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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의 값

by 마을지기 posted Apr 05,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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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마가복음서 16:6-7
설교일 2015-04-05
설교장소 한울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부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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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서 본문

그가 여자들에게 말하였다. “놀라지 마시오. 그대들은 십자가에 못박히신 나사렛 사람 예수를 찾고 있지만, 그는 살아나셨소. 그는 여기에 계시지 않소. 보시오, 그를 안장했던 곳이오. 그러니 그대들은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말하기를 그는 그들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실 것이니, 그가 그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들은 거기에서 그를 볼 것이라고 하시오.”

<마가복음서 16:6-7>


■ 들어가는 이야기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입니다. ‘부활’이라는 말처럼 가슴 설레게 하는 것도 없습니다.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난다는 것이니, 이것은 절망이 완전히 사라지는 상황, 슬픔의 한숨소리가 기쁨의 탄성으로 바뀌는 상황, 지옥이 천국으로 변하는 상황입니다. 부활의 아침을 맞이하여 여러분의 삶에도 이와 같은 놀라운 일이 일어나기를, 부활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죽음

세 남자가 교통사고로 죽었습니다. 함께 저승 문에 다다랐습니다. 염라대왕이 물었습니다. “장례식에 참석한 친구와 가족들이 자네들에 대해 뭐라고 말해줬으면 좋겠는가?” 먼저 첫 번째 남자가 말했습니다. “제가 정말 가정에 충실한 사람이었다는 말이 듣고 싶습니다.” 두 번째 남자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저는 제 아내가 이렇게 말해주면 좋겠습니다. 이이는 자상한 남편이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큰 깨우침을 준 훌륭한 교사였습니다.” 그러나 세 번째 남자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봐! 이 사람이 살아 움직이고 있어!’라고 소리쳤으면 좋겠네요.” ― 2008.11.30 서울경제. 우리 조상들은 예전부터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라고 했습니다. 성경에도 비슷한 말이 있습니다. 전도서 9:4입니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는, 누구나 희망이 있다. 비록 개라고 하더라도, 살아 있으면 죽은 사자보다 낫다.” 감리교에 조화순 목사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분의 어머니는 아흔여섯에 돌아가셨습니다. 죽기 전에 딱 일주일을 누워 계셨는데, 기력이 서서히 쇠잔해지자 어느 순간 마치 등불이 꺼지듯이 그렇게 가셨습니다. 다섯 남매가 일주일을 머리맡에 앉아 지키고 있었지만 정작 돌아가실 때는 그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편안하게 임종하셨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정신은 멀쩡하셨다고 합니다. 복 받은 죽음이었지만 정작 본인은 죽고 싶지 않으셨는지, 목사인 딸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더랍니다. “너 목사지? 나 더 살고 싶어, 나 좀 살려줘!” ― 조화순, ≪낮추고 사는 즐거움≫(도솔출판사, 2005), 98쪽. 이게 인지상정입니다. 설령 “모두 잘 있어라, 나는 간다!”라고 무심히 말하며 고요히 눈을 감는 이가 있다고 할지라도, 그의 속마음에는 삶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노인들이 “이제 난 죽어야 해!”라고 하는 말이 얼마나 헛말인지, 이 어머니는 잘 보여줍니다. 삶이란 이처럼 소중한 것입니다.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무심코 보내는 너의 오늘은, 어제 죽은 사람이 그렇게 간절히 살아 있고 싶어 했던 내일이다.”

■ 배상

지난 금요일(3일) 어느 방송에서 이런 보도를 했습니다. 앵커의 말을 그대로 옮겨보겠습니다. “한 대학병원이 오진으로 팔 다리, 얼굴 조직 일부를 제거하게 만들었다가 거액의 배상을 하게 됐습니다.” ― 2015.4.3. TV조선 뉴스. 뉴스를 내보낼 때, 특히 TV 뉴스는 첫 문장이 그 사건 전체를 요약하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이 문장을 들으면서 저는 편집자의 시각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왜 그런지는 조금 있다가 말씀드리기로 하고, 우선 사건의 줄거리를 살펴봅시다. 지난 2010년 아파트 관리소장으로 근무하던 56살 김 아무개 씨는 을지대병원에서 전립선 정밀 검사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극심한 통증이 와서 건양대병원 응급실에 실려 갔습니다. 의사는 김 씨가 급성심근경색이라고 판단해서 혈전 용해제를 투여하고 검사를 했지만 원인을 찾지 못했습니다. 오진이었던 것입니다. 진짜 병명은 대장균 감염에 의한 패혈증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적절한 항생제 투여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치료가 늦어 김 씨의 양팔과 양다리, 얼굴 등 신체말단부위가 이미 말라가기 시작했고, 마침내 문제가 있는 부분을 전부 절단하거나 제거했습니다. 또한 신장 기능까지 잃게 돼서 평생 투석을 받으며 살게 됐습니다. 이에 김 씨는 병원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긴 소송 끝에 대법원이 “건양대학교 법인은 김에게 7억여 원을 배상하라”라며 원심 판결을 확정했습니다. 자, 다시 첫 문장을 봅시다. “한 대학병원이 오진으로 팔 다리, 얼굴 조직 일부를 제거하게 만들었다가 거액의 배상을 하게 됐습니다.” 뭐가 문젭니까? 방송사는 병원에 초점을 맞추고 돈에 방점을 찍었습니다. 병원이 진료와 처치를 잘못해서 ‘7억 원씩이나’ 물어주게 됐다, 이겁니다. 그러나 팩트 곧 사실은 무엇입니까? ‘한 사람이 병원의 오진으로 인생을 망쳤다’입니다.

■ 선택

사지절단에 얼굴까지 문제가 생겼습니다. 누가 ‘7억 줄 테니 너 이렇게 돼볼래?’ 한다면 여러분은 무엇이라고 하시겠습니까? 여기에 무슨 생각의 여지가 있습니까? ‘그래? 좀 생각해볼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인생 다 산 사람이거나 아니면 인생관에 문제가 있는 사람입니다. 기자에게 이런 제안을 한다면 펄펄 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이렇게 뉴스를 편집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돈의 지배를 받고 있는지 잘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이득이 있겠느냐?”(마가복음서 8:36). 생명 하나가 천하보다 귀하다는 말이 이래서 나온 겁니다. 말을 꺼내기조차 꺼려지는 불행이었습니다만,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거의 만 1년이 됐습니다. 온 국민을 아프게 만든 사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진상규명은 오리무중입니다. 이런 형편인데도 정부에서는 느닷없이 ‘보상’이니 ‘배상’이니 하면서, 희생자 1인당 4억이네 8억이네 하면서 현혹합니다. 유가족들이 화가 단단히 났습니다. 엄마들이 삭발까지 하면서 호소합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대책이다. 그런데 이 판국에 돈 이야기를 꺼내며 우리를 능욕하느냐?’ 이겁니다. 여기서 더 가관인 것은, 일부 몰상식한 사람들의 비아냥거림입니다. 유가족들이 한 푼이라도 돈을 더 받아내려고 저렇게 쇼를 한다는 것이지요. 다시 말합니다. 생명은 돈으로 계산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물과 피를 다 쏟으셨습니다. 끝내 돌아가셨습니다. 자, 예수님의 죽음에 대해서 책임진다는 뜻으로 로마정부가 (요즘 돈으로) 10억을 배상하기로 했다고 칩시다. 예수님의 가족들과 제자들은 <10억 배상받기 vs 부활> 중 어느 쪽을 택하겠습니까? 당연히 부활이겠지요. 목숨을 돈으로 계산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마귀의 협잡입니다.

■ 맺는 이야기

보상 또는 배상이라는 것은 죽음이나 상해에 대해서 어떻게 책임질 방법이 없으니까 최후의 수단으로 최소한의 예를 표시하는 것입니다. 실수로 개를 죽였을 때는 개 값을 물어주면 될지 모르지만 피해자가 사람인 경우는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해결방법은 오로지 부활밖에 없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이 사실을 알려주시려고 몸소 부활하셨습니다. 우리 시대에 이 땅에서 억울하게 희생된 사람들에게 부활의 기적이 일어나기를, 현실에서 당장 그게 어렵다면 최소한의 명예회복이라도 돼서 편안히 영면할 수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 2015.4.5 구미 한울교회 주일예배 말씀입니다.)

1. 20150408 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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