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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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지기 2006-12-25 18:3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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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누가복음서 2:33-35 
설교일 2006-12-25 
설교장소 구미안디옥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성탄절 


■ 성서 본문

아기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시므온이 아기에 대하여 하는 이 말을 듣고서, 이상하게 여겼다. 시므온이 그들을 축복한 뒤에, 아기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 가운데 많은 사람을 넘어지게도 하고 일어서게도 하려고 세우심을 받았으며, 비방 받는 표징이 되게 하려고 세우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칼이 당신의 마음을 찌를 것입니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의 마음 속 생각들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누가복음서 2:33-35)


■ 들어가는 말씀

“세상은 칼로써 막아낼 수 없고 칼로써 헤쳐 나갈 수 없는 곳이었다. 칼이 닿지 않고 화살이 미치지 못하는 저쪽에서, 세상은 뒤채이며 무너져갔고, 죽어서 돌아서는 자들 앞에서 칼은 속수무책이었다. 목숨을 벨 수는 있지만 죽음을 벨 수는 없었다. 물러간 적들은 또 올 것이고, 남쪽 물가를 내려다보는 임금의 꿈자리는 밤마다 흉흉할 것이다.”

작가 김훈의 ≪칼의 노래≫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이순신의 심경을 노래한 책이지요. “목숨을 벨 수는 있지만 죽음을 벨 수는 없었다.” 이순신의 고뇌가 잘 드러나 있는 부분입니다. 이순신의 결론은 ‘칼은 속수무책’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은 칼로써 막아낼 수 없고 칼로써 헤쳐 나갈 수 없는 곳”이라고 고백합니다.

오늘 저는 세 가지 ‘칼’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첫 번째는 ‘무력의 칼’이고, 두 번째는 ‘판단의 칼’ 그리고 세 번째는 ‘찔림의 칼’입니다.

■ 1. “칼을 쓰는 사람은 칼로 망한다.”

예수님께서 체포되실 때 베드로는 칼을 들고 나섰습니다. 이순신은 “세상은 칼로써 막아낼 수 없고, 칼로써 헤쳐 나갈 수 없는 곳”이라고 했는데, 베드로는 세상을 칼로써 막아내려고 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 칼을 칼집에 도로 꽂아라. 칼을 쓰는 사람은 모두 칼로 망한다.” 예수님은 칼로써 세상을 막아낼 수 없음을 아셨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은 칼로 막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죽이려고 질풍노도(疾風怒濤) 같이 밀려오는 흉계를, 베드로가 가진 칼 한 자루로 막아낼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무력(武力)으로 세상을 평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고 싶어 합니다. 우리가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열 받을 일이 있으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힘’입니다. 권력이든, 재력이든, 학력이든, 매사에 우리는 어떤 형식의 힘이든 힘을 쓰고 싶어 합니다. ‘사람은 배워야 해!’ ‘그래 역시 돈은 있고 볼 일이야!’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 하지만, 그래도 권세가 최고야!’ 이런 유혹을 떨쳐버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세상은 힘으로 제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무지막지한 권력을 가졌던 로마 황제들은 지금 다 잊혀지고 있지만, 힘이라고는 도무지 쓰시려고 하지 않았던 예수님은 이천 년이나 지난 지금까지 세상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 2. “나는 칼을 주려고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려고 온 줄로 생각하지 말아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려고 왔다”(마태복음서 10:34). 왜 예수님께서 이랬다저랬다 하시는가, 의아하게 생각할 수 있지만, 여기서 말씀하시는 ‘칼’은 상대를 베기 위한 칼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향한 칼입니다. 이 칼은 복수를 하기 위한 칼이 아니라 나를 바로 세우기 위한 ‘판단의 칼’입니다.

‘판단’(判斷)이라고 할 때 ‘단’(斷)이라는 글자를 살펴보면 도끼를 뜻하는 ‘근’(斤) 자 옆에 실이 엉켜 있는 모양이 있습니다. 실 뭉치 같이 엉켜 있는 것을 잘라서 깔끔하게 가다듬자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 가지고 오신 칼은 옳고 그름을 가리는 칼입니다. 예수님께서 ‘칼을 주러 왔다’고 하신 다음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사람이 자기 아버지와 맞서게 하고, 딸이 자기 어머니와 맞서게 하고, 며느리가 자기 시어머니와 맞서게 하려고 왔다.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일 것이다. 나보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내게 적합하지 않고, 나보다 아들이나 딸을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내게 적합하지 않다.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내게 적합하지 않다”(마태복음서 10:35-38).

‘단칼에 잘라낸다’는 말이 있지요. 예수님은 칼 같은 분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방해되는 것이라면 그 어떤 것이라고 할지라도 잘라버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보다 더 귀하게 생각되는 것이 있거든 칼로 쳐버리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가족과 원수라 되라는 말은 아닙니다. 가족을 사랑하되, 예수님보다는 더 사랑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까지 미적거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양단간에 결단을 내리라고 요청하시는데, 우리는 아직까지 양다리를 걸치고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 예수님보다 더 애착이 가는 것, 그것이 사람이든 권력이든 돈이든, 그런 것이 있다면 이제는 잘라내야 합니다.

■ 3. “칼이 당신의 마음을 찌를 것입니다.”

예수님은 무력의 칼은 거부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칼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판단을 위한 칼이고, 우리의 주변정리를 위한 칼입니다. 여기서 하나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은 ‘무력의 칼’과 ‘판단의 칼’인데 그 다음 생각할 것은 ‘찔림의 칼’입니다. 이것은 예수님 자신이 ‘칼’이 되신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아기를 안고 성전에 갔을 때, 시므온이라는 예언자가 어머니에게 말했습니다. “칼이 당신의 마음을 찌를 것입니다”(누가복음서 2:35). 이 말씀을 다른 번역으로 보니까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개역 개정판), “당신의 마음은 예리한 칼에 찔리듯 아플 것입니다”(공동번역 개정판). 그러니까 여기서 말하는 ‘칼’은 예수님입니다. 이 가운데서 공동번역의 표현이 가장 이해하기 쉽습니다. “당신의 마음은 예리한 칼에 찔리듯 아플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반대자들의 숨은 생각을 드러나게 할 것입니다.”

칼이 되신 예수님은 예수님을 반대하는 사람들, 하나님의 나라를 반대하는 사람들을 찔리게 하십니다. 여기서 ‘찔린다’고 하는 우리말 표현이 참 재미있습니다. 시므온의 말씀과 아주 잘 어울립니다. 예수님께서 스스로 칼이 되셔서 우리 마음을 찔러 주신다는 것입니다. 영어에서는 “be ashamed of”라고 하는데, 이건 좀 약하지요. 그냥 부끄럽게 여긴다는 뜻인데, 우리말 ‘찔린다’는 아주 직설적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성탄절에 우리는 무지막지하게 ‘찔려야’ 합니다. 가슴에 찔리고, 양심에 찔리고, 마음에 찔려야 합니다. 싫어도 찔려야 합니다. 죄가 있는 곳에는 ‘찔림’이 있어야 합니다. ‘죄’란 무엇입니까? 우리는 죄를 너무 추상적으로 생각하는데, 이걸 좀 더 구체화시켜야 합니다. 죄란 예수님의 말씀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내 생각이 예수님의 생각과 다르다면 그것이 죄입니다. 그런데 솔직히 어떻습니까? 예수님의 말씀은 말씀이고, 현실은 현실이다, 이렇게 합리화를 하지 않습니까? 그것은 우리가 무디어졌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날을 계기로 우리는 좀 더 찔려야 합니다.

■ 맺는 말씀

▶‘무력의 칼’은 버려야 합니다. ▶‘판단의 칼’은 예리하게 갈아야 합니다. ▶‘찔림의 칼’은 감사하게 받아야 합니다.

성탄의 축복이 여러분 가운데 가득하시기를 ‘칼’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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