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전대환 채널 바로가기

마을지기 2012-04-01 13:23:36
0 3042
성서본문 마태복음서 21:6-11 
설교일 2012-04-01 
설교장소 한울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사순절 

■ 성서 본문

제자들이 가서, 예수께서 지시하신 대로, 어미 나귀와 새끼 나귀를 끌어다가, 그 위에 겉옷을 얹으니, 예수께서 올라타셨다. 큰 무리가 자기들의 겉옷을 길에다가 폈으며, 다른 사람들은 나뭇가지를 꺾어다가 길에 깔았다. 그리고 앞에 서서 가는 무리와 뒤따라오는 무리가 외쳤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께!
복되시다,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더없이 높은 곳에서 호산나!”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셨을 때에, 온 도시가 들떠서 물었다. “이 사람이 누구냐?” 사람들은 그가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신 예언자 예수라고 말하였다.

<마태복음서 21:6-11>


■ 들어가는 이야기

오늘이 종려주일이고, 오늘부터 한 주간 동안은 고난주간입니다. 그리고 다음 주일은 부활주일입니다. 고난의 터널을 지나 부활의 기쁨을 누리기를 희망하는 여러분 위에,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과 고난당하신 그리스도의 은혜와 성령님의 위로가 언제나 함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오늘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제공한 종려주일 예배자료집의 내용을 중심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 잔인한 4월

오늘이 4월의 첫 날인데, 흔히 4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하지요. 그것은 미국의 시인 엘리어트(T. S. Eliot, 1888-1965)가 ‹황무지›라는 시에서 사용한 말입니다. 이 시의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4월은 잔인한 달 / 죽은 땅에서 라일락 꽃 피우고 / 추억과 욕정이 뒤섞이고 / 봄비로 잠든 뿌리를 뒤흔든다 / 차라리 겨울이 따뜻했다….” 전에도 몇 차례 말씀드렸습니다만, 유난히 4월에는 아깝게 목숨을 잃은 분들이 많습니다. 1945년 4월 9일, 독일의 본회퍼 목사님이 돌아가셨습니다. 히틀러 정권에 저항하다가 사형을 당하셨지요. 1865년 4월 15일에는 미국 민주주의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이 노예해방을 위해 애를 쓰다가 백인 암살자의 흉탄에 쓰러졌습니다. 그리고 1968년 4월 4일에는 미국의 인권운동가 마르틴 루터 킹 목사님이 역시 백인 암살자의 총에 맞아 돌아가셨습니다.

먼 나라 미국과 독일의 4월만이 잔인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4월도 잔인한 달이었습니다. 일제가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신사참배를 강요했을 때, 십계명에서 명령한 대로 “우상을 섬기지도 말고 그 앞에 절하지 말라” 하며, 민족의 양심과 자존심을 지켰던 분, 일본 귀신들 앞에 머리 숙이는 것을 거부했던 주기철 목사님은 1944년 4월 21일 평양 감옥에서 순교하셨습니다. 1960년 4월 19일, 독재를 물리치겠다고, 민주주의를 외치며 빈손 들고 맨 주먹으로 총칼에 대항하여 일어난 어린 학생들, 185명의 젊은 영혼이 한국 민주주의의 제단에 속죄양으로 희생된 것이 바로 52년 전, 학교 교정에 흐드러지게 피어 오른 라일락 꽃 향기가 강했던 잔인한 4월이었습니다.

■ 종려나무 시위

오늘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동네 사람에게서 당나귀 한 마리를 빌리셨습니다. 제주도에서 볼 수 있는 윤기 나는 좋은 말도 아니고, 장군들이나 황제가 타는 백마도 아니었습니다. 키도 작고 빈약하기 짝이 없는 볼 품 없는 당나귀였습니다. 안장도 없어서 제자들이 벗어드린 겉옷을 나귀 위에 깔았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모습으로 예루살렘 도성으로 들어오십니다. 우리나라 서울로 치면, 서울역에서 남대문을 향하는 길 정도 되겠지요. 상당히 번화하고 분주한 곳이었습니다. 당시의 예루살렘의 대문에서는 로마 군인들이 창검으로 중무장을 하고 감시와 검문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나귀를 타고 입성하자, 사람들이 모여 들었습니다. 그때가 바로 유월절 기간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 땅에서 풀려 난 것을 기념하는 민족 해방절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8.15 광복절 같은 날이지요. 온 나라 사람들과 외국에 살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 도성으로 모여 들어 해방절 잔치를 여는 기간이었습니다.

나귀를 타신 예수님이 도성의 대문에 나타나자마자 군중이 모여 들었습니다. 이 사건에 대해 마태복음서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 큰 무리가 자기들의 겉옷을 길에다가 폈으며, 다른 사람들은 나뭇가지를 꺾어다가 길에 깔았다. 그리고 앞에 서서 가는 무리와 뒤따라오는 무리가 외쳤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께! 복되시다,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더없이 높은 곳에서 호산나!”(마태복음서 21:8-9). 요한복음서에는 군중들이 흔들어 댄 나뭇가지가 보통나뭇가지가 아니라 종려나무가지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요한복음서 12:13). 그리고 마가복음에 보면 사람들이 예수님을 향해서 이렇게 부르짖습니다. “복되다! 다가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더 없이 높은 곳에서, 호산나!”(마가복음서 11:10). “다윗의 나라”가 뭡니까? 이스라엘이 꿈꾸던 ‘새 나라’지요. 로마의 지배와 헤롯의 통치를 거부하고 새 나라를 세우자며 “새 나라 만세!” “새 임금 만세!”를 외치는 겁니다. 대단히 ‘불온한’ 데모였습니다.

■ 성전으로!

52년 전 우리나라의 4.19 학생 혁명이 떠오르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그 이전 1919년 3.1 독립운동이 터졌을 때와 비슷한 상황입니다. 경찰과 헌병들이 총칼을 겨누어 대는 무시무시한 삼엄한 경계 속에서, 독립과 자유를 외치는 민중들의 부르짖음이 들리는 것 같지 않습니까? 사사건건 예수님께 시비를 걸었던 바리새파 사람들이 예수님을 향해서 소리 지릅니다. “선생님, 제자들이 저러는데 왜 꾸짖지 않으십니까?” 왜 제자들과 민중들을 선동하느냐는 말에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지를 것이다”(누가복음서 19:40). 요한복음서에 보니까 바리새파 사람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다 틀렸소. 보시오. 온 세상이 그를 따라갔소"(요한복음서 12:19). 민중들은 모두 친로마파와 바리새파 사람들로부터 등을 돌려 예수님 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민심은 1%의 지배자들로부터 완전히 등을 돌렸습니다. 종려나무 시위는 성공한 것 같았습니다.

예수님은 데모대와 함께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셨습니다. 우리 같으면, 시청을 점령하든지, 국회로 달려가든지, 청와대로 몰려갔을 것 같은데,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고 가장 먼저 성전으로 쳐들어 가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당시 이스라엘에서는 종교와 정치는 뗄 수 없는 관계였고, 종교 지도자들이 여론을 주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보시니 종교계가 완전히 썩어 있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작정하시고 성전부터 찾아가셨습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집이며, 기도하는 집입니다. 그 뿐 아니라 병자들과 약한 자들,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민중들, 그리고 사람취급을 제대로 못 받던 어린 아이들이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받는 곳입니다. 권력이 지배해서는 안 되는 곳입니다. 그런데 당시 예루살렘 성전은 하나님의 주권이 아니라 돈의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성전을 통해서 들어오는 돈은 권력자들이 독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수도 예루살렘에 입성하자마자 성전에 쳐들어가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로마의 압정에서 벗어나려면, 그리고 하나님이 주인이 되고 민중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인정받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성전이 바로 서야 한다는 것을 예수님은 몸소 보여 주신 것입니다. 나라가 제대로 서고 정치가 제대로 서기 위해서는, 고위 공직자들의 부정부패가 없어지고 깨끗한 정치가 들어서려면, 다른 어디보다 교회가 깨끗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 맺는 이야기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리며 유대나라 민중들과 함께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면서 “호산나!”를 외치는 날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입성하여 성전을 점령했지만, 로마 식민지로부터 독립을 쟁취하지는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성전은 정화하셨지만, 성전을 쟁취하고 제사장 자리에 올라앉지도 않으셨습니다. 내일, 월요일부터, 예수님의 고난의 날이 시작되는데, 친 로마 제사장들과 바리새파 사람들, 율법학자들이 모여서 예수님을 잡아 죽일 음모를 꾸미기 시작합니다. 결국 예수님은 자신의 마지막 날이 왔다는 것을 직감하시고 제자들에게 최후의 만찬을 베푸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예루살렘 입성도 성공하시고 성전도 깨끗하게 하셨으니, 이제 드디어 거사하는 날이 됐는가 보다, 기대가 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최후의 만찬장 한 복판에서 대야에 물을 담아 놓고 제자들의 발을 하나씩 하나씩 정성스럽게 씻어주실 뿐이었습니다. 거사는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로마 제국의 정치 재판을 받으시고 정치범들이 받는 십자가형을 받으십니다. 로마 제국이 예수님에게 뒤집어씌운 죄목은 ‘민중선동죄’였습니다.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민중들과 함께 데모한 죄입니다. 백성들로 하여금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소리 지르게 한 것이 죄입니다. 로마 황제가 시퍼렇게 살아 있고 총독도 있고 분봉왕도 있는데 또 무슨 유대인의 왕이냐, 이것은 반역죄이고 반란죄다, 그런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평화적인 정치 행위였습니다. 무력 혁명을 외치는 바라바의 정치가 아니었습니다. 열심당원들의 폭력혁명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아무런 저항 없이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치욕과 죽음을 물리치고 부활하셨습니다. 괴롭고 무거운 인생사 때문에 힘들어하는 여러분 위에, 그리고 정의와 평화와 생명의 소중함을 지키기 위해 힘쓰느라고 고난 받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 위에 주님의 평화가 영원히 머물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941 지각 있는 사람
940 지각 있게 말하는 입술
939 즐거움을 누려라!
938 쥐 세상, 개미 세상
937 죽은 믿음, 살아 있는 믿음
936 죽는 날이 더 중요하다!
935 주일에 해야 할 일 세 가지
934 주인 선택하기
933 주여, 이 땅을 살려 주옵소서!
932 주여, 이 땅을 고쳐 주옵소서!
931 주머니가 구멍난 까닭
930 주님의 특사가 오신다!
929 주님의 특사
928 주님의 제자가 되려면
927 주님의 일에 적합한 사람
926 주님의 이슬
925 주님의 은혜를 잊지 맙시다
924 주님의 영을 받으려면
923 주님의 문
922 주님의 뜻을 이룬 여인들

LOGIN

SEARCH

MENU NAVIG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