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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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누가복음서 14:12-14 
설교일 2012-08-12 
설교장소 한울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기념주일 

■ 성서 본문

예수께서는 자기를 초대한 사람에게도 말씀하셨다. “네가 점심이나 만찬을 베풀 때에, 네 친구나 네 형제나 네 친척이나 부유한 이웃 사람들을 부르지 말아라. 그렇게 하면 그들도 너를 도로 초대하여 네게 되갚아, 네 은공이 없어질 것이다. 잔치를 베풀 때에는, 가난한 사람들과 지체에 장애가 있는 사람들과 다리 저는 사람들과 눈먼 사람들을 불러라. 그리하면 네가 복될 것이다. 그들이 네게 갚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하나님께서 네게 갚아 주실 것이다."

<누가복음서 14:12-14>


■ 들어가는 이야기

이제 8월도 중순으로 접어들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기온의 변화가 나타나는 것을 느낍니다. 한여름을 보낸다고 몸과 마음이 피로해졌을지도 모르는 여러분 위에 성령님의 놀라운 능력이 세차게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오늘은 남과 북, 북과 남의 평화와 통일을 위하여 기도하는 주일입니다. 북쪽의 조선그리스도교련맹과 남쪽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는 매년 8월 15일을 앞둔 주일을 평화통일 주일로 지키기로 합의하고 1989년부터 양측의 교회들이 함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요즘 남북관계가 과거 냉전시대보다 더 경직되어 있는데, 오늘은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함께 생각해보겠습니다. 그 이야기를 하기 전에, 일반적으로 사람이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그 문제를 먼저 짚어 보겠습니다.

■ 보편대우

사람이 사람을 대할 때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가, 이 문제에 대해서 가장 명쾌하게 기록된 성경구절은 야고보서 2:1-4입니다. 거기 보면 이렇게 잘라 말합니다. 1절입니다.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영광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마십시오.” 그 뒤에 구체적인 예가 제시되어 있는데, 이를테면 이런 겁니다. 요즘은 우리가 ‘교회’에 모입니다만 당시 사람들은 회당에 모였습니다. 회당에 화려한 옷을 입고 금반지를 낀 부자가 들어올 때, 어서 오시라며 반갑게 맞이하고 좋은 자리를 내주는 일이 많은데,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또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도 회당에 들어오는데, 그에게는 아는 체도 하지 않고 어디 앉든지 말든지 관심을 두지 않으면, 그게 바로 차별대우이니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그런 짓을 하면 안 된다고 단호하게 경계합니다.

사람이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그런 차별대우를 할 수도 있는데, 우리는 그런 것을 각별히 주의해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약아서, 그렇게 표시 나는 차별은 잘 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옛날보다 차별은 더 많아졌지요. 프랑스에 피에르 부르디외라는 사회학자가 있는데, 이 양반은 학업성적이 부진하다는 이유 때문에 사회적으로 차별받는 사람들을 두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피부 색깔을 선택해서 태어날 수 없듯이 두뇌를 선택할 수 없다. 두뇌의 용량과 기능은 사람마다 다른데 오로지 문제풀이와 암기 능력이 뒤떨어진다는 이유로 차별하고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면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하고 억압하는 인종주의와 무슨 차이가 있는가.” ― 홍세화, ≪생각의 좌표≫(한겨레출판(주), 2009), 27쪽. 돈이 없고 공부를 못해서 좋은 대학교를 못 나온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차별 받는 것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공부 못하는 머리를 타고 난 게 본인 잘못입니까? 그렇다고 그게 부모 잘못입니까? 그렇게 생겨먹은 걸 어쩌겠습니까? 자주 말씀드리는 내용이지만, 복지가 잘 되어 있는 나라들에서는 공장노동자나 국회의원이나, 회사 수위나 대기업 임원이나 수입이 그렇게 차이가 많이 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고등학교 졸업하는 학생들이 대학 갈려고 그렇게 기를 쓰지 않는 것입니다.

■ 선별대우

그런 사회, 그런 나라를 만드는 것이 예수님의 정신을 잘 실천하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사회적인 약자들을 더 잘 대해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서 14:12-14의 내용이 그 이야기입니다. “네가 점심이나 만찬을 베풀 때에, 네 친구나 네 형제나 네 친척이나 부유한 이웃 사람들을 부르지 말아라. 그렇게 하면 그들도 너를 도로 초대하여 네게 되갚아, 네 은공이 없어질 것이다. 잔치를 베풀 때에는, 가난한 사람들과 지체에 장애가 있는 사람들과 다리 저는 사람들과 눈먼 사람들을 불러라. 그리하면 네가 복될 것이다. 그들이 네게 갚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앞에서 말씀드린 회당 사람들과 전혀 반대되는 태도이지요. 옷 잘 입은 부자를 환대할 것이 아니라, 주머니를 탈탈 털어도 먼지밖에 안 나오는 그런 사람들을 더 잘 대해주라는 명령입니다.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대우하는 것이 보편대우라면, 사회적 약자들을 우대하는 것은 ‘선별대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해방신학’으로 유명한 구스따보 구띠에레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느님께서 가난한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사랑하시는 것은 그들이 반드시 다른 사람들보다 도덕적 종교적으로 우위에 있기 때문이 아니라 단순히 그들이 가난하며 당신 뜻에 어긋나는 비인간적인 상황 속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 구스따보 구띠에레스(성찬성 역), ≪욥에 관하여≫(분도출판사, 1990), 224쪽. 하나님은 약자들을 편애하시는데, 그것은 그들이 잘나서가 아니라 약자이기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어린이들이 보호를 받아야 하는 것, 여성들이 보호를 받아야 하는 것, 가난한 이들이 보호를 받아야 하는 것, 장애인들이 보호를 받아야 하는 것, 이주노동자들이 보호를 받아야 하는 것은 그들의 도덕성이나 인격이 뛰어나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저 힘이 없는 약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더 나은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 되지만, 사회적인 약자들에 대해서는 ‘선별 대우’를 해주어야 합니다.

■ 특별대우

이처럼, 보통 사람들을 대할 때는 차별대우가 아니라 ‘보편대우’를 해야 하지만, 약자들에 대해서는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선별대우’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특별대우’를 해야 할 상대가 있습니다. 북쪽 사람들을 대할 때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쪽도 UN에 가입된 엄연한 독립국인데 남쪽 사람들이 북한을 무시하는 경향이 좀 있습니다. 돈이 없다는 이유겠지요. 그러나 그러면 안 됩니다. 우리는 한 형제들 아닙니까? 노르웨이 오슬로대학의 박노자 교수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경제적 우열을 근거로 북한출신을 멸시하는 작금의 풍토는 극히 어리석다. 그들은 남쪽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을 지닌, 세상에서 보기 드문 한민족이다. 내가 예측할 수 있는 것은, 분단체제의 족쇄가 풀리기만 하면 그들의 힘을 빌려 통일 한반도가 예체능과 학술 분야에서 크게 두각을 나타내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 박노자, ≪당신들의 대한민국≫(한겨레신문사, 2001), 80쪽. 우리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하는 이야기지만, 세계에서 지능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가 대한민국입니다. 그리고 2등이 북한입니다. 그런 우리의 형제들을, 돈이 없다는 이유로 차별대우하고 무시하는 것은 우리 민족에게 엄청난 손실입니다.

중국 월(越)나라에 이런 민요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대는 수레 타고 내가 삿갓 썼거든 다른 날 서로 만나 수레에서 내려 읍하게나. 그대가 우산 메고 내가 말을 탔거든 다른 날 서로 만나 그대 위해 말에서 내리리라.” ― 이익의 글 〈論交〉에서. 《성호사설》 제 15권. 정병헌 이지영 편, ≪우리 선비들은 사랑과 우정을 어떻게 나누었을까≫(사군자, 2005), 14-15쪽. 요즘 말로 바꾸자면 이렇게 될 겁니다. “우리 함께 고시공부를 했건만 자네는 검사가 되고 나는 주사가 되는 일이 생기거든 퇴근 후에 나를 위해 우리 집에 찾아와 내게 머리를 숙여 자네의 우정을 보여주게.” “우리가 함께 이 회사에 들어왔건만 내가 임원이 되고 자네가 말단으로 있더라도 주말에 버스타고 자네 집에 들러 자네에게 절을 하여 나의 우정을 보이겠네.” 함께 고생했던 친구인데, 먼 훗날 직책이 서로 다르다고 해서 친구 사이가 갈라진다면 그것이야말로 비극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셀 수도 없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형제자매 사이에도 제발 이랬으면 좋겠습니다. 하나가 잘 되고 하나가 못 돼도,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변치 않아야 아름다운 세상 아닙니까?

■ 맺는 이야기

남과 북도 그렇습니다.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북한경제가 우리보다 월등했습니다. 북쪽 사람들이 우리보다 더 잘 살았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어쩌다가 보니까 지금은 경제규모로 볼 때 남쪽이 월등합니다. 국민 행복지수로 보면 어떨지 모르지만 오로지 경제규모로만 볼 때는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우리의 형제인 북쪽 사람들을 무시하면 우리 민족 공동체의 미래가 없습니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최근 중국에다가 공장들을 많이 지었지 않습니까? 인건비가 국내보다 싸기 때문에 그랬지요. 그런데 중국도 인건비가 올라서 요즘은 그것도 여의치 않은 모양입니다. 그런데 개성공단에서 북쪽 노동자들에게 지급하는 임금은 중국 현지공장에서 중국인들에게 지급하는 임금의 절반에도 훨씬 못 미칩니다. 그렇지만 노동력의 질은 중국보다 훨씬 뛰어납니다. 이런 좋은 자원을 두고 왜 이념논리에 빠져서 양쪽 모두 고생해야 하느냐 이겁니다. 우리나라 경제에서 지금까지는 건설 분야가 큰 몫을 했습니다. 그러나 건설경기도 이제 끝입니다. 다른 분야도 거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민족이 살 길은 남북이 힘을 합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보편대우’를 넘어서, ‘선별대우’도 넘어서, 정성을 다해 ‘특별대우’를 해주어야 합니다. 아무쪼록 머지않은 장래에 남북관계가 개선되어서 우리 민족의 숙원인 통일에 한 발짝 다가갈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나라의 경제도 활기를 얻고, 여러분의 가정경제도 펄펄 살아날 수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022 "내 친구인 너희에게!"
1021 "그분을 두려워하십시오!"
1020 “불을 지르러 왔다!”
1019 "불을 지르러 왔다!"
1018 "기상은 분간할 줄 알면서, 왜?"
1017 "성령께서 가르쳐주실 것이다!"
1016 예수님의 시사논평
1015 은혜 베풀기, 은혜 갚기
1014 추수감사절의 두 남자
» 보편대우, 선별대우, 특별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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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0 자리 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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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두 아들과 아버지
1005 양을 찾아서
1004 “하나님을 만들어 주십시오!”
1003 저승에 간 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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