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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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지기 2009-11-15 14: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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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골로새서 3:15-17 
설교일 2009-11-15 
설교장소 구미안디옥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감사절 


■ 성서 본문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지배하게 하십시오. 이 평화를 누리도록 여러분은 부르심을 받아 한 몸이 되었습니다. 또 여러분은 감사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 가운데 풍성히 살아 있게 하십시오. 온갖 지혜로 서로 가르치고 권고하십시오. 감사한 마음으로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여러분의 하나님께 마음을 다하여 찬양하십시오. 그리고 말이든 행동이든 무엇을 하든지, 모든 것을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분에게서 힘을 얻어서,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십시오.

<골로새서 3:15-17>


■ 들어가는 말씀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얼핏 들어서는 이해하지 못할 말씀을 가끔 하셨습니다. 예를 들면 누가복음서 19:26 말씀 같은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가진 사람은 더 받게 될 것이요, 가지지 못한 사람은 그가 가진 것까지 빼앗길 것이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예수님이, 가지지 못한 사람한테 더 주셔야 할 것 같은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가지지 못한 사람은 있는 것마저 빼앗기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오히려 가진 사람이 더 받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오늘이 추수감사주일인데, ‘감사’를 놓고 생각해보면 이 말씀이 무슨 뜻인지 금방 이해가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조금’ 바꾸어 보겠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감사하는 사람은 감사할 일이 더 많이 생기게 될 것이요, 감사하지 않는 사람은 그가 가진 작은 감사할 일조차도 빼앗길 것이다.” 딱 맞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예수님은 사람이 사는 방식, 곧 생활 시스템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감사의 방식으로 사는 사람은 늘 감사하며 살게 되지만, 불평이 몸에 밴 사람에게는 언제나 불평할 일만 생깁니다. 풍족하게 되는 방식으로 사는 사람은 늘 풍족하게 살지만, 가난한 방식으로 사는 사람은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말씀의 제목을 <감사의 선순환>이라고 붙였습니다. 이 제목은 <불평의 악순환>에 대비되는 표현입니다. 장사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장사가 잘되는 집은 언제나 잘됩니다. 그러나 안 되는 집은 점점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늘 감사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우리 삶의 시스템을 바꾸어야 합니다. 어떻게 바꿀까, 이 문제에 대해서 바울은 세 가지를 말했습니다. 오늘 골로새서 말씀이 그 이야기입니다.

■ 그리스도의 평화가 우리 삶을 지배하도록 하면 감사의 선순환이 이루어집니다.

15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지배하게 하십시오.” 그러면 감사하면서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마나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있기를 바랍니다!” 하고 인사를 하지 않습니까? 바울도 편지를 쓸 때마다 이 말을 합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평화가 무엇이기에, 그렇게 평화를 강조하는 것이겠습니까? 한 마디로 말하자면 그리스도의 평화는 ‘담을 허무는 평화’입니다. 에베소서 2:14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이 양쪽으로 갈라져 있는 것을 하나로 만드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 사이를 가르는 담을 자기 몸으로 허무셔서, 원수 된 것을 없애시고….” 더 간단히 말하자면 원수 맺지 않는 것이 ‘평화’입니다.

소파 방정환 선생께서 이런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1924년에 쓰신 <어린이 찬미>라는 글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고요하다는 고요한 것을 모두 모아서 그 중 고요한 것만 골라 가진 것이 어린이의 자는 얼굴이다. 평화라는 평화 중에 그 중 훌륭한 평화만을 골라 가진 것이 어린이의 자는 얼굴이다. 아니 그래도 나는 이 고요한, 자는 얼굴을 잘 말하지 못하였다.” ― ≪한국수필 베스트 50≫(도서출판 두풍, 1995), 107쪽.

아기들이 자는 모습을 보면 정말 평화스럽지요. 그런 모습이 ‘평화’입니다. 아기들이 잠잘 때 누가 때릴까봐 걱정합니까? 돈 때문에 걱정합니까? 자는 동안에 누가 자기 욕할까봐 걱정합니까? 아무 생각도 없습니다. 그냥 잠을 자는 거예요. 그래서 성경에도 그런 말이 있습니다(시편 127:2). 옛날 개역성경의 표현은 이렇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이 말씀이 우리가 보는 새번역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진실로 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사람에게는 그가 잠을 자는 동안에도 복을 주신다.” 결국 같은 말이에요. 잠자는 동안에도 복이 굴러들어오니까 편하게 잠을 잘 수 있는 것이지요.

마음이 편해야 감사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편해야 돈도 잘 벌 수 있습니다. 마음이 편하면 건강도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잠을 잘 못 자는 사람이 어떻게 건강할 수 있습니까? 건강하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열심히 일을 해서 돈을 벌 수 있습니까? 마음이 편하지 않은데 어떻게 감사할 수 있습니까? 감사하지 않는데 어떻게 더 큰 복을 받을 수 있습니까? 평화가 없으면 악순환이 계속됩니다. 잠을 잘 자야 합니다. 잠을 잘 자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걱정이 없어야지요. 걱정이 없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간단합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겨야지요. 하나님께 맡기면 세상에 원수도 없습니다. 미운 사람도 없습니다. 내 원수를 하나님께서 갚아주신다고 하셨지 않습니까? 자는 동안에도 복이 굴러들어오게 해주신다는 데 왜 하나님께 맡기지 못합니까?

■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안에 살아 있게 하면 감사의 선순환이 이루어집니다.

16절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 가운데 풍성히 살아 있게 하십시오. 온갖 지혜로 서로 가르치고 권고하십시오.” 그리스도의 말씀, 곧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가운데 살아 있으면 우리는 늘 감사하며 살 수 있습니다. 그것도 그냥 어설프게 살아 있어서 되는 것이 아니고 ‘풍성히’ 살아 있어야 합니다.

어떤 새댁이 몸도 나른하고, 기운도 없고, 자꾸 졸리고 해서, 산부인과 병원에 갔습니다. 의사가 진찰을 해보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부인 뱃속에 생명체가 자라고 있습니다.” 그러더니 의사는 알약을 건네주면서 말했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이 약을 드시면 배가 편해질 겁니다.” 약을 받아든 새댁이 의아해하며 물었습니다. “배가 편해지다니요? 요즘엔 임신 중에도 배 편하라고 약을 먹나요?” 의사는 미소를 지으며 새댁을 쳐다보고 잠시 가만히 있더니 말했습니다. “그건 회충약이에요.”

뱃속에 아기가 살아 있으면 여성은 그때부터 위대한 사람이 됩니다. 어머니가 되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뱃속에 회충이 살아 있으면, 그 사람은 환자일 뿐입니다. 뱃속에 무엇이 살아 있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신분이 결정되는 겁니다. 우리 속에 병균이 살아서 활동하면 우리는 병에 걸리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 속에서 젖산균 같은 유익한 것들이 살아서 활동하면 우리는 건강을 유지하게 됩니다. 뱃속 사정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 머릿속에 무엇이 살아 있느냐에 따라 우리 삶이 달라집니다. ‘불평의 악순환’ 속에서 헤매며 살 수도 있고, ‘감사의 선순환’ 가운데서 신나게 살 수도 있습니다. 우리 심령에 예수님의 말씀이 살아 있으면 우리는 행복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항상 기뻐하며, 모든 일에 감사하면서 살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 속에 사람의 말만 가득 들어 있으면 피곤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있어야 할 자리에 시어머니 말씀이 맴돌고, 예수님의 말씀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자식 놈들이 속 썩이며 하던 말이 들어 있고, 예수님의 말씀으로 위로 받아야 할 때 나를 속상하게 하던 말만 떠오른다면, 그 사람의 삶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정말 피곤합니다.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말씀이 풍성이 살아 있게 하려면 말씀을 부지런히 받아먹어야 합니다. 주일예배를 통하여 주님의 말씀을 받고, 주일 오후와 수요일 성경공부를 통하여 말씀을 받고, 평소에도 성경책을 읽음으로써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우리가 흔히 하는 이야기지만, 성경책이 깨끗한 사람은 마음이 더럽습니다. 그러나 성경책에 때가 많이 묻은 사람은 마음의 때가 그만큼 적습니다. 성경책이 너덜너덜할수록 우리 마음에는 조금만 때가 묻어도 불편해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책이 깨끗한 사람은 마음에 온갖 오물이 다 묻어 있어도 깨닫지를 못합니다. 어쨌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서 풍성히 살아 있을 때 우리 삶에는 감사의 시스템이 활발하게 돌아갑니다.

■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살면 감사의 선순환이 이루어집니다.

통장을 하나 만들 일이 있어서 며칠 전에 은행에 가서 신청을 하는데, 인터넷 뱅킹을 이용해야 하기 때문에 그것을 위한 신청서도 따로 작성을 해야 했습니다. 직원이 묻기를, “하루 이체 한도를 얼마로 정할까요?” 합디다. “알아서 해 주세요!” 했더니 “5억으로 할까요?” 하기에 그러라고 했습니다. 제 평생에 돈 5억을 이체할 일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일단 그렇게 정했습니다. 제가 지금 하려는 이야기는 돈 이야기가 아닙니다. 요즘 웬만한 사이트에는 다 로그인 기능이 있습니다. 자기 고유의 아이디를 쓰고 비밀번호를 입력하면 일정 권한이 생깁니다. 어떤 아이디로 로그인 하느냐에 따라 권한이 달라집니다. 우리 교회 인터넷 서버 같은 데는 제가 쓰는 아이디로 접속하면 우리 서버에 관한 한 모든 권한을 얻게 됩니다.

통장에 10만원밖에 없는 사람이 자기 아이디로 접속하면 날고 기는 재주기 있어도 10만원까지만 자기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수십억, 수백억 원을 가진 사람이 자기 아이디로 접속하면 그만큼 처리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아이디(ID)란 네트워크에서 사용하는 ‘이름’이지요. 누구의 이름으로 접속하느냐 하는 것이 그래서 중요한 것입니다.

17절 말씀을 봅시다. 바울은 “말이든 행동이든 무엇을 하든지, 모든 것을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라고 권면합니다. 예수님의 아이디를 써서 네트워크에 접속하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한한 능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했던 일을 기억하시지요. 걷지 못하는 거지가 돈을 좀 달라고 했을 때 베드로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은과 금은 내게 없으나, 내게 있는 것을 그대에게 주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시오”(사도행전 3:6). 예수님의 아이디로 접속해서 그 사람을 일어나 걷도록 했습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우리가 기도할 때, 기도를 마치고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하지요. 왜 그렇습니까? 어차피 같은 내용인데, 귀찮게 왜 ‘예수님의 이름’을 꼭 갖다 붙여야 합니까? 그것은 기도의 네트워크에는 예수님의 아이디가 아니면 접속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은행 사이트에 들어가서 말로 아무리 크게 외쳐 보세요. 이체가 됩니까? 안 되지요. 반드시 정해진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하고 공인인증서와 보안카드 또는 OTP 기기 같은 것들이 있어야 합니다. 이처럼 기도할 때는 반드시 예수님의 아이디 곧 예수님의 이름을 반드시 들이대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무슨 일을 앞두고, 이걸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될 때가 있지요. 때로는 유혹도 많이 받습니다. 그럴 때 무엇을 기준으로 우리가 말을 하고 행동을 하면 좋겠습니까? 역시 답은 단순합니다.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할 수 있는 것은 거리낌 없이 하면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름을 걸고 할 수 없는 일은 즉시 멈추어야 합니다. 살다가 보면 입에서 욕이 나올 때도 있지요. 그럴 수 있습니다. 욕도 필요하면 해야지요. 예수님도 욕을 하셨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때도 ‘이 욕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할 수 있는가?’ 따져보고, ‘OK!' 괜찮다고 판단되면 해도 됩니다.

모든 일이 다 그래요. 심지어 술 먹을 때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실 수 있으면 괜찮습니다. 예수님도 포도주 드셨잖아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해도 되는지 안 되는지, 그건 어떻게 판단합니까? 그것도 쉽습니다. 하려고 하는 그 일이 예수님의 꿈, 예수님의 목표였던 ‘하나님의 나라’에 보탬이 되는가, 아닌가, 그것만 따지면 됩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별이 없는 나라, 가난한 사람과 부자의 구별이 없이 다 같이 잘 사는 나라, 모든 사람들이 모두 하나님의 자녀로서 함께 기뻐하고 춤출 수 있는 나라, 그런 나라를 지향하는 일이라면 모두 ‘예수님의 이름으로’ 할 수 있습니다. 아니, 할 수 있다는 데 멈출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합니다.

■ 맺는 말씀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저나 여러분이나, 늘 불평 속에서, 늘 걱정 속에서 살고 싶지는 않을 것입니다. 늘 감사하면서, 날마다 감사할 일을 쌓아가면서 살고 싶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삶의 구조를 바꾸어야 합니다. ‘불만과 걱정의 악순환’에서 ‘감사와 찬양의 선순환’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바울의 말을 빌어서 오늘 말씀드린 세 가지를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첫째, 미움과 원망을 모두 내어버리고, 그리스도의 평화가 우리를 지배하게 해야 합니다. ▶둘째, 세상의 잡다한 소리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안에 풍성히 살아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셋째, 모든 일을 나의 힘으로가 아니라, 사람의 도움으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께 감사의 찬송을 부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행복은 감사의 문으로 들어오고 불평의 문으로 나간다”고 합니다. 우리 모두 행복해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날마다, 매 순간마다 감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962 "굴욕으로 배를 채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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