 다래나 굴이나 조개는 자연의 산물입니다. 이 사람이 왜 이런 것들을 먹으면서 살고 싶다고 했겠습니까? 현실에서 노동을 하면서 먹고 사는 일이 너무나 힘들기 때문이었겠지요. 노동에서 해방돼서 좀 편하게 살고 싶다, 이겁니다. 그렇게 살고 싶은 꿈이 있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그건 너무 외로울 것 같아요. ‘어찌어찌 한낮은 다 갔다마는 올 사람도 없고 갈 데도 없는 밤은 또 어쩐단 말이냐?’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무위도식하는 것도 썩 좋은 일은 아니다, 이렇게 결론을 내렸습니다.

■ 어울림의 삶

노동으로 먹고 사는 것도 힘들고, 자연에서 나는 것만 먹자니 그것은 너무 외롭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사는 것이 좋겠습니까? 마지막 연에 그 답이 나옵니다. ‘배불뚝이 독들아, 어디 독주나 좀 빚어보아라. 누룩 냄새가 나를 붙잡으니 안마시고 어이하랴!’ 이 사람이 내린 결론은 ‘술’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이 노래가 술을 예찬하는 것은 아닙니다. 쌀과 보리는 노동의 영역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입니다. 머루와 다래 또는 굴과 조개는 자연의 영역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술을 만드는 누룩은 어떻습니까? 그것은 분명히 곡식으로 빚은 것이지만 곡식 그 자체는 아닙니다. 자연의 영역에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술이라는 것은 노동의 영역과 자연의 영역이 어울려서 만들어내는 제삼의 물건입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희석식 소주 같은 것은 술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그냥 알코올일 뿐입니다. 우리가 즐겨 먹는 김치와 된장도 노동의 영역과 자연의 영역이 어울려서 만들어지는 신비의 음식입니다. 오래 전에 싱가포르에서 어느 음식점에 갔더니, 한국 사람들이 많이 오는 데라 그런지, 반찬 가운데 김치가 있었습니다. 분명히 배추였습니다. 색깔도 빨간 게, 김치 색깔이었습니다. 그런데 먹어보니까 영 아니에요. 고춧가루를 좀 넣기는 했지만 색깔을 내려고 케첩으로 범벅을 했어요. 그리고는 신 맛을 내려고 식초를 뿌린 것 같았습니다. 완벽한 짝퉁 김치였습니다. 그것은 ‘조화’가 아니라 ‘조작’입니다.

■ 맺는 이야기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누룩에 비유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라고 하는 곳은 조화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조금 전에 노동의 영역과 자연의 영역 사이의 조화를 말씀드렸는데,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의 영역과 하나님의 영역이 조화를 이루는 나라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어울리고, 사람과 자연이 어울리고, 사람과 하나님이 어울리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은 그런 오묘한 진리를 몰랐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비난하고 미워했던 것이지요. 마태복음서 11:18-19입니다.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았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말하기를, ‘그는 귀신이 들렸다’ 하고, 인자는 와서,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니, 그들이 말하기를 ‘보아라, 저 사람은 마구 먹어대는 자요, 포도주를 마시는 자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다’ 한다.” 예수님을 술꾼으로 몰았습니다. 그리고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고 욕했습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예수님께서 소외된 사람, 가난한 사람들과 잘 어울려 다니셨다는 뜻 아닙니까? 하나님의 나라에서 볼 수 있는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예수님은 당시 세대를 이렇게 묘사하셨습니다. “이 세대를 무엇에 비길까? 마치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서, 다른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과 같다. ‘우리가 너희에게 피리를 불어도 너희는 춤을 추지 않았고, 우리가 곡을 해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16-17). 하나님께서 피리를 부시면 우리가 춤추는 나라, 이웃이 곡을 하면 함께 울어주는 나라, 그런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사람이 땀 흘려 일하면 하나님께서 누룩과 같이 복을 무르익게 하는 나라, 그런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그런 멋진 나라를 만드는 역군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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