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전대환 채널 바로가기

성서본문 사도행전 13:28-30 
설교일 2014-05-11 
설교장소 한울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주일 


[오디오파일 듣기/내려받기]

■ 성서 본문

그들은 예수를 죽일 만한 아무런 까닭도 찾지 못하였지만, 빌라도에게 강요하여 예수를 죽이게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그를 가리켜 기록한 것을 다 행한 뒤에, 그들은 예수의 시체를 나무에서 내려다가, 무덤에 두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수를 죽은 사람 가운데서 살리셨습니다.

<사도행전 13:28-30>


■ 들어가는 이야기

오늘은 어버이주일입니다. 험난한 세상 가운데서 자녀들을 주님의 뜻 안에서 잘 기르시는 어버이 여러분, 그리고 어려운 여건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자녀인 동시에 어버이의 자녀로 태어나서 그분들의 기쁨이 되어주시는 자녀 여러분, 여러분 모두에게 축하의 말씀을 드리며, 하늘의 은혜와 땅의 축복이 넘치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바랍니다.

■ 아들을 빼앗긴 어머니

이번 세월 호 참사를 겪으면서 어떤 분이 이런 이야기를 하더군요. 아내를 잃은 남자를 가리켜서 우리는 ‘홀아비’라고 부릅니다. 남편을 잃은 여자를 가리켜서 우리는 ‘홀어미’라고 부릅니다. 부모를 잃은 자식들을 가리켜서 우리는 ‘고아’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자식을 잃은 어머니 또는 아버지를 부르는 말은 없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런 일은 세상에서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뜻이겠지요. 그만큼 아픈 일입니다. 뼈저린 일입니다. 살 떨리는 일입니다. 그것도 그 자식이 아무런 죄도 없이, 아무런 까닭도 없이 죽었다면, 그런 일을 겪은 부모는 눈에 보이는 게 없습니다. 2천 년 전 예수님의 어머니가 그랬습니다. 마리아는 가난한 어머니였습니다. 아이 낳을 곳이 없어서 외양간에서 아들을 낳았습니다. 아기를 들쳐 안고 한밤중에 이집트로 피난까지 갔었습니다. 아들이 성장한 뒤에는 얼굴조차 자주 볼 수 없었습니다. 여기서 잠깐 사도행전의 기록을 보시지요. 예루살렘의 권력자들이 그런 아들 예수를 잡아갔습니다. 그동안 잘 먹고 잘 살았는데, 난데없이 예수라는 청년이 나타나더니 양반들의 행태를 비판합니다. 부자들의 횡포를 고발합니다. 얼마나 보기 싫겠습니까? 일단 잡아갔지요. 눈에 띄는 죄도 없었습니다. 잡아가서 털어보면 뭐라도 나오겠지, 하는 심산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아무리 털어 봐도 나오는 게 없습니다. 성경에 보면, 그들은 예수를 죽일 만한 아무런 까닭도 찾지 못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수를 빌라도에게 넘겼습니다. 그리고 죽이라고 강요했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매를 맞고 가시에 찔리며 십자가에 달려서 죽었습니다. 이 꼴을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다 봤습니다. 이유도 없이 아들을 빼앗긴 비운의 어머니였습니다.

■ 까닭 없이 죽은 사람들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 57분, 어떤 아버지의 아들에게서 카톡이 왔습니다. 아들의 카톡 이름은 ‘사랑하는막내아들♥’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흔히 그렇듯이 끝에는 하트까지 하나 찍혀 있었습니다. 3분 동안 네 개의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첫째는 “아빠”였습니다. 두 번째 것은 “아ㅍ” 오타였습니다. 세 번째 것은 “아빠 사랑해”였습니다. 네 번째 것은 “사랑해요”였습니다. 아빠가 타이핑이 좀 늦었던 것 같습니다. 9시 7분에 답을 보냈습니다. “왠~ 사랑고백! 아빠도 사랑한다♥♥♥ 날씨가 꿀꿀... 신나게 놀다와라 도착하면 엄마한테 문자주고.” 그런데 20분 동안 답이 없습니다. 9시 26분에 아빠가 다시 메시지를 보냅니다. “아들.” 역시 답이 없습니다. 8분 뒤인 9시 34분에 다시 보냅니다. “전화 주라.” 이번에도 답이 없습니다. 아빠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습니다. 10시 3분에 다시 메시지를 보냅니다. “사랑한다 아들아 제발... 무사히 살아만 있어다오...” 이게 끝입니다. 9시 7분부터 10시 3분까지 아빠가 보낸 세 개의 메시지 밑에는 노란 글씨로, 메시지를 보낸 시각과 함께 “1”이라고 찍혀 있습니다. 카톡을 써보신 분이라면 이게 무슨 뜻인지 아시겠지요. 그 노란색 ‘1’은 아직까지 지워지지 않은 채 아빠의 휴대전화기에 남아 있습니다. 이 아빠의 아들뿐만이 아니라 이런 식으로 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생명을 빼앗겼습니다. 이분들이 이렇게 참사를 당한 것에도 이유나 까닭 따위는 없었습니다. 우리 역사에서 이처럼 이유 없이, 까닭 없이 죽어간 사람이 셀 수도 없이 많습니다. 1948년 4월 3일부터 시작된 제주민중항쟁, 그 일로 공식 집계로만 1만5천여 명이 죽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흔히 ‘4.3사건’이라고 부릅니다만, 이것은 ‘사건’이 아니고 ‘학살’입니다. 1980년 5월 18일부터 시작된 광주 민중항쟁, 이때 죽은 사람은 아직까지 정확한 통계도 없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오랫동안 ‘광주사태’로 불렀습니다만, 이것이 어찌 ‘사태’입니까? 학살입니다. 2009년 1월 20일 서울 용산에서 생활터전을 잃지 않기 위해 저항하다가 철거민 5명과 경찰관 1명이 희생됐습니다. 이것도 우리는 ‘용산참사’라고 부르지만 엄밀히 말하면 학살입니다.

■ 한은 풀어져야 한다!

지난 4월 16일, 진도 앞바다에서 300여 명이 희생된 사건, 이것도 언론에서는 ‘사고’라고 부르지만, 제가 보기에는 이것도 학살입니다. 충분히 구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구경만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기가 막힌 일을 두고 KBS 보도국장이라는 사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김시곤이란 사람입니다. “세월 호 사고는 300명이 한꺼번에 죽어서 많아 보이지만 연간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 수를 생각하면 그리 많은 것은 아니다.” 이 사람은 사람 목숨을 숫자로만 보고 있습니다. 자기 가족이 까닭 없이 억울한 죽음을 당해도 빈소나 위패에 ‘1명 사망!’이라고 쓸는지 모르겠습니다. 성경의 정신은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것입니다. 생명뿐이겠습니까? 세포 하나에도 그 안에 우주가 들어 있다는 것이 현대과학의 이론 아닙니까? 그런데 그걸 스포츠 중계하듯이 한낱 숫자로만 인식하는 것은 심각한 병입니다. 조정래 씨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에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상처 입은 자가 흘린 피에는 고통이 있을 뿐이지만 죽은 자가 남긴 피에는 주술이 살아 있는 것이다. 자기 나름대로 억울하게 죽은 자가 남긴 피는 단순한 액체가 아니라 저주하는 영혼인 것이다.” ― 조정래, ≪태백산맥 1≫((주)해냄출판사, 1996), 166쪽. 가인이 아우인 아벨을 쳐 죽였을 때, 하나님은 가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땅이 그 입을 벌려서, 너의 아우의 피를 너의 손에서 받아 마셨다”(창세기 4:11). 억울하게 희생된 사람들의 피가 땅에서 울부짖기를 멈추지 않는 한, 산 사람들이 그 억울함을 풀어주지 않는 한, 땅은 저주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지독한 한을 품고 죽은 사람이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구천을 떠도는 것을 우리는 원귀(冤鬼)라고 합니다. 세상에 원귀가 많으면 살아남은 사람도 결코 편치 않습니다. 이거 풀어야 합니다. 성경에서는 이것을 ‘부활’이라고 합니다. 그 사람들이 다시 살아난다는 것이지요. 어떻게 하면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의 한을 풀어드릴 수 있을지, 그것은 우리가 함께 고민하며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 맺는 이야기

부활의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셔서, 억울하게 희생된 사람들의 한을 봄눈 녹이듯이 풀어주셔서, 저와 여러분과 우리 자녀들이, 억울한 죽음이 없는 복된 세상에서 살 수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 2014.5.11 구미 한울교회 주일예배 말씀입니다.)
941 주님의 눈동자를 건드리는 자들
940 “비록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939 편안한 후회
938 영원토록 칭찬 받기
937 빛이신 하나님
936 으뜸 친구
935 교회가 바로 서려면
934 시온의 딸과 임금님
933 “그만하면 됐다!”
932 저승에 간 부자
931 어느 쪽이 이길까?
930 먹보들의 기도
929 복의 생산과 유통과정
928 엄마 집
927 “당신은 어느 쪽입니까?”
926 “평화가 있어라!”
925 주일에 해야 할 일 세 가지
924 전쟁 연습, 평화 연습
923 총명한 사람의 선택
922 칼을 쳐서 보습을, 창을 쳐서 낫을!

LOGIN

SEARCH

MENU NAVIG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