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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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이사야서 3:13-15 
설교일 2006-02-26 
설교장소 구미안디옥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주일 




■ 본문 말씀

주님께서 재판하시려고 법정에 앉으신다.
그의 백성을 심판하시려고 들어오신다.
주님께서 백성의 장로들과
백성의 지도자들을 세워 놓고,
재판을 시작하신다.
“나의 포도원을 망쳐 놓은 자들이 바로 너희다.
가난한 사람들을 약탈해서, 너희 집을 가득 채웠다.
어찌하여 너희는 나의 백성을 짓밟으며,
어찌하여 너희는 가난한 사람들의 얼굴을
마치 맷돌질하듯 짓뭉갰느냐?”
만군의 하나님이신 주님의 말씀이다.

(이사야서 3:13-15)


■ 들어가는 말씀

오늘은 “성공하는 삶의 세 단계”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그러려면 먼저 성공하는 삶이란 어떤 것이냐, 여기에 대해 정의를 해야 하는데, 판사나 검사, 의사나 약사, 고급공무원, 대기업 임원…, 이런 직책을 가지면 성공한 삶이냐, 그런 건 당연히 아닙니다.

얼마 전에 어느 대기업의 임원 한 분이 저녁을 사준다고 해서 나갔었는데, 저는 그 날, 평소에 제가 생각하고 있던 것 하나가, 아 정말 그렇구나, 그게 옳다는 것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저녁을 먹으면서 그 양반이 하는 말이, 자기는 여태 뭘 했는지 모르겠대요. 친구들은 돈도 많이 벌고, 잘 나가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 많은데, 자기 자신을 생각해보니까 여태 뭘 하고 살았는지, 참 한심하다는 겁니다.

나이 오십 대 중반에 대기업 임원이면, 보통 사람들이 생각할 때, 꽤 괜찮은 자리 아닙니까? 이태백이네, 삼팔선이네, 오륙도네 하는 마당에 그 정도면 엄청나게 성공한 거지요. 지금 당장 은퇴해도 크게 억울할 것 같지가 않은데, 본인이 생각하기에는 그렇지 않은 모양입니다.

이런 것을 보면서, 다시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인생의 성공이란 연봉에 달려 있는 것도 아니고, 사회적 지위에 달려 있는 것도 아니고, 명성에 달려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조금 전에, 제가 만났다고 말씀드렸던 그분이 제대로 보고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자기가 볼 때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건데, 이건 무슨 말이겠습니까? 사람 앞에서는 성공했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성공했다고 내세울 것이 없다는 뜻으로 저는 해석했습니다.

사람 앞에서 내세울 수 있는 성공, 사람의 눈으로 보는 성공은 껍데기 성공입니다. 그러면 알짜배기 성공은 무엇이냐, 그것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성공, 나 스스로 만족하는 성공, 이것이 진짜 성공입니다. 자, 그렇다면, 사람 보기에만 그럴듯한 허깨비 성공이 아니라, 나도 만족하고 하나님도 만족하는 알맹이 성공을 얻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가, 오늘은 이 문제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인생의 한 과정을 마치고 다음 과정으로 들어가는 주님의 자녀들을 축하하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만, 제가 바라는 것은 이 사람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크게 성공하는 삶을 이어갔으면 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삶은 대체로 ▶첫째, 수행(修行)의 단계, ▶둘째, 심판, 곧 평가의 단계, ▶셋째, 발전과 진급의 단계로 이어집니다. 오늘은 그 중 첫 번째 단계인 ‘수행’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두 번째 심판의 단계는 다음 주일에, 세 번째 진급과 발전의 단계는 그 다음 주일에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디모데전서 4:7-8에 보면 바울이 디모데에게 이렇게 당부합니다.

“경건함에 이르도록 몸을 훈련하십시오. 몸의 훈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 훈련은 모든 면에 유익하니, 이 세상과 장차 올 세상의 생명을 약속해 줍니다.”

경건에 이르도록 몸을 훈련하라고 했지요? 그리고 몸의 훈련보다 경건 훈련이 훨씬 더 유익하다고 했지요? 그러니까 우리는 몸을 훈련해야 하고, 경건해지도록 마음을 훈련해야 합니다. 몸의 훈련과 경건의 훈련, 이것을 한 마디로 말하면 ‘수행’(修行)입니다. 몸과 마음을 닦으라는 말입니다.

아기들은 아기들이 수행해야 할 과제가 있고, 어린이들은 어린이들의 수행 과제가 있고, 중학생은 중학생의 과제가 있고, 고등학생은 고등학생의 과제가 있습니다. 이 과정을 잘 마치고 좋은 평가를 받을 때 그 다음 단계로 진행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학생들뿐만 아니라 성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인들은 성인들의 수행 과제가 있습니다.

이 자리에도 아기 어머니들이 있습니다만, 아기들도 인생의 수행을 잘 할 수 있도록 어머니들이 적극 지원해야 합니다. 먹고, 싸고, 놀고, 경험하고, 자고…, 이게 아기들의 수행 과제입니다. 그런데 어머니들이 다른 것들은 웬만하면 다 잘 하는데, 아기들이 ‘경험’하는 것에 대해 잘 이해를 못하는 것 같습니다. 아기들이 경상도 말로 ‘저지레’를 자꾸 하지요. 그건 인생을 경험하기 위한 중요한 수행입니다. 그걸 자꾸 막으려고 하면 아기들이 수행을 잘 못하게 돼요. 거기에 대해서는 어머니가 책임 져야 합니다. 가능하면 저지레를 많이 하도록 권장해야 하는데, 단, 여기에 조건은 있습니다. 첫째, 아기들이 다치지 않게 해야 한다는 것, 둘째,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 이것만 지키면 아기들은 저지레를 많이 할수록 좋습니다.

이렇게 아기 때의 수행과정을 잘 마친 다음, 유치원에 들어가고,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 들어가게 되고, 학업을 마치면 생활 전선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이때부터의 수행과정은 사람에 따라, 처한 환경에 따라 상당히 복잡하게 주어집니다.

학생이든 생활인이든, 성공적인 수행을 해나가려면 각자 자기의 원칙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좀 조심스러운 말이기는 합니다만, 멋진 수행 원칙 하나를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시인이며 목사인 곽노순 님이 제안한 수행의 원칙인데, 이 양반이 뭐라고 했는가 하면, ▶첫째, 하고 싶은 ‘것’을 한다, ▶둘째, 하고 싶을 ‘때’ 한다, ▶셋째, 하고 싶은 ‘만큼’ 한다, 이겁니다. 그런데 이걸 소개해 드리는 것이 왜 조심스러운가 하면, 이거 잘못 적용하면 패가망신하기 딱 좋거든요. 그러니까 지금 당장 실천하려고 하지 말고, 이 정도의 수준이 되기까지 끊임없이 노력하라는 말씀을 드리려고 하는 겁니다.

이 세 가지를 다시 해석하면 이런 겁니다. ▶첫째, 하고 싶은 일을 한다, 이것은 자기 적성이 무엇인지 깨달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둘째, 하고 싶을 때 한다, 이것은 때를 잘 맞추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셋째, 하고 싶은 만큼 한다, 이것은 자기 그릇의 크기, 곧 자기 능력의 한계를 알고 하라는 말입니다.

1. 자, 그러면 첫째, 효과적이고 적절한 수행을 위해서는 자기 적성을 잘 찾아야 합니다.

공부도 그렇고 일도 그렇고, 하고 싶은 것을 할 때 가장 효과가 크게 나타납니다. 먼저, 아기의 예를 보면, 아기가 배가 고파서 울고 있는데, 아무리 좋은 장난감을 갖다 주고 달래 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배가 고플 때는 먹을 것을 주는 것이 가장 기쁜 일입니다. 하고 싶은 건 따로 있는데, 자구 다른 걸 시키면 짜증밖에 안 납니다.

그러면 적성이란 어떤 것입니까? 무엇인가를 할 때, 기쁘게 할 수 있고, 피곤한 줄을 모르면, 그 일이 곧 자기 적성입니다.

예전에 제 친구 하나가 말하기를, 자기는 밥을 많이 못 먹는다는 겁니다. 그 친구 표현대로 하자면 자꾸 부대낀다는 거예요. 그런데 언젠가 같이 밥을 먹으면서 보니까, 상당히 많이 먹어요. 그래서 물어봤지요. 밥 많이 못 먹는다더니 오늘은 잘 먹네, 하니까 이 친구 하는 말이 오늘은 잘 ‘받는다’는 겁니다. 자기 입에 맞는다는 말이지요. 음식도 먹기 싫은 걸 억지로 먹으면 부대낄 수밖에 없고, 소화도 제대로 못 시켜냅니다. 공부도 그렇고 일도 그렇고, 하고 싶은 것을 하면 단기간에, 큰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결론 아니겠습니까?

석가모니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가르친 법은 별도의 수행이 없는 수행이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수행한다고 하면서, ‘억지로’ 뭔가를 하려고 하면 그건 이미 수행이 아니라 ‘고행’이라는 말입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은 복음을 전할 때 ‘기쁨과 성령으로 가득 차 있었다’고 했습니다(사도 13:52). 기쁘게 무엇인가를 한다는 것은, 우리가 그 일을 할 때 하나님께서 성령을 부어주신다는 뜻입니다.

아직 자기 적성을 찾지 못한 분이 있다면, 주님 앞에 기도하십시오. 성령을 부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신나게’ 한다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신이 난다는 말은 우리 기독교식으로 말하면 성령이 충만한 상태입니다.

2. 둘째, 때를 잘 포착해야 합니다.

곽노순 시인이 “하고 싶을 때 한다”고 한 것은 때를 잘 포착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시험공부를 해본 학생들은 알겠습니다만, 보통 급해야 공부가 잘 된다고 합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면, 공부를 해야겠다고 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어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런 경우도 하나의 때는 ‘때’입니다.

배가 그득하고 아랫배에서 신호가 막 오기 시작할 때 화장실에 가서 볼일을 보면 얼마나 시원한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루에 한 번씩 볼일을 보는 게 필요하다고 해서 그냥 가 앉아 있어 봐야 짜증만 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일이고 공부고, 우리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고 싶을 때가 별로 없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휴식이 필요한 겁니다. 쉬지 않고 일을 하면, 일하고 싶은 마음이 평생 들지 않습니다. 쉬지 않고 공부를 하면,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평생 들지 않습니다.

제가 참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우리 학생들이 때때로 시험기간이라고 해서 예배에 참석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물론 급하니까 그러겠지요.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편법’이라는 것을 꼭 알아야 합니다. 편법이란 한두 번 쓸 때는 효과가 있지만 자꾸 반복해서 쓰면 오히려 해로울 뿐입니다. 우리가 몸이 아플 때 병원에서 진통제를 처방해 주는데, 그것도 한두 번은 잘 듣지만, 자꾸 반복해서 쓰면 약의 강도를 높여야 하고, 자꾸 높이다 보면 내성이 생겨서 우리 몸에 엄청난 해를 줍니다.

하고 싶지 않은 데도 억지로 책을 붙들고 앉아 있어봐야 공연히 시간만 들고 몸만 피곤합니다. 차라리 그 때는 잠을 자는 게 낫습니다. 그리고 한숨 자고 일어나서 “하나님, 저에게 공부하고 싶은 마음을 주십시오,” 이렇게 하나님께 기도를 하세요.

“믿는 사람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다,” 이렇게 말하니까, 공부는 안 하고 기도만 하면 안 되겠나, 이렇게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것은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열심히 기도하면 공부 잘 하게 되는 것 맞습니다. 그러나 그 말은 “하나님, 공부하고 싶은 마음을 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한다는 뜻이고,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응답해 주시면 잘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건 성인들이 일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3. 셋째, 자기 한계를 알아야 합니다.

아까, 하고 싶은 만큼 한다고 했지요? 이 말은 자기 한계를 잘 알고 자기 그릇의 분량만큼 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릇으로 만드셨다고 했습니다. 우리 가운데는 큰 그릇도 있고 작은 그릇도 있습니다. 금 그릇도 있고 질그릇도 있습니다.

금 그릇이라고 다 좋은 것도 아니고 토기라고 해서 다 천한 것도 아닙니다. 금 그릇은 금 그릇대로 쓸 데가 있고, 토기는 토기대로 다 쓸 데가 따로 있는 법입니다.

로마 시대에 대단히 총명한 랍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양반은 꽤나 추하게 생겼던 것 같은데 하루는 이 양반이 로마 황제의 왕녀를 알현했습니다.

왕녀가 랍비를 보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굉장한 총명이 이런 겉이 더러운 그릇에 들어 있군요.”

그래서 랍비가 왕녀에게 물었습니다.

“왕궁 안에는 좋은 술이 어떤 그릇에 들어 있습니까?”

“보통, 단지라든지 주전자 같은 데에 들어 있습니다.”

“로마의 왕녀님 쯤 되시는 분이라면 어째서 그런 보잘것없는 그릇을 쓰시나요?”

이 말을 들은 왕녀는 술을 금 그릇과 은그릇에 담았습니다. 그 결과는 어땠겠습니까? 술맛은 이상하게 변하고 맛이 없어져버렸습니다. ― 마빈 토케어(은제로 역), 《탈무드》(컨콜디아사, 1980), 23-24쪽.


또, 큰 그릇이라고 해서 다 좋은 것도 아니고, 작은 그릇이라고 해서 다 가치가 적은 것도 아닙니다. 큰 그릇은 큰 그릇대로, 작은 그릇은 작은 그릇대로 다 쓸모가 따로 있는 법입니다.

우리 가운데는 머리가 좋은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머리가 좋고 기억력이 좋다고 다 큰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머리 좋은 사람이 할 일이 따로 있고 머리가 좋지는 않지만 감성이나 다른 것이 발달한 사람이 할 일이 따로 있습니다. 하나님은 다 필요한 만큼 주셨습니다. 물탱크로 쓰려면 큰 그릇이 있어야 하지만, 간장종지는 작아야 합니다. 어떤 음식을 금 그릇에 담으면 좋은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좋은 술은 토기나 도자기에 담는 것이 좋습니다. 사람마다 쓰임새가 각기 다르다는 말입니다.

■ 맺는 말씀

성공하는 삶을 위한 세 가지 단계에서 오늘은 ‘수행’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수행을 잘 해야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고, 좋은 평가를 받아야 삶이 발전할 수 있습니다. 더 높은 단계로 진급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수행의 세 가지 원칙, ▶첫째, 하고 싶은 것을 한다. ▶둘째, 하고 싶을 때 한다. ▶셋째, 하고 싶은 만큼 한다. 이 원칙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 우리는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하고 싶을 때 하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께 때를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고 싶은 만큼 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가 받은 달란트의 분량을 알아야 합니다.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늘 기쁨을 간직하고, 하고 싶을 때 공부나 일을 해서 가장 큰 효과를 나타내고, 하고 싶은 만큼 하면서도 적재적소에 꼭 필요한 일을 해내는 제가 되고, 또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빕니다.
921 마음 갈증 해결하기
920 의인의 수고
919 “저를 보내어 주십시오!”
918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열심
917 촛불 네 개
916 주님께서 쓰시는 사람 - (3)열정의 사람
915 주님께서 쓰시는 사람 - (2)기도의 사람
914 내가 맡을 일은?
913 개혁, 누가 할 것인가?
912 "저를 보내어 주십시오!"
911 주님께서 쓰시는 사람 - (1)진지한 사람
910 "저를 보내어 주십시오!"
909 “나를 보내소서!”
908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사람
907 무난하게 먹고 살기
906 "오래오래 누려라!"
905 백 살 젊은이
904 "길이길이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903 “주님께서 쉬시지 못하게!”
902 “늘 상기시켜 드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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