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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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지기 2014-07-20 15: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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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로마서 5:3-5 
설교일 2014-07-20 
설교장소 한울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주일 
■ 성서 본문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환난을 자랑합니다. 우리가 알기로, 환난은 인내력을 낳고, 인내력은 단련된 인격을 낳고, 단련된 인격은 희망을 낳는 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을 통하여 그의 사랑을 우리 마음 속에 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5:3-5>


■ 들어가는 이야기

엊그제가 초복이었지요. 그야말로 삼복더위입니다. 이번 주 수요일이 대서(大暑)입니다. 대서에는 염소 뿔도 녹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런 힘겨운 여건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며 오늘도 한 자리에 모이신 여러분 위에, 성령님께서 넘치는 에너지를 채워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더위도 고생이지만, 그거야 시간 지나가면 해결될 문제이고, 우리 삶에는 더 고생스러운 일들이 참 많습니다.

■ 환난

‘고생 끝에 낙이 온다!’ 하지요. 옳습니다. 그런데 무조건 고생만 한다고 낙이 올까요? 당연히 아닙니다. 낙으로 이어지는 고생도 있고 고생으로 끝나는 고생도 있습니다. 어차피 고생을 할 바에는 그게 기쁨으로 이어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늘 제가 말씀드리려고 하는 게 그 이야기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아주 명쾌하게 정리해준 글이 로마서 5:3-4에 있습니다. “우리는 환난을 자랑합니다. 우리가 알기로, 환난은 인내력을 낳고, 인내력은 단련된 인격을 낳고, 단련된 인격은 희망을 낳는 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생 끝에 낙이 오는 것은 맞는데, 거기에 과정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이 과정을 거쳐야 우리의 희망은 ‘꽝’이 아니라 현실이 됩니다. 그 첫째 과정이 ‘환난’ 곧 고생이지요. 그런데 문제는 고생한다고 그 끝이 다 잘 풀리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고생을 통해서 ‘인내심’을 얻어야 합니다. 인내심을 얻어야 그 고생이 의미가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이 지금 고생보따리를 잔뜩 지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그것을 인내의 재료로 생각하십시오. 바울이 고생한 이야기 한 번 들어보십시오. “유대 사람들에게서 마흔에서 하나를 뺀 매를 맞은 것이 다섯 번이요, 채찍으로 맞은 것이 세 번이요, 돌로 맞은 것이 한 번이요, 파선을 당한 것이 세 번이요, 밤낮 꼬박 하루를 망망한 바다를 떠다녔습니다. 자주 여행하는 동안에는, […] 수고와 고역에 시달리고, 여러 번 밤을 지새우고, 주리고,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추위에 떨고, 헐벗었습니다”(고린도후서 11:24-27). 바울의 이 고생들은 모두 인내심으로 차곡차곡 쌓였습니다.

■ 인내

‘인내력’을 얻어내지 못하는 고생은 ‘헛고생’입니다. 아고보서 1:3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낳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냥 ‘시련’은 낳을 것이 없지만, ‘믿음의 시련’ 곧 믿음 안에서 겪는 시련은 ‘인내’를 낳게 되어 있습니다. 전도서 5:16-17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이 온 그대로 돌아가니, 바람을 잡으려는 수고를 한들 무슨 보람이 있는가? 평생 어둠 속에서 먹고 지내며, 온갖 울분과 고생과 분노에 시달리며 살 뿐이다.” 온갖 울분과 고생과 분노에 시달리며 사는 인생을 가리켜, 전도자는 “비참한 일”이라고 합니다(전도서 5:16). 똑같은 고생이라도 하나님 안에서 하면 ‘인내’를 낳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나서 하는 고생은 그야말로 ‘비참한 일’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고생과 환난이 모두 희망의 거름이 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 안에 있어야 고생이 인내를 낳습니다. 믿음 안에서 하는 고생이라야 ‘인내’로 승화된다는 것입니다. 등산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만, 어린아이들들 산에 데리고 가는 일이 있잖아요? 산에 가면 고생을 하지요. 그러나 부모의 보호 아래 산을 타는 아이는 그 산행을 통해서 건강과 인내심을 얻습니다. 그러나 부모 없는 아이가 혼자서 산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고 할 때, 그건 참 비참한 일입니다. 세상 고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먹고 사느라고 고생하고, 자식 때문에 고생하고, 예기치 않은 일로 고생하고, 때로는 악마의 계교에 빠져 고생을 하더라도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하는 고생은 인내를 낳습니다. 믿음 안에서 하는 고생은 ‘고생’이 아니라 ‘훈련’이지만 믿음을 떠난 고생은 비참함일 뿐입니다.

■ 인격

이렇게 애서 ‘인내’를 얻었다면, 그 다음 단계는 ‘단련’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3:5에 이런 권면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인도하셔서, 여러분이,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것과 같이 사랑하고, 그리스도께서 인내하시는 것과 같이 인내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인내를 배우라는 말입니다. 천하의 예수님도 고생을 통하여 인내력을 얻으셨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우리도 배워야지요. 야고보서 1:4를 봅시다. “여러분은 인내력을 충분히 발휘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이 완전하고 성숙한 사람이 되십시오.” 완전한 인격은 ‘인내’가 만들어내는 산물입니다. 내공이 높은 분들은 다 통하는 데가 있는 것 같습니다. 부처님도 이렇게 말씀하셨답니다. “증오보다 더 큰 과실이 없고 인내보다 더 강한 것은 없으니 내가 이리저리 애쓰는 것은 인내를 배우는 것.” ― 나왕 겔렉 린포체(정승석 역), 《행복한 삶 행복한 죽음》(도서출판 초당, 2004), 78쪽. 부처님이 온갖 고행을 찾아가며 겪은 것은 ‘인내’를 배우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도 그랬고, 부처님도 그랬으니, 우리야 더 말할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고생에서 인내를 얻고, 인내에서 인격이 단련됩니다. 그런 사람만이 희망이 있습니다. 거꾸로 말하면, 고생해보지 않은 사람은 참을 줄 모르고, 참을 줄 모르는 사람은 인격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습니다. 인격형성이 안 된 사람에게는 아무런 희망이 없습니다. 이처럼, 인격이 단련된 사람만 ‘고생 끝에 낙’이 옵니다.

■ 맺는 말씀

환난은 인내력을 낳고, 인내력은 단련된 인격을 낳고, 단련된 인격은 희망을 낳는다, 이 말 뒤에 바울은 중요한 말 한 마디를 덧붙였습니다. “이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로마서 5:5). 로또는 ‘꽝’이 기본이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희망에는 ‘꽝’이 없습니다. 희망이 있는 사람은 지금의 현실이 아무리 암담하더라도 슬퍼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뻐합니다. 9회 말에 역전홈런을 쳤을 때처럼 짜릿함을 맛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스가랴서 9:12에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로잡혔어도 희망을 잃지 않은 사람들아, 이제 요새로 돌아오너라. 오늘도 또 말한다. 내가 네게 두 배로 갚아 주겠다.” 또 전도자는 말합니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는, 누구나 희망이 있다. 비록 개라고 하더라도, 살아 있으면 죽은 사자보다 낫다”(전도서 9:4). 저와 여러분은 확실히 살아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품안에 있지 않습니까? 비록 우리가 지금 고생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고생이 인내를 낳고, 인내를 통해서 인격이 단련된다면, 지금의 고생은 고생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두 배로 갚아 주시기 위해서 훈련시키시는 과정입니다. ‘꽝 없는 희망!’ 그것은 고생이 인내를 만들고 인내가 단련된 인격으로 이어질 때 보장됩니다. 저와 여러분이 비록 지금은 고생을 하더라도, 오직 주님 안에서 고생으로 인내를 만들고, 인내로 인격을 단련함으로써 최후의 승리를 얻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942 “주님께서 쉬시지 못하게!”
941 주님의 눈동자를 건드리는 자들
940 “비록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939 편안한 후회
938 영원토록 칭찬 받기
937 빛이신 하나님
936 으뜸 친구
935 교회가 바로 서려면
934 시온의 딸과 임금님
933 “그만하면 됐다!”
932 저승에 간 부자
931 어느 쪽이 이길까?
930 먹보들의 기도
929 복의 생산과 유통과정
928 엄마 집
927 “당신은 어느 쪽입니까?”
926 “평화가 있어라!”
925 주일에 해야 할 일 세 가지
924 전쟁 연습, 평화 연습
923 총명한 사람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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