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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마태복음서 18:15-20 
설교일 2007-08-12 
설교장소 구미안디옥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기념주일 


■ 성서 본문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가서, 단 둘이 있는 자리에서 그에게 충고하여라. 그가 너의 말을 들으면, 너는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 그러나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거라. 그가 하는 모든 말을, 두세 증인의 입을 빌어서 확정지으려는 것이다. 그러나 그 형제가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여라. 교회의 말조차 듣지 않거든, 그를 이방 사람이나 세리와 같이 여겨라.”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는 것은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푸는 것은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거듭 너희에게 말한다. 땅에서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합심하여 무슨 일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에게 이루어 주실 것이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여 있는 자리, 거기에 내가 그들 가운데 있다.”

〈마태복음서 18:15-20〉


■ 들어가는 말씀

우리가 흔히 하는 기도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꼭 해야 할 기도이고, ▶둘째는 하지 말아야 할 기도이고, ▶셋째는 ‘가치중립’의 기도입니다. 우리가 꼭 해야 할 기도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위한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기도, 이런 기도는 정말 아름다운 기도입니다. 우리가 하지 말아야 할 기도는, 남이야 어떻게 되든지, 나만 잘 되게 해달라고 하는 기도입니다. 이런 기도는 하나님 앞에서 ‘염치없는’ 기도입니다. 그리고 ‘가치중립의 기도’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기도지만,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 이루어지는 기도입니다.

■ 기도보다 먼저 화해를

이 세 가지 가운데서, 하지 말아야 할 기도는 안 하면 그만입니다. 남에게 피해가 가는 기도, 이런 기도는 당연히 하지 말아야지요. 그리고 ‘꼭 해야 하는 기도’는 우리가 ‘꼭 해야 하는 기도’이기도 하지만,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들어주시는 기도’이기도 합니다. 나도 잘 되고 다른 사람도 잘 되게 해달라는 기도, 이것을 ‘꼭 해야 하는 기도’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나도 행복하고, 다른 사람도 행복하게 해달라는데, 하나님께서 들어주시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리고 ‘가치중립의 기도’는 필요에 따라 열심히 하면 열심히 하는 만큼 얻을 것도 많습니다. 열심히 일하게 해달라는 기도, 일한 만큼 열매도 많이 얻게 해달라는 기도, 열심히 공부하게 해달라는 기도, 공부한 만큼 성과도 얻게 해달라는 기도…, 다 좋습니다. 열심히 해서 많이 달라고 해서, 많이 얻고, 얻은 것을 가지고 멋지게 사용하면 됩니다. 아마도 우리가 가장 많이 하는 기도가 이 ‘가치중립의 기도’일 것입니다. 그런데 ‘가치중립의 기도’를 할 때도 꼭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기도하기 전에 먼저 이웃과 화해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예수님은 하나님 섬기는 것도 중요하게 여기셨지만, 그에 못지않게, 사람과 사람이 서로 인정하며 잘 지내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셨습니다. 마태복음서 5장 21-2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옛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살인하지 말아라. 누구든지 살인하는 사람은 재판을 받아야 할 것이다’ 한 것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자기 형제나 자매에게 성내는 사람은, 누구나 심판을 받는다. 자기 형제나 자매에게 얼간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누구나 공의회에 불려갈 것이요, 또 바보라고 말하는 사람은 지옥 불 속에 던져질 것이다.”

‘살인’이 분명히 나쁜 것이지만, 살인죄보다 결코 가볍지 않은 것이 형제자매를 인정하지 않는 죄라는 말씀입니다.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나만 옳다고 생각하고 드리는 기도는 주님께서 안 받아주시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 말씀에 이어서 23-24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네가 제단에 제물을 드리려고 하다가, 네 형제나 자매가 네게 어떤 원한을 품고 있다는 생각이 나거든, 너는 그 제물을 제단 앞에 놓아두고, 먼저 가서 네 형제나 자매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제물을 드려라.”

■ 스톡홀름 증후군

지금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무장 세력에게 인질로 잡혀 있는 우리나라 사람 스물 한 명은, 아마도 죽을 고생을 하고 있을 겁니다. 벌써 20일이 훨씬 지났지요? 그런데 지금은 의외로 그 사람들 마음이 편안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을 인질로 잡아두는 사람들의 가장 기본적인 요구사항이 무엇인가 하면, 자기들의 정당성을 인정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인질로 잡힌 사람들에게 제일 먼저 주입시킨 것이, 자기들이 왜 그런 일을 했는가, 정당성을 설명한 일일 겁니다. 글쎄, 그분들이 지금쯤 탈레반의 설명에 얼마나 동의를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추측컨대는, 왜 그들이 한국인들을 인질로 잡았는지, 그리고 그 가운데서 두 명을 죽이게 되었는지, 상당부분 동의하고 있으리라고 봅니다.

범죄심리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스톡홀름 증후군’ 또는 ‘스톡홀름 신드롬’이라고 하는데, ‘인질사건에서 인질로 잡힌 사람들이 인질범들에게 정신적으로 동화되어 오히려 자신들을 볼모로 잡은 범인들에게 호감과 지지를 나타내는 심리현상’이라고 정의하지요. 그런데 이것을 꼭 나쁘게만 볼 수는 없습니다. 인질이 인질범을 인정해야 안전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우리나라 협상단이 지금 아프가니스탄에 가서 그 사람들과 직접 대면하고 있다고 하지요? 일부에서는 국가가 테러범들과 직접 협상하는 것에 대해서 비판하기도 합니다만, 제가 보기에는 아주 잘 하고 있는 겁니다. 그 사람들이 차라리 돈을 달라고 하면 돈 주고 풀어내오면 간단한데, 그 사람들 요구가 그런 것이 아니지요.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잡아놓은 자기들 동료들과 맞교환하자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미국이 세운 정부인데, 미국이 이 요구를 들어줄 리가 없습니다. 미국이 아무리 우리의 우방이라고 하더라도, 미국을 설득해서 협상에 응하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정부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일단 직접 만나서 대화하기로 한 것은 좋은 출발입니다. 우리 정부 협상단도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만, 일단은 그들의 실체를 인정하는 것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입니다. 미국 편에서 보면 탈레반은 ‘테러리스트’입니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보면 그들은 ‘독립운동가’들이지요. 제가 보기에는 그 사람들을 ‘독립투사’로 인정해주면, 그 다음 문제는 의외로 쉽게 풀릴 수도 있습니다.

비록 살인을 한 사람과 대화를 한다고 하더라도, ‘너는 나쁜 놈이니까 당연히 죽어야 해!’ 하고 이야기를 시작하면 절대로 진전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래, 살인이 나쁜 것이기는 하지만, 네가 한 행동에도 이유가 있을 거야. 난 그게 알고 싶어. 그리고 너를 도와줄 수 있다면 힘껏 도와줄게.’ 이렇게 나가면 상대의 마음 문이 열릴 가능성이 훨씬 높습니다.

■ 남북 화해의 길

지난 2000년 6월에 남쪽의 김대중 대통령과 북쪽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북정상회담을 했지요. 올해도 8월말에 정상회담을 한다고 하지요. 이번에는 김정일 위원장이 서울이나 제주도에 와서 회담을 할 수 있었다면 더 좋겠는데, 평양에서 열리게 돼서 좀 아쉽기는 합니다만, 안 하는 것보다야 훨씬 잘 된 일인 것 같습니다.

이번 정상회담을 두고, 뭐, 대통령선거에 이용하려고 한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만, 이제 우리 국민 수준이 그 정도는 넘어섰다고 봐야지요. 그 동안 밉게 보이던 노무현 대통령이, 정상회담 한다고 예뻐 보이겠습니까? 그 동안 거부감이 있던 김정일 위원장이, 정상회담 한다고 예뻐 보이기를 하겠습니까? 글쎄요, 다음 정권을 어느 당에서 잡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누가 대통령이 되든지, 이번 정상회담은 남북관계를 풀어나가는 데 보탬이 됐으면 됐지, 손해날 것은 없을 겁니다.

중요한 것은, 정상회담이 왜 필요한가, 하는 것이지요. 우리 헌법에 보면 이런 조항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 북한 땅까지 다 포함해서 대한민국이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지금 북쪽 땅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라는 나라가 버젓이 서 있습니다. 국제연합(UN)에까지 가입한 독립국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남쪽이나 북쪽이나 서로 상대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 아닙니까? 요즘은 사라진 말이지만, 예전에 우리가 북한을 부를 때 흔히 ‘북괴’라고 했었지요. ‘북한괴뢰’를 줄여서 하는 말 아닙니까? 실체는 있지만, 상대를 인정하지는 않겠다, 그것이 지금까지의 남북관계였습니다.

그러나 지난 2000년에 남북의 정상이 서로 만나서 얼싸안음으로 말미암아, 양측이 공식적으로 상대의 실체를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김일성 보고 ‘주석’이라는 호칭을 붙이거나, 김정일 보고 ‘국방위원장’이라는 호칭을 쓰면 큰일 나는 줄 알았습니다. 그것은 북한도 마찬가지였지요. 남쪽 정상을 보고 누가 감히 ‘대통령’이라는 호칭을 썼겠습니까? 그러나 이제는 양쪽 사람들 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공식 직함을 붙여서 부르고 있습니다.

■ 맺는 말씀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사람들입니다. 정치적 득실을 따지는 사람들은 ‘정치인’입니다. 경제적 득실을 따지는 사람들은 ‘경제인’입니다. 아름다움을 따지는 사람들은 ‘예술가’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당연히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는 대로 생각하고 사는 사람들이지요. 다른 것들은 다른 사람들보고 따지라고 하고, 어떤 일이 있을 때, 우리는 ‘이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에 합당한 것인가’ 그것만 따지면 됩니다.

탈레반도 우리의 형제자매로 인정하고 대화하는 것, 그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북쪽의 김정일 위원장과 그 정권도 우리의 대화상대로 인정하는 것,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자세일 것입니다. 그 어떤 상대든지, 일단 대화가 시작되면, 당장에 큰 성과가 나오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원한’은 없어집니다. 그래야 그때부터 우리의 기도가 먹혀들어가기 시작합니다.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거든, 거기서 다른 것 다 멈추고, 먼저 가서 화해하라고 하셨지 않아요?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여 있는 자리, 거기에 내가 그들 가운데 있다”(마태복음서 18:20) 하셨지요. 그러면 네 사람이 기도하면 안 됩니까? 혼자 기도하면 안 됩니까? 아니지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두세 사람”이라는 숫자가 아닙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내 이름으로” 하는 부분입니다. 그것이 주님의 뜻입니다. 주님의 뜻, 곧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자녀들인 형제자매들이 서로 존중하며 인정하는 것이지요.

개인과 개인이 서로 상대를 인정하고 화해하면 그 사람들 사이에 주님께서 계십니다. 집단과 집단이 서로 상대를 인정하고 화해하면 그 집단들 사이에 주님께서 계십니다. 남쪽과 북쪽이 서로 상대를 인정하고 화해하면 우리 민족 가운데 주님께서 계십니다. 주님께서 계시는 곳에서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무슨 일이든지 구하면’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합심하여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립니다. 합심하여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입니다. 이것은 주님의 약속입니다.

저와 여러분 가운데, 우리 교회 가운데, 그리고 우리 민족 가운데 이런 놀라운 기적이 넘치도록 일어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958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957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956 벌거벗은 이사야
955 사무엘처럼
954 안디옥 공동체
953 주님의 문
952 아기야, 칼이 되어라!
951 성령의 언어
950 왜 어린이를 복되다 하는가?
949 오직 주님을 소망으로 삼는 사람
948 우상에 대하여
947 내가 이 일을 지체 없이 이루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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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5 희망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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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3 온 생명을 충만케 해주십시오!
» 합심하여 무슨 일이든지 구하면
941 믿음의 어머니들
940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교회
939 이렇듯 한해를 영광스럽게 꾸미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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