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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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지기 2008-12-14 13:4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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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이사야서 40:27-31 
설교일 2008-12-14 
설교장소 구미안디옥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대림절 
■ 성서 본문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불평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불만을 토로하느냐?
어찌하여 “주님께서는 나의 사정을 모르시고,
하나님께서는 나의 정당한 권리를 지켜 주시지 않는다” 하느냐?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너는 듣지 못하였느냐?
주님은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다.
땅 끝까지 창조하신 분이시다.
그는 피곤을 느끼지 않으시며, 지칠 줄을 모르시며,
그 지혜가 무궁하신 분이시다.

피곤한 사람에게 힘을 주시며,
기운을 잃은 사람에게 기력을 주시는 분이시다.
비록 젊은이들이 피곤하여 지치고, 장정들이 맥없이 비틀거려도,
오직 주님을 소망으로 삼는 사람은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를 치며 솟아오르듯 올라갈 것이요,
뛰어도 지치지 않으며, 걸어도 피곤하지 않을 것이다.

<이사야서 47:27-31>


■ 들어가는 말씀

오늘은 교회력으로 보면 대림절 셋째 주일입니다. 그리고 세계 교회협의회가 정한 인권주일입니다. 또한 대한성서공회가 정한 성서주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세 가지 주제를 연결시켜서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다 다른 주제인 것 같지만, 이 세 가지가 사실은 하나의 주제입니다. 성서가 말하는 것이 인권이고, 인권이 완벽하게 존중되는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완전히 이루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오시는 것을 기다리는 절기가 대림절이지요.

■ 성서

먼저 성서, 곧 성경에 대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성경에 대해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많지만, 그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어떤 율법학자가 예수님께 와서 여쭈었습니다. “모든 계명 가운데서 가장 으뜸되는 것은 어느 것입니까?”(마가복음서 12:28). 이때 예수님께서 대답하신 내용이 성경의 핵심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우리 하나님이신 주님은 오직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여, 너의 하나님이신 주님을 사랑하여라.’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여라.’ 이 계명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마가복음서 12:19-31).

그런데 바울은 이 계명을 더 축약시켰습니다. 지난주에 우리가 함께 생각했던 말씀이지요? 로마서 13:9 말씀입니다. “간음하지 말아라. 살인하지 말아라. 도둑질하지 말아라. 탐내지 말아라" 하는 계명과, 그 밖에 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모든 계명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하는 말씀에 요약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갈라디아서 5:14에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율법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하신 한 마디 말씀 속에 다 들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지요. 원래 우리는 그럴 자격이 없지만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도록 허락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딸입니다. 가정에서 자식이 지켜야 할 도리 가운데 가장 큰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당연히 ‘부모를 공경하고, 형제간에 우애 있게 지내는 것’이겠지요. 하나님의 자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자녀인 세상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것, 그 이상 뭐가 있겠습니까? 예수 믿는 것,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이것만 잘 하면 모두 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도 그랬습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따라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으뜸가는 법을 지키면, 잘하는 일입니다”(야고보서 2:8).

■ 인권

이제, 인권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인권’(人權)이란, 말 그대로 사람의 권리지요. 사람의 권리에 대해서 여러 가지 정의가 있을 수 있겠지만, 가장 기본적인 것은,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평등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지요. 여기서 나올 만한 질문이, ‘그러면 이웃이 누구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예수님께서 답을 주셨습니다. 우리와 함께 살고 있는 세상 모든 사람이 우리의 이웃입니다.

요즘은 대개 각 가정에서 아이들을 하나 아니면 둘 정도만 낳습니다만, 예전에는 집집마다 자녀들이 많았지요. 그래서 형제자매들 사이에 다툼도 많았습니다. 어머니나 아버지가 편애한다고 불평도 많았습니다. 그때마다 어른들이 하시는 말씀은 ‘열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있더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도 그렇습니다. 세상에 사람들이 수십억 명 살고 있지만, 그 한 사람, 한 사람은 모두 다 주님의 귀한 아들딸들입니다. 하나님은 그 가운데서 어느 누구도 차별하지 않으십니다.

신명기 10:17에 보면, 하나님은 “사람을 차별하여 판단하시거나, 뇌물을 받으시는 분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유대인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세상 만민의 하나님입니다. 이사야서 56:3입니다. “이방 사람이라도 주님께로 온 사람은 ‘주님께서 나를 당신의 백성과는 차별하신다’ 하고 말하지 못하게 하여라. 고자라도 ‘나는 마른 장작에 지나지 않는다’ 하고 말하지 못하게 하여라.” 또 로마서 10:12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유대 사람이나, 그리스 사람이나, 차별이 없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주님이 되어 주시고,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풍성한 은혜를 내려주십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사람들에게도, 제발 사람을 차별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시는 것입니다. 비록 종이라고 할지라도 그를 ‘사람’으로 대해야지, 일반 사람과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6:9입니다. “주인 된 이 여러분, 종들에게 이와 같이 대하고, 위협을 그만두십시오. 그들의 주님이시요 여러분의 주님이신 분께서 하늘에 계신다는 것과, 주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여러분은 아십시오.” 이게 요즘이 아니라 2천 년 전의 명령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예전부터 얼마나 사람을 귀하게 여기시는 분입니까?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차별 당하지 않고 살고 있습니까? 적어도 법적으로는 그럴 겁니다. 그러나 요즘 경제 문제가 주관심사니까, 경제 문제를 생각해 봅시다. 어떤 사람들은 한 달 동안 뼈 빠지게 일해도 백만 원을 못 받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한 달에 수천만 원, 아니, 수억 원씩 거두어들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람의 능력에 따라서 물론 차이가 날 수는 있겠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이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하루에 한 ‘데나리온’씩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마태복음서 20:1-16).

■ 기다림

특히나, 요즘은 국가적인 경제위기를 맞이하여 돈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루하루를 살얼음판 걷듯이 불안해하며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연말이 되면, 그 동안 나누지 못했던 정을 나누느라고 분주해야 하는데,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그럴 여유가 없는 것 같습니다. 열심히 일하면서도 불안하게 살아야 하는 것, 그것은 인권유린입니다. 경제적인 양극화가 심각하다는 것은 경제의 문제가 아니라 인권의 문제입니다.

여러분은 지난 일 년을 어떻게 보냈습니까? 용혜원 시인이 ‘시간’에 대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 시간이란 무엇인가? 시간이란 기다리는 이에게는 너무 느린 것, 두려워하는 이에게는 너무 빠른 것, 슬퍼하는 이에게는 너무 지루한 것, 즐거워하는 이에게는 너무 짧은 것. ― 용혜원, 《아침을 여는 한 줄의 글이 성공을 만든다》(책만드는집, 2004), 125쪽. 좋은 날이 오기를 기다리는 사람이나 월급날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는 시간이 너무 느립니다. 이자를 갚아야 하는 사람들이나, 직원들에게 월급을 줘야 하는 영세․중소 기업인들에게는 시간이 너무 빠릅니다. 그리고 고통의 세월을 지내는 사람들에게 시간은 너무 지루합니다. 즐거운 일이 있을 때 시간은 너무 짧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흐릅니다. 주님 오실 날이 가까워오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오시면 세상은 바뀝니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행복하게 해주실 것입니다. 그때가 언제이겠습니까? 주님만이 아시겠지요. 그러나 반드시 오고야 맙니다. 조급해하지 마십시오. 마음이 조급한 사람들을 향하여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불평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불만을 토로하느냐? 어찌하여 "주님께서는 나의 사정을 모르시고, 하나님께서는 나의 정당한 권리를 지켜 주시지 않는다" 하느냐?”(이사야서 40:27).

불평하지 말고 주님 오시기를 기다립시다. 조급해 하지 말고 기다립시다. 우리 주님은 피곤한 사람에게 힘을 주시며, 기운을 잃은 사람에게 기력을 주시는 분이십니다(이사야서 40:29). 주님께서 오시기까지, 비록 세상 사람들이 다 피곤하여 지치고, 맥없이 비틀거리더라도, 오직 주님을 소망으로 삼고 기다리는 사람은 새 힘을 얻습니다(이사야서 40:31).

■ 맺는 말씀

이제 이야기를 한 가지 하고 말씀을 맺겠습니다. ― 어떤 여행자가 율법의 문 앞에 도착했습니다. 파수꾼 한 명이 이 문을 지키고 있습니다. 여행자는 파수꾼에게, 그 문을 지나가게 해 달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파수꾼은 말이 없었습니다. 여행자는 문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기다렸습니다.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남자는 끊임없이 기다렸습니다. 파수꾼은 이제 문 앞에 진을 친 끈질긴 방문자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몇 년이 흐르고, 또 다시 몇 년이 흘렀습니다. 남자는 여전히 문 앞에 있습니다. 이제 매우 늙은 모습입니다. 그는 안개 너머로 보이듯이, 문 뒤에서 희미한 빛이 갑자기 보인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몸에서 점점 힘이 빠집니다. 죽음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그는 숨을 거두기 전에 겨우 기력을 찾아 파수꾼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말했습니다. “왜 그대는 나를 통과시키지 않았는가?”

파수꾼은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그는 몸을 숙이고 죽어 가는 사람의 입에 자신의 귀를 들이댔습니다. 죽어가는 사람은 다시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왜 그대는 나를 통과시키지 않았는가?” 그러자 파수꾼이 대답했습니다. “이 문은 열려 있었습니다. 문은 항상 열려 있었지요. 그 문은 당신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당신은 죽게 됩니다. 너무 늦었습니다.” 이 말을 하고 파수꾼은 문을 닫고 가 버렸습니다. 잠시 후 여행자는 죽었습니다. ― 알랭 르 니네주(김웅권 역), 《프랑스 고교생들의 우화철학》(이루파, 2005), 28-29쪽.


우리 주님께서는 분명히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마냥 손 놓고 기다리고만 있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이미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문을 두드리라” 하셨지 않습니까? 두드리면 열릴 것이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런데도 문을 두드리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는 것은 ‘허송세월’입니다.

쉬운 예를 들어보면 이렇습니다. 부모가 외출한 집안에 형제자매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습니다. 함께 잘 있다가도 토닥거리며 싸우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어떤 힘센 놈이 약한 형제를 괴롭힙니다. 먹을 것도 다 빼앗아갑니다. 힘없는 형제는 견디기가 힘듭니다. 이런 상황이라도, 엄마가 돌아오시면 모든 일이 다 해결되겠지요. 그러나 기다려도, 기다려도 엄마는 아직 오시지 않습니다.

지금 세계의 상황이 그렇습니다. 가진 사람은 더 가져서 더 부자가 되고, 없는 사람은 아무리 일을 해도 먹고 살기가 바쁩니다. 아니 자꾸 수렁으로 빠져 들어갑니다. 구조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주님 오시면 해결이 되겠지요. 그러나 주님께서 오시기 전이라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해야 합니다. 다급하면 엄마에게 휴대전화라도 걸어야 하듯이, 주님 앞에 눈물로 호소해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는, 이다음에 오셔서 해결할 것은 그때 해결해주실 것이고, 지금 해결해주실 수 있는 일은 지금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현재 상황을 주님께 보고(報告)도 하고, 믿음을 가지고 기다리기도 해야 합니다.
921 마음 갈증 해결하기
920 의인의 수고
919 “저를 보내어 주십시오!”
918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열심
917 촛불 네 개
916 주님께서 쓰시는 사람 - (3)열정의 사람
915 주님께서 쓰시는 사람 - (2)기도의 사람
914 내가 맡을 일은?
913 개혁, 누가 할 것인가?
912 "저를 보내어 주십시오!"
911 주님께서 쓰시는 사람 - (1)진지한 사람
910 "저를 보내어 주십시오!"
909 “나를 보내소서!”
908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사람
907 무난하게 먹고 살기
906 "오래오래 누려라!"
905 백 살 젊은이
904 "길이길이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903 “주님께서 쉬시지 못하게!”
902 “늘 상기시켜 드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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