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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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지기 2006-03-18 19: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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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이사야서 6:1-13 
설교일 1983-05-11 
설교장소 서울중앙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주일 
■ 성서 본문

웃시야왕의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스랍들은 모셔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그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그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이 같이 창화하는 자의 소리로 인하여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집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때에 그 스랍의 하나가 화저로 단에서 취한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그것을 내 입에 대며 가로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 백성의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컨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내가 가로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대답하시되 성읍들은 황폐하여 거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가 전폐하게 되며 사람들이 여호와께 멀리 옮기워서 이 땅 가운데 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오히려 남아 있을찌라도 이것도 삼키운바 될 것이나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이사야 6:1-13)


■ 들어가는 말씀

우리나라가 문호를 개방하고, 잉 따라 열강들의 세력이 물밀듯이 밀려올 무렵에 이런 말이 유행했었다고 합니다. “소련에게 속지 말고 미국사람 믿지 말라. 일본이 일어난다. 조선사람 조심하라.”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겼고 미국을 믿다가 발등을 찍혀버렸고 소련에게 속아서 우리 조선 나라는 결국 허리가 잘리게 되어 이 말이 적중되고 말았읍니다만, 이 말은 국제정세의 혼란함을 가리키는 말이었던 것입니다.

■ 본론

수천 년 동안 주변 강대국들의 영향 아래 시련의 역사를 거듭해 온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지금의 이스라엘도 잠시도 편할 날이 없이 오늘날까지 내려왔읍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에 나오는 예언자 이사야가 활동하던 시대의 히브리 민족은 남쪽 유다와 북쪽 이스라엘로 분단되어 있었읍니다. 이때에 근동 지역에서 가장 위협적인 존재는 앗시리아였읍니다. 이사야가 예언활동을 하는 기간에 앗시리아 제국의 세계 정복 야욕과 침략은 최고조에 이르고 있었읍니다. 이 때문에 북쪽 이스라엘은 앗시리아의 위협에 자주 직면해야 했읍니다. 그러나 남왕국 유다는 지리적으로 북쪽으로부터의 침약과 위협의 바람을 덜 받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정치적 불안과 혼돈이 북 왕국 이스라엘만큼 그렇게 크지는 않았읍니다. 예언자 이사야는 이 남 왕국 유다에서 예언 활동을 했읍니다. 당시 남 왕국의 왕은 웃시야였읍니다. 정치적 안정이 북 왕국에 비해서 비교적 좋았기 때문에 웃시야가 통치하는 유다는 태평세월을 누릴 수가 있었읍니다. 유다의 정치적 안정은 경제적 안정도 가져왔읍니다. 물론 사회 부패가 남왕국에도 있었지만 그래도 비교적 질서가 안정되어 있었읍니다. 그래서 웃시야 왕 통치 기간에 유다는 경제적, 군사적 발전의 최고봉에 도달했읍니다. 열왕기하 15장 1-7절과 역대기하 26장에 나오는 웃시야 왕의 행적을 살펴보면, 그는 군대 장비를 현대화시켰으며, 불레셋을 평정하여 남북을 연결하는 국제통상 도로를 장악했으며, 뿐만 아니라 아라비아까지 무역을 확장하고 엘랏 항구까지 무역 도로를 개척했으며, 농업을 발전시키는 등 역사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대과업을 성취하였읍니다. 그러나 웃시야 왕이 죽게 됨으로써 유다는 새로운 정치적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읍니다. 왜냐하면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강대국인 앗시리아의 티글랏 필레셀 왕이 이스라엘의 북쪽 나라인 시리아를 치며 남진정책을 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새로운 역사적 위기를 제일 먼저 의식하고 예언자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 바로 오늘 본문 말씀 속에 나오는 이사야입니다.

이러한 어렵고 미묘한 상황을 직감한 이사야는 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실마리를 찾기 위해 거룩한 예루살렘 성전으로 발을 옮겼읍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은 성전으로 찾아간 이사야가 하나님으로부터 소명을 받는 장면을 그린 내용입니다. 이사야는 국제정세의 판도가 바뀌고 있다는 것을 느꼈읍니다. 그리고 그 위협이 유다에까지 미치리라는 것을 예견했읍니다. 이러한 국가적 위기를 깨달은 이사야는 가만히 앉아만 있을 수가 없었읍니다. 그는 이런 상황 속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고민했읍니다. 이사야는 예루살렘의 귀족 출신이었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먼저 이런 국제정세를 파악할 수 있었읍니다.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가?” “이런 상황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이런 저런 고민을 하던 나머지 이사야는 하나님의 성전으로 들어갔읍니다. 거기서 그는 환상을 통해서 거룩하신 하나님, 세계를 다스리시는 왕으로서의 여호와 하나님과 대화를 했읍니다. 저 놓은 보좌 위에 여호와께서 앉아계시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소를 덮고 있었읍니다. 그의 주위에는 날개 달린 천사들이 훨훨 날아다니고 있었읍니다. 천사들이 입을 모아 하나님을 찬양했읍니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이러한 천사들의 외침으로 인하여 성전의 문설주들이 지진이 일어난 듯이 흔들렸읍니다. 그리고 성전 안은 온통 연기로 가득 찼읍니다. 이 때 이사야가 비명을 지르듯이 소리쳤읍니다. “아니고, 나는 망했다. 이제 죽었구나. 내 입술이 이렇게 더러운데, 내가 이렇게 더러운 곳에 사는데, 이런 내가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내 눈으로 보게 되다니….” 여호와 하나님을 만난 이사야는 죄악에 가득 아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읍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모습을 바로 쳐다본 이사야가 자기 자신의 죄된 모습도 바로 깨달았던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모순과 제약성과 부족함을 깨닫고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는데 천사 중 하나가 제물을 사르기 위해 준비된 제단의 숯불을 가지고 이사야에게로 날아왔읍니다. 그리고는 그 숯불을 이사야의 입술에 갖다 대었읍니다. 천사라 이사야에게 말했읍니다. “보아라, 이제 너의 입술에 이것이 닿았으니 너의 악은 가시고 너의 죄는 사라졌다.”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들어 쓰시기 위하여 이사야의 마음을 말끔히 씻어 주셨던 것입니다. 이제 이사야는 힘이 넘칩니다. 그래서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는 주님의 음성에 즉각적으로 대답했읍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이사야는 현실의 암담함과 국제 침략을 남보다 먼저 예견하고서도 자기의 앞길을 현실에서 도피시키지 않았읍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그렇게 웅장하고 거룩하고 경건한 영적 신앙 체험을 맛보고서도 이사야는 그 체험을 간직하기 위해 그 자리에 머물러 앉아 있지 않았읍니다. 성전에서 하나님을 만나 뵙고 자기의 나약함을 깨닫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체험한 이사야는 더욱 눈이 밝아져서 현실을 좀 더 예리하게 판단할 줄 알게 되었읍니다. 앞으로 자기 조국이 직면하게 될 예측 못할 국내 정치의 불안과 앗시리아의 침략으로 인한 남북 양국의 조국의 황폐를 미리 내다본 이사야는 자기 민족의 구원과 국민들의 각성과 정치인들의 독주를 막기 위해서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화답하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던 것입니다.

이사야가 이러한 소명 의식을 가질 무렵 남 왕국 유다에서는 웃시야 왕이 죽었읍니다. 이와 때를 같이 하여 강대국인 앗시리아의 세력은 계속해서 서쪽으로 서쪽으로 확장되고 있었읍니다. 이런 위기 속에서 북 왕국 이스라엘의 왕 베가는 확장해 오는 앗시리아의 세력을 저지하기 위해 시리아의 르신 왕과 동맹을 맺고 앗시리아에 반기를 들었읍니다. 그래서 이스라엘과 시리아는 유다도 동맹에 가담시키기 위해 유다 왕 아하스에게 이를 요구했읍니다. 유다 왕 아하스는 다른 속셈이 있었기 때문에 이를 거절했읍니다. 아하스는 강대국인 앗시리아에 붙는 것이 자기의 정권 유지에 더 유리라리라고 생각하여 이를 거절했던 것입니다. 유다의 아하스가 말을 듣지 않자 시리아-이스라엘 연합군은 아하스를 몰아내고 반 앗시리아 파의 왕을 세우려는 음모를 계획하고 예루살렘으로 남침해 들어왔읍니다.

시리아-이스라엘 연합군의 유다 침공은 아하스 왕에게 큰 타격을 주었읍니다. 유다 도읍들이 점령당하고 예루살렘이 포위되었읍니다. 이사야 7장 2절에 보면 “왕의 마음과 그 백성이 삼림이 바람에 흔들림 같이 흔들렸더라”라고 되어 있읍니다. 아하스 왕은 곤경에 빠져 궁여지책으로 그런 국난을 면해 보려고 이방인의 제사를 본받아 자기 아들을 제물로 바쳐 불에 태워 죽이기까지 하였읍니다(왕하 16:3). 그리고 정책 면에서 아하스 왕은 정치적 타결을 시도하려고 하여 시리아-이스라엘 동맹군에게 항복하기보다는 외부의 강대 세력인 앗시리아에게 원조를 청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읍니다.

이런 국가 정치적 중대 위기와 갈림길 속에서 이사야는 아하스 왕을 만났읍니다. 그리고 아하스에게 이렇게 말했읍니다. “너는 삼가며 종용하라. 아람 왕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이 심히 노할지라도 연기나는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하니 두려워 말라. 낙심치 말라”(7:4). “만일 너희가 믿지 아니하면 정녕 굳게 서지 못하리라”(7:9).

예언자 이사야가 생각한 당대의 가장 위험스런 위기는 예루살렘 멸망의 위기가 아니었읍니다. 그것은 신앙의 부복과 불신에서 오는 위기였읍니다. 당시 국제 정세의 판단으로서는 유다가 시리아-이스라엘 동맹에 가담하여 반 앗시리아 정책을 써서는 안 되며 그렇다고 포위당한 예루살렘을 구출하기 위해 앗시리아의 세력을 끌어들이는 것은 더더욱 안 되는 일이었읍니다. 이사야가 생각한 유다 왕국의 가장 큰 문제점은 세계를 통치하시는 주권자이신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었읍니다. 유다 왕국을 위기에서 구출하는 해결책은 동맹군에 가담하는 것도 아니고 앗시리아에 붙는 것도 아니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의 법도를 좇는 길이었읍니다 이 때 예언자 이샤야를 통하여 유다 왕 아하스에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이사야 7:9에 나오는 대로 “만일 너희가 믿지 아니하면 정녕히 굳게 서지 못하리라”라고 하는 말씀이었읍니다. 히브리어에서 “믿는다”라는 동사와 “선다”라는 동사는 “아멘”이라는 동일한 동사입니다. 이렇게 볼 때 이사야는 “믿으면 서고 안 믿으면 넘어진다”는 확신을 아하스에게 보여 주려고 했던 것입니다.

■ 맺는 말씀

요즘은 강대국인 중공과 관계 개선의 여지가 보인다고 희망적인 생각을 갖는 사람이 많이 있읍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있어서의 문제는 그것이 아닙니다. 미국과의 우호를 더욱 두텁게 하는 것, 휴전선의 방비를 더욱 강화하는 것, 공산 강대국들과 수교를 맺는 것, 그리고 요즈음 말끝마다 따라다니는 소위 ‘86 아시안 게임’ ‘88 올림픽’ 우리의 문제는 이런 것이 아닙니다. 오직 우리가 취해야 할 자세는 오직 하나님 앞에 굳게 서는 일입니다.

일제 침략과 6.25를 겪은 이후 6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우리나라도 외면적으로는 상당한 성장을 이루었읍니다. 80년대에 들어선 지금에 와서는 밥을 굶는 이들은 거의 없게 되었읍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주변 정세는 오늘날 그렇게 쉽지만은 않읍니다.

우리가 소련의 위협으로부터 놓여나고 미국의 정치적인 손아귀에서 풀려나고 일본의 경제적인 식민지로부터 해방되는 길은 오직 하나님 앞에 바로 서는 길 뿐인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 각자는 성전으로, 하나님의 성전으로 발걸음을 옮겨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체험해야 합니다. 그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의 죄된 모습, 더러운 입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우리 자신의 죄된 모습을 보고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로 가까이 가면 갈수록 우리의 죄는 점점 크게 느껴집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면 할수록 우리의 허물은 점점 더 크게 드러날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기 전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았던 죄가 하나님을 알고부터는 점점 더 큰 죄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런 무거운 죄짐을 우리에게 맡기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모습을 보고 우리 자신의 죄악을 깨달을 대 하나님께서는 제단의 뜨거운 숯불을 우리의 입술에 갖다대어 주실 것입니다. 이런 체험을 하고 나면 우리의 마음은 자신감에 넘치게 될 것이며 아골 골짜기나 소돔 거리에나 어디든지 갈 수 있는 용기가 생길 것입니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대신하여 갈꼬” 하실 때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기쁘게 화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정치인이 될 수 없고 우리 모두가 예언자가 될 수 없고 우리 모두가 역사가가 될 수는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우리가 처해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부르시는 음성을 들읍시다. 그 음성을 듣고 우리의 죄를 깨달아 참 마음의 회개를 합시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뜨거운 숯불을 우리의 입숙에 대어 새로운 용기를 주실 것입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주여 나를 보내소서” 응답하여 우리의 사명을 깨달아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힘 있게 나아가야 되겠읍니다.
41 비시디아의 안디옥교회
40 처음 안디옥교회
39 당황케 하는 사람
38 초대교회의 일곱 일꾼
37 필요에 따라 나누자
36 약속을 기다리는 사람들
35 백성들의 맹세
34 느헤미야의 기도
33 제단을 쌓은 사람들
32 사람을 얻기 위하여
31 하나님의 한 가족
30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29 창조에서 배울 것들
28 가슴을 헤쳐 젖을 물렸다
27 교회를 잘 돌보십시오
26 성공과 실패
25 겨울은 지나고
24 고향으로 가자
23 환상을 보기까지
22 세리 삭개오, 제자 삭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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