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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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예레미야서 2:13 
설교일 2014-03-02 
설교장소 한울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주일 
사용처 1. 20240303 Haanul. 


■ 성서 본문

참으로 나의 백성이 두 가지 악을 저질렀다.
하나는, 생수의 근원인 나를 버린 것이고,
또 하나는, 전혀 물이 고이지 않는, 물이 새는 웅덩이를 파서,
그것을 샘으로 삼은 것이다.”

<예레미야서 2:13>


■ 들어가는 이야기

이번 주 목요일(6일)이 경칩(驚蟄)입니다. 개구리가 잠에서 깨어나서 활동을 시작한다는 날이지요. 털도 없는 개구리가 밖에 나와서 돌아다닐 정도니까 이제 완전히 봄이 됐다는 뜻일 겁니다. 이제 3월이지만, 2월보다 더 추운 날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3월이기에 더 훈훈함을 느낍니다. 각 급 학교에 입학을 하는 새내기들처럼, 여러분도 설렘과 기대와 희망을 한 아름 안고 3월을 시작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세 모녀

이렇게 만물이 생동하는 3월을 앞두고 지난 달 26에 서울 송파구 석촌동에서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60대 어머니 박 아무개 씨와 30대 두 딸이 생활고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이들은 단독주택 반지하층, 작은 방 두 개와 화장실이 딸린 열 평짜리(33㎡) 집에 세 들어 살고 있었는데, 경찰이 신고를 받고 가보니까 창문들은 모두 청 테이프로 봉해져 있었고, 방문은 침대로 막아 놓은 채 세 사람과 고양이가 숨져 있었습니다. 번개탄 재가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번개탄을 피워놓고 다 함께 목숨을 끊은 것 같습니다. 박 씨 아주머니의 남편은 10년 전에 방광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그 뒤로 살림살이는 급격히 어려워졌습니다. 두 딸은 카드빚 때문에 채무불이행자가 되어 있었고, 거기다가 큰딸은 고혈압과 당뇨로 몸이 좋지 않았습니다. 돈이 없으니 치료인들 제대로 받았겠습니까? 병을 키워가고 있었겠지요. 식구들의 생계는 박 씨 아주머니가 식당일을 하면서 근근이 이어갔지만, 이분이 한 달쯤 전께 넘어져서 다치는 바람에 그마저도 그만둬야 했다고 합니다. 이들은 봉투에 돈 70만원을 넣고 겉에다가 이렇게 썼습니다. “주인아주머니께… 죄송합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이분들은 월세 50만원에다가 각종 공과금 20만 원쯤을 내고 살았는데, 한 번도 밀린 적이 없었답니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그만큼 성실하게 살았다는 말이겠지요.

■ “의지하지 마라!”

저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박노해 시인의 글을 떠올렸습니다. 뙤약볕 아래에서 남의 밭을 매는 어머니 곁에서 어린 아이가 징징거립니다. “엄니, 배고프다. 신발도 떨어지고 공책도 떨어지고…, 외갓집에 가서 쌀 좀 가져오자.” 그러나 밭고랑은 매도, 매도 끝이 없고, 흰 수건을 쓰고 땀방울을 뚝뚝 떨어뜨리는 어머니는 빠르게 호미 손만 놀릴 뿐 말이 없었습니다. 긴 여름 해가 갯벌 바다를 붉게 물들일 때쯤 어머니는 뽕나무 아래 잠든 아이를 업고 샘터로 가서 씻기고 날랜 손으로 밀린 집안일을 단속하고 저녁상을 차렸습니다. 정신없이 밥을 먹는 아이에게 어머니는 자신의 밥을 덜어주며 조용조용하게, 그러나 단단하게 말씀하셨습니다. “평아, 다시는 남의 쌀 가져오잔 말 꺼내지 말거라. 의지하지 말아야 할 것에 의지하지 말아야 한다. 의지하면 원망이 생기고 속이 물렁물렁해져 사람 버리는 법이다. 사지 육신 성하고 앞날이 창창한 사내가 자기 할 일을 버려두고 의지할 곳부터 찾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하느님께만 의지하고 너 자신에게만 의지해라. (박노해, 「의지하지 마라」 중.) ― 박노해, ≪겨울이 꽃핀다≫(해냄출판사, 1999), 68쪽. 힘들면 기대고 싶은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릅니다. 살림이 어려워지면 도움을 청할 만한 사람을 찾게 됩니다. 뭔가 일이 잘 안 풀리면 토정비결이라도 보고 싶어집니다. 어두운 인생길이 계속 되면 묘 자리라도 점검해보고 싶어집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때 조심해야 합니다. 이 아이의 어머니의 말처럼, 아무에게나 의지하려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만 의지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 사회안전망

박노해 시인의 글을 꺼내 읽으면서 다시 서울 석촌동의 그 아주머니를 생각했습니다. 아마도 박 아무개 아주머니도 남에게 의지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 어려운 살림에, 매월 월세와 공과금을 밀리지 않고 낸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이분은 그렇게 했습니다. 그래서 더 안타깝습니다. 살다 보면 어려울 때도 있고, 그런 때는 사정이야기를 하고 신세도 좀 지는 것이 보통 아닙니까? 그런데 그걸 감당할 힘이 안 되니까, 남에게 피해를 주기 싫어서 이런 극단적인 결단을 내린 것입니다. 또 그 주인아주머니는 얼마나 가슴을 졸이겠습니까? 내가 돈 때문에 혹시 모녀를 괴롭힌 일은 없는가, 돌아보면서 말입니다. 어쨌든, 우리나라의 사회안전망이 이렇게 허술한가 싶어서 찾아봤습니다. 그랬더니 이런 내용이 나왔습니다. 평소에는 소득이 있어서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수 없는 사람이라도, 질병이나 사고 등으로 수입이 일시적으로 끊겼을 경우 동사무소나 구청 또는 시청에 신고하면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긴급복지제도’라고 해서, 최대 3개월까지 주거비, 의료비, 급여 등이 제공되는데, 세 사람이면 월 8~90만 원에 의료비가 지원된다고 들었습니다. 주변사람들이 그런 얘기를 해줬더라면, 그리고 좀 더 적극적으로 그분들의 문제를 함께 걱정했더라면 이런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분들은 한 번도 생활보호신청을 한 기록이 없었습니다.

■ 맺는 이야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분들은 마지막 남긴 쪽지에다가 “죄송합니다!”라고 적었습니다. 오히려 그런 사정을 잘 보살피지 않은 우리가 죄송할 일이지요. 예레미야서 말씀에 보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두 가지 악을 저질렀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는 생수의 근원인 하나님을 버린 것이고, 또 하나는, 전혀 물이 고이지 않는, 물이 새는 웅덩이를 파서, 그것을 샘으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속담을 아시지요. 우리가 연말마다 이른바 ‘불우이웃 돕기’를 하지 않습니까? 이게 바로 그겁니다. 우리 사회의 가난 문제는 불우이웃 돕기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제도를 바꿔야 합니다. 지금 공무원이 많다고 하는데, 제가 보기에는 복지공무원을 더 뽑아야 합니다. 구석구석 살펴서 이렇게 불행하게 사는 사람을 더 적극적으로 찾아내야 합니다. 확실한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 것, 이것이 ‘생수가 솟아나는 샘’을 만드는 일입니다. 그게 또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우리의 임무이기도 합니다. 저는 수십억 수백억씩 들여서 공공건물을 마구 지어대는 것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픕니다. 그거 하나만 절약해도 수천, 수만 명의 목숨을 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건물이나 시설보다 사람이 먼저여야 합니다. 다시는 이런 안타까운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더 기도하며, 더 힘쓰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바랍니다.

(※ 2014.3.2 구미 한울교회 주일예배 말씀입니다.)

941 주님의 눈동자를 건드리는 자들
940 “비록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939 편안한 후회
938 영원토록 칭찬 받기
937 빛이신 하나님
936 으뜸 친구
935 교회가 바로 서려면
934 시온의 딸과 임금님
933 “그만하면 됐다!”
932 저승에 간 부자
931 어느 쪽이 이길까?
930 먹보들의 기도
929 복의 생산과 유통과정
928 엄마 집
927 “당신은 어느 쪽입니까?”
926 “평화가 있어라!”
925 주일에 해야 할 일 세 가지
924 전쟁 연습, 평화 연습
923 총명한 사람의 선택
922 칼을 쳐서 보습을, 창을 쳐서 낫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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