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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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지기 2012-11-25 18: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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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야고보서 3:1-5 
설교일 2012-11-25 
설교장소 한울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주일 

■ 성서 본문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선생이 되려고 하는 사람이 많아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이 아는 대로, 가르치는 사람인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는 다 실수를 많이 저지릅니다. 누구든지,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은 온 몸을 다스릴 수 있는 온전한 사람입니다. 말을 부리려면, 그 입에 재갈을 물립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말의 온 몸을 끌고 다닙니다. 보십시오. 배도 그렇습니다. 배가 아무리 커도, 또 거센 바람에 밀려도, 매우 작은 키로 조종하여, 사공이 가고자 하는 곳으로 끌고 갑니다. 이와 같이, 혀도 몸의 작은 지체이지만, 엄청난 일을 할 수 있다고 자랑을 합니다.

보십시오, 아주 작은 불이 굉장히 큰 숲을 태웁니다.

<야고보서 3:1-5>


■ 들어가는 이야기

어느덧 11월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이번 주로써 창조절 절기가 끝나고 다음 주일부터는 대림절이 시작됩니다. 사실 교회력에서는 대림절 첫째 주일이 한 해의 첫 주일입니다. 올해를 한 달여 남겨두고 있는 이때에, 여러분에게 내리시는 주님의 은혜가, 지난 11개월 동안 내렸던 것보다 앞으로 남은 기간 동안, 훨씬 크게 저와 여러분에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빕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을 〈엄청난 일을 해보자〉라고 붙였는데, 아직 말씀을 드리기 전입니다만, 앞으로 남은 한 달 동안 이런 엄청난 일을 실제로 해보고 그 결과를 경험해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엄청난 일’이 무엇인지 지금부터 그것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첫째는 삼라만상의 자연을 내 마음대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둘째는 사람을 내 마음대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셋째는 하나님을 내 마음대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좀 발칙한 발상이지요? 하나님 앞에서 무례한 일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것이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도구가 하나 필요한데 그게 야고보서 3:5에 나와 있습니다. 거기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혀는 몸의 작은 지체이지만 엄청난 일을 할 수 있다.’

■ 자연을 변화시켜보자.

먼저 자연과의 소통에 대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옛날이야기 하나 하겠습니다. 한 소녀가 우물에 빠져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사람 살려주세요!” 마침 지나가던 청년이 그 소리를 듣고 소녀를 구출해주었습니다. 그 일을 계기로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지게 되었고, 그 사랑이 깊어져서 두 사람은 장래를 약속했습니다. 결혼하기로 한 것이지요. 우리가 약속을 할 때 흔히 증인을 세우지 않습니까? 그런데 마땅히 세울 증인이 없어서 마침 근처에 있던 족제비와 우물을 증인으로 세웠습니다. 처녀는 그 약속을 지키며 오래 오래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청년은 소식이 없었습니다. 멀리 다른 곳으로 가서 살다가 결혼을 했기 때문입니다. 청년은 예전의 약속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아이도 둘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첫째 아이가 풀밭에서 놀다가 죽었습니다. 족제비에게 물려서 죽은 것입니다. 얼마 후 둘재 아이도 죽었습니다. 우물곁에서 놀다가 우물에 빠져 죽은 것입니다. 그제야 청년은 예전의 약속을 떠올리고 가슴을 치며 울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청년이 이혼을 하고 예전의 소녀를 찾아갔는지, 괴로워하다가 죽었는지, 그 결말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가슴 아픈 이야기입니다.

요즘 아이들이 들으면 코웃음을 칠지도 모릅니다. 동화니까 그렇지, 약속 안 지켰다고 족제비와 우물이 어떻게 그걸 알고 죄 없는 아이들을 죽일 수 있는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물론 그런 생각도 무리는 아닙니다. 동화니까 과장이 있을 수는 있겠지요. 그러나 자연이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것은 사실입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어서 그렇지 자연세계의 만물도 사람의 말을 인식하고 느낍니다. 당장에 강아지만 보더라도 그렇지 않습니까? 심지어는 무생물들도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다는 보고가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식물도 감정이 있고 주인을 알아본다고 합니다. 좋은 음악을 들려주거나 좋은 말을 해주면서 키운 식물과 그냥 키운 식물은 확실히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도 그런 이야기가 나오지 않습니까? 사나운 풍랑이 일 때 예수님이 성난 물결을 꾸짖으시니 바다가 잔잔해졌다고 했지요. 우리야 내공이 부족해서 예수님처럼은 못하지만, 어쨌든 이 말씀은 자연도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교훈입니다. 사람이 지각을 하지 못해서 그렇지, 세상 모든 물질이 사람의 말을 알아 듣는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결론은 무엇이겠습니까? 자연과 대화를 하면 자연도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 사람을 움직이게 해보자.

둘째, 사람 움직이는 이야기입니다. 예전에 학교에 다니셨던 분이나 군에 다녀오신 분들은 잘 아시겠습니다만, 군인들이나 학생들을 연병장이나 운동장에 세워놓고 앞에서 지휘관이나 선생님이 구령을 내리지 않습니까? “열중 쉬어!” “차렷!” “뒤로 돌아!” “앞으로 가!”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훈련이 잘 된 집단이라면 척척, 척척 잘 움직입니다. 이때 사람들을 움직이는 것이 무엇입니까? ‘말’이지요. 그건 일상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얘, 순희야!” 하면 순희는 어떻게 합니까? 뒤를 돌아보겠지요. “너, 여기 좀 와 볼래?” 하면, 특별한 일이 없으면 오게 되어 있습니다. 이게 말의 위력입니다. 우리 주변에 보면 말주변 좋은 사람들이 있지요.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전혀 부러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말주변 좋은 것과 말발 서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말을 아무리 잘해도 도무지 씨가 안 먹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말이 좀 어눌해도 한 번 말을 하면 그 무게가 엄청나게 느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쨌든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말인데, 그렇다고 아무 말이나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오늘 예배시간에도, “다 같이 일어나셔서 찬송을 부르겠습니다!” 했을 때 여러분은 다 일어나서 찬송을 부르지 않았습니까? “다 함께 기도합시다!” 하면 모두 눈을 감고 머리를 숙입니다. 그런데 제가 시내 2번 도로에 나가서 “이제 우리 모두 멈추어서 함께 찬송합시다!” 하면 사람들이 그렇게 하겠습니까? 가장 먼저 튀어나올 말이 “별 미친 놈 다 봤네!”일 겁니다. 왜 그렇습니까? 저와 여러분은 이미 신뢰가 쌓여 있기 때문에 우리는 말이 잘 통합니다. 기도하자고 해놓고 찬송한 적 없지요. 찬송하자고 해놓고 제가 자리를 뜬 적이 없습니다. 아, 저 사람이 기도하자고 하면 틀림없이 우리 교회 모든 사람들이 기도했었지, 저 사람이 교독문을 먼저 낭독하면 당연히 회중은 그 다음 소절을 함께 읽었었지…, 이런 신뢰관계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그게 가능하지만, 2번 도로에서는 그게 안 되어 있기 때문에 ‘미친 놈’ 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그러면 답은 나왔지요? ‘사람을 움직이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 ‘신뢰를 쌓아야 한다!’ 그게 정답입니다. 말에 신뢰성을 확보하고 있으면 말하는 대로 다른 사람들이 움직입니다.

■ 하나님을 감동시켜 보자.

셋째, 하나님을 움직이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그것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무엇입니까? 각기 다를 수 있겠지만, 저는 ‘창조주’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어떻게 하셨습니까? 먼저 우주를 만드는 공장을 건설한 다음 기계를 설치하고 재료를 넣고 스위치를 눌러서 만드셨을까요? 아니면 하나하나 설계를 해서 그 도면대로 일일이 제작을 하셨을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빛이 생겨라” 하시니, 빛이 생겼습니다. “물 한가운데 창공이 생겨, 물과 물 사이가 갈라져라” 하시니 창공이 생겼습니다. “땅은 푸른 움을 돋아나게 하여라. 씨를 맺는 식물과 씨 있는 열매를 맺는 나무가 그 종류대로 땅 위에서 돋아나게 하여라” 하시니 그대로 되었습니다. 모두 이런 식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분입니다. 모든 것을 ‘말씀’으로 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이 이런 분이라면 하나님이 움직이시게 하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우리도 하나님께 ‘말’로 하면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말, 그것이 기도입니다. 그런데 기도할 때도 품격이 있어야 합니다. 전에도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만, 점심때가 지나서 아이가 집에 들어왔을 때, 엄마는 그 아이가 배고플 것이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지요. 그러면 엄마와 아이의 대화는 어떻습니까? 정상적인 가족관계라면 대부분은 엄마가 먼저 말을 꺼내지요. “배고프지? 얼른 밥 줄게.” 아이가 먼저 말을 꺼내더라도 아주 간단할 겁니다. “배고파요.” 이걸로 족합니다. 그런데 아이가 집에 들어와서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낳아주신 엄마, 내가 굉장히 배고픕니다. 밥 주실 수 있나요? 엄마는 내 엄마이고 나는 엄마의 아들(딸)이니 내게 밥을 주시는 것이 마땅하고 유익해요. 나는 엄마가 제게 밥을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어요. 분명히 밥을 주실 줄 믿습니다.” 이러면서 따라다닌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엄마는 “쟤, 뭐가 잘못된 거 아니야? 미쳤나?” 이렇게 생각할 겁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방사람들처럼 중언부언하지 마라, 아버지께서 이미 다 알고 계셔!’ 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기도하면서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이미 그것을 받은 줄로 믿어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마가복음서 11:24). 굳이 일일이 다 말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알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학교 입학할 때가 되면 가방이 필요하겠구나, 어디 방문하려면 차비가 필요하겠구나, 어디 아프면 병원에 가야겠구나, 등등 웬만한 건 다 아십니다. 그러니까 그런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고 하시는 겁니다. 이게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방법입니다.

■ 맺는 이야기

다시 야고보서의 말씀을 짚어봅니다. 말[馬]을 부리려면, 그 입에 재갈을 물립니다. 그리면 우리는 고삐를 잡고 말의 온 몸을 끌고 다닙니다. 배도 그렇습니다. 배가 아무리 커도, 또 거센 바람에 밀려도, 매우 작은 키로 조종하여, 선장이 가고자 하는 곳으로 끌고 갑니다. 자동차를 들어서 움직이려고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운전석에 앉아서 키를 꽂고 시동을 건 다음 운전만 잘하면 가고 싶은 대로 갑니다. 비행기를 밀어서 움직이려고 하는 사람은 미련한 사람이지요. 조종키를 조작하면 됩니다. 자연을 움직이는 것도 그렇고 사람을 움직이는 것도 그렇고 하나님을 움직이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으로 움직입니까? 야고보서는 그것을 ‘혀’라고 했습니다. 말로 움직인다는 것이지요. 작은 불이 숲을 태우듯이, 세 치 혀가 온 세상을 움직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진실한 말로, 신뢰성이 가득 담긴 말로 이와 같은 ‘엄청난 일’을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기원합니다.



1. 20130324 Guun.
2. 20130324 Naeil.
584 제자 판별법
583 기다리시는 하나님
582 으뜸가는 사람
581 "성숙한 사람이 되십시오!"
580 필요에 따라
579 평생을 좋은 것으로 흡족히 채워주시는 분
578 "불을 지르러 왔다!"
577 “무엇을 가지고 가야 합니까?”
576 낡은 정신, 새 정신
575 "그 때에 하늘 문이 열렸다!"
574 생명의 하나님, 우리를 정의와 평화의 일꾼으로 써 주소서!
573 이런 한 해가 되게 하소서!
572 칼 이야기
571 목자들의 감각
570 "주님의 위로가 나를 달래 줍니다!"
569 "굳세어라, 두려워하지 말아라!"
568 광야를 경험했는가?
567 "언제까지 그러실 겁니까?"
566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 엄청난 일을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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