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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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마가복음서 6:7-13 
설교일 2006-07-16 
설교장소 구미안디옥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주일 


■ 성서 본문

그리고 열두 제자를 가까이 부르셔서, 그들을 둘씩 둘씩 보내시며, 그들에게 악한 귀신을 억누르는 권능을 주셨다. 그리고 그들에게 명하시기를, 길을 떠날 때에는, 지팡이 하나 밖에는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말고, 빵이나 자루도 지니지 말고, 전대에 동전도 넣어 가지 말고, 다만 신발은 신되, 옷은 두 벌 가지지 말라고 하셨다. 또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디서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그 곳을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 있어라. 어느 곳에서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않거나, 너희의 말을 듣지 않거든, 그 곳을 떠날 때에 너희의 발에 묻은 먼지를 떨어서, 그들을 고발할 증거물로 삼아라.” 그들은 나가서, 회개하라고 선포하였다. 그들은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수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발라서 병을 고쳐 주었다.

(마가복음서 6:7-13)


■ 들어가는 말씀

휴가철에 해외여행 가는 사람들이 많아서, 요즘 여권 창구가 메어 터진다고 합니다. 어떤 데는 새벽 네 시부터 줄을 서서 표를 받아야 여권을 신청할 수 있답니다. 한편에서는 해외에 나가서 돈을 너무 많이 쓴다고 걱정도 하지만, 저는 여행을 많이 하는 것은 젊은이에게나 나이 든 이에게나 다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3~40만 원이면 며칠 정도 다녀올 수 있는 패키지도 있습니다. 차라리 옷을 한 벌 덜 해 입더라도, 적금이라도 들어서 해외여행은 꼭 해보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배우고자 하는 마음만 가지고 있으면 정말로 많은 것을 얻어올 수 있습니다.

해외여행을 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처음 여행을 떠날 때는 짐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다가 두어 차례 다녀보면 가급적 짐을 줄이려고 하지요. 그래서 해외여행 가이드에 보면 이런 말이 흔히 나옵니다. “혹시 필요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짐은 무조건 빼고, 없어서는 안 될 것만 챙겨라!” 이것저것 다 챙겨가지고 갔다가는 짐에 치여서 고생만 하고 돌아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예전부터, 어디 나갈 때 챙겨 가야 할 물품들을 메모를 해두고, 그대로 가지고 갑니다. 교회 올 때, 시내 나갈 때, 가까운 시외로 갈 때, 며칠간 멀리 갈 때, 그리고 해외에 나갈 때 챙길 것들 목록이 다 다릅니다. 언제나 최소한의 물건들만 챙기기 때문에 짐 때문에 고생하는 일이 별로 없고, 뭘 안 가지고 가서 아쉬워하는 일도 별로 없습니다. 그리고 멀리 여행을 가서 짐이 생기면 그걸 끌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웬만한 것은 가까운 우체국에 가서 택배로 집으로 부쳐버립니다. 물론 자동차가 있으면 실으면 되지만, 장거리 갈 때는 웬만하면 자동차를 가지고 가지 않습니다. 이렇게 다니면 얼마나 가뿐한지 모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세상으로 내보내실 때도, 짐을 줄이라고 지시하셨습니다. 짐 때문에 고생하지 말고, 가뿐하게, 자유롭게, 임무에 충실하도록 하라는 말입니다. “길을 떠날 때에는, 지팡이 하나 밖에는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말고, 빵이나 자루도 지니지 말고, 전대에 동전도 넣어 가지 말고, 다만 신발은 신되, 옷은 두 벌 가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마가복음서 6:8-9). 다른 것은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말하고 하셨지만, 꼭 지니고 가라고 하신 것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옷은 당연히 입어야 할 테니까, 그건 목록에서 빼고, 지팡이와 신발은 반드시 챙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 지팡이를 가지자.

요즘은 노인이나 장애인이 아니면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사람들이 별로 없습니다만,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이 살던 땅에서는 지팡이가 필수품이었습니다. ▶먼 거리를 걸어야 하기 때문에 두 발로 가는 것보다는 지팡이가 있으면 힘이 훨씬 적게 듭니다. 지팡이가 없으면 몸을 양쪽 발, 두 기둥으로 지탱해야 하지만, 지팡이가 있으면 다리가 세 개가 되는 셈이 되니까 힘이 분산이 되어서 걷기가 훨씬 수월합니다. ▶또 지팡이는 연장으로도 쓰였습니다. 요즘처럼 보도블록이나 잘 닦여진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사막도 통과해야 하고, 가시밭도 지나야 하고, 돌밭도 지나가야 하기 때문에 길을 헤쳐 나가기 위해서 여행길에는 반드시 지팡이가 있어야 했습니다. ▶지팡이는 또한 무기로도 쓰였습니다. 지팡이가 있으면 광야나 산에서 짐승이 달려드는 것을 막을 수 있었고, 호신용으로 요긴한 물건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옛날 사람들이 쓰던 지팡이가 필요 없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사람 사는 세상 이치는 예나 지금이나 비슷한 까닭에, 옛날 사람들에게 지팡이 구실을 하던 것이 요즘도 있기는 있어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지팡이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든든한 지팡이가 필요합니다. 시편 23편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오지요. “내가 비록 죽음의 그늘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고, 주님의 막대기와 지팡이로 나를 보살펴 주시니, 내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시편 23:4).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면 그것이 기쁜 소식을 전하는 전도자의 삶에서 든든한 지팡이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을 굳게 믿고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지팡이로 삼았을 때는 나라가 튼튼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사람의 힘이나 이웃나라의 힘을 의지할 때는 여지없이 망했습니다.

이사야서 36장 6절에 보면,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외면하고 이집트를 의지하려고 하니까, 이사야가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부러진 갈대 지팡이 같은 이 이집트를 의지한다고 하지만, 그것을 믿고 붙드는 자는 손만 찔리게 될 것이다. 이집트 왕 바로를 신뢰하는 자는 누구나 이와 같이 될 것이다.” 지팡이라고 다 지팡이가 아니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지팡이는 우리에게 더없이 튼튼한 지팡이지만, 다른 지팡이는 부러진 갈대 지팡이입니다. 그런 걸 의지하다가는 손만 찔립니다.

최근에 북한에서 미사일을 쏜 것 때문에 미국과 일본이 상당히 시끄럽습니다. 북한을 공격하자는 말까지 서슴없이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에서 하는 일이 마음에 안 드는 게 많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이번 미사일 사건에 대처하는 모습에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일부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미국과 일본과 한국이 뜻을 모아서 북한을 경계해야 하는 것 아니냐, 북한 때문에 우방인 미국이나 일본과 등져서는 위험하다.’

미국이 우리를 지켜준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의 안보를 위해 일본의 힘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100여 년 전, 일본이 조선을 보호해준다면서 맺은 조약이 을사보호조약 아닙니까? 일본이 우리나라를 보호해주기 위해서 왔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온갖 이권이란 이권은 모조리 강탈해 가고, 결국에는 나라까지 통째로 삼켜버렸고, 조선 사람들은 일본 사람들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이런 게 강대국이 약소국을 보호해준다는 겁니다. 이거 정신 바짝 차려야 할 일입니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미국이 우리를 보호해준대요. 그래서 주한미군이 있는 것 아닙니까? 여러분이 잘 아시겠습니다만, 대한민국 대통령은 전쟁 나면 허수아비에요. 작전권도 없어요. 비상시에는 미국이 우리나라의 모든 군사권을 자기들 마음대로 좌지우지하게 되어 있습니다. 아니, 도대체 그리고 누구에게서 우리를 보호해준다는 겁니까?

북한 말인가요? 북한은 지금 서방세계에서 고립되어서, 자기들 먹고살기도 바빠 허덕이고 있습니다. 북한이 유일하게 기댈 곳은 남한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북한이 남한을 공격한다고요? 지금 상황에서는, 같이 죽자고 덤비지 않는 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여러분이 기회가 있다면 북한 사람들 한 번 만나 보세요. 제가 만나본 북한 사람들은 북한 고위 인사들은 물론, 어린 학생들도, 아니 술집 종업원들까지도 하는 말이, 남한 사람들, 그 사람들 말로 남조선 사람들과 잘 지내자는 겁니다. 그 사람들, 남한을 공격할 의사도 없고 능력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미국은 우리를 지켜준다면서 우리나라의 자주국방을 가로막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일본까지 가는 미사일도, 미국이 못 만들게 해서 못 만드는 겁니다. ‘우리가 너희 지켜줄 테니 너희는 손발 꽁꽁 묶어놓고 우리가 시키는 대로만 하라, 이겁니다. 이게 일본 사람들이 강요한 을사보호조약과 다를 게 뭡니까?

이사야가 말한 대로, 다른 나라를 의지하는 것은 상한 갈대 지팡이를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오직 튼튼한 지팡이,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나라도 그렇지만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에서 ‘고관들을 의지하지 말라’고 틈나는 대로 강조하는 것이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2. 신발을 신자.

이제, 두 번째로 신발 문제를 한 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모세가 처음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아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너는 신을 벗어라”(출애굽기 3:5). 그리고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정복하기 전에 하나님의 사람이 여호수아에게도 말했습니다.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곳이니, 너의 발에서 신을 벗어라”(여호수아기 5:15).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하신 말씀과 여호수아에게 하신 말씀이 똑 같습니다.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곳이니, 너의 말에서 신을 벗어라!”

지금은 우리나라 사람들도 대부분 아파트나 양옥에서 삽니다만, 우리나라 사람들과 서양 사람들이 다른 점 하나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안방에 들어갈 때 반드시 신을 벗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서양 사람들은 침실까지 신을 신고 들어갑니다. 이건 호텔도 마찬가지입니다. 글쎄, 어떤 것이 낫다, 못하다, 잘라 말하기는 어렵지만, 우리는 깨끗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곳에는 반드시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습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 앞에 설 때는 신을 벗어야 합니다. 그 곳은 거룩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보통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신발을 신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집에서 나와서 교회까지 오실 때도 모두 신을 신고 오셨습니다. 신이 어떤 구실을 하기에 걸음마를 시작하는 순간부터 누구를 막론하고 신을 신습니까? 요즘 같이 뜨거운 날 신을 신지 않고는 아스팔트나 보도블록을 밟고 다닐 수 없습니다. 추운 겨울날, 신을 신지 않고 밖에 나갈 수 없습니다. 길이 조금만 울퉁불퉁해도 신 없이는 못 다닙니다. 하물며 산길이나 사막 길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와 같이 신은 우리가 일할 때나 길을 갈 때, 우리 발을 보호해주기 때문에, 신발 덕에 우리는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전에 말씀드린 기억이 있습니다만, 어떤 하인이 스님에게 말했습니다. “스님, 이 세상이 모두 쇠가죽으로 덮여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어디든지 편하게 갈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이 때 스님이 대답했습니다. “야, 이놈아, 세상천지를 어떻게 쇠가죽으로 깔겠느냐? 네 발에 쇠가죽 신을 신으면 되지.”

우리는 환경을 탓할 때가 많습니다. 직장에서도 그렇고, 교회에서도 그렇고, 가정에서도 그렇습니다. 세상 모든 환경이 나에게 편리하도록 맞추어지기를 기대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가능한 일이겠습니까? 죽었다 깨나도 그런 일은 없습니다. 그것은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내 비위를 맞추며 살기를 바라는 것과 같습니다. ‘굿 못하는 무당이 마당 기울다고 한다’고 했습니다. 굿에 도통한 무당은 마당이 기울거나 바르거나 제 할 일을 잘 해냅니다. 이승엽 선수 보세요. 우리나라 사람이 일본 프로야구에 가서 성공하기가 참 어렵다고 합니다. 그만큼 환경이 열악하다는 말이지요. 그런데도 잘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것은 일본 감독이나 선수들이 자기에게 맞추어주기를 기대하지 않고, 자기가 스스로 그 열악한 환경을 헤쳐 나가기 때문입니다.

공부 못하는 학생이 자기 환경을 탓하고, 실력 없는 직장인이 스트레스가 많습니다. 우리 친척 가운데, 학교 선생님이 많은데,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물어봤습니다. “요즘 학생들 선생 말 잘 듣는가?” 그랬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요즘 아이들이 얼마나 귀하게 큰 아이들인데, 선생 말을 잘 듣습니까?” 그래서 다시 물었지요. “그러면 선생 하는 거 힘들지 않는가?” 그랬더니 이런 대답을 했습니다. “세상에 힘들지 않은 게 어디 있어요? 다 자기 하기 나름이지요. 선생 하기에 따라서 학생들은 잘 따라옵니다.”

교회생활이나 세상에서의 신앙생활도 그렇습니다. 내가 아무리 강한 사명감을 가지고, 아무리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주님의 일을 하려고 하더라도, 세상이 나를 따라주기를 바라면 실패합니다. 주님의 말씀이 아무리 소중하고 귀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세상 사람들이 내 말을 들어주기를 바라면 실망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나는 섬기는 사람으로 너희 가운데 있다”(누가복음서 22:27)고 말씀하셨습니다. 섬긴다는 것은 상대방이 내 뜻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상대방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주님의 일을 하는 주님의 일꾼은 ‘섬김’을 실천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번 주말부터 여름성경학교를 시작합니다만, 교사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학생들을 섬기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잖아요? “너희는 선생이라는 호칭을 듣지 말아라. 너희의 선생은 한 분뿐이요, 너희는 모두 형제자매들이다.”

우리가 세상에 나갈 때 신을 신는다는 것은 이런 뜻입니다. 뜨거우면 뜨겁다고 못 가고, 차가우면 차갑다고 못 가고, 가시밭길이면 가시밭길이라고 못 가고, 돌밭이라면 돌밭이라고 못 가고, 더러우면 더럽다고 못 가고…. 이런 사람은 신발도 신지 않고 일하러 나가겠다는 것인데, 그것은 일하지 않겠다는 말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신을 신은 사람은 환경을 탓하지 않습니다. 뜨거운 길이나 얼음길이나, 젖은 길이나 마른 길이나, 지저분한 길이나 말끔한 길이나, 가시밭길이나 평탄한 길이나, 그들은 길을 가리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가라고 하시는 길이면 어디든지 갈 수 있습니다.

■ 맺는 말씀

저는 오늘 두 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첫째는 썩은 갈대 지팡이가 아니라, 튼튼한 지팡이를 들고 길을 나서자는 것이었습니다. 세상 지위가 높은 사람을 의지하는 것, 강대국을 의지하는 것, 돈을 의지하는 것, 이런 것들은 썩은 갈대 지팡이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무소부재하신 하나님만 믿고 그분의 뜻만을 따르겠다고 하는 마음가짐, 이것이 튼튼한 지팡이입니다. 이 지팡이를 가지면 내가 피곤하고 지칠 때 의지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온갖 난관을 헤치고 나아갈 수 있습니다. 악의 세력이 몰려올 때 그 지팡이로 물리칠 수도 있습니다.

▶두 번째는 신발을 신자는 것이었습니다. 거룩한 하나님 앞에서는 신발을 벗어야 합니다. 아니, 신을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으로 나갈 때는 질기고 가벼운 신발을 신어야 합니다. 그래야 위험한 곳에도 갈 수 있고, 마음에 안 드는 곳에도 갈 수 있고, 지저분하고 더러운 곳에도 갈 수 있습니다. 섬김을 받으러 가는 바리새인의 길이 아니라, 섬기러 가는 예수님의 길을 따를 수 있습니다.

여행길에는 짐이 가벼워야 합니다. 가급적 짐을 줄여야 합니다. 인생은 나그네길이요, 신앙인의 길은 섬김의 길입니다. 다른 것은 다 버려두고, 오직 지팡이 하나 들고 신발 한 켤레만 시고, 주님께서 가라고 하시는 길이면 두려움 없이 어디든지 가야겠습니다. 누구를 만나든지 그를 섬겨야겠습니다.

주님의 평화가 섬김의 길을 가는 저와 여러분 가운데 언제나 충만하기를 기원합니다.
962 "굴욕으로 배를 채워라!"
961 열매를 맺기까지
960 '언제나' 행복한 사람
959 여신도여, 일어나 화해의 대로를 열어라!
958 왕 같은 제사장(고 김영이 목사님을 배웅하며)
957 주님 음성 나 들을 때
956 한 몸이기에
955 예수를 도운 여인들
954 "성령께서 가르쳐주실 것이다!"
953 성령의 열매(6) - 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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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4 청지기의 직업의식
943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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