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전대환 채널 바로가기

마을지기 2008-05-04 13:15:52
0 8555
성서본문 사무엘기상 2:18-21 
설교일 2008-05-04 
설교장소 구미안디옥교회 
설교자 임명규 
설교구분 기념주일 


■ 성서 본문

한편, 어린 사무엘은, 모시 에봇을 입고 주님을 섬겼다. 사무엘의 어머니는 해마다 남편과 함께 매년제사를 드리러 성소로 올라가곤 하였다. 그 때마다 그는 아들에게 작은 겉옷을 만들어서 가져다 주었다. 그리고 엘리는 엘가나와 그의 아내에게 “주님께 간구하여 얻은 아들을 다시 주님께 바쳤으니, 주님께서 두 분 사이에, 이 아이 대신에 다른 자녀를 많이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고 복을 빌어 주었다. 그들은 이렇게 축복을 받고서, 고향으로 돌아가곤 하였다. 주님께서 한나를 돌보아 주셔서, 한나는 임신하여 아들 셋과 딸 둘을 더 낳았다. 어린 사무엘도 주님 앞에서 잘 자랐다.

〈사무엘기상 2:18-21〉


■ 들어가는 말씀

오늘은 어린이주일입니다. 총회에서 정한 교회교육주일이기도 합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 교단 총회장인 임명규 목사님께서 작성하셔서 전국 교회가 함께 은혜를 나누도록 한 것입니다.

■ 사무엘 이야기

요즘은 보기 어렵습니다만 예전에는 어린 사무엘이 기도하는 액자를 흔히 볼 수 있었습니다. 버스 운전석 유리에 붙어 있던 ‘오늘도 무사히’라고 기도하는 어린이가 사무엘입니다. 여자 아이 모습이었습니다. 기억나시지요? 그러다보니 한동안 사무엘이 여자인 줄 착각하는 어린이들이 많았습니다.

사무엘은 어렸을 때부터 신앙의 모범이 된 소년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어린 사무엘의 신앙이 커가는 모습이 밝게 그려져 있습니다. 21절에 보면 “어린 사무엘도 주님 앞에서 잘 자랐다”라고 했고, 26절에는 “어린 사무엘은 커 갈수록 주님과 사람들에게 더욱 사랑을 받았다”라고 했습니다. 이런 사무엘의 어린 시절은 예수님의 어린 시절을 떠오르게 합니다. 누가복음서 2장 40절에 보면 “아기는 자라나면서 튼튼해지고, 지혜로 가득 차게 되었고, 또 하나님의 은혜가 그와 함께 하였다” 했고, 누가복음서 2장 52절에는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고,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을 받았다”라고 했습니다.

교회교육주일을 맞이하며, 우리 교회의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이 이처럼 성장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라면서 몸은 튼튼해지고 지혜로워지고, 주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져가기를 기도합니다.

그런데 사무엘 이야기에 이어서 나오는 말씀을 보면, 엘리 제사장의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34절) 이야기가 나오는데, 사무엘 이야기가 밝은 이야기라면 홉니와 비느하스 이야기는 어두운 이야기입니다.

엘리는 사실 사무엘을 양육한 제사장입니다. 사무엘을 키워낸 제사장답게 자신의 공적 임무를 대체로 잘 수행했습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엘리는 자신의 두 아들을 신실하게 키우지 못했습니다. 그 자신은 ‘엘리’(하나님은 존귀하시다)라는 이름값을 하면서 살았지만, 아들들은 아버지와 달리 하나님을 무시했습니다(12). 주님은 안중에 없이, 제멋대로 행동했습니다. 제물에 대한 규례도 지키지 않았고, 사생활에서도 온갖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아들들의 이러한 행동을 두고, 엘리 제사장이 호통을 치긴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때늦은 훈계였습니다. 특단의 조치도 아니었습니다. 이미 장성해버린 두 아들은 연로한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 오늘의 현실

솔직히 엘리의 일이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습니다. 우리도 방심하거나 삐끗하면 엘리와 같은 상황에 처할 수 있습니다. 오래 전 어떤 교회에서 자녀 교육에 관한 강연회가 열렸습니다. 강사는 이 분야에서 막 박사학위를 받은 젊은 여성이었습니다. 강연이 끝난 후 한 교인이 와서 강사에게 조용히 물었습니다. “지금 자녀들은 몇 살인가요?” “갓난아이입니다.” 이 말을 듣자 그 교인은 야릇한 미소를 짓고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 광경을 보신 목사님이 그 미소에 담긴 의미를 이렇게 추정하시더군요. “당신도 애 키워 보세요. ‘이론’대로, 생각대로 되는지….”

자녀들을 신앙 안에서 잘 키우는 것, 쉽지 않습니다. 자신의 일에 매몰되어 자녀들까지 챙기기 버거운 분들도 많습니다. 또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바쁩니다. 이런 환경에 물질만능주의라는 사회 분위기가 더해져서, 많은 성도들에게, 자녀의 신앙교육은 더욱 부차적인 것이 되고 방치되어가는 것이 요즘의 현실입니다.

이러한 현실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녀에 대한 신앙교육을 소홀히 하거나 방치하는 것은 큰일 날 일입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도 우리는 자녀를 위한 신앙교육을 진지하고도 지속적으로 힘써야 합니다. 왜냐하면 바른 신앙교육이야말로 우리의 자녀를 진정으로 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디모데전서 4장 8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몸의 훈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 훈련은 모든 면에 유익하니, 이 세상과 장차 올 세상의 생명을 약속해 줍니다.” 그리고 디모데후서 3장 17절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을 유능하게 하고, 그에게 온갖 선한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엘리는 이 점을 몰랐습니다. ‘주님보다 자식을 더 소중하게 여겼지만’(29) 결과적으로는 자식들을 낭패의 길로 잘못 인도하고 말았습니다. 반면에 사무엘의 어머니인 한나는 신앙 교육의 가치를 알았습니다. 그는 ‘하나님 같은 반석이 없다’(2)는 고백을 가지고 어린 사무엘이 주님을 섬기는 삶을 살도록 했는데(18), 그 길이야말로 진정으로 자식을 위하는 길이었습니다.

■ 자녀 교육을 위하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나를 통해 확인할 수 있듯이, ▶신앙교육의 첫 단추는 ‘신앙교육의 가치를 진심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진단을 해보십시오. 만일 ‘주님을 의지하면서 진지하게 주님께 기도하는 자녀들의 모습’에서 큰 기쁨을 느끼거나 그런 자녀가 되기를 기대하시는 분이라면 이미 신앙의 가치를 인정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 출발점에 서 있다면 신앙교육을 소중하게 대하고 그와 관련하여 정성을 다하기 마련입니다. 주님은 그러한 태도와 노력을 재료로 삼아 우리의 자녀를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키워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교육의 가치를 진심으로 인정하자!” 이것이 바로 이 시간 명심해야 할 첫 번째 교훈입니다.

▶이 시간 우리가 명심해야 할 두 번째 교훈은 신앙교육을 위한 노력은 당장 실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앙교육은 미룰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그리고 부단히 지속되어야 합니다. 엘리는 그 점을 몰랐습니다. 두 아들에게 “이 놈들아 당장 그쳐라!”(24) 하고 호통을 쳤지만 변화되기에는 너무 늦었습니다. 엘리의 자녀들은 이미 장성해버렸기에, 이제 그들은 교육의 대상이 아니라 회개의 대상이었습니다. 반면 한나는 사무엘을 어릴 때부터 신앙으로 양육했습니다. 커가는 어린 사무엘을 위해 작은 겉옷을 해마다 만들어 입히면서(19) 기도로써 키워왔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교육은 여건이 될 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결코 신앙교육을 못할 정도의 여건은 없습니다. 한나처럼 자녀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정성의 문제이지 여건의 문제가 아닙니다. 주일 저녁, 가족이 주님 앞에서 가정예배로 한 주간을 시작하는 것도 조금만 신경 쓰면 할 수 있는 일종의 신앙교육입니다. 교회 학교 선생님들에게 감사하고 중보기도로 지원하는 것도 정성의 문제입니다. 오늘부터 자녀들의 신앙을 위해 기도하며 신앙교육을 실천하는 성도 여러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 시간 우리가 명심해야 할 세 번째 교훈은 신앙교육은 공동체의 협력을 필요로 한다는 것입니다. 홀로 감당하지 말고 함께 이루어가라고 주님께서는 이처럼 우리를 한 교회로 묶어주셨습니다. 이 원리는 신앙교육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의 신앙교육만으로는 모자라, 우리의 자녀들이 주님 앞에서 잘 자랄 수 있도록 우리 교회의 교육기관이나 총회교육원 같은 조직들이 공동체적인 협력을 하고 있습니다.

어린 사무엘의 신앙교육도 가족의 힘만으로는 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늘 제사장 엘리 곁에 있으면서 주님을 섬기는 사람으로 성장했습니다(11). 그처럼 우리의 신앙은 홀로 성장하지 않고, 그리스도께서 이끄시는 교회 안에서 완성되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장 신앙의 가치를 인정하고 부모로서 자식을 위한 신앙교육에 열정을 쏟는 것도 중요하지만, 교회라는 틀 안에 맡기고 기도로써 신앙교육에 관심을 가지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합니다.

■ 맺는 말씀

이제 오늘 말씀을 정리합니다. 오늘은 교회교육주일입니다. 엘리의 두 아들과 어린 사무엘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자녀들을 어떻게 신앙으로 양육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살펴보았습니다. ▶첫째, 무엇보다 신앙교육의 가치를 인정하자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것이 믿음의 전제조건입니다. ▶둘째, 이처럼 소중한 신앙교육을 위해 우리들은 오늘 당장 기도하고 실천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셋째, 이러한 노력은 혼자가 아니라 교회교육기관이나 총회교육기관과의 협력을 통하여 더 큰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우리 자녀들의 신앙교육을 위하여 우리 각자가 더 기도하해야 하겠습니다. 교회와 총회는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더욱 아름답게 성장해 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자녀들이, 영혼이 건강하고, 몸이 건강하고, 하는 일마다 다 잘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1101 내 인생 광내기
1100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1099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1098 벌거벗은 이사야
» 사무엘처럼
1096 안디옥 공동체
1095 주님의 문
1094 아기야, 칼이 되어라!
1093 성령의 언어
1092 왜 어린이를 복되다 하는가?
1091 오직 주님을 소망으로 삼는 사람
1090 우상에 대하여
1089 내가 이 일을 지체 없이 이루겠다!
1088 우리 가운데에 하나님의 나라를!
1087 희망 전도사
1086 그리스도의 사람
1085 어둠의 자식, 빛의 자녀
1084 온 생명을 충만케 해주십시오!
1083 믿음의 어머니들
1082 합심하여 무슨 일이든지 구하면

LOGIN

SEARCH

MENU NAVIG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