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전대환 채널 바로가기

성서본문 요한1서 3:16-19 
설교일 2012-03-25 
설교장소 한울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주일 

■ 성서 본문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형제자매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누구든지 세상 재물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기 형제자매의 궁핍함을 보고도, 마음 문을 닫고 도와주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이 그 사람 속에 머물겠습니까? 자녀 된 이 여러분, 우리는 말이나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과 진실함으로 사랑합시다.

<요한일서 3:16-18>


■ 들어가는 이야기

지금이 3월 하고도 말인데, 어제는 바람이 많이 불고 기온도 뚝 떨어져서 계절이 거꾸로 가는 것이 아닌가 할 정도였습니다. 아마도 겨울에 추웠어야 할 것이 아직 좀 남아서 마지막 찬바람을 다 털고 가려고 그렇겠지요. 그래도 봄은 옵니다. 지난 한 주간 온갖 수고에 피로해졌을 여러분의 몸과 마음에, 우리 주님께서 따뜻한 위로로 함께 해주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 기도가 시작되기 전

공지영 작가가 쓴 ≪봉순이 언니≫라는 소설을 읽어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소설의 제목은 ‘봉순이 언니’이지만 주인공은 1인칭 시점의 ‘나’인 것 같습니다. 팔자가 드세고 파란만장한 봉순이 언니, 주인공인 ‘나’의 집에 얹혀사는 봉순이 언니의 삶을 그렸지만, 작가는 ‘나’라는 어린 꼬마의 눈을 통해서 하고 싶은 말을 합니다. 거기 보면 ‘나’의 집에서 떡을 해놓고 봉순이 언니와 함께 소원을 비는 장면이 나옵니다. 어머니는 떡 접시가 놓인 곳마다 다가와 두 손을 둥그렇게 모아 마치 허공의 모든 것을 끌어 모으듯 합장을 합니다. 어머니의 뒤를 따르며 봉순이 언니도, ‘나’도 그렇게 합니다.

어린 꼬마 아가씨가 보니 어머니는 식구들의 건강과 안녕을 비는 것 같았습니다. 오빠가 중학교 입시에서 시험을 잘 쳐서 좋은 학교에 가게 해달라고 빌었는지도 모릅니다. 더 부자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을 수도 있지요. 봉순이 언니는 무사히 출산할 수 있게 해달라고, 그리고 세상에 태어나 처음 느껴보는 이 따뜻한 행복을 깨지 말아달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 다음에 나오는 말이 참 인상적입니다. 그대로 옮기면 이렇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저 두 손을 모았을 뿐이었다. 나는 아직 기도할 줄 몰랐다. 고난이 오기 전에 아직 기도는 시작되지 않는 법이니까.” ― 공지영, ≪봉순이 언니≫((주)도서출판푸른숲, 2002), 165쪽.

■ 고난 만들기

어머니는 세상풍파를 많이 보았으니까, 기도 제목이 많습니다. 봉순이 언니도 분명한 기도 제목이 있습니다. 뱃속에 있는 아이가 세상에 나와도 환영을 받지 못 할 게 자명한 상황이고, 그 아이와 자신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그저 불안하기만 한 처지니, 기도가 절로 나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어린 ‘나’는 어머니와 봉순이 언니가 기도를 하니까 그냥 따라서 손을 모을 뿐입니다. ‘고난이 오기 전에 기도는 아직 시작되지 않는다!’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몸에 병이 생겨서, 경제사정이 너무나 어려워서, 자식이 속을 썩여서, 누군가 나를 괴롭히는 사람이 있어서… 등등, 이것만 아니면 내게 무슨 걱정이 있을까 생각될 때, 그때 기도의 문이 열립니다.

성경에 보면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데살로니가전서 5:17) 했지요. 하나님의 자녀로서 당연히 ‘끊임없이’ 기도를 해야 하는데, 그래야 우리의 삶이 온전하게 유지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조금만 편해져도 하나님을 잊어버립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산다는 것을 잊고, 내 덕으로 사는 것으로 착각합니다. 그러다가 뼈아픈 고난이 오면 그제야 다시 하나님을 찾습니다. 그래서는 안 되지요. 저는 여러분이 고난보다는 행복함 속에서 살면 좋겠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고난이 있든 없든 끊임없이 기도하면서 살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훈련을 해야 합니다.

■ “이것으로 우리가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홍길동전≫을 쓴 허균이란 분을 아시지요? 그분이 고전을 인용하여 이런 글을 썼습니다. “술은 적게 마시고 죽은 많이 먹으며, 채소는 많이 먹고 고기는 적게 먹는다. 입은 적게 열고 눈은 자주 감으며, […] 서적은 많이 수집하고 금옥은 적게 모은다. 명성은 적게 취하고 굴욕은 많이 참으며, 착한 일은 많이 하고 녹봉은 적게 구한다. 편리하다고 다시 가지 말라. 좋은 일도 없음만 못한 법이다.” ―『공여일록』. 허균(김원우 편), ≪숨어사는 즐거움≫(솔출판사, 2010), 218쪽. 요즘 식으로 표현하자면 ‘술은 적게 마시고, 차는 많이 마시자. 고기는 적게 먹고, 채소는 많이 먹자. TV는 적게 보고, 책은 많이 읽자. 콘크리트는 적게 만지고, 흙은 많이 만지자. 공상은 적게 하고, 명상은 많이 하자. 명성은 적게 구하고, 굴욕은 많이 견디자.’ 이런 말이겠지요. 평소에 이런 절제훈련을 하면서 살면, 그 자체가 이미 고난이기 때문에 고난이 몸에 배게 됩니다. 그러면 실제 큰 고난이 와도 끄떡없습니다. 예방주사를 맞아 두는 셈이지요.

요한일서 3:16 말씀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고난이 오기 전까지는 아직 기도가 시작되지 않는다!’는 말처럼, 아픔을 겪지 않고는 진정한 사랑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장례식을 치른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은, 부고를 받으면 누구보다 먼저 달려갑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기가 상을 당해 보니 그 슬픔이 어떤지 알겠고, 사람들이 찾아와 주는 것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사람들은 자신이 경험을 해봐야 남의 사정도 헤아리게 되는 법인데,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그 믿음 안에서 예수님과 한 몸이 되려고 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한 사랑, 우리를 향한 사랑 때문에 죽으셨던 분입니다. 예수님은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정의 때문에 죽으셨던 분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정신을 가지고 예수님과 한 몸이 되면 예수님의 그 숭고한 삶이 우리의 것이 됩니다.

■ 맺는 이야기

이제, 고대 페르시아의 어떤 사람이 남긴 말을 소개하면서 제 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 “발이 없는 사람을 보기 전까지는, 나는 내게 신발이 없음을 슬퍼했다.” 지금까지는 좋은 신발이 없는 것을 슬퍼하면서 살았는데, 어느 날 보니 세상에 발이 없는 사람도 있더라는 겁니다. 그런 호사스러운 불평을 하고 살았던 자신이 얼마나 부끄러웠겠습니까? ‘고난이 오기 전까지는 아직 기도가 시작되지 않는다!’지만, 직접 고난을 겪어보지 않고도 고난 받는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하게 되기를, 그리고 실제로 우리에게 고난이 몰려온다고 할지라도 오히려 감사함으로써 고난을 받아들이며, 그 고난을 이겨나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83 공평과 정의가 실현되는 세상
282 고향을 찾아서
281 고향으로 가자
280 고통의 원인 제거하기
279 고양이는 꼬리 두 개가 필요할까?
278 고백하라!
277 고뇌하는 이사야
» 고난이 오기 전에 아직 기도는 시작되지 않는다!
275 고난과 구원의 상관관계
274 고귀한 사람의 고귀한 선택
273 고 최성규 목사님을 배웅하며
272 고 이수천 목사님을 배웅하며
271 계획 세우기
270 격려하십시오!
269 겨울이 되기 전에
268 겨울은 지나고 비도 그치고
267 겨울은 지나고
266 겨울 내내, 여름 내내
265 게임의 결과
264 건강을 부르는 식습관

LOGIN

SEARCH

MENU NAVIG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