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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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사도행전 6:1-7 
설교일 2008-07-13 
설교장소 구미안디옥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주일 


■ 성서 본문

이 시기에 제자들이 점점 불어났다. 그런데 그리스 말을 하는 유대 사람들이 히브리 말을 하는 유대 사람들에게 불평을 터뜨렸다. 그것은 자기네 과부들이 날마다 구호 음식을 나누어 받는 일에 소홀히 여김을 받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열두 사도가 제자들을 모두 불러놓고 말하였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은 제쳐놓고서 음식 베푸는 일에 힘쓰는 것은 좋지 못합니다. 그러니 형제자매 여러분, 신망이 있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일곱을 여러분 가운데서 뽑으십시오. 그러면 그들에게 이 일을 맡기고, 우리는 기도하는 일과 말씀을 섬기는 일에 헌신하겠습니다.” 모든 사람이 이 말을 좋게 받아들여서,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인 스데반과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안디옥 출신의 이방 사람으로서 유대교에 개종한 사람인 니골라를 뽑아서, 사도들 앞에 세웠다. 사도들은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이 계속 퍼져 나가서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들의 수가 부쩍 늘어가고, 제사장들 가운데서도 이 믿음에 순종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사도행전 6:1-7〉


■ 들어가는 말씀

오늘 신약성경 본문이 사도행전 6장 1절부터 7절까지인데, 사실 이 말씀을 본문으로 해서 그 동안 두세 차례 우리 교회에서 함께 은혜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물론 메시지의 내용은 조금씩 달랐습니다만, 워낙 유명한 말씀이라, 오늘 또 한 번 더 같이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 말씀이 왜 그렇게 유명한 말씀인가, 7절에 보면 이렇게 되어 있지요. “하나님의 말씀이 계속 퍼져 나가서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들의 수가 부쩍 늘어가고, 제사장들 가운데서도 이 믿음에 순종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제자들의 수가 부쩍 늘어났다고 했습니다. 그냥 늘어난 것도 아니고 ‘부쩍’ 늘어났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숫자에 너무 민감할 필요는 없습니다만, 이 경우에는 그냥 수가 늘어난 것이 아니라, ‘제자들의 수’가 늘어났기 때문에 중요한 것입니다. 무슨 제자들입니까? 예수님의 제자들이지요. 예수님의 제자라면 무슨 일을 합니까? 하나님 나라 일을 하는 사람들이지요. 세상에 평화를 전하고, 세상을 향해 사랑을 실천하고, 세상의 생명을 살리는 일에 앞장서고, 세상에 정의를 세우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 주님의 제자들이니까, 이런 사람들은 수가 늘어날수록 좋은 것입니다.

그러면 초대교회 사람들은 어떻게 했기에, 이런 제자들이 늘어났는가, 간단하게 말하면, 교인들이 각자 자기 할 일에 충실했다는 것입니다. 사도들은 말씀을 전하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할 수 있었고, 집사들은 구제하고 봉사하는 일에 전념했습니다. 그 결과, 제자들이 늘어났습니다. 이 가운데서 오늘은 집사들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초대교회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을 집사로 세웠는가, 성경에 보니까 세 가지 자격요건이 나옵니다.

■ 신망이 두터운 사람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어째서 사람의 신망이 있어야 하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하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도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예수님도 지금은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그랬습니다. “우리가 악마는 볼 수 없지만 악마가 할퀴고 간 자리는 볼 수 있다.” 하나님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볼 수는 없지만, 하나님의 자취는 볼 수 있습니다. 그 자취를 누가 만듭니까? 하나님의 자녀들이 만들어야지요.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고 예수님을 짐작합니다. 예수님이 아무리 훌륭한 분이라고 하더라도 제자들이 시원치 않으면 제자들 때문에 예수님께서 욕을 들으십니다. 이것은 집사들뿐만 아니라 교회의 다른 지도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디모데전서 3장 7절에 보면 감독에 대한 자격이 있습니다. 거기도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감독은 또한, 교회 밖의 사람들에게도 좋은 평판을 받는 사람이라야 합니다. 그래야 그가 비방을 받지 않으며, 악마의 올무에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교회 밖의 사람들에게 평판이 좋지 않으면 교회의 지도자도 될 수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기독교인들을 보고, ‘말을 잘 한다’는 소리를 자주 합니다. ‘말을 잘 하는 것’이야 괜찮지만 ‘말만 잘하는 것’은 곤란하지요. 말주변 없는 것이 오히려 신뢰를 얻는 데 장점일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금방 유화되지는 않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차츰 사람들의 이해를 받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이 사람, 생각 외로 재미있는 사람이네!' '무뚝뚝하지만 믿음이 가는 사람이네!' 하면서 신뢰를 주게 됩니다. ‘말은 잘해도 믿을 수 없다’는 느낌을 주면 곤란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행동으로 사람들에게 신뢰를 주어야 합니다.

■ 성령이 충만한 사람

사람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먼저, 육체가 있지요. 그 다음, 정신이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다 잘 알고, 또 동의하는 내용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거기에다가 한 가지를 더 말합니다. 그것이 ‘영’입니다. 우리가 흔히 ‘정신력’을 말하지요. 육체가 약한 사람이라도 정신이 강하면 그것이 약한 육체를 보완할 수 있다는 것인데, 그것은 옳습니다. 정신력이 강하면 육체의 약함뿐만 아니라 질병도 어느 정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잠언 18장 14절에 보면 현자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이 정신으로 병을 이길 수 있다지만, 그 정신이 꺾인다면, 누가 그를 일으킬 수 있겠느냐?” 이게 문제인 것이지요. 아무리 정신력이 강한 사람이라도, 정신이 꺾인다면 그때부터는 힘을 쓰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극복하라고,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선물로 주신 것이 ‘영’입니다. 육체와 정신은 사람의 몫입니다. 사람의 노력 여하에 따라 강해질 수도 있고 약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영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쉽게 비유하자면 이런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요즘 대개 개인용 컴퓨터를 쓰시지요. 컴퓨터는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습니까?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로 구성되어 있지요. 사람으로 치면, 하드웨어는 몸이고, 소프트웨어는 정신입니다. 그것으로도 컴퓨터는 어느 정도 작동합니다. 워드프로세서도 쓰고, 스프레드시트도 쓰고, 그래픽 작업도 할 수 있지요. 그러나 그건 거기까지입니다. 컴퓨터를 제대로 사용하려면 온라인에 연결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새로운 정보를 활용할 수 있지요. 소프트웨어도 업데이트 시킬 수 있습니다.

사람도 그렇습니다. 육체와 정신만 가져도 작동은 합니다. 그러나 그것만 있어서는 업데이트가 안 되지요. 업데이트를 가능하게 하려면 뭐가 있어야 합니까? ‘영’이 있어야 합니다. 컴퓨터는, 온라인에 연결되어 있어도 소프트웨어만 제어할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이 있는 사람은 정신뿐만 아니라 육체까지 업데이트시킬 수 있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예수님의 일꾼이 되려면 정신과 육체만 가지고는 한계가 있습니다. 반드시 ‘영’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사람이 어떻게 해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기 전에는 ‘사람의 힘으로’ 살기도 하고 일도 했지만, 성령을 받은 사람은 이제 ‘하나님의 힘으로’ 삽니다. 하나님의 힘으로 일도 합니다. 이것은 삽질하는 것과 포클레인으로 작업하는 것 이상의 차이가 납니다. 주님의 일은 주님의 능력으로 해야 합니다.

■ 지혜가 풍성한 사람

자, 사람들에게 신망도 높고, 하나님으로부터 성령도 충만히 받아서 능력을 가지고 일한다고 합시다. 이제 거리낄 것 없이 주님의 일을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힘을 조절할 수 있는 장치가 있어야 합니다. 고사에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했는데, 너무 지나치는 것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뜻이지요. 여기서 대전까지 가야 하는데, 지나쳐서 천안까지 가버렸다면, 그건 문제입니다. 대전이 목적지라면 대전에서 멈출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합니다. 그것이 ‘지혜’입니다. 성령의 능력을 받아서 힘차게 일하는 것은 좋은데, 너무 지나쳐서 요즘 말로 ‘오버’하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고린도교회 사람들에게 주의를 준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4장 23절입니다. “온 교회가 한 자리에 모여서 모두가 방언으로 말하고 있으면, 갓 믿기 시작한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 들어와서 듣고, 여러분을 미쳤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을 충만히 받는 것은 좋은데, 그래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고, 병도 고치고… 하는 것은 좋은데, 믿지 않는 사람들 앞에서 너무 티를 내면 미친 사람 취급을 받을 수 있으니, 좀 조절하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지혜’란 조절의 힘입니다. 불경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습니다. “태산 같은 자부심을 갖고 누운 풀처럼 자기를 낮추어라. 역경을 참아 이겨내고 형편이 잘 풀릴 때를 조심하라. 재물을 오물처럼 볼 줄도 알고, 터지는 분노를 잘 다스릴 줄도 알아라. 이것이 지혜로운 이의 삶이니라.” ― 잡보장경. 석성우 석지현 편, 《가슴을 적시는 부처님 말씀 300가지》(민족사, 2002), 168쪽.

■ 맺는 말씀

저는 오늘 세 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로서, 세 가지 자격을 갖추어야 하는데, ▶첫째는 사람들의 신망을 얻어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하나님으로부터 성령을 충만히 받아야 한다는 것이고, ▶셋째는 지혜가 풍성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것들, 곧 신망과 성령과 지혜를 어떻게 얻을 수 있습니까? 돈으로 살 수도 없습니다. 어디 가서 배울 수도 없습니다. 오직 우리 자신을 하나님 앞에 내놓고, “주님, 우리에게 신망을 주십시오.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 주십시오. 우리에게 지혜를 풍성히 주십시오” 하고 기도하면 됩니다.

이제 우리가 주님의 은혜로 신망을 얻고, 성령이 충만해지고, 지혜가 풍성해져서, 자격 있는 제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럼으로써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의 수가 부쩍 늘어갈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22 생수를 강물처럼
321 예수님처럼 달라져 보아요!
» "제자들의 수가 부쩍 늘어가고"
319 광야에서 깨달은 것
318 "깨어 있어라!"
317 우리 가운데에 하나님의 나라를!
316 빛에 속한 사람
315 지금 나와 함께 있는 그를 위하여!
314 괴담, 유언비어, 예언
313 "따로 외딴 곳으로 와서 좀 쉬어라!"
312 믿음의 어머니들
311 사무엘처럼
310 "머물러 있어라!"
309 지금 이 나라에서는
308 그리스도의 사람
307 여러분의 수고가 헛되지 않습니다!
306 “하나님의 양떼를 먹이십시오!”
305 가시 돋친 채찍을 발길로 차지 마라!
304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303 주님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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