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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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지기 2012-09-16 14:5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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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창세기 12:1-9 
설교일 2012-09-16 
설교장소 한울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주일 

■ 성서 본문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네가 살고 있는 땅과, 네가 난 곳과, 너의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내가 보여 주는 땅으로 가거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너에게 복을 주어서, 네가 크게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너를 축복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복을 베풀고, 너를 저주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저주를 내릴 것이다. 땅에 사는 모든 민족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다.”

<창세기 12:1-3>


■ 들어가는 이야기

남녘에서 태풍이 맹위를 떨치며 올라오고 있다고 합니다. 이번 태풍은 철탑이 휠 정도로 바람이 세다고 하지요? 몇 년 전에 우리가 옥상의 십자가 철탑을 철거한 것이 새삼 다행스럽습니다. 아무쪼록 큰 피해가 없이 잘 지나가주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어쨌든 오늘도 이렇게 주님의 나라를 위하여 한 자리에 모이신 여러분 모두에게 주님의 은총과 땅의 축복이 넘치도록 임가기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지난 주일에 우리는 창세기 11장에 나오는 바벨탑 이야기를 생각해보았는데, 오늘은 12장에 나오는 아브라함 이야기를 좀 나누어볼까 합니다. 아브라함이 어떤 복을 받았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 자급자족 세상

1930년대에 세계적인 대공황이 있었지요. 세상에 돈이 돌지 않아서 경제가 거의 멈춰버린 겁니다. 그때 있었던 일인데요, 탄광지대에 사는 한 초등학생이 학교에 갔다가 집에 돌아왔는데 집안이 너무 추웠습니다. 그래서 아이는 어머니께 물었습니다. “이렇게 추운데 왜 불을 안 때는 거예요?” 어머니의 대답은 석탄이 없어서 그렇다는 것이었습니다. 옛날에 문경이나 강원도에 가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탄광지대에 가면 산에서 캐낸 탄 무더기가 산처럼 쌓여 있지 않습니까? 눈만 뜨면 보이는 게 석탄인데 석탄이 없다니…. 아이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왜 석탄이 없는지 다시 물었지요. 어머니는, 아버지가 일자리를 잃어서 석탄을 살 돈이 없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왜 일자리를 잃으셨어요?” 석탄이 너무 많이 생산되어서 그렇다는 것이 어머니의 대답이었습니다. ― (장상환) 전대환+6인, ≪행복경제 디자인≫((주)아리수에듀, 2009), 215-216쪽.

옛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농사를 짓고 살던 시절에는 이런 일이 없었습니다. 농사를 지어서 먹을 것을 얻고, 길쌈을 해서 옷을 해 입는 등, 우리 생활에서 필요한 일들은 거의 스스로 만들어서 얻었습니다. 물론 그때도 시장은 있었지만, 거의 물물교환이 그 근간이었지요. 닭이 낳은 달걀을 들고 나가서 판 다음 그걸로 고무신을 사옵니다. 소가 새끼를 낳으면 송아지를 몰고 장에 나가서 팔아서 딸 시집보낼 혼수를 장만합니다. 대개 이런 식이었지요. 그래서 장도 매일 서는 것이 아니라 닷새에 한 번씩 섰습니다. 그것도 동네마다도 아니고 각 지역의 거점도시에서만 장이 섰지요. 사고 팔 것이 그렇게 많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사라지고 없는 현상입니다만, 제가 어릴 때만 하더라도 경상도 지역에서는 ‘산다’는 말과 ‘판다’는 말이 구분이 모호했습니다. 어릴 때 가게를 하는 옆집 아주머니가 아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얘야, 너 가서 쌀 좀 팔아 오너라!” 아니, 농사짓는 집도 아니고 생선가게를 하는 분이 쌀을 팔아오라니, 어디서 쌀이 먹고 남을 만큼 생겼나, 그런 생각을 했는데 알고 보니 그게 쌀을 좀 사오라는 말이었습니다. 이처럼 옛날의 시장은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 빚 권하는 세상

그런데 이른바 ‘산업혁명’이 일어나고부터는 ‘분업’이 본격화돼서, 많은 사람들이 한 가지 일만 합니다.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것들은 돈 주고 사서 쓰는 세상이 되었지요. 그때부터 농업에서든 공업에서든 대량생산이 이루어집니다. 기계의 덕이었지요. 그렇게 되니까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탄광촌의 초등학생이 겪었던 것과 같은 사태가 벌어지는 겁니다. 생산은 많이 해놓았는데, 소비가 없으면 그거 생산하던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온 얘기가, ‘소비가 미덕이다’라는 것이었지요. 소비가 위축되면 경제가 안 돌아가니까 자꾸 쓰라고 강조하는 겁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텔레비전을 많이 안 보려고 합니다만 가끔 보면 홍수 같이 쏟아져 나오는 광고들 때문에 짜증이 납니다. 하루 종일 돈 쓰라는 이야기 아닙니까? 광고뿐만이 아닙니다. 드라마도 내내 그 소리지요. 뉴스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돈 써라, 돈 써라, 노래를 부릅니다.

세월이 갈수록, 회사에서 노동자들이 일을 하면 노동자들에게 돌아가는 몫보다 자본가들에게 돌아가는 몫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부자들이 돈을 독식하니까 서민들은 궁해질 수밖에 없지요. 소비자들의 주머니가 비어 있으니까 돈을 안 쓰고, 돈을 안 쓰니까 부자들도 수입이 줄어들 것 아닙니까? 그래서 요즘은, 돈 빌려줄 테니까 빌려서 써라, 그럽니다. 신용카드라는 게 그거고, 대출이라는 게 그거지요.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온 세계가 빚 때문에 위기를 맞이한 것입니다. 요즘 정부에서 내놓는 정책도 그런 겁니다. 아파트 값이 자꾸 떨어지니까 대출에서 담보비율을 높여준다는 것이지요. ‘돈 더 빌려줄 테니 아파트도 사고, 다른 데도 쓰고 자꾸 써라, 써라!’ 하고 부추깁니다. 첫머리에 말씀드린 광부 이야기 같은 일이 요즘도 일어나는데, 요즘은 그 문제를 빚으로 해결하라고 유도합니다. 그러다 보니 서민들의 빚이 너무 많아졌습니다. 집집마다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습니다. 가계부채 때문에 우리도 지금 나라 전체가 위태위태합니다. 언제 터질지 모릅니다. 시한폭탄이에요.

■ 하나님의 주문

부자들이 노동자들 몫을 뺏어서 돈을 멀고, 물건 팔아서 돈을 벌고, 땅값 올려서 돈을 벌다가, 서민들이 점점 가난해져서 쓸 돈이 없으니까 이제는 서민들에게 돈을 빌려주어서 돈을 쓰게 합니다. 그래서 이자까지 받아서 돈을 긁어모읍니다. 이게 현대의 자본주의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사람을 만드실 때는 사람이 스스로 일을 해서 먹고 살도록, 거기에 알맞게 만들어두셨습니다. 성경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복된 것을 ‘안식일’이라고 하는데, 안식은 일을 위한 것이고, 일은 안식을 위한 것 아닙니까? 그만큼 ‘일’이 복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하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먹지도 말라”(데살로니가후서 3:10) 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일’은 기본적으로 ‘생산’입니다. 뭘 만들어내는 게 일입니다. 요즘은 세상이 복잡해져서 일의 종류가 셀 수도 없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일은 그렇습니다.

이제야 아브라함 이야기를 꺼냅니다만, 아브라함의 별칭이 몇 가지 있는데, 창세기 12장에서는 ‘복의 근원’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물론 복의 근원은 하나님이시지요. 복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보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보고 ‘복의 근원’이 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하실 역할을 아브라함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복의 소비자도 아니고, 복을 유통시키는 사람도 아니고, 복을 생산하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말 가운데 ‘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농사를 짓는 사람이 천하에서 가장 큰 근본이라는 말 아닙니까? 농산물을 생산하면 그것을 먹는 소비자도 필요하고 그것을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유통과정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 저런 것 가운데서 가장 으뜸 되는 것은 ‘생산’입니다. 복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을 생산한다는 게 무엇입니까? 이건 그냥 복을 빌어주는 수준이 아니라 복을 지으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사할 때 ‘복 많이 받으세요!’ 하는 것은 복의 소비자가 되라는 말이고, ‘복 많이 지으세요!’ 하는 것은 복의 생산자가 되라는 뜻입니다.

■ 맺는 이야기

복을 받는다는 것은 기쁨을 얻는다는 것이고, 복을 짓는다는 것은 기쁨을 준다는 것입니다. 현대에 사는 우리는 소비하는 데 너무 익숙해져 있고 생산하는 데는 서툽니다. 또 돈으로 뭐든지 사는 버릇이 돼서 복도 돈으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아내나 남편에게, 부모나 자식에게, 그리고 이웃에게도 뭐든지 돈으로 다 때우려고 합니다. 어버이날이나 스승의 날 등 무슨 날에도 돈으로 선물을 사서 인사를 합니다. 자녀들을 키우는 일도 대부분 돈을 들여서 다 하려고 합니다. 경조사가 있을 때 부조도 돈으로 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임을 알기는 합니다만, 우리가 성경으로 돌아가서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려면 돈 안 들이고, 실제로 몸을 쓰고 시간을 써서 복을 생산하는 것을 더 열심히 해야 합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복을 생산하는 것은 누군가에게 기쁨을 주는 일입니다. 내가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해줄 수 있을까,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은 여러분의 몫으로 맡기겠습니다. 이제 저와 여러분은 그저 복을 받기보다, 복을 전달하기보다, 복을 스스로 생산해냄으로써 복의 근원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바랍니다.

1042 아름다운 사랑
1041 금단의 열매
1040 일곱째 날의 안식
1039 물 이야기
1038 녹색교회 녹색세상
1037 생명농사와 경제농사
1036 하나님 닮았네
1035 그때, 다섯째 날
1034 고 최성규 목사님을 배웅하며
1033 창조주 하나님
1032 창조주의 심정으로
1031 창조에서 배울 것들
1030 망하는 이유, 안 망하는 이유
1029 한울교회
1028 부자 아브라함
1027 아브람의 양보
1026 성공과 실패
1025 수녀 천 명, 어머니 한 명
» 복을 생산하라!
1023 복의 생산과 유통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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