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전대환 채널 바로가기

마을지기 2013-03-17 15:22:41
0 2565
성서본문 요한복음서 13:34-35 
설교일 2013-03-17 
설교장소 한울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주일 


[오디오파일 듣기/내려받기]

■ 성서 본문

이제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으로써 너희가 내 제자인 줄을 알게 될 것이다.”

<요한복음서 13:34-35>


■ 들어가는 이야기

이번 주 수요일, 이달 20일이 춘분입니다.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진다는 날이지요. 지금까지는 밤이 더 길었습니다만, 그날 이후부터는 낮의 길이가 더 길어지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올해도 하나님의 섭리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자연의 섭리뿐만 아니라, 여러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도 앞으로 영원토록 이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로 사는 한, 하나님의 그 고귀한 사랑은 변함없이 계속될 것입니다. 방금 저는 우리들의 신분에 대해서 두 가지를 말씀드렸는데요, 하나는 하나님의 자녀이고, 다른 하나는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밉든 곱든 세상 모든 사람들은 다 하나님의 자녀이니까 여러분이나 저나 하나님의 자녀들인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는 이야기가 좀 다릅니다. 여기에는 자격조건이 있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과연 예수님의 제자인지, 그것을 점검해보려고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한 자격, 그건 단 한 가지입니다. 오늘의 본문말씀입니다. “이제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으로써 너희가 내 제자인 줄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복음서 13:34-35).

■ 사람을 사랑하는가?

예수님은 “서로 사랑하라!” 하셨지요. 우선 사람끼리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사람 사이의 사랑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아무나 하는 사랑입니다. 본능적인 사랑, 곧 ‘짝 짓기’ 사랑이지요.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유행가 가사 중에 이런 게 있더군요. “사랑은 개나 소나 다한다지만 나는 개소만도 못한 바보야. 사랑은 개나 소나 다한다지만 나는 개소만도 못한 바보야.” 둘째는 고상한 사랑이 있습니다. 성경에서 마르고 닳도록 강조하는 사랑이지요. 과부와 고아와 외국인과 레위인에 대한 사랑, 곧 우리보다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에 대한 사랑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숭고한 사랑’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서 6:35 말씀입니다. “그러나 너희는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좋게 대하여 주고, 또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어라. 그리하면 너희는 큰 상을 받을 것이요, 더없이 높으신 분의 아들이 될 것이다.” 여기까지 할 수 있다면 사람에 대한 사랑은 만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두 번째와 세 번째까지 가기도 전에, 본능적인 사랑, 남자와 여자의 사랑조차 제대로 못한다는 것입니다. 누가 썼는지는 모르지만 이런 글을 읽었습니다. “남친일 땐 나에게 친절하기만 하더니 남편 되니 남의 편만 드네. 남친일 땐 친구 같이 편한 사이 되자더니 남편 되니 상전이 따로 없네. 남친일 땐 나에게만 매너맨이더니 남편 되니 나가서만 매너맨이네. 남친일 땐 자기 앞에서만 울라더니 남편 되니 지 앞에서 질질 짜지 말라네. 남친일 땐 지 꺼 살돈 아껴 내 꺼 사더니 남편 되니 내 꺼 살 꺼 아껴 지 꺼 사려 하네. 남친일 땐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혀 준다더니 남편 되니 지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려 하네. 남친일 땐 나, 나, 나, 3종 세트밖에 모르더니 남편 되니 소파, 리모컨, TV 3종 세트와 사랑에 빠졌다네. 남친일 땐 애기들 좋아해 보육원 다니더니 남편 되니 지 자식 하나 제대로 돌보지 못하네. 남편아! 조심해라!” 여기다가 해석은 달지 않겠습니다. 어쨌든,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면 예수님의 제자로서 실격입니다.

■ 자연을 사랑하는가?

사람만 사랑한다고 해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사야서에 보면 메시아에 대한 예언이 많이 나오는데요, 그 가운데 하나가 이겁니다. “정의가 이길 때까지, 그는 상한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을 것이다”(마태복음서 12:20). 물론 이 말씀을 상징적인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만, 일단은 있는 그대로,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습니다. 예수님은 들의 풀 한 포기, 돌멩이 한 개조차 무시하시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요즘 애완동물 기르는 사람들이 많지요. ‘애완동물’이라는 표현이 좋지 않다며 최근에는‘반려동물’이라는 말을 씁니다만, 말은 좋은데 현실은 처참합니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 실제로는 동물학대가 엄청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필요할 때는 구해서 기르다가 필요가 없어지면 그냥 버리는 거예요. 뉴스를 보니까, 2011년에 버려진 동물이 전국적으로 96,268마리랍니다. 벌 받을 일입니다. 정말 자식처럼 아끼며 키울 여건이 안 되면 처음부터 시작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로지 사람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서 평생 갇힌 채로 묶여서 살아야 하는 동물들 생각을 조금이라도 한다면 그래서는 안 되지요.

사람들이 저지르는 못된 짓이 또 하나 있습니다. 예전에 ‘조스’(Jaws, 1975)라는 유명한 영화가 있었지요. 상어 이야기지요. 거기 보면 바다 위로 솟구쳐 있는 삼각형 모양의 물체가 자주 나오는데, 그게 상어 지느러미입니다. 상당히 공포감을 주는 장면이었지요. 그런데 그 상어 지느러미가 거의 세계 최고급의 음식으로 통합니다. 그걸 ‘샥스핀’(Shark’s Fin)이라고 하지요. 중국어로는 ‘위츠’(魚翅)라고 하는데, 이게 중국의 3대 진미 중 하나랍니다. 상어는 동태평양 인근 바다에서 많이 잡히는데요, 살코기의 가격은 1kg당 50센트에서 1달러 정도이지만 상어 지느러미는 100달러에 거래된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지느러미만 챙기고 상어는 그냥 바다에 버립니다. 짐만 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 과정이 정말 잔인합니다. 상어를 배 위로 잡아 올려서는 마취도 안하고 양 지느러미만 잘려낸 뒤에 바다로 다시 던져버립니다. 상어는 양팔이 잘린 채 호흡도 못하고 숨 막히는 고통을 겪다가 수장당해 죽는 것이지요. 이렇게 잡아대니까 상어는 이제 전 세계적으로 멸종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업자들만 나무랄 일은 아닙니다. 수요가 있으니까 공급이 있는 것이지요. 단적으로 말하면, 이런 것 찾아 먹는 사람은 예수님의 제자 될 자격이 없습니다.

■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사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하나님에 대한 사랑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이것은 무엇을 보면 알 수 있을까요? 주일예배에 빠지지 않고 나온다, 헌금을 많이 한다, 두 손을 들고 열심히 하나님을 찬양한다, 매일 성경책을 열심히 읽는다, 등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요. 그러나 이런 것들은 하나님 사랑을 표현하는 극히 일부분입니다. 그런 것만 열심히 한다고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읽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그것을 헤아려서 우리가 그 뜻에 따라 사는 것이지요. 그러면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뜻, 그 핵심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여라!”(마태복음서 6:33)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하면 나머지는 저절로 해결된다는 것이 예수님의 설명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모습인지 신명기 15:4에 나와 있습니다. “당신들 가운데 가난한 사람이 없게 하십시오. 그러면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에게 유산으로 주어 차지하게 하시는 땅에서 당신들이 참으로 복을 받을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이 없는 나라, 불행한 사람이 없는 나라, 그 누구도 차별 받는 일이 없는 나라…, 그런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어떤 사람이 스웨덴에 갔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겪어보지 못했던 별난 경험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조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런 것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모두 자기 일에 바쁘니까 그런 데 관심을 가지지도 않지만, 관심이 있다고 하더라도, 속으로 ‘저 사람, 많이 피곤한 가보네!’ 하고 말지요. 그런데 스웨덴에서는 그런 사람이 있으면 옆에 사람이 묻는답니다. “혹시 어디 아프세요? 제가 좀 도와드릴까요?” 이게 뭘 말합니까? 그 나라에서는 낮에 차를 타고 졸고 앉아 있을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이지요. 밤새워 공부할 일도 없고, 무리하게 야근할 일도 없다는 겁니다. ― 트위터에서 @Cielle_Lee(이하영) 님의 글 참조. 2013.3.10 오후 10:09. 이번에는 독일 이야기입니다. 독일에서 유학하는 사람이 은행에 갔답니다. 옆에 보니까 양 팔이 없는 어떤 장애인이 일을 보는데, 양손이 없으니까 사인을 못하잖아요. 그래서 발을 올려서 발로 서명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걸 놀라운 듯이 쳐다보는 것은 오로지 자기뿐이었다는 것입니다. 은행 안에 있는 독일 사람들은 그 누구도 신기해하지도 않았고 놀라워하지도 않았습니다. 그 사람들에게는 그게 그냥 일상일 뿐입니다. ― 트위터에서 @teresa611(도쿄맑음) 님의 글. 2013.3.17 오전 12:48. 관심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함께 살 수 있도록 사회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지요.

■ 맺는 이야기

오늘 본문말씀을 다시 읽습니다. “이제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으로써 너희가 내 제자인 줄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복음서 13:34-35). 내가 예수님의 제자인지 아닌지, 저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인지 아닌지, 판별하는 법은 단 한 가지입니다. 서로 사랑하는가, 그것만 알아보면 됩니다. 여러분이 사람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여러분은 훌륭한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조금 미흡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괜찮습니다. 그렇게 살아야겠다는 마음만 가지고 있어도 반 이상은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주님의 평화가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942 지각 있는 사람
941 지각 있게 말하는 입술
940 즐거움을 누려라!
939 쥐 세상, 개미 세상
938 죽은 믿음, 살아 있는 믿음
937 죽는 날이 더 중요하다!
936 주일에 해야 할 일 세 가지
935 주인 선택하기
934 주여, 이 땅을 살려 주옵소서!
933 주여, 이 땅을 고쳐 주옵소서!
932 주머니가 구멍난 까닭
931 주님의 특사가 오신다!
930 주님의 특사
929 주님의 제자가 되려면
928 주님의 일에 적합한 사람
927 주님의 이슬
926 주님의 은혜를 잊지 맙시다
925 주님의 영을 받으려면
924 주님의 문
923 주님의 뜻을 이룬 여인들

LOGIN

SEARCH

MENU NAVIG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