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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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지기 2009-09-27 15: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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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마태복음서 6:1-4 
설교일 2009-09-27 
설교장소 구미안디옥교회 
설교자 박종화 
설교구분 주일 
■ 성서 본문

“너희는 남에게 보이려고 의로운 일을 사람들 앞에서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에게서 상을 받지 못한다. 그러므로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위선자들이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그렇게 하듯이, 네 앞에 나팔을 불지 말아라.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네 상을 이미 다 받았다. 너는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자선 행위를 숨겨두어라. 그리하면, 남모르게 숨어서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마태복음서 6:1-4>


■ 들어가는 말씀

남신도 주일을 맞이하여, 여신도 회원들이 아름다운 찬양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는, 찬송을 통해서, 기도를 통해서, 그리고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찾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찾으러 이 자리에 왔습니다. 하나님이 보이십니까? 혹시 안 보이시면 느끼십니까? 하나님과 호흡할 수 있습니까? 사람은 오랜 옛날부터 하나님을 찾고 싶어서 기도도 드리고, 찬송도 불렀는데 하나님의 얼굴은 지금까지 본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모습을 볼 수 없는 이런 하나님을 뭐라고 표현할까? 그 하나님은 계신가? 계시다면 그 하나님은 뭐라고 표현할까?’ 그러다가 전문용어 하나가 생겼습니다. ‘숨어계신 하나님!’ 쉬운 말 같지만 심오한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 모습을 드러내신 하나님

한 때 하나님은 숨어 계신 곳에서 나오셔서 얼굴을 드러내놓고 우리한테 보이신 적이 있습니다. 언제냐 하면 지금부터 2000여 년 전입니다. 그때 베들레헴의 말구유에서 태어난 한 아기가 있었습니다. 그 아기의 이름은 예수라고 하는데 이 아기가 나중에 보니까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그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있었습니다. 얼마나 보여 주셨나요? 성경에 따르면 33년입니다. 드러내놓고 자기 신분도 밝히고, ‘내가 하나님이다!’라고 선언하고, 우리와 똑같은 지구상에 인간의 모습으로 산 하나님의 생존 기간이 33년입니다.

33년보다 많이 사신 분들은 감사하세요. 지금은 의료시설이 좋고 의술이 발달해서 오래 살기는 합니다만 하나님도 서른세 살밖에 못 살았습니다. 사람이 그보다 오래 살았으면 된 것 아닙니까? 하나님의 생존방식 중에 지상에 얼굴을 드러내놓고 사시면서, 그것도 성경에는 30년 기록은 거의 없고 마지막 3년 기록만 많이 남아 있습니다. 3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얼굴을 드러낸 하나님, 그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입니다. 그 말씀이 담겨진 책을 우리는 성경말씀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모습을 드러내시기 전에도 물론 하나님은 계셨습니다. 예언자들을 통하여, 제사장들을 통하여, 왕들을 통하여 활동하셨습니다. 그렇지만 그 모습은 볼 수 없었습니다. 숨어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다가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다음에 또 하나님은 숨으셨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 이전의 하나님과 예수님 이후의 하나님은 숨어계신 하나님, 얼굴을 드러내 놓지 않는 하나님이었습니다. 이 중간에, 눈에 보이는 하나님이 계셨는데, 그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유대 백성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지독한 면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우리 기독교인들은 33년 동안 이 지상에 얼굴을 내놓고 살았던 하나님을 믿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게 그것입니다. 그런데 이 유대 백성들은 그 사람이 아직 하나님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 보이는 하나님을 옛날에도 믿었고 앞으로도 열심히 믿을 겁니다. 지독한 백성입니다. 보지 않고도 믿는 백성이니까요. 그런가 하면 우리는 보고도 못 믿으니까 이 사람들보다 믿음이 부족한지도 모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여 광야까지 나오는데, 사람들이 하나님의 얼굴이 보고 싶다고, “하나님, 얼굴 좀 보여주세요!” 하고 간구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내 얼굴 보면 다 죽는다. 하늘을 쳐다보면 죽는다. 땅의 사람은 땅의 방식대로 살아야지 땅의 사람이 어떻게 하늘의 모습을 보느냐? 안 된다.” 그래서 모세가 바위틈에 숨어서 봤더니 하나님이 삭 지나가시는데 얼굴은 안보이고 등만 보이셨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숨어 계시던 하나님이, 예수님에게 와서 모습이 드러났는데, 하나님의 모습이 어땠을까, 봤더니 그 현실이 참 기가 막힙니다. 하나님은 공중에 떠서 고고하게 사시는 줄 알았더니, 사람에게 배반도 당합니다. 가장 충성스러웠던 제자한테도 배반당하십니다. 침 뱉음도 당하셨습니다. 매도 맞으셨습니다. 그리고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처형 당하셨습니다. 전능하신 줄 알았던 분인데, 그분도 우셨습니다. 그분도 죽으셨습니다. 숨어 계시던 하나님이 모습을 드러내셨는데, 뚜껑을 열고 보니까 우리와 똑같이 고난도 당하시고, 우리와 똑같이 죽음도 당하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죽음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죽었다가 다시 사시는 것도 보여주셨다는 것입니다.

■ 숨어 계시는 하나님

예수님 당시에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런 습관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른다고 유산을 성전에 봉헌합니다. 어려운 사람을 돕겠다고 자선 헌금을 냅니다. 그리고 장터에서 연설을 하기 위해서 사람들을 모읍니다. 그 때마다 큰 네거리에서 뿔로 된 나팔을 봅니다. 나팔을 불어서 사람을 모읍니다. 사람을 다 모으면 그 때 바리새파 사람이든, 제사장이든, 누가 되었든지 주인공이 나와서 돈을 들고, 물품을 들고 선포합니다. “나는 이렇게 자선 헌금 합니다!” 꼭 나팔을 분 다음에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숨어서 받으시는데 왜 사람은 드러내놓고 자선을 하느냐? 숨어계신 하나님께 바치는 사람은 숨어서 하는 방식으로 해라.”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뜻은 이런 겁니다. ‘그냥 인기용으로, 표를 얻기 위해서 이런 일을 하는 것은 안 된다. 적어도 하나님의 이름으로는 안 된다. 하나님 가지고 정치하지 마라. 하나님 이름 가지고 유권자 현혹하지 마라. 왜 하나님의 이름을 가지고 인간의 이익을 취하면서 하나님의 일을 도용하느냐? 안 된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은, 오른손으로 자선을 베풀고 나서 왼손으로 잘했다고 생색을 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른손으로 돈을 낸 다음 그것을 구원이라고, 왼손으로 기록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선만 베풀면 됩니다. 베푼 자선에 대한 마지막 결론은 하나님이 내는 것입니다. 돈 조금 냈다고 구원 받는 것이 아닙니다. 자선기금 조금 냈다고 내 죄가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나를 구원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이 죽고 나면 슬픔에 잠깁니다. 서른세 살보다 더 많이 사셨으면, 산술적으로 계산할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하나님께 감사하십시다. 산 햇수를 감사하는 게 아니라 살아있는 동안에 하늘 뜻을 내가 얼마나 펼쳤는지, 하나님의 모습을 내 삶을 통해서, 언어를 통해서 얼마나 진실하게 후손들에게 남겼는지, 그것을 감사합시다. 금년에 우리는 두 대통령을 잃었습니다. 추기경도 잃었습니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전직ㆍ현직 대통령들이 와서 ‘화해합시다, 나라를 조화롭게 만듭시다!’ 하는 분위기를 만든 것입니다. 가신 분들이 살아 있을 때 이루지 못한 것을 죽음이 이루어준 셈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죽으심으로써 많은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예수님이 안 돌아가셨으면 저나 여러분이 여기 있기나 합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안 죽었으면, 우리 죄를 대신 지고 죽지 않았으면 기독교는 탄생도 안 했을 것입니다.

죽어야 많은 문제가 풀립니다. 죽어야 산다는 진실을 오늘 우리도 경험하지만 예수님도 경험했습니다. 그러면 죽으면 그걸로 끝입니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대로, 썩을 몸이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 썩지 않을 몸으로 부활합니다. 죽은 사람이 가는 곳이 어디냐 하면, 죽음 이후의 세계라고 합니다만, 숨어 계신 하나님의 세계에 들어가는 겁니다. 숨어 계신 하나님은, 살아 있는 우리의 주인이시기도 하고, 죽어가는 사람의 주인이시기도 합니다. 우리는 갑니다, 죽습니다, 시한부로 삽니다. 그러나 그런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은 우리 눈에는 안 보이지만 생명의 역사를 계속 이어가고 계십니다.

■ 숨어 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방법

요즘 우리가 위성의 덕을 많이 봅니다. 또한 인터넷을 사용하기 위하여 광케이블을 전국에 깔아놓고 연결합니다. 안테나를 통해서 전달되는 전파나 위성 전파나 모든 사람에게 공평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전파라고 한다면, 예수를 잘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이나 하나님의 사랑은 공평하게 주어집니다. 성경말씀에 보면, 하나님은 믿는 자나 안 믿는 자나 비는 똑같이 주시고 햇빛도 똑같이 주신다고 했습니다. 예수 믿는 우리만 햇빛 받습니까? 햇빛은 똑같습니다. 하나님은 그래서 믿든 안 믿든 모든 분에게 공평하십니다.

단, 차이가 하나 있습니다. 우리는 핸드폰을 들고 배터리를 채워야 합니다. 그리고 전원을 켜야 합니다. 그래야 송신탑에서 오늘 전파나 광케이블의 전파를 활용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스위치를 켜지 않으면 아무리 전파가 흘러도 무용지물입니다. 하나님의 은총이 비와 같고 햇빛과 같지만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이 스위치를 켜야 하나님의 사랑이 통하는 것이지 스위치를 안 켜면 아무리 좋은 휴대폰을 가지고 있어도 먹통입니다. 그러니까 신앙이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보내시는 사랑의 전파를 받기 위해서 스위치를 켜는 것입니다. 스위치는 신앙으로 켭니다. 그 스위치는 믿음으로 켭니다. 기도로 켤 수 있습니다. 찬양으로도 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힘드실 때가 있을 겁니다. 켜긴 켜는데 켠 핸드폰을 가지고 사기를 칠 수도 있고 좋은 얘기를 할 수도 있습니다. 악을 행할 수도 있고 선을 행할 수도 있습니다. 만일 그 좋은 것을 가지고 나쁘게 사용할 때 하나님의 가슴은 찢어질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선을 행하고 악을 행하지 마라. 받은 은혜를 악한 일로 쓰지 말고 선하게 써라. 그래야 내 사랑도 받고 나의 생명을 누릴 게 아니냐. 나하고 함께 살자. 생명을 택해라!’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는 벧엘, 길갈, 브엘세바, 그런 곳에 신전이 있었습니다. 그 곳에 가면 숨어 계신 하나님의 향수를, 전류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항상 그곳에 갔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찾는다기에 하나님께서도 그곳에 가보셨습니다. 그랬더니 거기는 숨어 계셔야 하는 하나님이 계실 곳이 못되었습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공의가 있는 것이 아니라 타락한 인간들의 정치가 있었습니다. 장사하는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착취가 있었습니다. 핍박, 억압, 착취가 있는 곳을 성전이랍시고, 거기서 하나님을 모신다고, 벧엘, 길갈, 브엘세바가 진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그 곳에 못 가겠다. 길에 치이고 발에 치인 사람, 배고픈 사람들과 고통 받는 사람들의 눈물이 있는 곳에 가서 있어야지, 거짓말 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 내가 어떻게 가느냐. 벧엘 성소, 길갈 성소, 브엘세바 성소에 가지 마라. 거기는 내가 없다. 거기는 우상만 있다. 권력의 우상, 부의 우상, 자존심의 우상, 교만의 우상만 있다. 나 하나님은 없다.’ 그래서 사람들이 묻습니다. ‘그러면 어딜 가면 됩니까?’ 하나님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차라리 배고픈 사람의 눈물 속에 가봐라. 옥에 억울하게 갇힌 사람에게 가봐라. 거기에 내가 있다.’

벧엘, 길갈, 브엘세바 등, 하나님을 모신 성전이 타락하면서 이스라엘은 패망했습니다. 하나님을 모신 우리 안디옥교회 성전은 뭐하는 곳일까요? 여기는 핸드폰 배터리 충전하는 곳입니다. 함께 은혜의 충전을 하는 곳입니다. 충전해야 대화할 것 아닙니까? 충전하는 전류가 없으면 교회는 소용없습니다. 여러분은 충전하셨습니까? 우리 모두 여기서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진실과 높은 뜻을 충전해서 살아보십시다. 그곳이 바로 하나님이 계시는 곳입니다. 건물만 지었다고 충전소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 맺는 말씀

예수를 받아들이고 하나님을 주님으로 모시는 모든 인간들이 다 배터리 충전소입니다. 살아 움직이는 성전입니다. 우리는 한 인간에 불과하지만, 감사하게도 우리는 살아 움직이는 하나님의 사랑의 충전소입니다. 하나님이 비록 숨어 계시지만, 전파를 통하여, 사랑을 통하여 우리를 만나시기 때문에 우리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오늘도 하나님과 같이 살 수 있습니다. 죽으면 죽는 대로, 살면 사는 대로 하나님의 무한대 은총 속에서 우리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방식을 따라 살면 됩니다. 그것이 은혜입니다. 그것이 숨어계신 하나님의 진실입니다. 그 진실에 ‘예!’라고 신앙의 결단을 합시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실 겁니다.

(이 말씀은 2009.8.23 경동교회 박종화 목사님의 설교문으로서,
구미안디옥교회 남신도주일 예배 메시지로 재사용한 것입니다.
※설교저작: 박종화 목사
※일부수정: 전대환 목사
※말씀대독: 한상덕 집사.)
263 "그 날이 오고 있다!"
262 “하나님의 양떼를 먹이십시오!”
261 정도(定道)
260 그릇을 비우십시오!
259 성서, 인권, 기다림
258 주님께서 쓰시는 사람 - (3)열정의 사람
257 그이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면
256 촛불 네 개
255 다른 사람 이해하기
254 "애써 주님을 알자!"
253 사람을 의지하지 마십시오!
252 하나님을 설득하는 방법
251 성령의 열매(7) - 신실
» 숨어 계신 하나님
249 환영, 고난, 죽음
248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247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여라!”
246 출세할 수도 있었던 남자들
245 "젊은이들아!"
244 갈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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