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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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지기 2012-09-09 16: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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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창세기 11:1-9 
설교일 2012-09-09 
설교장소 한울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주일 

■ 성서 본문

처음에 세상에는 언어가 하나뿐이어서, 모두가 같은 말을 썼다. 사람들이 동쪽에서 이동하여 오다가, 시날 땅 한 들판에 이르러서, 거기에 자리를 잡았다. 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자, 벽돌을 빚어서, 단단히 구워내자.” 사람들은 돌 대신에 벽돌을 쓰고, 흙 대신에 역청을 썼다. 그들은 또 말하였다. “자, 도시를 세우고, 그 안에 탑을 쌓고서, 탑 꼭대기가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의 이름을 날리고, 온 땅 위에 흩어지지 않게 하자.” 주님께서 사람들이 짓고 있는 도시와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다.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아라, 만일 사람들이 같은 말을 쓰는 한 백성으로서, 이렇게 이런 일을 하기 시작하였으니, 이제 그들은, 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지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그들이 거기에서 하는 말을 뒤섞어서,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주님께서 거기에서 그들을 온 땅으로 흩으셨다. 그래서 그들은 도시 세우는 일을 그만두었다. 주님께서 거기에서 온 세상의 말을 뒤섞으셨다고 하여, 사람들은 그 곳의 이름을 바벨이라고 한다. 주님께서 거기에서 사람들을 온 땅에 흩으셨다.

<창세기 11:1-9>


■ 들어가는 이야기

본격적으로 가을이 시작되는 9월 둘째 주일입니다. 참 좋은 나날들이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좋은 계절에, 주님 앞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는 여러분의 몸이 가을 공기처럼 가볍게 되기를, 여러분의 마음이 가을 하늘처럼 청명하기를, 그리고 여러분의 영혼이 결실을 기다리는 가을처럼 풍성하게 되기를 두 손을 모아 기원합니다. 엊그제, 지난 금요일이 백로(白露)였지요. ‘백로’란 ‘흰 이슬’이라는 뜻 아닙니까? 이때쯤 되면 밤 기온이 이슬점 아래로 내려가서 풀잎에 이슬이 맺힌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습니다. 가을을 표현하는 말이 많지만, 우리 현실에서 볼 때 가을은 도전의 계절인 것 같습니다. 각 급 학교 입시가 가을에 진행됩니다. 그리고 요즘 참 어렵다고 하는 입사시험도 대개 가을에 치러집니다. 그래서 오늘은 ‘도전’(挑戰)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 플러스 도전

오늘 저는 세 가지 도전에 대해서 말씀을 드릴 텐데요, 가장 먼저 말씀드릴 것은 ‘플러스 도전’입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도전은 대개 여기에 해당할 것입니다. 내가 운전면허를 따야 되겠다, 이렇게 마음을 먹고 학원에 등록해서 학과시험을 치고 코스 과정을 마치고 도로주행까지 통과해서 운전면허증을 받으면 도전에 성공한 것입니다. 없던 것을 새로 가지는 것이지요. 그래서 저는 이것을 ‘플러스 도전’이라고 이름을 붙여 봅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원하는 학교에 들어가는 것, 그것도 훌륭한 도전입니다. 최선을 다해 준비해서 원하는 일자리를 얻는 것, 그것도 멋진 도전입니다. 오늘 새벽에 소식을 들었습니다만, 김기덕 감독의 영화 〈피에타〉가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받았습니다. 이 양반은 중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인데, 영화계의 이단이라고 불릴 정도로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이런 사람이 영화인으로서 최고의 도전에 성공한 것은 정말 축하할 일입니다. 이것도 플러스 도전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어쨌든 플러스 도전 가운데는 자기 자신을 위한 도전이 있고, 세상을 위한 도전이 있습니다. 자신의 발전을 위한 도전도 아름답지만 그것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세상의 발전을 위한 도전입니다.

옛날 중국에 여불위(呂不韋)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기원전 3세기쯤 살던 사람인데요, 이 사람은 이재(理財)에 아주 밝은 상인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자신의 실력을 발휘하여 돈을 무지무지하게 많이 벌었습니다. 돈 버는 데만 밝은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수완도 대단해서 진(秦)나라의 장양왕 때는 승상이 되기까지 했습니다. 돈과 권력을 가지게 되자 그는 좀 별난 도전을 하나 했습니다. 요즘 말로 하자면 백과사전을 만든 것입니다. 그는 3천 명이나 되는 학자들을 자기 집에서 식객으로 거느리고 그들에게 일거리를 주었습니다. 무슨 일거리냐 하면 각기 자기들이 알고 있는 지식을 모두 책에다 쓰게 만든 겁니다. 그런 다음에 그는 학자들이 적은 것을 성문 앞에 내걸고는, 누구든지 한 글자라도 고치면 크게 상을 준다는 방(榜)을 붙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그 내용 가운데서 잘못된 것은 바로잡고 모자란 것은 보태는 작업에 참여했습니다. ― 베르나르 베르베르(이세욱 임호경 역),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주식회사 열린책들, 2011), 17쪽. 요즘의 위키피디아 방식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렇게 해서 나온 책이 《여씨춘추(呂氏春秋)》입니다. 전국시대 말기의 귀중한 사료지요. 물론 여불위의 인격이나 삶 전체를 전적으로 미화할 수만은 없겠습니다만, 백과사전을 만들었다는 사실 하나만 놓고 보면 그것은 대단한 도전이었고 그 결과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 마이너스 도전

없던 것을 만들어내고 못하던 것을 할 수 있게 되는 것도 도전에 대한 결과이지만, 그런 도전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또 하나의 도전이 있는데, 그것을 저는 ‘마이너스 도전’이라고 이름을 붙여봅니다. 다른 말로 ‘덜어내는 도전’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예를 들자면 이런 겁니다. 맛있는 반찬이 있어서 밥을 잘 먹었는데, 조금 더 먹고 싶다, 이럴 때 바로 숟가락을 놓기로 작정한다면 이건 훌륭한 도전입니다. 아침에 일어날 때, 피곤해서 10분만 더 자야지, 하는 생각이 굴뚝같지만 벌떡 일어나기로 마음을 먹는다면 이것도 훌륭한 도전입니다. 다른 사람과 분쟁이 생겼을 때, 성질 같아서는 욕이라도 한 바탕 퍼부어주고 싶지만 마음을 누그러뜨리기로 마음을 다잡는다면 이것 역시 훌륭한 도전입니다.

요즘도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예전에 제가 학교 다닐 때 국어교과서에 이런 시조가 있었습니다.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일제 일지춘심을 자규야 알랴마는 다정도 병인양하여 잠못들어 하노라.” 고려시대의 학자인 매운당 이조년(李兆年, 1269∼1343)의 시조지요. 이분의 형이 이억년(李憶年)인데, 이 두 형제가 소년시절 한강 가를 거닐다가 금덩어리 두 개를 주웠습니다. 우애 있던 형제였던지라 하나씩 나누어 가졌지요. 그런데 강을 건너기 위하여 나룻배를 타고 가다가 갑자기 동생 이조년이 자기 금덩어리를 강물 속으로 던져버렸습니다. 형이 깜짝 놀라서 물었습니다. “이놈아, 그 귀한 걸 왜 물에다 던져?” 동생이 대답했습니다. “형님, 사실 형님이 없었으면 금덩어리 두 개를 제가 몽땅 가질 수 있었는데, 하는 마음이 자꾸 들어서 괴로웠습니다. 그랬는데, 이제 금덩어리를 버리니 마음이 편안합니다. 이건 금덩어리가 아니라 요물이에요.” 이 말을 들은 형도 금덩이를 던져버렸습니다. “허, 나도 사실 너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 최인호, ≪날카로운 첫키스의 추억≫(여백미디어, 2000), 55-56쪽. 지금의 서울 양천구 가양동 근처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그래서 양천나루 앞 여울을 투금탄(投金灘)이라고 불렀답니다. 멋진 도전에 아름다운 결과이지요.

■ 허황된 도전

플러스 도전이든 마이너스 도전이든, 매사에 소극적인 사람보다는 도전적인 사람이 더 생기가 있어 보이고 자신감이 있어 보이지요. 그러나 도전이라고 해서 다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도전 가운데는 말도 안 되는 황당한 도전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창세기에 나오는 바벨탑 도전입니다. 집을 지을 기술이 없던 옛날에는 사람도 동굴이나 움막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돌로 집을 지어 살았지요. 그렇지만 그것도 불편했습니다. 쉽게 무너지잖아요. 그래서 흙을 이겨서 돌 사이에 넣게 되었습니다. 조금 안정되기는 했지만 그것 역시 성에 차지 않았습니다. 그 뒤에 생각해 낸 것이 흙을 구워서 벽돌을 만드는 것이었고, 벽돌 사이를 메꾸는 접착제로도 그냥 흙을 이겨서 쓰는 것이 아니라 역청을 사용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집다운 집을 짓게 됐지요. 단층이 아니라 2~3층까지 높게 집을 지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니까 사람들에게 욕심이 생겼습니다. ‘어, 잘하면 상당히 높은 탑도 쌓을 수 있겠는데?’ 이런 생각으로 탑을 쌓기 시작한 것이 바벨탑입니다. 당시에는 신들이 하늘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하늘까지 탑을 쌓으면 신의 세계까지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야무진 꿈을 가지고 도전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여러분이 다 아시는 대로 ‘실패’였습니다. 이것은 플러스도 아니고 마이너스도 아닌, 허황된 도전입니다.

지난 3일에 문선명 씨가 세상을 떠났지요. 1920년에 태어났으니까 올해 우리 나이로 93세입니다. 오래 살았지요. 문선명,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이 ‘자칭 메시아’(구세주)입니다. 이 사람이 1954년에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라고 하는 단체를 만들었습니다. 요즘 우리가 ‘통일교’라고 하는 조직의 전신입니다. 통일교의 중심사상이 뭐냐 하면 사상과 종교와 인종을 통일해서 하나로 만들자는 것입니다. 그의 주장은 ‘한국이 재림주님이 오시는 세계의 중심 국가이며, 하나님의 뜻이 한국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메시아라는 것이지요. 개인의 사상이나 꿈을 가지고 뭐라고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이 사람의 꿈이 하도 황당해서 한번 짚어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인 우리가 모두 예수님의 정신을 몸과 마음에 담고 실천해야 한다는 뜻에서 ‘작은 예수’라는 표현을 씁니다만, 그런 점에서 자기를 메시아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도 시비를 걸 생각은 없습니다. 문제는 문선명 씨의 삶과 예수님의 삶은 너무나도 차이가 많이 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근처에도 못 갈 사람이 자칭 메시아라고 하니까 황당하다는 말이지요. 2001년 1월 13일, 통일교에서는 큰 행사를 하나 했는데, 그게 이른바 ‘하나님왕권즉위식’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임명한다는 거예요. 웃기지 않습니까? 옛날에 서울을 하나님께 봉헌한다는 어떤 사람과 비슷하지요. 하나님은 원래 왕이었고, 서울은 원래 하나님의 것이었습니다. 문선명 씨의 삶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바벨탑 쌓기’였습니다. 허황된 도전이었지요.

■ 맺는 이야기

앞서 말씀드린 것과 같이 세상에는 플러스 도전과 마이너스 도전과 허황된 도전, 이렇게 세 가지 도전이 있습니다. 자신과 세상을 발전시키기 위한 플러스 도전? 좋습니다. 이건 권장할 만한 일입니다. 그리고 욕심을 버리고 가벼운 삶을 만들기 위한 마이너스 도전? 이것도 좋습니다. 플러스 도전과 마이너스 도전을 조합해서 균형을 이루면 건강한 인생을 영위해 나갈 수 있습니다. 그건 각자 판단해서 잘 하실 수 있을 줄 믿습니다. 그리고 허황된 도전 문제인데, 여러분은 스스로 그런 도전을 하시지 않겠지요. 그러나 세상에는 그런 데 빠지는 사람이 의외로 많습니다. 여러분이 지킴이 구실을 하셔야 합니다. 아무튼 여러분은 건강한 도전의식을 가지고 활기찬 앞날을 열어 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원합니다.

1022 떠남과 따름
1021 내 인생의 전환점
1020 "너로 말미암아"
» 바벨탑 이야기
1018 즐거움을 누려라!
1017 이야기 값
1016 투명인간
1015 아름다움에 대하여
1014 죄에서 자유를!
1013 단순하게 삽시다
1012 극단을 피하라!
1011 죽는 날이 더 중요하다!
1010 주님의 제자가 되려면
1009 행복하게 살기를!
1008 "행복하게 살기를!"
1007 잠이 보약입니다!
1006 하나님의 집에 갈 때에
1005 누구 때문에 이 수고를 하는가?
1004 이런 한 해가 되게 하소서!
1003 주님께서 주신 은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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