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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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창세기 9:6-7 
설교일 2015-10-18 
설교장소 한울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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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서 본문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으니,
누구든지 사람을 죽인 자는 죽임을 당할 것이다.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편만하여,
거기에서 번성하여라.”

<창세기 9:6-7>


■ 들어가는 이야기

가뭄이 심해서 걱정이기는 합니다만, 요즘 날씨가 정말 좋습니다. 이런 청명한 가을 하늘처럼, 여러분의 살림살이도, 여러분의 건강도, 여러분의 마음과 영혼까지도 쾌청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가장 무서운 낱말

하늘은 이렇게 맑은데, 우리 주변에서 들려오는 나쁜 소식은 여전히 끓기지 않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용인시의 어떤 고층아파트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화단에서 고양이를 돌보던 50대 여성이 벽돌에 맞아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벽돌을 던진 용의자는 열 살짜리 초등학생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고의성이 있었는지, 단순 실수였는지는 수사과정에서 밝혀지겠습니다만, 결과만 놓고 본다면 이것은 ‘살인사건’입니다. 사람의 목숨을 끊는 것을 일컬어 우리는 ‘살인’이라고 부르는데, 제가 생각하기에 이것은 인간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낱말입니다. 십계명도 하나님과 부모에 관한 계명을 말한 뒤에 가장 먼저 금지하는 계명이 ‘살인하지 말라’입니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식물이나 한번 태어나면 다 죽게 되어 있습니다. 제 명이 다해서 죽는 것을 놓고 남을 탓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문제는 수명이 다하기 전에 미리 목숨을 끊어버리는 것이지요. 그래서 살인의 정의를 다시 내려야 할 것 같습니다. 살인이란, 단순히 ‘사람을 죽이는 것’에서 더 나아가 ‘제 명대로 못 살도록 남의 생명을 미리 앗아가는 것’이라고 해야 합니다. 사실 이것은 제 이야기가 아니라 2천 년 전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마태복음서 5:21-22입니다. “옛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살인하지 말아라. 누구든지 살인하는 사람은 재판을 받아야 할 것이다’ 한 것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자기 형제나 자매에게 성내는 사람은, 누구나 심판을 받는다. 자기 형제나 자매에게 얼간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누구나 공의회에 불려갈 것이요, 또 바보라고 말하는 사람은 지옥 불 속에 던져질 것이다.” 이 말씀이 요한일서 3:15에 더욱 분명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자기 형제자매를 미워하는 사람은 누구나 살인하는 사람입니다.” 누구든지 형제자매나 이웃을 미워하거나 욕하면 그것으로 이미 살인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현대인의 사망을 재촉하는 큰 원인 가운데 하나가 ‘스트레스’잖아요. 내 성질을 못 이겨서 남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것은 남의 생명을 단축시키는 행위입니다. 조금 전에 말씀드렸지요? 살인이란 누군가가 제 명대로 못 살도록 방해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 가운데 그 누구도 “나는 살인자가 아니야!”라고 단정해서 말할 수 없습니다.

■ 살인 면허

예수님의 말씀에 따르면 남으로 하여금 스트레스를 받게 하는 것도 심판 받을 일입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사람의 목숨을 즉시 끊어버리는 행위는 얼마나 나쁜 짓입니까? 그런데 ‘살인면허’를 가지고 합법적으로 사람을 죽이는 일도 있습니다. ‘사형제도’이지요. 우리나라의 경우 김대중 정권 5년, 노무현 정권 5년 합쳐 10년 넘게 사형 집행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 덕에 국제 엠네스티가 사형 제도를 사실상 폐지한 나라로 꼽았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이명박 박근혜 정권에서도 사형 집행을 했다는 말을 듣지 못했습니다. 이에 비해 중국과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형을 집행하는 나라에 속합니다. 일본도 최근까지 사형을 집행했습니다. 한국은 사형제도에 있어서만큼은 이들 나라에 비해 인권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유럽연합(EU)에는 사형 제도를 폐지하지 않은 나라는 가입할 수조차 없습니다. ― 홍세화, ≪생각의 좌표≫(한겨레출판(주), 2009), 39쪽 참조. 1974년 4월 9일, 박정희 독재가 서슬이 퍼렇던 시절, 이른바 ‘인혁당 사건’으로 여덟 명이 사형을 당했습니다. 멀쩡한 사람들이 공산주의자로 몰린 것이지요. 박정희 정부는 대법원 확정판결이 난 후 채 24시간도 되기 전에 사형을 집행했습니다. 다른 이유는 하나도 없습니다. 눈에 가시 같은 사람들을 그냥 죽여 버리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진상이 제대로 밝혀졌지요. 이분들은 재심을 통해서 목숨 끊어진 지 수십 년 만에 모두 무죄선고를 받았습니다. 사형제도가 살해제도로 악용된 것입니다. 나중에 무죄선고가 내려진들 어쩌겠습니까? 한 번 끊어진 목숨이 다시 살아옵니까? 그래서 사람의 목숨은 함부로 인위적으로 끊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명백한 죄인이라고 할지라도 사형 말고도 벌을 줄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 남겨야 할 달란트

지금까지 말씀드렸던 것처럼, 오늘의 주제는 ‘살인하지 말자!’입니다. 살인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흉기나 약물 등을 이용하여 갑자기 사람의 목숨을 끊는 것이고, 또 하나는 사람이 제 명에 죽지 못하도록 스트레스를 주는 것입니다. 둘 다 매우, 매우 나쁜 행동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철저히 피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피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닙니다.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라고 하지요? 수동적으로 살인을 피하면서 사는 것보다 능동적으로 선행을 하면서 사는 것이 좋다는 말입니다. 살인이 생명을 앗아가는 행위라면, 선행은 생명을 북돋우는 행위입니다. 예수님의 달란트 비유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도 바로 이것입니다. 그 비유에서는 돈을 남기는 이야기로 나옵니다만, 예수님의 의도는 돈을 남기라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을 살리는 열매를 남겨야 합니다. 전도의 달란트, 봉사의 달란트, 구제의 달란트, 헌금의 달란트 등도 남겨야 하지만, 이보다 더 귀한 것은 사랑의 달란트를 남기는 것입니다. 탈무드에 살인과 관련된 말이 나오는데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험담은 살인보다도 위험하다. 살인은 한 사람만 죽이지만 험담은 반드시 세 사람을 죽인다. 험담을 퍼뜨리는 사람 자신, 그것을 반대하지 않고 듣고 있는 사람, 그리고 화제가 되어 있는 그 사람.” ― 마빈 토케어(은제로 역), ≪탈무드≫(컨콜디아사, 1980), 122쪽. 이 내용을 제가 조금 바꾸어봤습니다. “좋은 말은 무엇보다 귀하다. 양약은 한 사람을 살리지만 좋은 말은 반드시 세 사람을 살린다. 좋은 말을 하는 사람 자신, 그 말에 동감하며 듣는 사람, 그리고 화제가 되어 있는 그 사람.” 험담을 피하는 것, 이것은 야구로 치자면 상대편에게 점수를 안 내주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덕담을 하는 것은 적극적으로 공을 쳐서 점수를 내는 것과 같습니다. 위로하는 말, 힘을 주는 말, 희망을 가지게 하는 말을 적극적으로 하면, 그것이 생명을 살리고 북돋우는 구실을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 맺는 이야기

그 가운데서 가장 효과가 큰 것이 칭찬입니다. 여러분이 칭찬을 하면, 칭찬하는 여러분과, 칭찬을 받는 당사자와, 칭찬하는 말을 듣는 다른 사람까지 모두 행복해집니다. 아무쪼록 “생육하고 번성하라!”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들어, 이처럼 세 사람을 살리는 약을 늘 가지고 다니면서 큰 효과를 보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 2015.10.18 구미 한울교회 주일예배 말씀입니다.)
921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땅
920 “시작이 미약하다고 비웃는 자가 누구냐?”
919 만족의 손익분기점
918 가진 것을 다 팔아서 사야 할 것
917 원수 다루기
916 사랑을 위해서라면
915 낮술에 취하다!
914 굶주림입니까? 칼입니까?
913 집안에 감도는 기운
912 꼬드김과 설득
911 “하나님,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910 지혜는 옵션이 아닙니다!
909 큐비클에서 탈출하라!
908 “반드시 오고야 말 것이다!”
907 알맞은 ‘때’
906 제자 공인인증
905 느헤미야의 기도
904 아름다움에 대하여
903 잠이 보약입니다!
902 하나님의 일, 사람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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