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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을 건너는 사람들

by 마을지기 posted Jan 22,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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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이사야서 43:19
설교일 2017-01-22
설교장소 구미 한울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주일
사용처 1. 20170223 목 구미YMCA 정기총회.

[오디오파일 듣기/내려받기]

 

■ 성서 본문

 

내가 이제 새 일을 하려고 한다.

이 일이 이미 드러나고 있는데,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내가 광야에 길을 내겠으며, 사막에 강을 내겠다.

 

― 이사야서 43:19 ―

 

■ 들어가는 이야기

 

겨울이 너무 춥지 않아서 걱정이라고 했더니, 대한(大寒) 추위가 제대로 위력을 떨치고 있습니다. 그래도 밤낮으로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날씨는 며칠만 지나면 올해는 없을 것 같습니다. 곧 봄이 온다는 뜻이지요. 여러분의 마음이, 여러분의 삶이 혹시 엄동설한처럼 꽁꽁 얼어 있더라도, 머지않아 봄의 따뜻함과 생동감을 누리시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사막의 불문율

 

흔히 인생을 망망대해와 같다고 합니다. 사막과 같다고도 합니다. 망망대해나 사막이나 공통점은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건너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재주가 뛰어난 사람이라도 혼자의 힘으로는 건널 수 없습니다. 인생도 그렇습니다. 결코 혼자서 헤쳐 나갈 수 없습니다. 함께 가야 되고, 서로 도우면서 가야 됩니다. 실제로 사막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몇 가지 불문율(不文律)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길을 잃은 사람이 있으면 누구든지 달려가서 구해 줘야 된다는 겁니다. 조난을 당한 사람을 구조하지 않고 못 본 체 가버린 사람을 그곳에서는 살인죄로 다스린다고 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끝없이 광활한 모래밭이 있습니다. 그 위에 자로 대고 길게 선을 하나 그어놓은 것처럼 아스팔트길이 뚫려 있습니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하늘과 모래뿐, 움직이는 것이 없습니다. 그 사막에 자동차 한대가 서 있다고 합시다. 그때 구조를 요청하면 그 옆을 지나가는 차는 무조건 멈추어 서야 됩니다. 그냥 지나쳐 가는 차가 있으면 차량번호를 기억했다가 나중에 신고를 합니다. 그러면 구조요청을 거부했던 그 운전수를 범죄행위자로 다스립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사막에서 길을 잃거나 조난을 당했다는 건 이미 죽음 속으로 한발 들어선 것이나 같기 때문입니다. 차에 기름이 떨어지면 사람들은 물과 먹을 것을 아껴가면서 누군가가 지나갈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걸어서 그 사막을 빠져나간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입니다. 더우니까 낮에는 자동차 밑에 기어들어가서 누워 있습니다. 그늘이라고는 거기밖에 없잖아요. 그리고 밤이면 급격하게 기온이 내려가니까 담요를 뒤집어쓰고 차안에서 잠을 잡니다. 먹을 물이 떨어지면 나중에는 자동차 라디에이터에 있는 물까지 빼내서 마십니다. 이런 극한상황에 있는 사람을 못 본 체 가버렸다면 그는 그 사람을 죽인 거나 같지 않겠습니까? ― 〈사막에서 쓴 편지〉에서. 한수산, ≪먼 그날 같은 오늘≫(나남출판, 1994), 309-310쪽.

 

■ 질서정연한 사막

 

 

혹시 《모모》라는 소설을 기억하십니까? 벌써 오래 됐네요. 1974년에 나온 작품인데, 미하엘 엔데라는 사람이 썼습니다. 주인공은 열 살 안팎의 여자아이입니다. 부모도 없이 어느 대도시에서 혼자 사는데, 이 아이의 이름이 ‘모모’입니다. 미하엘은 이 아이가 사는 도시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대도시의 북쪽에는 벌써 엄청나게 큰 새 주택 구역이 완성되었다. 거기에는 너무나 똑같아서 구별할 수 없는 고층 아파트들이 멀리 눈에 들어오는 데까지 끝없이 세워졌다. 이렇듯 똑같은 집들 사이로 난 도로 역시 똑같은 형태를 이룰 수밖에 없었다. 이런 식의 단조로운 도로들이 부쩍부쩍 늘어났고 어느덧 일직선으로 지평선에까지 뻗치게 되었다. 그것은 직선으로 연결되어 있는 질서정연한 사막이었다. 그리고 그곳에 사는 인간의 생활도 역시 이와 똑같았다. 단지 일직선으로 지평선까지 뻗어 가는 생활! 거기서는 모든 것이 정확하게 계산되어 계획되고, 1센티미터의 낭비도 1초의 낭비도 없었기 때문이다.” ― 미하엘 엔데(서석연 역), 《모모(상)》(범우사, 2015), 전자책 162/307쪽. 작가는 거대한 도시를 ‘사막’이라고 했습니다. 사막은 사막인데,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셀 수도 없는 건물들과 도로들이 반듯반듯하게 배치되어 있는 ‘질서정연한 사막’이라는 겁니다. 우리가 사는 도시가 왜 사막입니까? 겉으로 보면 셀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분주하게 살고 있지만, 그 수많은 사람들이 사실은 모래와 같습니다. 그냥 걸리적거리고 스쳐 지나가는 물체들일 뿐,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엊그제 서울에 다녀왔습니다. 열차를 타고 서울역에 내려서 네댓 시간 동안을 지하철을 타고 시내를 누비고 다녔지만 길거리에서 단 한 사람하고도 눈인사조차 나누지 않았습니다. 두 발로 걸어 다닐 뿐이지 모래와 다를 것이 무엇입니까?

 

■ 낙타의 언어

 

제 시각에 열차가 오고, 제 시각에 신호가 바뀌고, 제 시각에 자동차들이 출발합니다. 도로구획은 바둑판처럼 반듯반듯하게 정리되어 있고 하늘을 찌를 것 같은 빌딩들도 줄을 지어 잘 서 있습니다. 아주 질서정연한 모습입니다. 그러나 길 한가운데서 둘러보면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사막입니다. 도시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인생 자체가 사막입니다. 우리는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삽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죽을 고비를 만났을 때 누군가가 나타나서 여러분을 구해준 일이 몇 번이나 됩니까? 한두 번 있을까 말까 하는 정도지요. 거꾸로, 여러분과 가까운 누군가가 죽을 고비를 만났을 때 여러분이 나서서 살려준 일도 거의 없거나 한두 번 있거나 할 것입니다. 인생이 사막이라면, 사막에서 도움을 구하는 사람의 요청을 거절하는 것은 사람을 죽게 버려두는 범죄입니다. 1988년 우리나라의 유명한 학자가, 《말》이라는 잡지에 이런 글을 썼습니다. “낙타 같은 언어를 갖고 싶다. 사자의 눈이나 사치한 사슴의 뿔 같은 언어보다도 사막을 건너가는 그런 낙타의 언어로 시를 쓰고 싶다.” ― 이어령(李御寧), 《말》(문학세계사, 1988), 27쪽. 요즘은 사막이라도 웬만하면 자동차를 이용하지만, 옛날에는 낙타를 탔습니다. 왜냐하면 낙타가 사막을 건너는 데는 안성맞춤이기 때문이지요. 낙타의 발바닥은 모래밭을 잘 걸을 수 있도록 넓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콧구멍을 스스로 막을 수도 있습니다. 귀 털이 있어서 귀도 보호할 수 있습니다. 낙타의 속눈썹은 선글라스보다 더 성능이 좋습니다. 이러니 사막 횡단에는 낙타가 없으면 안 됩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시인은 그래서 낙타의 언어를 가지고 싶다고 했습니다. 용맹스러운 사자도 좋고, 아름다운 뿔이 달린 사슴도 좋지만, 그런 동물들도 필요하지만, 사막에서 정작 필요한 것은 사자도 아니고 사슴도 아니고 낙타입니다. 낙타의 언어는 승리의 언어가 아니라 도움의 언어입니다. 아름다운 언어가 아니라 유익이 되는 언어입니다.

 

■ 맺는 이야기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광야에 길을 내겠으며, 사막에 강을 내겠다”(이사야서 43:19). 언젠가 이 세상이 하나님의 나라가 되겠지요. 인생의 광야에 길이 나고, 인생의 사막에 강이 생기겠지요. 그러나 아직은 아닙니다. 광야에 길이 날 때까지, 사막에 강이 생길 때까지는 낙타가 필요합니다. 주님의 나라가 완전히 이루어지는 그날까지 저와 여러분은 사막 같은 이 세상에서 낙타의 언어를 가지고 살아가는 주님의 제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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