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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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요한복음서 8:12 
설교일 2014-01-05 
설교장소 한울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송구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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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서 본문

예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사람은 어둠 속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

<요한복음서 8:12>


■ 들어가는 이야기

우리는 지금 새해 첫 주일을 맞이하여 주님 앞에 영광을 돌리기 위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에게, 하늘의 은혜와 땅의 축복이,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충만하게 철철 넘쳐흐르기를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우리 교단은 제98회 총회 주제를 “예수 그리스도의 빛 안에서 새로워지는 교회”라고 정했습니다. 그에 따라서 우리 교회도 올해의 기도 제목을 “예수 그리스도의 빛 안에서 새로워지게 해주십시오!”로 정했습니다.

■ “새것이란 없다!”

올해 기도제목의 키워드 곧 열쇠 말은 ‘새로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빛 안에서 새로워지기 위해서는 ‘새로워지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먼저 알아야 할 것입니다. 전도서 1:9-10에 보니까 전도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미 있던 것이 훗날에 다시 있을 것이며, 이미 일어났던 일이 훗날에 다시 일어날 것이다. 이 세상에 새 것이란 없다. ‘보아라, 이것이 바로 새 것이다’ 하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는가? 그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있던 것, 우리보다 앞서 있던 것이다.” 우리가 새로워져야 하는데, “이 세상에 새것이 없다”라고 하니, 조금 답답합니다. 일본에 오로 다케시라는 교수가 있는데, 이분이 하루는 학생들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자네들도 암에 걸릴 수 있다. 치료법도 없는 암에 걸려 앞으로 반년밖에 못 산다는 선고를 받을 수도 있다. 그러면 저기 피어 있는 벚꽃이 달라 보일 것이다. […] 벚꽃이 다르게 보이는 순간, 작년까지 어떤 생각으로 저 벚꽃을 바라보았는지를 떠올려보라. 아마 기억나지 않을 것이다. 그럼 저 벚꽃이 작년과 다른가, 그렇지 않다. 자신이 바뀌었을 따름이다.” ― 요로 다케시(양억관 역), ≪바보의 벽≫(도서출판 재인, 2004), 64쪽. 겨울이면 흰 눈이 옵니다. 작년의 눈과 올해의 눈이 겉으로는 아무런 변화가 없지만, 만일 우리가 치명적인 병에 걸려 있다면 올해의 눈은 전혀 새로운 눈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연로하신 분들이 흔히 그런 말을 하지요. “내가 내년에 저 눈을 또 볼 수 있을까.” 안목이 바뀌면 세상도 바뀌고 나도 새롭게 바뀔 수 있습니다.

■ 백태를 제거하라!

약 10년쯤 전에 타계하신 시인 구상 선생의 작품 가운데 〈말씀의 실상〉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영혼의 눈에 끼었던 / 무명(無明)의 백태가 벗겨지며 / 나를 에워싼 만유일체가 / 말씀임을 깨닫습니다. // 노상 무심히 보아오던 / 손가락이 열 개인 것도 / 이적(異蹟)에나 접하듯 / 새삼 놀라웁고 / 창밖 울타리 한 구석 / 새로 피는 개나리꽃도 / 부활의 시범(示範)을 보듯 / 사뭇 황홀합니다. // 창창(蒼蒼)한 우주, 허막(虛莫)의 바다에 / 모래알보다도 작은 내가 / 말씀의 신령한 그 은혜로 / 이렇게 오물거리고 있음을 / 상상도 아니요, 상징(象徵)도 아닌 / 실상(實相)으로 깨닫습니다.” ― 구상, ≪홀로와 더불어≫(황금북, 2002), 56-57쪽. 그는 울타리 구석에 소리 없이 피어 있는 개나리꽃을 부활의 시범으로 볼 줄 아는 신앙인이었습니다. 산골짝 한쪽에 수줍게 피어 있는 진달래를 경이롭게 볼 줄 아는 시인이었습니다. 그의 눈에서 백태가 벗겨진 순간, 그는 무심히 여겼던 자신의 손가락이 열 개임을 보고 그것을 기적이라고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새롭게 된다는 것, 그것은 우리 눈에서 백태를 제거해내는 일입니다. 우리 눈에 낀 고집의 백태, 욕심의 백태, 교만의 백태를 벗겨내면 우리는 새로운 사람이 됩니다. 그런 사람들이 모인 교회는 새로운 교회가 됩니다. 그런데 눈에서 백태를 벗겨내서 새롭게 되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아니어도 할 수 있습니다. 오랫동안 참선을 한다든지, 수도생활을 깊게 한다든지, 그런 방법으로도 어느 정도는 가능합니다.

■ 예수 그리스도의 빛 안에서

올해 우리 교회의 기도 제목에서 가장 크게 방점을 찍어야 할 대목은 ‘예수 그리스도의 빛 안에서’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새롭게 보기 위해서는, 그리고 우리 자신과 우리 교회가 새롭게 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빛이 필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빛은 무엇을 말하는 것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성경의 근본정신입니다. 성경의 근본정신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잘 아는 대로, 그것은 예수님께서 친히 두 가지로 요약해주신 것,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는 사실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탈무드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답니다. “내게 아이 넷이 있다. 너에게도 아이 넷이 있다. 너의 아이는 아들, 딸, 남종, 여종, 이렇게 넷, 나의 아이는 고아, 과부, 외국인, 레위인, 이렇게 넷. 나는 네 아이의 어려움을 돌봐줄 테니 너는 내 아이의 어려움을 돌봐주어라.” ― 마빈 토케어(은제로 역), ≪탈무드≫(컨콜디아사, 1980), 102-103쪽. 하나님께서는 우리 아이들을 정성껏 돌보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그분은 우리에게 그분의 아이들을 맡기셨습니다. 정성껏 보살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이들은 어렵게 혼자 사는 여성들과, 부모가 없거나 있어도 학대당하는 아이들과, 가난하고 외로운 노동자들과, 집 한 칸 없이 빈손으로 헌신하는 성직자들입니다. 이들을 잘 보살피는 것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고, 그것이 결국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 맺는 이야기

제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전도서의 말씀대로, 세상에 새로운 것은 없습니다. 지금 있는 것들은 태초에 하나님께서 이미 모두 다 창조해 놓으신 것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자녀들은 날마다 새롭게 태어나야 합니다. 새로운 사람이 된다는 것은 여태 하지 않던 이상한 짓을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 상태로 되돌아가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컴퓨터를 사용하다가 보면 문제가 발생하는 일이 많지요. 그 컴퓨터를 새롭게 한답시고, 문제 있는 컴퓨터에다가 또 다른 프로그램을 까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더 복잡해집니다. 그때는 데이터를 백업받은 뒤에 하드디스크를 포맷하고 모든 상태를 초기화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빛 안에서 새로워지는 교회! 담임목사가 새로 온다고 교회가 새로워지지 않습니다. 장로를 새로 세운다고 교회가 새로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근본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교회가 찾아야 할 근본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근본은 ‘약자보호’입니다. 한국교회가 힘을 잃어가고 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지만, 문제는 사람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근본정신을 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은, 오로지 주님의 말씀 위에 굳게 섬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빛 안에서 진정 새로워질 수 있게 되기를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 2014.1.5 한울교회 주일예배 말씀입니다.)
922 칼을 쳐서 보습을, 창을 쳐서 낫을!
921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땅
920 “시작이 미약하다고 비웃는 자가 누구냐?”
919 만족의 손익분기점
918 가진 것을 다 팔아서 사야 할 것
917 원수 다루기
916 사랑을 위해서라면
915 낮술에 취하다!
914 굶주림입니까? 칼입니까?
913 집안에 감도는 기운
912 꼬드김과 설득
911 “하나님,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910 지혜는 옵션이 아닙니다!
909 큐비클에서 탈출하라!
908 “반드시 오고야 말 것이다!”
907 알맞은 ‘때’
906 제자 공인인증
905 느헤미야의 기도
904 아름다움에 대하여
903 잠이 보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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