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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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지기 2009-03-29 13:3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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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요한복음서 13:31-35 
설교일 2009-03-29 
설교장소 구미안디옥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주일 


■ 성서 본문

유다가 나간 뒤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이제는 인자가 영광을 받았고, 하나님께서도 인자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다. [하나님께서 인자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으면,] 하나님께서도 몸소 인자를 영광되게 하실 것이다. 이제 곧 그렇게 하실 것이다. 어린 자녀들아, 아직 잠시 동안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겠다. 그러나 너희가 나를 찾을 것이다. 내가 일찍이 유대 사람들에게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 하고 말한 것과 같이, 지금 나는 너희에게도 말하여 둔다. 이제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으로써 너희가 내 제자인 줄을 알게 될 것이다."

<요한복음서 13:31-35>


■ 들어가는 말씀

“사랑은 아무나 하나!” 잘 알려진 대중가요 제목인데, 한때 드라마 제목도 이런 것이 있었지요. 드라마는 제가 보지 않아서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고, 이 노래 가사를 찾아보니까 이렇게 되어 있습디다. “사랑은 아무나 하나. 사랑은 아무나 하나. 눈이라도 마주쳐야지. 만남의 기쁨도 이별의 아픔도 두 사람이 만드는 것. 어느 세월에 너와 내가 만나 점 하나를 찍을까. 사랑은 아무나 하나. 어느 누가 쉽다고 했나.”

다른 내용이야 일상적으로 많이 나오는 내용이니까 그렇다고 치고, 한 마디 귀에 쏙 들어오는 가사가 있습니다. 이겁니다. “사랑은 아무나 하나. 어느 누가 쉽다고 했나.” 사랑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 그것은 사실입니다. 아무나 하기에는 정말 어려운 것이 사랑입니다. 그렇지만 ‘아무나 하는 사랑’도 있습니다.

■ 아무나 하는 사랑.

그러면, 아무나 하는 사랑은 어떤 사랑인가, 간단히 말하면 본능적인 사랑입니다. “사랑은 아무나 하나.” 이 가사를 찾다가 보니까 또 이런 재미있는 노래도 있습디다. “사랑은 개나 소나 다한다지만 나는 개소만도 못한 바보야. 사랑은 개나 소나 다한다지만 나는 개소만도 못한 바보야.” 개나 소나 다 하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개나 소나, 죄인이나 의인이나, 가난한 사람이나 부자나, 많이 배운 사람이나 적게 배운 사람이나, 이런 사랑은 모두 다 합니다. 심지어는 미물들까지도 짝짓기 사랑은 다 합니다. 그러나 이런 사랑을 낮게 취급해서는 안 됩니다. 아주 원시적이고, 본능적인 사랑이지만, 이런 사랑이 없으면 종족 번식이 안 됩니다.

그리고 아무나 하는 사랑이 또 하나 있는데, 그것은 ‘give and take’ 곧 받은 만큼 주는 사랑입니다. 이것도 ‘아무나’ 하는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사람들만 사랑하면, 그것이 너희에게 무슨 장한 일이 되겠느냐? 죄인들도 자기네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랑한다”(누가복음서 6:32). 죄인들도 그런 사랑은 한다는 것이지요. 이 말씀에 이어서 또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를 좋게 대하여 주는 사람들에게만 너희가 좋게 대하면, 그것이 너희에게 무슨 장한 일이 되겠느냐? 죄인들도 그만한 일은 한다”(33).

남자가 마음에 드는 여자를 봤을 때, 또는 여자가 마음에 드는 남자를 봤을 때 가슴이 두근거리고, 어떻게 좀 가까워져볼 수는 없을까 궁리하고, 이른바 ‘작업’을 걸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고…. 이런 본능적인 사랑도 아름다운 것입니다. 사실, 서로 주고받는 사랑도 본능이지요. 누가 나한테 잘해주면 그 사람에게 더 정이 끌리는 걸 어떻게 하겠습니까?

■ 고상한 사랑.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모두 그런 사랑만 하고 산다면, 세상은 약육강식의 전쟁터가 되고 말 겁니다. 조금 더 고상한 사랑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좀 더 고상한 사랑이란 무엇인가, 나와 별로 관계가 없는 사람들까지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랑은 양식이 있는 사람들만 할 수 있는 사랑입니다.

우리가 오래 전부터 해오던 사업이 있지요. 장애인들에게 컴퓨터를 보급하고, 그분들에게 컴퓨터 사용법을 알려주고, 컴퓨터가 고장 나면 고쳐주기도 하고, 인터넷을 이용해서 경제활동을 하기를 원하는 분들에게는 서버를 제공하고, 기술을 전수하는 사업인데, 이 일을 시작한 지 벌써 15년이 다 돼갑니다.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이 일을 위해서 지금도 몸으로, 마음으로, 돈으로 후원해주고 계신 분들이 있는데, 이분들의 사랑이 ‘고상한 사랑’입니다.

후원자들은 얼굴도 모르는 장애인들을 위해서 시간을 내고 돈을 냅니다. 이런 사랑은 예수님께서 권장하신 귀한 사랑입니다. 누가복음서 14:13-14의 말씀입니다. “잔치를 베풀 때에는, 가난한 사람들과 지체에 장애가 있는 사람들과 다리 저는 사람들과 눈먼 사람들을 불러라. 그리하면 네가 복될 것이다. 그들이 네게 갚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하나님께서 네게 갚아 주실 것이다.” 갚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 베푸는 사랑, 이것이야말로 고상한 사랑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 숭고한 사랑.

그런데 이것보다 더 큰 사랑이 있습니다. 이것은 ‘숭고한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그것이 어떤 사랑인가 하면, 원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다시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봅시다. 누가복음서 6:35 말씀입니다. “그러나 너희는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좋게 대하여 주고, 또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어라. 그리하면 너희는 큰 상을 받을 것이요, 더없이 높으신 분의 아들이 될 것이다.”

“원수를 사랑하라!” 이 말씀은 예수님의 고유 브랜드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라!” 하면 바로 예수님이 떠오르지 않습니까? 어쨌든,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큰 상을 받으려면 이 명령을 지켜야 합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사람은 더없이 높으신 분 곧 하나님의 아들이 됩니다.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보면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기 위하여 그것보다 더 중요한 조건이 원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마도 ‘당신의 원수가 누굽니까?’ 하고 물으면 여러분 대다수는 ‘글쎄, 내 원수가 누구지?’ 하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평소에 사이가 좋지 않던 집사님 부부가 있었습니다. 어느 주일날, 둘이 서로 싸우고, 부인은 교회에 안 가고 남편만 예배를 보고 왔습니다. 그런데 교회에 다녀온 남편이 그날 온종일 집안일을 열심히 할 뿐만 아니라, 온갖 서비스와 정성을 다해서 아내를 사랑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평소와는 전혀 딴 사람이 된 남편을 보고, 참 별 일도 다 있다, 생각한 아내는 혼자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집사라고, 교회 가서 은혜를 받은 모양이지? 필시 목사님의 설교에 깊은 감명을 받았을 거야. 그런데 목사님이 무슨 설교를 하셨기에 사람이 저렇게 변한 거야?’

이렇게 생각한 아내는 과일 바구니를 사들고 목사님을 찾아갔습니다. “목사님, 정말 고맙습니다. 어제 저는 교회에 못 나왔지만 설교가 참 은혜로웠다면서요? 제 남편이 너무 많이 변했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그런데 어제 주제가 ‘아내를 사랑하라!’였나요?” 그러자 목사님은 의아한 눈으로 그 여 집사님을 쳐다보면서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대답했답니다. “아닌데요, 어제 설교 제목은 '원수를 사랑하라!'였습니다.”


많이 알려진 우스개 이야기였습니다만, 나의 원수가 누군가. 속으로 원수가 떠오르는 분들도 있을 것이고, ‘나는 원수가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원수라는 건 내가 만든 원수도 있지만, 남이 만들어둔 원수도 있고, 조상이 만들어둔 원수도 있습니다. 내가 만든 원수라면 스스로 해결하면 되지만, 조상이 만들어둔 원수나, 남이 만든 원수는 조금 복잡합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남북으로 나뉘어 있고, 북녘 사람들을 원수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직 있습니다만, 저나 여러분이나 그 사람들과 직접 무슨 이해관계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북녘 사람들을 원수로 생각하게 된 것은, 남이 꼬드겨서 우리 조상들이 넘어갔기 때문에 만들어진 결과지요. 이랬든 저랬든 원수라고 칩시다. 그렇더라도 우리는 그 사람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필요하다면 쌀이든 비료든 돈이든, 우리가 줄 능력이 있는 한 무엇이든 주는 것이 좋습니다. 잠언에서도 그랬습니다. “네 원수가 배고파 하거든 먹을 것을 주고, 목말라 하거든 마실 물을 주어라”(잠언 25:21). 이것은 북녘동포들뿐만 아니라 우리가 원수로 생각하는 그 누구에게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 맺는 말씀

예수님께서 여러 차례 당부하신 말씀이 있는데, 그것은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서 13:35 말씀입니다. “이제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여기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유는 이렇습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으로써 너희가 내 제자인 줄을 알게 될 것이다”(36).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 오늘 저는 세 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첫째는, 아무나 다 하는 사랑으로서, 본능적인 사랑, 곧 에로틱(erotic)한 사랑입니다. 이런 사랑에 대해서도 우리는 자기의 감정에 충실해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조금 더 고상한 사랑, 곧 되갚아 올 것을 기대하지 않고 주는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아무나 하는 사랑은 아니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도 할 수는 있는 사랑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숭고한 사랑 곧 원수까지 사랑하는 것인데, 이것은 그야말로 아무나 할 수 없는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만이 할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가장 숭고한 사랑, 곧 원수까지 사랑하는 큰 사랑을 실천하는 예수님의 참된 제자가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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