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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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지기 2013-03-03 15:3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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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마태복음서 23:1-12 
설교일 2013-03-03 
설교장소 한울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주일 


[오디오파일 듣기/내려받기]

■ 성서 본문

그 때에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은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르지 말아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지기 힘든 무거운 짐을 묶어서 남의 어깨에 지우지만, 자기들은 그 짐을 나르는 데에 손가락 하나도 까딱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이 하는 모든 일은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하는 것이다. 그들은 경문 곽을 크게 만들어서 차고 다니고, 옷술을 길게 늘어뜨린다. 그리고 잔치에서는 윗자리에,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에 앉기를 좋아하며, 장터에서 인사 받기와, 사람들에게 랍비라고 불리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는 호칭을 듣지 말아라. 너희의 선생은 한 분뿐이요, 너희는 모두 형제자매들이다. 또 너희는 땅에서 아무도 너희의 아버지라고 부르지 말아라. 너희의 아버지는 하늘에 계신 분, 한 분뿐이시다. 또 너희는 지도자라는 호칭을 듣지 말아라. 너희의 지도자는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 너희 가운데서 으뜸가는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

<마태복음서 23:1-12>


■ 들어가는 이야기

두 주 전인 지난 2월 18이 우수(雨水)였고, 내일모레 3월 5일이 경칩(驚蟄)입니다. 우수는 얼었던 대동강물이 녹는다는 날이고, 경칩은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들이 잠에서 깨어 밖으로 나온다는 날이지요. 우리 조상들은 우수경칩이 지나면 ‘이제 봄이구나!’ 생각했습니다. 명실상부한 봄을 맞이하는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위에, 그리고 여러분의 가정과 일터 위에, 성령님의 훈훈한 은혜가 넘치도록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지난 주일에 우리는 사도 야고보의 말을 인용하여 “성숙한 사람이 되십시오!”라는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오늘은 예수님의 말씀을 근거로 해서 “으뜸가는 사람”에 대해서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 독사의 새끼들

성경에 보면 예수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은 사람도 있지만, 강도 높게 책망을 받은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아주 못마땅하게 여기셨던 사람들이 있는데, 그 가운데서 대표적인 사람들이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입니다. ‘율법학자들’ 하니까 얼른 감이 안 올 수도 있지만,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판사, 검사, 변호사 등 법률가들입니다. 물론 당시에는 종교적인 색채가 강했지만 어쨌든 법을 다루는 사람들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법원이나 헌법재판소에서 법률가들이 ‘이게 옳다!’ ‘이게 그르다!’ 하면 더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상황이 되지요. 당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율법학자들이 ‘당신은 죄인이야!’ 하면 꼼짝 없이 죄인이 될 수밖에 없었지요. 그러나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법률가들은 대개 기득권자들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말이 다 옳은 것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권세를 누렸습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인 마르틴 루터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 세상의 법률은 굉장히 유력한 사람들을 벌하지 못합니다. 그렇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대신 우리 주 하나님께서 벌하십니다. 이 세상에서 법률가들은 다만 모기들밖에 잡지 못합니다.” ― 말틴 루터(지원용 역/지원용 편), ≪卓上談話(탁상담화)≫(대한기독교서회, 1963), 190쪽.

돈 있고 권력 있는 사람들은 법을 별로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기들끼리 편을 먹고 끼리끼리 봐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한테는 엄격하게 법을 적용하지요. 지금 우리나라 감옥에서도 벌금 몇 십만 원을 내지 못해서 그걸 노역으로 때우기 위해서 수감 중인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고위공직자 청문회를 보면, 온갖 범법행위를 해놓고도 버젓이 공직을 맞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런 사람들을 자주 꾸짖으신 겁니다. 예수님은 ‘바리새파 사람들’도 싫어하셨습니다. 이 사람들은 예수님 당시의 양반층 종교인들입니다. 옷도 잘 입고 다니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기도도 유창하게 잘 하고, 십일조 등 헌금도 많이 하는 사람들이었지요. 그 가운데는 존경받는 사람들도 없지는 않았지만, 예수님이 보시기에 이 사람들은 겉으로만 거룩한 척 하며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마태복음서 23:33을 보면 예수님은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을 보고 이런 표현을 하십니다.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그러면서 ‘지옥에 떨어질 놈들’이라고까지 하셨습니다.

■ 하마평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왜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을 이렇게 호되게 꾸짖으셨을까요? 그 이유는 이 사람들이 ‘위선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겉과 속이 다른 사람들이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예수님은 이들을 가리켜서 ‘회칠한 무덤’이라고 하셨습니다. 잘 다듬어놓은 무덤은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지만,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온갖 더러운 것이 가득하지 않으냐, 너희들이 바로 그렇다, 이겁니다. 제가 평소에 존경하던 분이 계셨는데요, 이분은 늘 얼굴에 미소를 띠고 계셨고, 저를 비롯한 후배들에게 굉장히 친절한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분을 보고 크게 실망을 했습니다. 이분이 아랫사람을 대하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듣는 사람이 민망할 정도로 아랫사람을 무시하는 말을 하는데, 평소에 그렇게 인자하던 분이 그날 보여준 모습은 그야말로 폭력적인 상사의 모습이었습니다. 요즘 새 정부 고위공직 후보자들을 두고 말이 많습니다만, 이런 것을 흔히 ‘하마평’이라고 하지요. 이 말이 어떻게 해서 생겨나게 되었는지, 역사학자인 전우용 선생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옛날 궁궐 가까운 곳에는 ‘지위가 높든 낮든 모두 말에서 내려라’라는 글을 새긴 하마비가 있었습니다. 관리들은 이 비석 앞에서부터 말이나 가마에서 내려 걸어 들어가야 했습니다. 자연히 하마비 앞은 가마꾼과 구종들의 대기소가 됐습니다. 가마꾼과 구종들은 하마비 앞에서 각자 자기 ‘주인’의 사람 됨됨이와 승진 가능성에 대해 얘기를 늘어놓았습니다. 이를 ‘하마평’이라 합니다. ‘그’가 평소 ‘아랫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하마평'을 통해 가장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윗사람 앞에서 함부로 구는 사람은 없습니다. ‘진짜 인품’은 ‘아랫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 드러납니다. 막 되먹은 건달들이 ‘꾸며낸 충성심’ 하나로 출세하여 나라를 망치는 일이 종종 있었던 건, 대개 인사권자가 ‘하마평’을 무시했기 때문입니다.” ― 트위터에서 @histopian(전우용) 님의 글. 높은 사람 앞에서는 누구나 예의 바르게 행동합니다. 말도 골라서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사람을 평가할 때는 그가 높은 사람에게 하는 말이나 행동을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지요. 그 사람의 진면목은 아랫사람을 대할 때 나타나는 법입니다.

■ 으뜸가는 사람

예수님 당시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은 ‘1%에 속하는 귀족들’이었습니다. 그 사회에서 ‘으뜸가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러나 이들에 대한 예수님의 평가는 냉혹합니다. ‘너희들은 저런 사람들을 부러워하지도 말고, 저런 사람들처럼 되려고 하지도 마라!’ 하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마태복음서 23:5-7 말씀입니다. “그들이 하는 모든 일은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하는 것이다. 그들은 경문 곽[성경구절이 들어 있는 곽으로서 이마나 팔에 달고 다님]을 크게 만들어서 차고 다니고, 옷술을 길게 늘어뜨린다. 그리고 잔치에서는 윗자리에,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에 앉기를 좋아하며, 장터에서 인사 받기와, 사람들에게 랍비라고 불리기를 좋아한다.” 며칠 전에 어떤 행사에 갔는데, 그런 자리에 가면 보통 ‘내빈소개’라는 것을 하지 않습니까? 시장, 시 의장, 도의원, 시의원, 학교 교장, 농협조합장 등등, 그 지역 유지들이 거의 총출동을 했더군요. 한 2~30명쯤 소개를 하고 박수를 치는 데에, 시간이 꽤 오래 걸렸습니다. 저도 일어서서 인사를 하고 박수를 받았습니다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아, 나도 여기서 상당히 중요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습니다만, 적지 않게 부담스러웠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면서 바리새인들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잔치에서는 윗자리에,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에 앉기를 좋아하며, 장터에서 인사 받기와, 사람들에게 랍비[선생]라고 불리기를 좋아한다.” 그날 모인 사람들이 적게 잡아도 200명쯤은 됐는데, 인사 받은 사람이 2~30명 정도라고 치면, 나머지 사람들은 뭡니까? 거기 박수 치러 온 들러리들입니까? 아니지요. 모두 다 소중한 분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 겁니다. “너희 가운데서 으뜸가는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제가 ‘내빈소개’ 관행을 깎아내릴 생각은 없습니다. 소개 받지 못하는 사람들도 소중하다는 것이지요. 아니, 오히려 그분들이야말로 진정 ‘으뜸’인 사람들입니다. 교회에서도 그렇습니다. 앞에 나와서 마이크를 자주 잡는 목사나 장로가 으뜸이 아니라, 말은 많이 하지 않지만, 묵묵히 봉사하며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다수의 성도들이 으뜸입니다.

■ 맺는 이야기

자, 여기서 한 가지만 더 생각해 봅시다. 예수님의 말씀에서 우리가 지금까지 놓치고 있던 점이 있습니다. “너희 가운데서 으뜸가는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라고 하신 말씀을 우리는 이렇게 이해해 왔습니다. ‘으뜸가는 사람이 되려면 남을 섬겨야 한다!’ 전적으로 도덕적인 개념으로 받아들였지요. 그러나 이 말씀을 사회적인 의미로 다시 써보면 이렇습니다. ‘섬기는 사람이 으뜸가는 사람이다!’ 어감이 많이 다르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남을 지배하려고 하는 1%의 귀족들이나 양반들이 으뜸가는 사람이 아니라, 늘 섬기는 것이 생활이 되어 있는 99%의 서민이 으뜸가는 사람이다, 이런 말이지요. 다른 말로 하면 우리나라 헌법에도 나와 있듯이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 모든 주권은 국민에게서 나온다!” 곧 국민이 주인이라는 것입니다. 아까 ‘하마평’ 이야기할 때 말씀드렸습니다만, 부자라고 하더라도, 권력자라고 하더라도, 아랫사람을 자신과 동등하게 인격적으로 대우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는 ‘자기를 낮추는 사람’입니다. 으뜸이 될 자격이 있는 사람입니다. 아무튼 예수님의 말씀에 따르면 돈 많은 소수의 사람이 아니라 돈 없는 다수의 서민이 ‘으뜸가는 사람’이고, 권력을 가진 소수의 사람이 아니라 그 권력의 근원이 되는 다수의 시민이 ‘으뜸가는 사람’입니다. 말로만이 아니라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으뜸가는 권리’를 행사하는 곳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세상을 이렇게 만드시기 원하시는 우리 주님의 평화가 저와 여러분에게, 그리고 온 세상에 가득하기를 축복합니다.



1. 20130313 prokgb.
584 제자 판별법
583 기다리시는 하나님
» 으뜸가는 사람
581 "성숙한 사람이 되십시오!"
580 필요에 따라
579 평생을 좋은 것으로 흡족히 채워주시는 분
578 "불을 지르러 왔다!"
577 “무엇을 가지고 가야 합니까?”
576 낡은 정신, 새 정신
575 "그 때에 하늘 문이 열렸다!"
574 생명의 하나님, 우리를 정의와 평화의 일꾼으로 써 주소서!
573 이런 한 해가 되게 하소서!
572 칼 이야기
571 목자들의 감각
570 "주님의 위로가 나를 달래 줍니다!"
569 "굳세어라, 두려워하지 말아라!"
568 광야를 경험했는가?
567 "언제까지 그러실 겁니까?"
566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565 엄청난 일을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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