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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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지기 2006-04-17 17:4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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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마태복음서 28:1-10 
설교일 2006-04-16 
설교장소 구미안디옥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부활절 
■ 성서 본문

안식일이 지나고, 이레의 첫 날 동틀 무렵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러 갔다. 그런데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났다. 주님의 한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 무덤에 다가와서, 그 돌을 굴려 내고, 그 돌 위에 앉았다. 그 천사의 모습은 번개와 같았고, 그의 옷은 눈과 같이 희었다. 지키던 사람들은 천사를 보고 두려워서 떨었고, 죽은 사람처럼 되었다. 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나는, 너희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찾는 줄 안다. 그는 여기에 계시지 않다. 그가 말씀하신 대로, 그는 살아나셨다. 와서 그가 누워 계시던 곳을 보아라. 그리고 빨리 가서 제자들에게 전하기를, 그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 나셔서, 그들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니, 그들은 거기서 그를 뵙게 될 것이라고 하여라. 이것이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이다.” 여자들은 무서움과 큰 기쁨이 엇갈려서, 급히 무덤을 떠나, 이 소식을 그의 제자들에게 전하려고 달려갔다. 그런데 갑자기 예수께서 여자들과 마주쳐서 “평안하냐?” 하고 말씀하셨다. 여자들은 다가가서, 그의 발을 붙잡고, 그에게 절을 하였다. 그 때에 예수께서 그 여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무서워하지 말아라. 가서, 나의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러면, 거기에서 그들이 나를 만날 것이다.”

(마태복음서 28:1-10)


■ 들어가는 말씀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고,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아니할 것이다”(요한복음서 11:25-26). 대략 이천 년쯤 전 오늘 새벽에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여러분과 저는 그 일을 기뻐하며 축하하기 위해 오늘 이렇게 잔치에 참여하였습니다.

노무현 정권이 출법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만 3년이 넘었습니다. 2003년 2월 25일, 역사상 유례가 없는 대통령 취임식이 열렸습니다. 대한민국 정부가 주관하는 거대한 잔치였습니다. 여러분 가운데서도 다녀오신 분이 있습니다만, 그 당시에 주변에서 “나는 뭐냐?” 하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습니다. 거기 참석하려고 추첨까지 해서 뽑힌 3만 명 말고, 순수하게 초청된 인사가 1만 5천 명이나 되는데, 거기에도 들지 못했으니 좀 서운하다, 그 말입니다.

자, 만일 예수님께서 오늘 이 세상에 오셔서 부활 잔치를 여신다고 할 때, 거기 초청될 사람은 어떤 사람이겠습니까? 어떤 사람들을 불러서 축하를 하고, 함께 기뻐하시겠습니까?

온갖 고초를 겪으시고 부활하신 아침에, 무덤을 찾아온 여자들에게 주님께서는 이렇게 지시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일러서,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하여라.”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죽인 사람을 찾아서 복수하시려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맛난 음식을 먹자고 하시지도 않았습니다. 어디 가서 쉬고 싶다고 하시지도 않았습니다. 외국으로 가자고 하시지도 않았습니다.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하시고 홀로 훌쩍 떠나셨습니다.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죽어서도 잊지 못할 갈릴리의 형제자매들을 찾아가셨습니다. 피붙이를 그리워하셔서 그러신 것이 아닙니다.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 장애인, 창녀, 온갖 세상 욕을 다 먹는 세리…, 이런 사람들을 만나시려고 갈릴리로 가자고 하셨던 것입니다.

부활이 상징하는 것은 ‘최후의 승리’입니다. 최후의 승리를 축하하는 잔치자리에는 그 동안 고생한 사람들, 그 동안 함께 울던 사람들, 그 동안 함께 웃던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참여하게 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최후의 승리를 축하하는 잔치를 여신다고 할 때, 저와 여러분은 과연 예수님의 초청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이 영광스러운 잔치에 참여하기 위해서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생각하고, 함께 행동해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의 동지가 될 수 있고, 예수님의 초청 대상자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초청을 받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그분이 계신 곳에 언제나 같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떤 자리에 우리가 주님과 함께 있어야 하는지 생각해 봅시다.

1. 첫째, 주님께서 고난 받으시는 현장에 우리도 함께 있어야 합니다.

전쟁에서 승리했을 때, 제일 생각나는 사람은 함께 고생했던 전우들입니다. 대학 입시에서 성공했을 때 제일 생각나는 분은 고생하며 공부 뒷바라지를 해주시던 어머니일 것입니다. 한 가정이 어렵게 생활하다가, 그야말로 눈물의 빵을 먹어가며 고생에 고생을 더해서, 결국은 성공하여 형편이 펴지게 되었다면, 그 때 가장 생각하는 사람은 그 고생스럽던 시절 함께 아파하며 함께 땀 흘렸던 남편과 아내일 것입니다.

세상에 고생 없는 성공은 없고, 고난 없는 승리는 없습니다. 고생에 동참하지 않고는 성공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고난에 동참하지 않고는 승리의 잔치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시는 고난의 자리에 함께 가지 않고는 예수님께서 여시는 부활의 잔치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손해를 보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고난을 받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바보 취급도 받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모욕도 겪을 때, 부활의 영광스러운 자리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고난에 참여한 사람이 예수님의 마지막 잔치에 제 1순위로 초청될 사람입니다.

2. 둘째, 주님께서 부활하시는 현장에 우리도 함께 있어야 합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고,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아니할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다시 살아납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아니할 것이다” 하신 말씀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저와 여러분은 살아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영원히 죽지 않을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에게는 죽음이 없습니다.

파도치는 바다를 생각해 봅시다. 파도가 일어났다가 죽고, 또 다시 일어났다가 죽기를 반복합니다. 파도 하나가 죽었다고 해서 그게 정말 죽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파도가 돼서 다시 일어납니다. 바다 전체를 놓고 볼 때는 영원히 살아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디언들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죽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살아가는 세계가 바뀔 뿐이다.”

그래서 로마 시대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죽음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이미 죽었으며 당신의 인생은 이미 끝났다고 생각하라. 그리고 지금부터는 당신에게 주어질지도 모를 미래를 덤으로 살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연에 따라 살아가라.”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김철곤 역), 《아우렐리우스 명상록》(민중출판사, 2005), 160쪽.


지금 우리는 살아서 예수님을 믿고 있습니다. 우리는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미 ‘지금’ 부활을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말한 것처럼, 우리는 이제부터, 죽음 이후의 미래를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 수요일, 기도회 시간에 김 장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지금까지 세 차례 정도 죽을 고비를 넘겼다고 하셨습니다. 저 역시 그런 경험이 몇 차례 있습니다. 저나 여러분이나 어쩌면 이 자리에 앉아 있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는 지금 부활의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3. 셋째, 우리는 주님께서 가시는 역사의 현장에 함께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가시는 역사의 현장은 어디입니까? 죽었다가 살아나서 가장 먼저 가셨던 곳, 갈릴리입니다. 갈릴리는 가난한 민중들이 사는 곳입니다. 갈릴리는 고생하는 사람들이 사는 곳입니다.

저는 어른들로부터 8.15 해방에 대한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 때의 감동과 감격에 대해서도 수없이 들었습니다. 일본 사람들에게 압제를 당하다가 일본 국왕이 라디오 방송으로 항복을 선어하고, 이 땅에 살던 일본 사람들이 혼비백산 도망가고, 온 국민이 길거리로 나와서 만세를 부르며 서로 얼싸안았던 감격은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뭉클한 일입니다.
1960년, 4.19 혁명이 일어나 수많은 사람이 죽었지만, 결국 이승만 정권이 무너졌을 당시의 감격도 정말 대단한 것이었다고 들었습니다.

박정희 정권이 무너지고 1980년 서울의 봄이 왔을 때의 감동은 제가 직접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비록 잠깐 동안의 감격이기는 했지만 그것도 잊지 못할 역사의 현장이었습니다.

전두환 정권 막바지, 1987년 6월 항쟁 때, 서울 시청 앞은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로 가득 찼었습니다. 수십만 인파가 모여서 독재정권을 규탄하며 이한열이를 살려내라고 소리를 높일 때의 그 감격은 현장에 있지 않았던 사람은 잘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약한 사람들이 억압에서 벗어나는 역사의 현장마다 거기에 계십니다. 우리나라가 일본의 억압에서 벗어나던 그 자리에도 계셨고, 독재에 항거해서 학생들이 피 흘리던 그 자리에도 계셨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계시던 그 자리에 어떤 모양으로 함께 있어야 하겠습니까? 조선을 압제하던 일본인이나 친일파의 모습으로 있어서는 안 됩니다. 민주를 외치며 항거하는 그 역사의 현장에 독재자나 독재자의 앞잡이로 있어서도 안 됩니다.

역사의 현장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친구로, 예수님의 동료로, 예수님의 협조자로 함께 있어야 합니다.

■ 맺는 말씀

이제 우리 다 함께 최후의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 주님께서 베푸시는 잔치에 당당하게 초청 받는 복된 성도들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주님과 함께 고난의 현장에 동참해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이 부활의 현장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가시는 역사의 현장, 고난과 억압이 풀어지는 그 자리에 주님과 함께 있어야겠습니다.

주님께서 가시는 곳이라면 그 어디라도 감사하며, 그림자처럼 함께 동행하여, 최후의 승리를 축하하는 잔치 자리에 모두 다 참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 편안함을 주는 사람
201 깨끗하고 흠 없는 경건
200 “기쁨으로 물을 길어라!”
199 우리가 꿈꾸는 나라
198 남은 사람들만 돌아오리라!
197 [새벽] 홀로 가는 길
» 주님 계신 그 곳에
195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열심
194 주님께서 쓰시는 사람 - (3)열정의 사람
193 주님께서 쓰시는 사람 - (2)기도의 사람
192 주님께서 쓰시는 사람 - (1)진지한 사람
191 성공하는 삶의 세 단계 - (3)발전
190 성공하는 삶의 세 단계 - (2)평가
189 성공하는 삶의 세 단계 - (1)수행
188 사람을 의지하지 마십시오!
187 순수한 신앙을 가지면 좋은 점
186 하나님을 설득하는 방법
185 희망을 전하는 사람
184 사랑의 불꽃
183 귀한 집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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