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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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마태복음서 10:16-23 
설교일 2009-11-30 
설교장소 구미안디옥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대림절 


■ 성서 본문

“보아라, 내가 너희를 내보내는 것이, 마치 양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과 같이 슬기롭고, 비둘기와 같이 순진해져라.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이 너희를 법정에 넘겨주고, 그들의 회당에서 매질을 할 것이다.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나가서, 그들과 이방 사람 앞에서 증언할 것이다. 사람들이 너희를 관가에 넘겨줄 때에, 어떻게 말할까, 또는 무엇을 말할까, 하고 걱정하지 말아라. 너희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그 때에 지시를 받을 것이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형제가 형제를 죽음에 넘겨주고, 아버지가 자식을 또한 그렇게 하고, 자식이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서 부모를 죽일 것이다.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서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다. 이 고을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저 고을로 피하여라.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스라엘의 고을들을 다 돌기 전에 인자가 올 것이다.

<마태복음서 10:16-23>


■ 들어가는 말씀

옛날이나 지금이나 부모들은 아이들 걱정이 많습니다. 성인이 된 자식을 보고도 “항상 차 조심해라!” 하지요. 부모의 눈으로 보면 자식은 나이가 적으나 많으나 항상 불안합니다. 그래서 자식이 밖에 나가면 언제나 ‘물가에 세워놓은 어린아이’ 같다고들 합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을 세상으로 내보내시면서 제자들 걱정을 하셨습니다. 오늘 신약성경 본문말씀인 마태복음서 10:16에 예수님의 심정이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보아라, 내가 너희를 내보내는 것이, 마치 양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과 같다.”

오죽하면 양을 이리떼 가운데 보내는 것과 같다고 하셨겠습니까? 어떤 분이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금요일이 지나고 토요일이 되면 그렇게 마음이 편하답니다. 그런데 주일예배를 은혜롭게 드리고 나서 월요일이 다가오면 꼭 전쟁터에 나가는 기분인 것 같다는 겁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런 느낌은 거의 누구나 가지게 됩니다. 직장에 나가는 분들도 그렇고, 자영업을 하는 분들도 그렇고, 학생들도 그럴 것입니다.

세상이 갈수록 전쟁터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학교에서는 입시전쟁, 학교를 졸업하면 취업 전쟁, 직장에서는 살아남기 전쟁, 비즈니스 현장에서는 약육강식의 전쟁, 심지어는 교회들조차도 교인 끌어 모으기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까지 하셨겠습니까? “형제가 형제를 죽음에 넘겨주고, 아버지가 자식을 또한 그렇게 하고, 자식이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서 부모를 죽일 것이다”(마태복음서 10:21). 이런 전쟁터에서 어떻게 하면 우리가 무사하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예수님께서 세 가지 답을 주셨습니다.

■ 지혜롭게 말하기

우리 옛말에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장터에서 장사하는 분들이 손님을 부를 때 흔히 하던 말도 “말만 잘하면 그냥도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말이라는 게 그렇게 중요한 겁니다. 아무리 위험한 지경에 빠지더라도 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살아 남올 수도 있고, 낭패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말이 매를 번다!”로 속담을 만들어서 쓴 것도 그래서 이해가 되는 겁니다. 가만히 있으면 괜찮을 것을 공연히 말을 해서 매를 한 대 더 맞는다는 것이지요. 지혜롭게 말한다는 것은 그래서 그렇게 중요한 겁니다.

성경 잠언에도 ‘말’에 대한 말이 많습니다. 잠언 14:3에는 “미련한 사람의 말은 교만하여 매를 자청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의 말은 그를 지켜 준다”고 했습니다. 우리 속담과 참 비슷하지요? 잠언 6:2에는 “네가 한 그 말에 네가 걸려 들고, 네가 한 그 말에 네가 잡힌다”고 했습니다. 잠언 13:3절에는 “말을 조심하는 사람은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지만, 입을 함부로 여는 사람은 자신을 파멸시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전도서 10:12에는 이런 말씀도 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말을 해서 덕을 보고, 어리석은 사람은 제 입으로 한 말 때문에 망한다.” 이 모든 말씀이 모두 ‘말로써 매도 벌고, 말로써 복도 불러들인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경우에 알맞은 말을 하면서 살면 매사에 복이 굴러들어옵니다.

잠언 25:11에 보면 “경우에 알맞은 말은, 은쟁반에 담긴 금사과”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경우에 알맞은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 문제에 대한 답도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셨습니다. 마태복음서 19-20 말씀에 나와 있습니다. “…어떻게 말할까, 또는 무엇을 말할까, 하고 걱정하지 말아라” 하셨습니다. 왜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됩니까? “너희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그 때에 지시를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서 살면 말은 우리 입으로 하지만, 말하는 분은 우리가 아니라 우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기 때문입니다. 경우에 알맞은 말, 지혜로운 말을 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디 가서 배울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의 자녀로서 전적으로 성령을 의지하고 살면 주님께서 적절한 때에 적절한 말을 주십니다.

■ 지혜롭게 견디기

전쟁터에서 꼭꼭 새겨야 할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끝까지 견뎌야 한다는 것입니다. 최근에 고위 공직자나 경제인들이 자살하는 일이 많아졌지요? 그런 분들뿐만이 아니라 학생들의 자살도 자꾸 늘어나고 있습니다. 소문이 잘 안 나서 그렇지, 학교 선생님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구미에서도 학생들이 자살하는 일이 심심찮게 일어난다고 합니다. 저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저분들이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의 위로를 받을 수 있었더라면 저렇게 극단적인 선택은 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서 좀 더 열심히, 좀 더 적극적으로 그분들에게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지 못한 데 대한 죄책감마저 듭니다.

인생의 고난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사람이 욥이지요. 욥도 자살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이 들었습니다. 욥기 6:11에서 욥은 이렇게 탄식합니다. “그러나 내게 무슨 기력이 있어서 더 견뎌 내겠으며, 얼마나 더 살겠다고, 더 버텨 내겠는가?” 욥의 고민은 자기 자신의 문제만이 아니었습니다. 욥기 24:4 말씀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권리를 빼앗기는가 하면, 흙에 묻혀 사는 가련한 사람들이 학대를 견디다 못해 도망가서 숨기도 한다.” ‘의롭게 살려고 애쓰는 사람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이건 말도 안 된다, 이게 어디 내 문제뿐이냐, 세상 돌아가는 꼴이 이따위니, 정말 더러워서 못 보겠다!’ 그런 뜻입니다. 그러나 욥은 끝까지 버티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통쾌하게 승리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서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다”(마태복음서 10:22). 의인들이 그런 고난을 당하는 것은 이미 정해진 일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그런 줄 알고 끝까지 견디어내라고 당부하십니다. 정말 남에게 피해 안 주고 성실하게 살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고난을 받는 것은 오늘날만의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 당시 이야기만도 아닙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 일천 년 전에 살았던 다윗도 그랬습니다. “언제까지 나의 영혼이 아픔을 견디어야 합니까? 언제까지 고통을 받으며 괴로워하여야 합니까? 언제까지 내 앞에서 의기양양한 원수의 꼴을 보고만 있어야 합니까?”(시편 13:2).

■ 지혜롭게 피하기

견디다, 견디다 못해,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어떻게 합니까? 그때는 피해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말씀해주신 ‘전쟁터에서 살아남기’ 세 번째 방법입니다. “이 고을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저 고을로 피하여라”(마태복음서 10:23). 피하는 것은 비겁한 방법이 아닙니다. ‘삼십육계 줄행랑’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도망가는 것도 아주 훌륭한 전법이라는 말입니다. 위험이 닥쳐오는데도 죽치고 앉아 있는 것은 미련한 짓이지요. 피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0:13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사람이 흔히 겪는 시련 밖에 다른 시련을 당한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여러분이 감당할 수 있는 능력 이상으로 시련을 겪는 것을 하나님은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시련과 함께 그것을 벗어날 길도 마련해 주셔서, 여러분이 그 시련을 견디어 낼 수 있게 해주십니다.” 이 말씀을 마더 테레사는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문을 닫으시면 반드시 다른 문을 열어주십니다.” 만일 다른 문도 안 보이면 어떻게 합니까? 그냥 주님 앞에 엎어지면 됩니다.

시편 9:9 말씀입니다. “주님은 억울한 자들이 피할 요새이시며, 고난받을 때에 피신할 견고한 성이십니다.” 시편 18:2에는 이런 고백도 있습니다. “주님은 나의 반석, 나의 요새, 나를 건지시는 분, 나의 하나님은 내가 피할 바위, 나의 방패, 나의 구원의 뿔, 나의 산성이십니다.” 하나 더 봅시다. 시편 25:4입니다. “참으로 주님께서는 가난한 사람들의 요새이시며, 곤경에 빠진 불쌍한 사람들의 요새이시며, 폭풍우를 피할 피난처이시며, 뙤약볕을 막는 그늘이십니다.”

늘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예수님의 초청의 말씀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수고하며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은 모두 내게로 오너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마태복음서 11:28). 어려운 일을 당할 때, 견디다가 힘이 부칠 때, 이제 더는 못 참겠다 싶을 때, 아무리 생각해봐도 도저히 방법을 찾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 때, 이제는 나로서도 어쩔 수 없다고 여겨질 때, 예수님께로 피하십시오. 우리 예수님은 언제든지 그런 사람들을 따뜻하게 맞이하실 준비를 하고 계십니다.

■ 맺는 말씀

이리떼 가운데서 양들이 살아남기, 전쟁터에서 살아남기에 대해서 오늘 저는 세 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첫째는 말을 지혜롭게 하자는 것이었고, ▶둘째는 끝까지 견디자는 것이었고, ▶셋째는 견디다 못하면 피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말씀을 드렸지만, 이것은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방법입니다. 우리가 살다가 어떤 일을 겪게 될지 모릅니다. 정말 한계상황, 극한상황에 다다를지 모릅니다. 아무리 어려운 일을 당하더라도 여러분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꼭 기억하셔야 합니다. 오늘이 대림절 첫째 주일입니다. 주님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주님께서 오시면 만사가 해결됩니다. 우리 모두 끝까지 살아남아서 최후의 승리를 맛보고, 그 영광을 함께 누립시다.
961 "굴욕으로 배를 채워라!"
960 열매를 맺기까지
959 '언제나' 행복한 사람
958 여신도여, 일어나 화해의 대로를 열어라!
957 왕 같은 제사장(고 김영이 목사님을 배웅하며)
956 주님 음성 나 들을 때
955 한 몸이기에
954 예수를 도운 여인들
953 "성령께서 가르쳐주실 것이다!"
952 성령의 열매(6) - 선함
» 이리떼 가운데서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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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8 "당신들은 도대체 누구요?"
947 고귀한 사람의 고귀한 선택
946 감사의 선순환
945 권리 찾기
944 해골 언덕의 왕
943 청지기의 직업의식
942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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