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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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고린도전서 3:16-17 
설교일 2013-11-10 
설교장소 한울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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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서 본문

여러분은 하나님의 성전이며, 하나님의 성령이 여러분 안에 거하신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파괴하면, 하나님께서도 그 사람을 멸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고린도전서 3:16-17>


■ 들어가는 이야기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지난 한 주 동안 평안하셨습니까? 전능하신 우리 하나님께서, 노동으로 수고하신 분들에게는 안식을, 억울한 일 때문에 마음에 고통을 받으신 분들에게는 위로를, 걱정으로 밤을 지새우신 분들에게는 희망을, 죄책감에 짓눌려 가슴을 펴지 못한 분들이 있다면 그분들에게는 용서를, 그리고 평안한 나날을 이어가고 있는 분들에게는 더 큰 기쁨을 각기 내려주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오늘은 우리 몸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 자각

정신병원에 어떤 남자가 수용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자기 자신을 옥수수라고 생각하며, 철석같이 그렇게 믿었습니다. 오랜 치료와 상담을 통해서 이 남자는 자신이 옥수수가 아니라는 것을 겨우 납득하게 되었습니다. 의사가 판단하기에 이 정도면 괜찮다 싶어서 환자를 퇴원시켰습니다. 그런데 며칠 되지도 않아서 남자는 혼비백산 병원으로 되돌아왔습니다. 의사가 물었습니다. “아니, 무슨 일입니까?” “선생님, 닭들이 나를 자꾸 쫓아다닙니다. 무서워 죽겠어요.” 환자는 부르르 몸을 떨었습니다. 아직도 닭이 자기를 쫓아오기라도 하는 듯이 두려워하면서 연신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의사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안심시켰습니다. “선생님은 옥수수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거, 이제 그거 아시잖아요?” “글쎄, 저야 알지요. 하지만 닭들은 그걸 모르잖아요?” ― 김영하, 〈옥수수와 나〉 도입부. 김영하외, ≪제36회 이상문학상 작품집≫((주)문학사상, 2012), 12쪽. 동유럽 지역에서 이런 농담을 이따금씩 한다고 들었습니다. 폭소를 터뜨리게 하는 농담은 아니지만 아주 중요한 베시지를 주는 이야기입니다. 자신의 존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엉뚱한 생각을 하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 하나님의 성전

고린도전서에 보니까 바울은 우리 몸을 일컬어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했습니다. ‘성전’(聖殿)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집’입니다. 집은 또 뭐 하는 곳입니까? 들어가서 사는 곳이지요. 성전 곧 하나님의 집은 하나님께서 들어가서 사시는 집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에서 말하는 것은, 우리 몸은 그냥 썩어 없어질 몸뚱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들어와서 사시는 거룩한 집이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멋집니까? 혹시 여러분은 여러분을 조금 전에 말씀드린 그 환자처럼 옥수수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꼭 옥수수는 아니더라도 그냥 그저 그렇고 그런 존재하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온전하지 않은 정신 상태를 가지고 있다는 뜻일 것입니다. 치료가 필요합니다. 여기서 이런 반문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예, 좋아요. 나는 내 몸이 성전 곧 하나님의 집인 줄 안다고요.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봐줍니까?” 아까 그 환자하고 똑 같은 말이라는 사실을 금방 아시겠지요. 누가 뭐라고 하든지 여러분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하나님의 집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마음에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 치료를 받습니다.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이 그 억울함을 하소연합니다. 죄를 지은 사람들이 용서를 받습니다. 세상 고통에 찌든 사람들이 쉼을 얻습니다. 기쁜 일이 있을 때 찾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이런 일을 어디서 한다고요? 번쩍번쩍한 대리석으로 잘 지은 호화 예배당입니까? 음향시설이 빵빵하고 실내디자인이 잘 되어 있는 화려한 예배당입니까? 냉난방시설과 편의시설이 잘 되어 있는 쾌적한 예배당입니까? 아닙니다. 성경은, 그 일은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게 바로 ‘우리 몸은 성전’이라고 하는 뜻입니다.

■ 훈련

자, 그렇다면 여러분이 세상에 나가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답이 나왔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배고픈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목마른 사람에게 물을 주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감옥에 갇힌 사람들을 찾아가서 위로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가족으로부터 지인으로부터 버림받아 기댈 데 없는 사람들의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일이 사실 쉽지는 않지요. 쉽지 않다고 해서 관심 끊고 산다면 그건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도리가 아닙니다. 지금 당장 못해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원칙을 팽개쳐버려서는 안 됩니다. 얼마 전에 올해 프로야구가 끝났습니다만, 한 해 타율을 3할 정도를 기록하는 야구 선수들은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들이 그렇게 잘하는 원인은 무엇이겠습니까? ‘아, 내가 그동안 너무 못했어. 이제부터 잘해야지!’ 하고 마음먹으면 금방 잘하게 됩니까? 아니지요. 오랜 기간 훈련이 쌓일 때 좋은 성과가 나오는 겁니다. 악기 연주나 운동이나, 잘하는 사람들 말을 들어보면 훈련밖에 답이 없다고 합니다. 체력이 고갈되고 환경이 열악한 상황에서도 제 실력을 발휘하려면 평소에 훈련을 꾸준히 해서, 머리가 아니라 몸의 세포가 기억할 수 있도록 해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훈련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되어 사는 것은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아닙니다. 주일예배 한 번 빠진다고 해서 교통사고를 당해서 다리가 부러지는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루 기도를 쉰다고 해서 당장 무슨 사고가 터지는 것도 아닙니다. 하루 연습을 쉬면 내가 알고, 이틀을 쉬면 지도 선생님이 알고, 사흘을 쉬면 관객이 안다고 했습니다. 신앙의 훈련을 끊임없이 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으로서 제구실을 할 수 있습니다.

■ 맺는 이야기

이순신 장군이 팔금도라는 곳에서 전쟁을 할 때의 일이었습니다. 긴급히 배를 띄워야 하는데, 파도가 심하고 안개까지 끼어서 꼼짝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억수라는 늙은 뱃사람을 데리고 왔습니다. 이 사람은 바다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었습니다. 이순신이 물었습니다. “지금 다급하다. 네가 이 안개 속으로 물길을 찾을 수 있겠느냐?” “해가 오르면 훨씬 걷힐 것이니 그 동안만 더듬으면 해남까지는 갈 수 있을 것입니다.” “뭍이 보이지 않는다. 어찌 물길을 찾을 수 있느냐?” “몸이 아는 일입니다. 몸이 아는 시간과 배의 속도를 가늠해서 위치를 잡아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 김훈, ≪칼의 노래 2≫((주)생각의 나무, 2001), 108-109쪽. 세상이 참 험합니다. 곳곳에 위험요소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위험이 닥쳤을 때 연구하고 대책을 세우는 것은 이미 늦습니다. 몸이 저절로 움직이게 해야 합니다. 그럴 정도로 훈련이 되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곳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 노릇을 해야 합니다. 비록 쉽지는 않지만, 훈련을 통해서 하나님의 성전으로서 사명을 다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861 희소식을 전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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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8 다르게 크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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