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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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누가복음서 1:57-66 
설교일 2010-12-19 
설교장소 한울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대림절 


■ 성서 본문

엘리사벳은 해산할 달이 차서, 아들을 낳았다. 이웃 사람들과 친척들은, 주님께서 큰 자비를 그에게 베푸셨다는 말을 듣고서, 그와 함께 기뻐하였다.

아기가 태어난 지 여드레째 되는 날에, 그들은 아기에게 할례를 행하러 와서, 그의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그를 사가랴라 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아기 어머니가 말하였다. “안 됩니다. 요한이라고 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말하였다. “당신의 친척 가운데는 아무도 이런 이름을 가진 사람이 없습니다.” 그들은 그 아버지에게 아기의 이름을 무엇으로 하려는지 손짓으로 물어 보았다. 그가 서판을 달라 하여 “그의 이름은 요한이다” 하고 쓰니, 모두들 이상히 여겼다. 그런데 그의 입이 곧 열리고 혀가 풀려서, 말을 하며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이웃 사람들은 모두 두려워하였다. 이 모든 이야기는 유대 온 산골에 두루 퍼졌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이 사실을 그들의 마음에 두고 “이 아기가 대체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하고 말하였다. 주님의 보살피는 손길이 그 아기와 함께 하시는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누가복음서 1:57-66>


■ 들어가는 이야기

벌써 대림절 넷째 주일입니다. 주님께서 주신 환경과 삶에 감사하며,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을 기다리는 여러분 위에 하늘의 은총과 땅의 축복이 넘치도록 임하기를 빕니다. 요즘, 각 대학에서 입학원서를 접수하는 기간이지요. 조금이라도 더 좋은 대학교에 들어가려고 눈치작전이 치열하다고 들었습니다. 좋은 대학이란 어떤 대학입니까? 요즘 사람들의 기준으로 보면, 돈 많이 버는 사람들을 많이 배출하는 학교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제가 볼 때 우리 사회에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병들어 있다는 뜻인 것 같습니다. 인생에서 돈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닌데, 어째서 그런지 모르지만 우리는 ‘돈이 전부’라는 집단최면에 걸려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요즘 기준으로 봐도 출세할 수 있었던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오늘은 ‘출세할 수도 있었던 남자들’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 사무엘 이야기

최근 한나에 대해서 몇 차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만, 한나의 아들이 사무엘인데, 이 양반이야말로 출세 길이 열렸던 사람입니다. 한나가 아들을 낳지 못해 온갖 서러움을 다 받다가 천신만고 끝에 낳은 아들이 사무엘 아닙니까? 한나는 아들을 낳기 위해서 하나님께 서원까지 했습니다. “만군의 주님, 주님께서 주님의 종의 이 비천한 모습을 참으로 불쌍히 보시고, 저를 기억하셔서, 주님의 종을 잊지 않으시고, 이 종에게 아들을 하나 허락하여 주시면, 저는 그 아이의 한평생을 주님께 바치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않도록 하겠습니다”(사무엘기상 1:11). 여러분이 잘 아시는 것처럼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않겠다’고 한 것은 사무엘을 ‘나실 사람’이 되게 해서 주님께 바치겠다는 것입니다.

어렵게 얻은 아들을 하나님께 바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한나는 약속을 지켰습니다. 요즘은 주님께 바쳐진 성직자들 가운데서도 부자들이 많이 있습니다만, 원래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지요. 사람을 하나님께 바친다는 뜻은 생업에 종사시키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좀 더 나아가 생각하자면 한평생 재산을 가지지 않게 하겠다는 뜻입니다. 한평생 자기 이름으로 된 집 한 칸 가지지 않아야 하는 것이 주님의 종입니다. 사무엘은 총명한 사람이었습니다. 지도력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세상을 꿰뚫어보는 혜안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정도면 얼마든지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자질을 갖춘 사람입니다. 그의 정치력을 보십시오. 자기 손으로 왕을 세웠던 사람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명령이기는 했습니다만, 그 왕을 폐하고 다른 왕을 세우기도 했던 사람입니다. 왕을 손아귀에 넣고 쥐락펴락할 수 있었던 사람이 세상 권세를 탐했다면 무엇인들 못했겠습니까? 그러나 사무엘은 죽을 때까지 청렴결백하게 주님의 뜻만 따라 살았습니다. 사무엘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누구의 소를 빼앗은 일이 있습니까? 내가 누구의 나귀를 빼앗은 일이 있습니까? 내가 누구를 속인 일이 있습니까? 누구를 억압한 일이 있습니까? 내가 누구한테서 뇌물을 받고 눈감아 준 일이 있습니까? 그런 일이 있다면, 나를 고발하십시오. 내가 당신들에게 갚겠습니다”(사무엘기상 12:3). 참 멋있는 사람이었습니다.

■ 요한 이야기

출세할 수 있었는데도 그 영광과 권세를 마다하고 다른 길을 갔던 사람이 또 있는데, 그 사람이 바로 세례요한입니다. 요한은 아버지 사가랴와 어머니 엘리사벳이 늙어서 낳은 아들이었습니다. 한나는 젊었는데도 아들을 낳지 못했지만, 이분들은 나이가 많아서 아예 아들 얻기를 포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늦둥이 아들을 얻었습니다. 동네잔치가 열렸겠지요. 문중 사람들이 다 모여서 득남을 축하하면서 아기의 이름을 지어주려고 했습니다. 아버지의 이름을 따라서 ‘사가랴’라고 하는 게 좋겠다고 중론이 모아졌습니다. 그러나 부모들은 반대했습니다. ‘요한’이라고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하며 어머니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의 친척 가운데는 아무도 이런 이름을 가진 사람이 없습니다”(누가복음서 1:60). 양반의 아들인데 왜 상놈의 이름을 붙이려고 하느냐, 이 말이었습니다. 그때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이 아기가 대체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누가복음서 1:66). 부모들의 처사가 이해는 안 가지만, 천하의 제사장 엘리사벳이 그렇게 한다고 하니까,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그 아이가 커가는 것을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요한은 제사장의 아들이었습니다. 당시의 제사장들은 예언자들과는 달라서, 귀족층에 속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제사장은, 아무나 되고 싶다고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제사장의 아들이어야 될 수 있었습니다. 당시 관례대로 한다면, 요한은 당연히 제사장이 되어야 하는 인물입니다. 제사장이 되면 먹고 사는 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잘만 하면 권력까지 손에 쥐게 됩니다. 그러나 요한은 그런 보장된 삶을 포기하고 맨손으로 광야로 나갔습니다. 거기서 그는 “독사의 새끼들아!” 하면서 양반들을 몰아세우며 헤롯 임금을 공격합니다. 그러다가 결국 헤롯에게 목을 베이게 됩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세례요한을 가리켜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가 낳은 사람 가운데서,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이 없다”(누가복음서 7:28)라고 하시며 칭찬하셨습니다.

■ 예수님 이야기

출세할 수 있었던 사람을 이야기하면서 예수님을 빼놓을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이야말로, 출세하려고 마음만 가지셨더라면 세상에서 가장 크게 출세하실 수 있었을 것입니다. 똑똑하기로 말하자면 예수님은 나이 열둘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율법학자들과 토론을 하실 정도였으니, 열 살 남짓하여 사서삼경(四書三經)을 다 떼고 성균관에 가서 유생들과 토론하며 그들을 꼼짝 못하게 만든 꼴입니다. 그것도 어디 서당이나 학교에 가서 배운 것도 아니고, 목수 일을 하면서 틈틈이 익힌 실력이 그 정도이니 예수님의 영특함은 동서고금의 어느 누구보다 뛰어났습니다. 거기다가 예수님은 아픈 사람을 보시면 말씀 한 마디로 척척 병을 고치셨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죽었다고 하는 사람조차 예수님의 말씀 한 마디면 벌떡 일어났습니다. 이렇게 어마어마한 능력을 가지셨으니 그런 능력으로 돈을 벌었으면 얼마나 크게 버셨겠습니까? 오죽하면 사람들이 예수님께 몰려와서, 제발 우리 왕이 좀 되어 달라고 했겠습니까? 스스로 왕이 되겠다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이 왕을 삼으려고 쫓아다닐 정도였으니, 출세하실 생각만 있었다면 얼마든지 하실 수 있었던 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한평생 집 한 채, 방 한 칸 가지신 적이 없습니다. 옷도 두 벌 가지시지 않았습니다. 오죽하면 이런 말씀까지 하셨겠습니까?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을 나는 새도 보금자리가 있으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누가복음서 9:58). 그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젊은 나이에 자손 하나 없이 돌아가셨습니다. 가난한 어머니에게 호강 한번 못 시켜드리고 어머니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우리 식으로 치자면 불효도 그런 불효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희생을 통하여 온 세상 사람들을 구원하는 구세주가 되셨습니다.

■ 맺는 말씀

전에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만, 세상에는 유명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스타들도 그렇고 위인들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스타는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사람들이지만 위인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드린 사무엘이나 요한 같은 분은 위인을 넘어선 성인(聖人)들입니다. 예수님은 성인을 넘어서서, 하나님과 같은 분입니다. 사무엘, 요한, 예수님, 이 세 어른은 출세하고자 하는 뜻만 있었다면 세상 그 누구보다 크게 할 수 있었던 분들이지만 그것을 포기하고, 그보다 더 나은 삶, 그보다 더 의미 있는 삶을 사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에는 돈 버는 것보다 더 귀한 일이 있습니다. 출세하는 것보다 더 보람된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 자신보다는 남을 기쁘게 해주고 남을 편안하게 해주는 일입니다. 사무엘과 요한과 예수님은 세상을 밝히는 빛이 되셨던 분들입니다. 자신을 불태워서 세상을 따뜻하게 해주셨던 분들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세상 풍조를 본받아 돈만 좇아서 사는 사람이 아니라 그보다 더 큰 것을 추구하며 살면 좋겠습니다. 세상에서 출세하기보다 하나님 앞에서 큰 인물로 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62 “하나님의 양떼를 먹이십시오!”
261 정도(定道)
260 그릇을 비우십시오!
259 성서, 인권, 기다림
258 주님께서 쓰시는 사람 - (3)열정의 사람
257 그이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면
256 촛불 네 개
255 다른 사람 이해하기
254 "애써 주님을 알자!"
253 사람을 의지하지 마십시오!
252 하나님을 설득하는 방법
251 성령의 열매(7) - 신실
250 숨어 계신 하나님
249 환영, 고난, 죽음
248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247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여라!”
» 출세할 수도 있었던 남자들
245 "젊은이들아!"
244 갈림길
243 주님의 특사가 오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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