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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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시편 23:1-6 
설교일 2021-03-21 
설교장소 구미 한울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주일 

성서 본문

 

주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 없어라.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신다. 나에게 다시 새 힘을 주시고,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바른 길로 나를 인도하신다. 내가 비록 죽음의 그늘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고, 주님의 막대기와 지팡이로 나를 보살펴 주시니, 내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내 원수들이 보는 앞에서 내게 잔칫상을 차려 주시고, 내 머리에 기름 부으시어 나를 귀한 손님으로 맞아 주시니, 내 잔이 넘칩니다. 진실로 주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내가 사는 날 동안 나를 따르리니, 나는 주님의 집으로 돌아가 영원히 그 곳에서 살겠습니다.

 

시편 23:1-6

 

들어가는 말씀

 

어제가 춘분이었지요. 지금까지는 밥이 낮보다 더 길었습니다만, 어제를 기점으로 그게 바뀌었습니다. 이제는 밤보다 낮이 더 길 겁니다. 이 좋은 계절에, 오늘도 함께 예배를 드리는 여러분 모두 위에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은혜와 성령님의 시원스러운 소통하심이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어제가 춘분이었다고 말씀드렸는데, 지구에 겨울이 있고 여름이 있는 것은 지구 축이 23.5도 기울어져 있기 때문인 것을 잘 아실 것입니다. 저는 지구가 이렇게 돌아가는 것을 생각하면, 그때마다 얼마나 신기한지 모릅니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똑바로 서 있어야 편안한 법인데, 지구는 살짝도 아니고 아주 많이 기울어져 있습니다. 왜 하필 23.5도 기울어져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이건 굉장히 심하게 기울어져 있는 겁니다. 이 정도 각도면, 예를 들어서 도로가 23.5도 기울어져 있으면 자동차도 잘 못 올라갑니다. 그런데도 지구에 사는 모든 생명체는 그게 불편한 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가 오묘하지 않은 게 없고, 신기하지 않은 게 없지만, 지축이 기울어져 있다는 것, 그런데도 우리가 편안할 수 있다는 것, 그렇게 기울어진 채로 돌고 있는데도 멀미가 안 난다는 것, 이거야말로 영원한 신비입니다. 그뿐이 아니지요. 우리가 뭔가를 움직이게 하려면 반드시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자동차에 시동을 걸어서 목적지까지 가려면 연료가 필요하지요. 무엇을 움직이든지, 동력이 있어야 합니다. 손목시계를 사용하더라도 배터리를 넣어줘야 합니다. 그런데 이 거대한 지구가 자전을 하는데, 거기에는 배터리가 없습니다. 엔진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는 자전뿐 아니라 공전까지 합니다. 스스로 돌면서 태양 주위를 일 년에 한 바퀴씩 돌아요.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고서는 설명할 수 없는 일입니다.

 

편안한 곳

 

지구가 이렇게 오묘합니다. 우리가 안정되게 가만히 서 있을 수 있는 것, 이건 중력 덕분이지요. 물건을 한 곳에 놓아두면 제자리에 가만히 있는 것도 중력의 영향입니다. 만에 하나 지구가 사람과 사물을 끌어들이는 중력이 지금보다 커진다면 그것은 엄청난 결과를 가지고 올 겁니다. 사람들은 팔이 무거워서 잘 들어 올리기도 쉽지 않을 겁니다. 다리가 무거워서 제대로 걷지도 못할 거예요. 물건은 그만큼 더 무거워져서 뭐 하나 제대로 옮기지도 못하게 될 겁니다. 그러면 중력이 적어지면 좀 편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그것도 대단히 위험한 일입니다. 팔다리 움직이는 건 조금 편해질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렇게 되면 사람이고 자동차고 둥둥 떠다닐 것 아니에요? 얼마나 불안정합니까? 선반 위에 올려놓은 물건들도 제 마음대로 움직이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지구 중력을 아주 절묘하게, 딱 알맞게, 매우 적절하게 조절해 놓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거지요.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모든 조건을 갖추어 놓으셨습니다. 편안함의 반대말은 무엇입니까? 불편함이지요? 그렇다면 어디가 편안한 곳이고 어디가 불편한 곳입니까?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장소에 따라서 편안한 곳이 있을 수 있고 불편한 곳이 있을 수 있지요. 조건에 따라서도 편안한 상황이 있고 불편한 상황이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생각할 때, 장소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조건도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바뀔 수 있고요. 문제는 상대방이에요. 상대가 누구인가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세상에는 편안한 사람이 있고 불편한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을 만날 때

 

술 이야기를 잠깐 하겠습니다. 한자에 ()’이란 글자가 있습니다. 이 글자에 대해서 어느 분이 페이스북에 몇 가지 적어 놓았습니다. 물이나 액체를 따를 때 이 말을 씁니다. 그런데 정작 물을 따를 때는 잘 안 쓰고요, 술을 따를 때 주로 씁니다. 예전에는 술집에서 손님을 접대하고 술 시중을 드는 여자를 작부(酌婦)’라고 했습니다. 글자 그대로는 술을 따르는 여자다, 그 말이지요. 멀리서 친구가 찾아오면 술을 한잔하지요. “이 사람아, 먼 길 찾아와 주어서 고맙네. 내 술 한잔 받으시게!” 그러면서 술을 따라 줍니다. 그러면 상대방은 이렇게 반갑게 맞아 주니 정말 고맙네. 내 술도 한잔 받으시게!” 그러면서 친구도 술을 따라 줍니다. 이런 걸 수작(酬酌)’이라고 해요. 여기서 ()’는 갚는다는 말이고 ()’은 술을 따른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가끔 수작 부리지 말라고 하지요. 그러니까 수작 부린다는 말은, 공적이고 중요한 일을, 술자리에서 이루어지는 개인적인 일처럼, 사소한 일로 바꾸어버린다는 겁니다. 요즘에는 보통 유리병에다가 술을 담아서 마시지만, 옛날에 유리가 없을 때는 술병이 도자기로 되어 있었잖아요. 그러니까 술이 얼마나 남았는지 가늠이 잘 안 됩니다. 그래서 술이 얼마만큼 남았을까, 속으로 대중하면서 술을 따르게 되는데, 이걸 짐작(斟酌)’이라고 합니다. 이 정도면 될까, 주저하면서, 머뭇거리면서 술을 따르는 게 짐작이에요. 그리고 우리가 무슨 일을 할 때 먼저 생각을 하지요. 그걸 작정(酌定)’이라고 합니다. 술을 얼마만큼 따라야 할지 마음속으로 정하는 게 작정이에요. 무작정 술을 따르다가 보면 상대방의 잔이 안 찼는데 술이 떨어질 수 있잖아요. 그건 실수거든요. 그래서 작정을 먼저 하고 따라야 합니다. 부족할 것 같으면 새 병을 준비하는 게 예읩니다. 또 있습니다. 법원에서 재판할 때 판사들이 형을 정하는데, 때로는 상황을 봐서 조금 가볍게 해주기도 하지요? 이때 그걸 정상참작(情狀參酌)’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참작이란 건 여러 상황을 참고해서 술을 따른다, 그 말이에요.

 

하나님 앞에서

 

술을 한잔 따르는 데도 생각할 게 참 많지요? 이게 사람 사는 세상이에요. 사소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 무턱대고 무작정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말이나 행동을 하기 전에 매사에 작정을 해야 하고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짐작도 해야 합니다. 상대방의 사정을 참작도 해야 하고요. 공적인 일이나 중요한 일을 두고 수작부리려고 해서도 안 됩니다. 사람 사는 게 이렇게 어렵습니다. 내가 이 말을 하면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할까, 내가 이런 행동을 하면, 저 사람이 뭐라고 말할까, 저 사람에 대한 내 짐작이 맞을까, 등등 고려하고 계산해야 할 게 한둘이 아닙니다. 그래서 사람을 상대할 때는 항상 긴장하게 되어 있습니다. 가까운 사이라도 그래도, 사람을 대하면서 이렇게 계산을 덜 해도 되는 사이가 식구지요. 그래서 가족이 편안하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식구들 사이에도 지킬 건 지켜야지요? 그런데 이런 거, 저런 거, 하나도 고려하지 않고 만날 수 있는 분이 있습니다. 아시지요? 바로 하나님이에요. 하나님 앞에서는, 우리는 알몸이어도 상관없습니다. 가진 게 없어도 됩니다. 지은 죄가 크고 많아도 괜찮습니다. 계산할 필요도 없습니다. 짐작할 것도 없습니다. 그 어떤 일도 참작하지 않아도 됩니다. 심지어 예의가 없어도 됩니다. 있는 그대로, 생겨 먹은 그대로, 내 모습 그대로 만나면 되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맺는 이야기

 

그래서 우리에게 개인 묵상 시간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빠짐없이 예배에 참석하고 교회 생황을 열심히 한다고 해도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왜 그럴까요? 교회가 무엇입니까? 모임이잖아요. 사람들과 함께 있는 곳입니다. 옆에 사람이 있다는 건 예의를 차려야 한다는 뜻이잖아요. 아무 참작도 없이 무작정 행동하고 말하면 안 됩니다. 기도할 때도 예의를 차려야 합니다. 예배 시간에 대표 기도를 맡아서 할 때, 개인 사정을 줄줄이 늘어놓으면서 눈물만 흘리고 있으면 안 되잖아요. 기도뿐만 아니라, 말 한마디, 행동거지 하나에도 신경을 써야 합니다. 그래서 조금은 불편함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개인 묵상 시간, 개인적으로 기도할 때는 어떻습니까? 무작정, 아무것도 참작할 것도 없이, 그냥 편안하게 기도하면 됩니다. 부자 되게 해달라고 해도 돼요. 미운 놈이 한 짓거리를 다 일러바쳐도 돼요. 저놈 원수 좀 갚아주세요, 해도 돼요. 매우 이기적인 기도도 상관없습니다. 세상에 그렇게 편안한 분이 어디에 있습니까? 여러분, 돈 많이 생기면 뭐 하고 싶으십니까? 저는 그 무엇보다도 개인 기도실을 만들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게 하고 혼자 쓸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만드십시오. 아직 그럴 여건이 안 된다면 혼자 외딴 바닷가나 깊은 숲속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만나십시오. 그런 편안한 시간, 그런 편안한 공간이 꼭 필요합니다. 기도실을 만들거나 혼자 먼 곳에 가거나, 그럴 여건도 안 되면 우선 혼자서 묵상하는 시간을 확보하십시오. 어디든지 좋습니다. 자동차도 좋고 화장실도 좋습니다. 소리 내지 말고 하나님과 조용히 대화만 해도 세상에서 골 아픈 일은 99% 이상 해결됩니다.

 

 

이렇게, 가장 편안하게 하나님을 자주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안전하고 배부르게 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041 조금도 염려하지 마십시오!
1040 힘내라, 꼴찌!
1039 사랑 받는 사람의 특징
1038 먹을 만큼씩만 거두십시오!
1037 구하라, 찾아라, 두드려라!
1036 그리스도인의 기본요건(2) - 소통
1035 그리스도인의 기본요건(2) - 찬송
1034 그리스도인의 기본요건(1) - 기도
1033 기쁨 공장
1032 기쁨이 넘치는 도시
1031 평화와 밥
1030 잊을 것과 기억할 것
1029 생명을 지켜주는 열매, 절제
1028 온유한 사람이란?
1027 신실한 사람
1026 복을 베푸는 사람, 선한 사람
1025 정결한 예물, 친절
1024 마음의 피부, 인내
1023 평화 만들기, 세 가지 방법
1022 세 가지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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