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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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베드로전서 2:7-9 
설교일 2010-03-30 
설교장소 신기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장례 
(※이 글은 2010년 3월 30일 화요일 14:00시
신기교회에서 있었던 고 김영이 목사님 고별예배 설교문입니다.)

"왕 같은 제사장"

■ 성서 본문

그러므로 이 돌은 믿는 사람들인 여러분에게는 귀한 것이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집 짓는 자들이 버렸으나,
모퉁이의 머릿돌이 된 돌”이요,

또한

“걸리는 돌과
넘어지게 하는 바위”입니다.

그들이 걸려서 넘어지는 것은 말씀을 순종하지 않기 때문이며, 또한 그렇게 되도록 정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택하심을 받은 족속이요, 왕과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민족이요,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을 어둠에서 불러내어 자기의 놀라운 빛 가운데로 인도하신 분의 업적을, 여러분이 선포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7-9>


■ 들어가는 말씀

‘사랑하는 목사님’ ‘존경하는 목사님’이라는 표현을 우리가 흔히 사용합니다만, 그냥 상투적인 존칭이 아니라 정말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진정으로 존경한다고 고백하고 싶은 분이 고 김영이 목사님이십니다. 이 어른께서 살아서 신기교회를 방문하셨다면, 그래서 그 연락을 받고 이렇게 달려왔더라면 얼마나 기뻤을까 생각하면, 지금 이 순간 너무나 가슴이 미어집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고난 받으시고 세상을 떠나신 이 주간에, 예수님과 꼭 닮은 고 김영이 목사님을 보내드려야 하는 아픔은 저나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분이나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 낮은 곳에서 사셨던 분

고 김영이 목사님께서는, 예수님께서 그러셨던 것처럼 한평생을 낮은 곳에서 사셨던 분입니다. 제가 김 목사님을 처음 뵌 것은 지금부터 25년쯤 전입니다. 그 당시 이미 목사님은 60대이셨고 저는 20대이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통합 측 교회에서 목회를 배우고 있었습니다. 아직 기장 목회자가 되기 전이었지요. 우연한 기회에 저는 김 목사님과 경북노회의 젊은 목회자들과 함께 하루를 보낸 일이 있습니다. 그 하루 동안 저는 목사님으로부터 참으로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생면부지 처음 보는 타 교단의 젊은 전도사에게, 목사님은 때로는 아버지 같이, 때로는 친구 같이, 때로는 형님 같이, 정말 격의 없이 대해주셨습니다.

김 목사님을 처음 뵌 2년 뒤에 저는 섬기던 교회의 성도들과 노회 어른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교단을 옮겨서, 우리 기장교단의 백자교회로 오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교단을 옮길 때 저에게는 몇 가지 고려사항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서 김영이 목사님께서 제게 보여주신 목자 상이 적지 않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김 목사님께서 예수님처럼 낮은 곳으로 다니시는 목자였다는 점이 제게는 큰 감명이었습니다. 김 목사님은, ‘목회자는 목회자가 필요로 하는 곳, 목회자가 가고 싶은 교회가 아니라, 목회자를 필요로 하는 곳, 목회자가 오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교회로 가야 한다!’는 목회자의 제 1강령을 몸으로 실천하셨던 분입니다.

■ 하나님 나라의 모퉁잇돌

오늘 신약성경 본문인 베드로전서 2장은 예수님을 가리켜서 “집 짓는 자들이 버렸으나, 모퉁이의 머릿돌이 된 돌”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우리 주님은, 세상 사람들로부터는 쓸모없다 하여 벼려지셨지만, 하나님의 나라의 초석이 되셨습니다. 지금 우리 곁을 떠나가시는 고 김영이 목사님 역시 생전에 세상 사람들의 큰 관심을 끌지는 못하셨습니다. TV에 출연하시거나 신문에 대서특필되거나 라디오의 대담 프로그램에 나와서 시원하게 발언을 하신 일도 거의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님께서는 김 목사님을 들어서 하나님 나라의 초석으로 삼으셨습니다.

김 목사님은 아들 같은 후배 목회자들이 전화를 드리기 전에 먼저 전화를 하셔서 안부를 물으셨습니다. 지금도 전화를 하셔서 “전 목사, 우리 텃밭에 야채가 아주 잘 자랐어, 와서 좀 가지고 가” 하실 것만 같습니다. 이 근방의 작은 교회의 목회자들 치고 김 목사님과 사모님께서 손수 가꾸신 무공해 농산물을 맛보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을 것입니다. 김 목사님으로부터 ‘목양일념’의 가르침을 듣지 않은 후배들이 거의 없을 것입니다. 이처럼 김 목사님은 주님의 나라를 위해 몸소 헌신하심으로써 후배들에게 큰 귀감(龜鑑)이 되어 주셨습니다.

■ 왕 같은 제사장

고 김영이 목사님은 베드로전서가 전해주는 말씀처럼 ‘왕 같은 제사장’이셨습니다. 이 세상의 정치적인 왕이나 권력자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백성들 위에 군림하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권세를 휘둘러 백성들의 것을 빼앗아 먹으면서 백성들에게는 부스러기 조금 나누어줘 놓고 큰 은혜를 베푸는 양 은인으로 행세하는 사람들입니다(누가복음서 22:25). 그러나 예수님은 ‘너희는 그렇게 하지 마라’ 하셨습니다. 세상 권세를 가진 왕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왕이 되려고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왕궁으로 가시는 대신 ‘해골’이라고 부르는 골고다 언덕으로 가셨습니다. 옥새를 움켜쥐시는 대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면류관을 쓰시는 대신 가시관을 쓰셨습니다. 왕들이 입는 화려한 홍포 대신 피 묻은 옷을 입으셨습니다. 높은 왕좌에 앉는 대신 십자가 위에 매달리셨습니다. 예수님의 좌우에는 대소신료들 대신 강도들이 있었습니다. 유대인의 왕이 되어 달라고 아우성치는 백성들의 간청을 뿌리치고 예수님께서 이렇게 험난한 길을 묵묵히 가신 것은, 그 길이 하나님 나라의 왕이 가는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고 김영이 목사님은 그런 주님을 따라 한평생을 동행하셨던 분입니다. 제사장으로서, 예언자로서, 하나님 나라의 왕과 같이 낮아지셨던 분, 곧 ‘왕 같은 제사장’이셨습니다.

최근에 우리나라 사람들의 존경을 받다가 타계하신 큰 어른들이 여럿 계셨습니다만, 우리 김 목사님의 삶이 결코 그분들의 삶보다 존경을 받기에 모자란다고 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언론의 조명을 받지 않으셨을 뿐, 오히려 그분들보다 더 훌륭한 삶을 사시다 가시는 분이 고 김영이 목사님이십니다. 그분들이 ‘무소유’를 외치며 ‘공수래공수거’를 설파하셨지만, 언론에서 떠받드는 그분들은 부족함이 없이 사시다가 가신 분들입니다. 그러나 고 김영이 목사님은 그야말로 예수님처럼 낮은 곳으로 다니시며 빈손으로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하신 분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품으로, 자연의 옷자락으로 보내드려야 하는 고 김영이 목사님은 일찍이 학문에 뜻을 두시어 학식도 크신 분이었습니다. 외모도 준수하셨습니다. 배경도 어디에다 내놓아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예수님처럼 당신 속을 비우시고 겸손하게 사셨습니다. 그렇게 낮은 곳에서 소리 소문 없이 일을 하시면서도 하실 일은 또 다 하셨습니다. 이곳 신기교회에 계실 때는 성실한 청년 인재를 발굴해서 어려운 여건 가운데서도 신학 공부를 하도록 뒷바라지하셔서 훌륭한 목사로 만드셨습니다. 오늘 예배를 인도해주시는 박혁진 목사님이 바로 고 김영이 목사님께서 물ㆍ심ㆍ영 삼면으로 지원하셔서 키워내신 목회자입니다.

■ 맺는 말씀

목사님께서는 이처럼 우리 경북노회에 아름다운 전통을 세우셨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도 몇 분 계십니다만, 우리 경북노회의 원로 목사님들은 어느 분 할 것 없이 모두 낮은 곳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시는 분들입니다. 이분들의 예수님 사랑, 교회 사랑, 후배 사랑은 우리가 경험해서 알듯이 실로 남다릅니다. 목사님들과 장로님들이 노회를 평화롭게 운영해 나가는 데도 이 어른들께서 큰 구실을 하고 계시는데, 그것은 김영이 목사님 같은 어른들께서 아름다운 유산을 물려주신 덕일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더불어, 이런 어른들의 사랑 가운데서 목회를 하고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는 얼마나 행복합니까? 하나님 나라를 향해서 가는 저와 여러분에게는 세상의 권세는 없지만, 하나님 나라의 권세가 있습니다. 세상 권력을 향한 야망은 없지만, 하나님 나라를 향한 희망과 꿈이 있습니다. 금과 은은 없지만, 주님께서 주시는 권능이 있습니다. 세상의 권력자들이 가지고 있는 결제도장은 없지만,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는 하나님 나라의 옥새 곧 천국의 열쇠가 있습니다.

우리 김 목사님을 보내드려야 하는 아픔이야 이루 말할 수 없이 크지만, 이제 편안하게 보내 드립시다. 우리 주님을 따라 목사님께서 부활하시는 그날까지, 90평생 누리지 못하셨던 참된 안식을 누리시도록 미소로 인사를 드립시다. 목사님과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손을 흔들어 드립시다. 우리 모두 부활의 잔치에 참여하는 그 날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성 삼위일체 하나님과, 지금 우리 곁을 떠나시는 고 김영이 목사님과, 우리가, 성령 안에서 서로 교통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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