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전대환 채널 바로가기

마을지기 2009-09-20 13:25:27
0 5447
성서본문 창세기 12:1-3 
설교일 2009-09-20 
설교장소 구미안디옥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주일 


■ 성서 본문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네가 살고 있는 땅과, 네가 난 곳과, 너의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내가 보여 주는 땅으로 가거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너에게 복을 주어서, 네가 크게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너를 축복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복을 베풀고, 너를 저주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저주를 내릴 것이다. 땅에 사는 모든 민족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다.”

<창세기 12:1-3>


■ 들어가는 말씀

요즘 우리가 수요일마다 사도행전을 공부하고 있는데, 사도행전의 주인공 격인 사람이 바울입니다. 이 양반은 인생의 전반기와 후반기가 확연히 나뉘는 사람이지요. 원래 이분은 당시 이스라엘에서 촉망 받던 엘리트였습니다. 유대인 귀족들과 의회로부터 전권을 위임 받아서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족치는 일을 했지요. 그런데 이분이 예수님을 만난 뒤부터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때부터는 복음의 사도가 되어서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가장 큰 족적을 남기게 됩니다.

사람이 살다가 보면 인생에서 큰 변화와 전환점을 몇 차례 경험하게 됩니다. 한평생 큰 변화 없이 살아가는 사람도 있기는 하지만,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인생의 전기(轉機), 곧 터닝 포인트(turning point)가 있습니다. 바울의 경우는 다마스쿠스로 예수쟁이 잡으러 가다가 길에서 고꾸라져서 예수님을 만난 것이 전기였습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인물 가운데서는 아브라함이 인생의 전기를 통하여 대박을 터뜨린 사람이었습니다. 오늘은 아브라함 이야기를 함께 나누어보려고 합니다.

■ 고향을 떠나서.

아브라함은 원래 이름이 아브람이었습니다. 인생의 전환기를 거치면서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바꾸었습니다. 아브람의 식구들은 하란이란 곳에서 살았습니다. 원래 조상들의 고향은 우르라는 곳이지만, 아브람의 아버지 데라가 가솔들을 데리고 그곳을 떠나 가나안으로 오던 중 하란에서 멈추었고, 거기서 기반을 잡았습니다. 재산도 꽤 모았습니다. 아브람이 하란에 살 때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네가 살고 있는 땅과, 네가 난 곳과, 너의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내가 보여 주는 땅으로 가거라!”

삶의 터전인 짐과 땅을 버리고, 혈육인 아버지까지 남겨두고 새 삶을 향하여 가라는 것입니다. 어디로 갑니까? “내가 보여 주는 땅으로” 곧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땅으로 가라고 했습니다. 여기가 아브람의 삶의 터닝 포인트였습니다. 이때 아브람의 나이는 일흔 다섯이었습니다. 인생의 터닝 포인트는 나이와 상관이 없습니다. 바울은 젊을 때 삶이 180도로 바뀌었지만, 아브람의 경우는 늙어서 새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아브람’에서 ‘아브’라는 말은 ‘아버지’ 또는 ‘아비’라는 뜻입니다. 히브리말로 ‘아빠’는 우리말로도 ‘아빠’입니다. 히브리말과 우리말이 비슷한 점이 있지요. 이건 지나가는 이야기입니다만, 우리말의 ‘어머니’라는 말은 영어로는 ‘마더’(mother)지요. 독일말로는 ‘무터’(Muter)입니다. 중국말로는 어미 모 자를 써서 ‘무’(母)라고 합니다(母亲, muqin). ‘엄마’는 서양에서는 ‘맘’(mam)이라고 하지요. 여기는 모두 미음(ㅁ) 자가 들어가 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를 보면, 영어로는 ‘파더’(father)이고 독일말로는 ‘파터’(Vater)입니다. 중국에서는 아비 부 자를 써서 ‘푸’(fu, 父)라고 합니다. 전부 피읖(ㅍ) 계통이지요. 이런 현상은 수많은 나라의 언어에서 나타납니다. 어머니를 말할 때 ‘미음’은 입술을 다물고 발음을 해야 합니다. 공기를 안으로 모아들이는 발음입니다. 그런데 아버지를 말하는 비읍 또는 피읖은 입술을 터뜨리고 공기를 밖으로 내뱉으면서 발음을 해야 합니다. 이건 무엇을 말하는가 하면, 어머니는 내적으로 감싸주시고 안아주시는 분, 아버지는 외적으로 일으켜 세워주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어쨌든 ‘아브람’이라는 이름은 ‘존귀한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존귀한 아버지’ 하면 그냥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귀동이’쯤 되겠지요. 그러나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아브람은 이름이 ‘아브라함’으로 바뀌었습니다. ‘아브라함’이란 이름은 좀 특별한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뜻은 ‘열국의 아버지’ 곧 여러 나라의 아버지, 많은 나라의 아버지입니다. 조금 확대해석하면 ‘모든 나라의 아버지’가 됩니다. 이 이름 속에는, 지금까지는 평범한 가장 또는 족장이었지만 이제는 세계인의 조상이 될 것이라는 비전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혈육의 조상은 각각 다르지만 세계의 그리스도인들이 모두 아브라함을 가리켜서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릅니다.

■ 축복의 사람으로.

아브람이 아브라함으로 바뀌면서 그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가, 하는 내용이 2~3절에 나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너에게 복을 주어서, 네가 크게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너를 축복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복을 베풀고, 너를 저주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저주를 내릴 것이다. 땅에 사는 모든 민족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다.” 이것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요즘 말로 하면 축복의 소비자가 아니라 축복의 생산자 또는 공급자가 되게 해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소비자와 공급자가 어떻게 다릅니까? 예전에 제가 다른 교회에서 목회할 때, 우리 교회에 유한킴벌리에 다니는 직원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아가씨였는데 지금은 아주머니가 되어 있겠지요. 이 친구가 기숙사에 있다가 가끔씩 고향에 오면 화장지를 한 아름 들고 옵니다. 그 집에는 화장지와 티슈가 넘쳐나요. 교회에도 자주 들고 왔습니다. 티슈를 공급하는 공장에 다니니까 티슈는 아쉬움 없이 쓰는 겁니다. (그 당시에 현대자동차에 다니던 아가씨도 있었는데, 티슈를 들고는 그 아가씨에게, 그 회사는 직원들에게 자동차 좀 안 나누어주느냐고 농담을 했던 기억도 있습니다만,)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공급자 집에는 물건이 풍성한 법입니다.

농사짓는 사람도 그래요. 포도원을 경영하는 사람들은 대부분의 포도를 내다 팔지만, 어쨌든 포도는 실컷 먹을 것 아닙니까? 우리 교회 2층에 컴두리센터가 있지요. 우리가 인터넷 서버를 운영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다른 면에서는 가난한지 몰라도 서버 공간과 도메인 같은 것들에 있어서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얼마든지 아쉬움 없이 쓸 수 있어요. 축복의 공급자와 소비자도 그렇게 차이가 나는 겁니다. 우리가 복의 근원이 되면, 남에게 복을 다 나누어주고 남는 것만 챙겨도 축복 때문에 배가 터질 정도가 되는 겁니다.

■ 어느 의사 이야기.

자, 다시 인생의 전환점 이야기로 돌아갑시다. 요즘 서울 쪽에서 일하고 있는 어떤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 이야기입니다. 이 사람이 의과대학 4학년 때의 일이었습니다. 새벽 2시, 이 사람은 갑자기 호출을 받고 수술실로 뛰어갔습니다. 거기에는 한 산모가 극심한 통증으로 신음하고 있었고, 그 옆에서는 의사와 간호사들이 땀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아기의 심장이 뛰는 소리가 기계를 타고 쿵쿵 들렸습니다. 그는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을 거기서 난생 처음으로 보았습니다.

아이 낳는 산모의 고통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고 하지요. 생과 사를 넘나드는 것 같은 산모의 비명이 이어지더니 드디어 아기의 머리가 점차 엄마의 몸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산모의 고통이 극에 달했습니다. 산모의 비명소리와 함께 아기의 몸이 쑥 빠져나왔습니다. 막 태어나서 핏덩이 같은 갓난아기가 팔다리를 꼬물거리며 마구 울어댑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고통으로 비명을 지르던 산모의 표정이 환하게 바뀌었습니다. 새 생명이 태어나는 거룩한 순간, 이사람은 거기서 큰 충격을 느꼈습니다. 엄청난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 상황을 겪으면서 그는 소아과 의사를 꿈꾸던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산부인과 의사가 되고 싶다.’ 여기가 그의 삶의 전환점이었습니다. 그는 산부인과 의사가 되었습니다.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거쳐서 새 삶을 산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술술 잘 풀려 나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여태까지보다 더 큰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분이 그랬습니다. 소아과 의사가 되었으면 크게 고민하지 않아도 될 일이 있었습니다. 바로 ‘낙태’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양심을 지키고 사는 의사가 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산부인과 의사라는 직책이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인데,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을 자기 손으로 죽일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그의 생각과 크게 달랐습니다.

1999년 12월에 분당에 산부인과를 개원하면서 절대로 낙태수술은 하지 않겠다고 그는 다짐했습니다. 그러나 새로 생긴 병원에 찾아오는 환자도 별로 없는데다가 그 가운데서도 낙태를 하려고 오는 사람이 태반인데, 낙태 환자를 안 받으니 파리만 날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악마의 유혹’이라고 생각하며 처음에는 당당히 물리쳤습니다. 그렇지만 그분 말이, 악마의 수법은 능숙하고도 집요했답니다. 개업한 지 석 달 만에 병원은 극심하게 어려워졌습니다. 거기에다가 그의 아내가 앓아눕는 시련까지 겹쳤습니다.

넉 달째 적자를 이어 갔습니다. 통장도 점점 바닥이 보였습니다. 너무 어려우니까, 유혹도 커졌습니다. ‘그 많은 산부인과 의사 가운데서 낙태를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던 의사가 없었을까? 많았을 거야. 그렇지만 나보다 몇 배나 뛰어난 사람들도 결국에는 낙태수술을 하고야 말았다. 왜 그랬을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산부인과 의사를 할 수 없기 때문일 거야.’ 이렇게 생각한 그는 아내에게 물어봤습니다. “병원이 안정될 때까지만 낙태수술을 하면 어떨까?” 아내는 명확한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결코 마음이 편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는 그런 생각을 접었습니다. ‘하나님은 날아다니는 새들도 배불리 먹이시고, 들에 핀 꽃도 예쁘게 입히시는 분인데, 당신 뜻대로 살려고 하는 나 하나 돌보지 못하시겠는가.’ 그의 생각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래, 나 혼자서 낙태수술을 안 하는 것으로 그칠 것이 아니다. 낙태를 막자!’ 확신이 섰습니다. 그래서 그는 병원에다가 방 한 칸을 비워서 기도실 겸 상담실을 꾸몄습니다. 상담 전문가를 따로 두고, 낙태하러 병원에 온 산모들을 설득했습니다. 상담을 하다가 눈물을 흘리며 마음을 바꾸는 여성들이 많았습니다. 성공이었습니다. 게다가 장장 7개월 만에 처음으로 병원 수지가 흑자로 돌아섰습니다. 그 뒤로는, 낙태를 안 하는 병원이라는 소문을 듣고 환자들이 얼마나 많이 찾아오는지, 병원이 북적북적 붐빈다고 합니다. 인생의 전환점을 거치면서, 이분도 축복의 소비자에서 축복의 생산자로 바뀐 것입니다. 자기 혼자 인생의 전환기를 맞이한 것에 그치지 않고 많은 사람들에게 인생의 전환기를 만들어 주게 되었습니다.

■ 맺는 말씀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을 불러서 아브라함이 되게 하시면서, “네가 크게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 하고 약속하셨습니다. 무엇으로 이름을 떨칩니까? 복의 소비자가 아니라 복의 메이커로, 복을 생산하는 유명 브랜드로 이름을 떨치게 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아브람의 인생의 전환점은 하나님을 만난 사건이었습니다. 아브람이 아브람으로 그대로 있었더라면 안정된 삶을 누릴 수는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거기서 머물지 않고,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개조시키겠다는 하나님의 계획을 받아들임으로써 열국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바울의 인생의 전환점도 주님을 만난 사건이었습니다. 사울이 사울 그대로 있었더라면 출세가도를 달릴 수는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거기서 머물지 않고, 사울을 바울로 개조시키겠다는 하나님의 계획을 받아들임으로써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예수 전파자, 하나님 나라 전파자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예수님을 믿고 나서 그 전보다 살림살이가 좋 나아졌습니까? 그렇다면 그것도 다행스러운 일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만, 우리가 예수를 믿고 그것을 인생의 터닝 포인트로 받아들인다면, 살림살이 나아지는 게 문제가 아닙니다. 그보다 훨씬 더 크고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어떤 사람에게도 인생의 큰 기회가 몇 차례는 온다고 합니다. 그 몇 차례의 전환점 가운데서 예수님을 믿기 시작한 그 순간이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오래 전에 예수를 믿었지만, 아직까지 그것이 전환점임을 깨닫지 못했다면, 그것은 우리가 주님을 제대로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더라도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이 주님을 진정으로 만나는 순간, 그 때가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개조시키실지 우리는 상상할 수 없습니다. 주님께 여러분의 삶을 온전히 맡김으로써, 여러분 모두가 온 세상 사람들에게 복을 나누어주는 놀라운 복의 공급자들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1022 떠남과 따름
» 내 인생의 전환점
1020 "너로 말미암아"
1019 바벨탑 이야기
1018 즐거움을 누려라!
1017 이야기 값
1016 투명인간
1015 아름다움에 대하여
1014 죄에서 자유를!
1013 단순하게 삽시다
1012 극단을 피하라!
1011 죽는 날이 더 중요하다!
1010 주님의 제자가 되려면
1009 행복하게 살기를!
1008 "행복하게 살기를!"
1007 잠이 보약입니다!
1006 하나님의 집에 갈 때에
1005 누구 때문에 이 수고를 하는가?
1004 이런 한 해가 되게 하소서!
1003 주님께서 주신 은총

LOGIN

SEARCH

MENU NAVIG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