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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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사도행전 26:29 
설교일 2021-05-02 
설교장소 구미 한울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주일 

성서 본문

 

바울이 대답하였다. “짧거나 길거나 간에, 나는 임금님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고 있는 모든 사람이, 이렇게 결박을 당한 것 외에는, 꼭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빕니다.”

 

사도행전 26:29

 

들어가는 이야기

 

어느새 5월이 되었습니다. 4월을 꽃의 계절이라고 한다면 5월은 푸르름의 계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푸름은 어린이와 청소년을 상징하는 색깔이기도 하지요. 오늘은 우리 총회에서 정한 어린이ㆍ청소년 주일입니다. 비록 한 자리에 모이지는 못했지만, 온라인으로 함께 예배를 드리는 모든 어린이, 청소년, 그리고 그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여러분 모두에게, 하나님께서 특별한 은총을 철철 넘치도록 부어주시기를 축복합니다. 저는 오늘 이야기의 제목을 부모에 대한 최고의 찬사라고 붙였습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칭찬 듣기를 좋아하지요. 사람들이 여러분에 대해서 축복의 말을 해준다면, 무슨 말로 축복해주면 좋겠습니까? 당신은 훌륭한 사람이에요, 이렇게 말해주면 기분이 좋겠습니까? 아니면 당신은 멋진 인품을 가졌어요, 이건 어떻습니까? 이런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을 것 같기는 한데, 어딘가 좀 부족합니다. 그러면 뭐라고 칭찬해주면 최선이겠습니까? 이 시간에 그 이야기를 잠깐 하겠습니다.

 

부모의 거울

 

아이는 어른의 거울이라고 하지요. 누가 말했는지는 모르지만, 명언 중의 명언입니다. 우리가 어느 집안의 아이들을 보잖아요? 그러면 그 집 어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굳이 만나서 대화를 해보지 않아도 눈에 훤하게 보입니다. 교회도 그래요. 교회에 속한 어린이들이나 청소년들을 보면 그 교회가 어떤 교회인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굳이 담임목사를 만나보지 않더라도 눈에 훤하게 보입니다. 학교도 그렇습니다. 학생들 몇 명만 만나보면 그 학교가 어떤 학교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한 나라의 미래를 가늠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나라의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을 보면 그 나라가 앞으로 융성할지, 내리막길을 걸을지 보입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사는 모습을 그대로 반사해서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나 나라에서나, 그 어떤 사람보다도 어린이와 청소년을 잘 보살피고 대접해야 합니다. 아이들이 비방이나 비난을 받으면서 자라잖아요? 그러면 그렇게 자란 아이는 비난하는 것부터 먼저 배웁니다. 미움받으면서 자란 아이는 싸우는 것부터 배웁니다. 놀림을 받으면서 자란 아이는 부끄러움 타는 것을 배우고요. 질투하는 분위기에서 자란 이이는 세상 모든 사람을 질투의 화신으로 봅니다.

 

그렇지만 관대한 분위기에서 자란 아이는 자기도 모르게 인내하는 방법을 배웁니다. 늘 격려를 받으면서 자란 아이는 신뢰를 배웁니다. 칭찬받으면서 자란 아이는 감사하는 마음을 배웁니다. 공정한 대우를 받으면서 자란 아이는 정의로움을 배웁니다. 안정감 속에서 자란 아이는 신념을 배웁니다. 이인휘, 날개 달린 물고기(삶이보이는창, 2006), 60쪽 참고. 우리 모두의 아이들이 이런 환경에서 자라나기를 바랍니다. 관대한 분위기에서, 늘 격려받으면서, 칭찬받으면서, 공정한 대우를 받으면서, 안정감 속에서 자라면 좋겠습니다. 조금 전에 저는 부모에 대한 최고의 찬사는 무엇일까, 그랬는데, 그 답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물론 이건 제 생각입니다. 여러분은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참 고마운 사람이 있어요. 그 사람을 칭찬해주고 싶습니다. 그럴 때 그 사람에게 무엇이라고 축복의 말을 해주면 좋겠습니까? 예를 들어서, 나는 당신이 슬기로운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말하려고 생각해 보니까 그 사람은 이미 충분히 슬기로운 사람입니다. 그래서 다른 말을 생각해 봅니다. 나는 당신이 사람들에게 환영받는 선한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이렇게 말하려고 하니까 이미 그 사람은 충분히 선한 사람이에요. 이런 때 도대체 무엇이라고 말하면 좋겠습니까? 탈무드에서는 이렇게 축원하하고 가르칩니다. 당신의 아이가 당신과 같이 훌륭한 사람으로 자라기를!” 마빈 토케어(은제로 역), 탈무드(컨콜디아사, 1980), 88. 이렇게 말하라는 겁니다. 세상에 이보다 더 귀한 찬사는 없을 거예요. 거꾸로 생각해보세요. 누군가하고 싸우고 있습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습니다. 그때 상대방에게 이렇게 저주하면 어떨까, 잠시 생각해보았습니다. 점잖게 이렇게 한 마디 던지는 거예요. “당신 자식들은 제발 당신을 닮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소름이 돋을 겁니다. 그렇다고 실제로 이런 말 써먹지는 마시고요.

 

바울 이야기

 

여러분이 아시는 것처럼, 바울은 결혼하지 않고 한평생을 살았지요. 당연히 자식이 없었습니다. 만일 바울이 결혼을 했더라면 얼마나 훌륭한 아이가 태어났을까, 참 궁금합니다. 바울이라는 인물, 어떻습니까? 학벌 좋지요, 가문 좋지요, 머리 좋지요, 수완 좋지요, 온갖 난관도 잘 헤쳐나가지요, 모자람이 없는 사람입니다. 바울에게 아들이나 딸이 있었다면 정말 훌륭한 사람으로 자랐을 겁니다. 그렇지만 이미 지난 일이니까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요. 바울은 자식 대신에 사람들에게 귀한 교훈을 많이 주었습니다. 한번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여러분은] 꼭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빕니다!” 이게 언제 한 말인가 하면, 바울이 누명을 쓰고 체포되어서 총독과 왕 앞에서 재판을 받으면서 한 말입니다. 바울은 그리스 사람들 곧 이방인들을 성전으로 데리고 들어와서 성전을 더럽혔다, 그런 죄를 뒤집어쓰고 체포됐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사실 전혀 문제 될 일이 아니었습니다. 성전이란 데는 만인이 기도하는 집인데, 이방 사람들이 왜 못 들어갑니까? 예수님께서 그러셨잖아요. 너희는 땅끝까지 이르러 나의 증인이 되라고 했습니다. 이게 무슨 소리입니까? 이방 사람도 구원해야 한다는 말이잖아요.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이방 사람들을 성전으로 데리고 와야 하는 때가 된 거예요.

 

, 어쨌든, 유대인들이 아직 거기까지 마음이 열리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바울이 이방인들을 성전으로 데리고 들어왔다는 것은, 일단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모함을 받은 것이지요. 유대인들은 사실관계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그냥 바울이 미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더둘로라고 하는 대제사장은 총독 앞에서 바울을 이렇게 고발합니다. 이 자는 염병 같은 자요, 온 세계에 있는 모든 유대 사람에게 소란을 일으키는 자요, 나사렛 도당의 우두머리입니다. 그가 성전까지도 더럽히려고 하므로, 우리는 그를 붙잡았습니다”(사도행전 24:5-6). 이 말을 들어보면 여기에는 팩트는 없고 욕만 있습니다. 바울이 무슨 죄를 저질렀는지 적시하지 못했습니다. 현행법이 문제가 있었지만 바울은 그것조차도 어기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바울을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의 마음은 미움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래서 염병 같은 자라고 서슴없이 욕을 해대지 않습니까? 이런 상황에서 바울이 이 유명한 말을 한 것입니다. 짧거나 길거나 간에, 나는 임금님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고 있는 모든 사람이, 이렇게 결박을 당한 것 외에는, 꼭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빕니다”(사도행전 26:29). 당신들은 나를 죄인이라고 하지만, 나는, 여러분도 모두 나처럼 살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런 말이지요. 죄지은 사람이, 여러분, 나 닮으세요, 그럴 수 있나요? 바울은 그만큼 자기 삶에 자신이 있었다는 겁니다.

 

꼭 나와 같이 되기를!”

 

그러면서 바울은 단서를 하나 달았습니다. “이렇게 결박을 당한 것 외에는이렇게 결박을 당한 것 외에는 꼭 나와 같이 되기를 바랍니다, 라고 말한 거예요. 저 같으면 그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욕을 한 바가지 해주거나 저주를 퍼부었을 것 같은데, 바울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역시 큰 인물이지요? ‘비록 내가 이렇게 결박되어 있지만, 여러분은 그렇게 되지 마십시오. 결박당하는 것은 저 혼자로 족합니다! 고생은 내가 할 테니 여러분은 주님 안에서 행복을 누리십시오!’ 그런 뜻인 것 같습니다. 사람의 심리가 참 고약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고생을 하면 남도 고생을 했으면 좋겠고, 내가 억울함을 당했으면 남들도 그만큼 당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내가 이렇게 고생하는 것만 빼고 다 나를 닮으십시오, 그랬습니다. 큰 인물 아닙니까?

 

어쨌든 바울은 사람들에게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이렇게 결박을 당한 것 외에는, 꼭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빕니다!” 어느 사람을 막론하고 사람이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녀들에게 얘들아, 너희는 나를 본받아라!’ 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인생을 통째로 본받으라고 하기가 곤란하다면 그 가운데서 한두 가지는 빼도 됩니다. 바울도 그랬잖아요. ‘얘야, 이 한 가지를 빼고는, 너는 꼭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신앙을 두고, 자녀들에게 그 신앙을 닮으라고 하실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의 정직함을 두고 그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의 일이나 업적을 두고 그런 자신감을 내보일 수 있겠습니까? 저 역시 그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부모들은 그것을 삶의 목표로 삼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야 됩니다. ‘내 아이들이 내 삶을 본받게 하자!’ 그 목표를 위해서 끊임없이 기도하고 애를 써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여러분을 칭찬할 필요가 있을 때 다른 말 할 필요없이, 당신의 자녀들이 꼭 당신 같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칭찬할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집니까?

 

맺는 이야기

 

 

부모들의 마음이 참 묘합니다. 때로는 이중적이기도 합니다. ‘아들딸들이 나를 닮아 주었으면하고 생각하면서도, ‘제발 나를 닮지 않았으면하는 생각을 동시에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새신랑이 장가를 가서 아이를 낳았을 때, 사람들이 그 아이를 두고 아빠 닮았다고 해주면 참 좋아합니다. 그런데 아이가 커가면서 하는 짓이, 꼭 자기 어렸을 때를 닮아 가요. 그러면 속이 상합니다. ‘저게 날 닮으면 안 되는데걱정입니다. 이처럼, 자식이 부모를 닮으면 부모는 좋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가닥을 잡아야 합니다. 바울이 그 힌트를 주었습니다. “이렇게 결박을 당한 것 외에는, 꼭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빕니다!” ‘이 한 가지를 빼고는, 너희는 꼭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빈다!’ 그렇게 말하면 됩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꼭 여러분과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도 이렇게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자녀들에게도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1081 "깨어 있어라!"
1080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1079 요지부동 욥
1078 바울의 폭탄선언
1077 바울,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을 산산조각 내다!
1076 “네 죄를 묻지 않겠다!”
1075 작은 씨앗, 큰 나무
1074 안식일 잘 지키기
1073 생명을 선택하십시오!
1072 능력을 입을 때까지
1071 예측 가능한 세상
1070 야곱, 부자 되다!
1069 청출어람(靑出於藍)
1068 야생, 방목, 사육
1067 좁은 문으로 들어간 솔로몬
1066 부활 드라마의 주역들
1065 예수를 찾는 이유
1064 “내가 세상을 이겼다!”
1063 소금과 빛
1062 슬픈 기다림, 복된 기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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