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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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누가복음서 12:8-12 
설교일 2010-05-30 
설교장소 한울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오순절 


■ 성서 본문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도 하나님의 천사들 앞에서 그 사람을 시인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 앞에서 나를 부인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천사들 앞에서 부인당할 것이다. 누구든지 인자를 거슬러서 말하는 사람은 용서를 받을 것이지만, 성령을 거슬러서 모독하는 말을 한 사람은 용서를 받지 못할 것이다. 너희가 회당과 통치자와 권력자 앞에 끌려갈 때에, ‘어떻게 대답하고, 무엇을 대답할까’, 또 ‘무슨 말을 할까’ 하고 염려하지 말아라. 너희가 말해야 할 것을 바로 그 시각에 성령께서 가르쳐 주실 것이다.”

<누가복음서 12:8-12>


■ 들어가는 말씀

5월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오늘도 기쁜 마음으로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 위에 성령님께서 충만하게 감동을 내려주시기를 빕니다. 지난 주일이 성령강림주일이었습니다. 성령강림주일이 지나고 그 다음 주일을 교회력에서는 ‘성삼위일체 주일’로 정하고 지킵니다. 그래서 오늘은 삼위일체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조금 딱딱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결코 어렵지는 않습니다.

■ 삼위일체에 대한 오해

‘삼위일체’ 하면 세 위(位)가 하나다, 곧 셋이 하나다, 하는 뜻인데, 우리 그리스도교에서는, 하나님은 한 분이시지만, 성부(聖父)와 성자(聖子) 성령(聖靈) 세 위로 활동을 하신다는 뜻으로 그렇게 부릅니다. 하나면 하나이고, 셋이면 셋이지, 하나이면서 셋이고, 셋이면서 하나인 건 무엇인가. 수천 년 동안 말들이 많았습니다. 서로 ‘내 설명이 맞다’며 싸움도 많이 했습니다. 이 문제 때문에 이단(異端)도 숱하게 생겼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목사님들이 이 문제에 대해서는 설교를 잘 안 하려고 합니다. 설명해봐야 골치 아프니까, ‘그냥 믿자!’ 하고 말지요. 저도 사실 이 문제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제 석사논문의 주제도 삼위일체였지만, 그 논문도 지금 보면 어설프기 짝이 없습니다. 그러다가 최근에 이르러서야 그 깊은 뜻에 대해서 어느 정도 감을 잡게 되었습니다.

삼위일체론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잘못된 이해를 먼저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오해가 두 가지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는 이른바 ‘양태론’(樣態論, modalism)이란 것입니다. 이건 무슨 말이냐 하면, 하나님은 한 분이신데, 성부, 성자, 성령으로 모양만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저라는 사람이 하나 있습니다. 저는 아이들에게는 아버지지만, 아내에게는 남편이고, 교회에서는 목사입니다. 하나님도 어떤 때는 아버지의 모습으로, 어떤 때는 아들의 모습으로, 또 어떤 때는 성령의 모습으로 활동하신다는 것인데, 이것은 셋인 것 같지만 결국은 하나이지요. 삼위일체론이 아니라 ‘일신론’(一神論)이 되어버립니다.

두 번째 오해는 이른바 ‘법인이론’(法人理論)인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애초부터 서로 다른 신이었다는 것입니다. 성부 하나님이 계시고, 성자 하나님이 계시고, 성령 하나님이 각기 계시지만, 그 뜻이 같아서 같이 활동하신다는 이론입니다. 세 사람이 뜻이 맞아서 주식회사를 하나 설립한다고 할 때, 설립한 것은 세 사람이지만 법인은 하나라는 말입니다. 그렇지만 이것도 삼위일체는 아닙니다. 법인을 설립한 세 사람의 주민등록번호가 각각 있지요. 법인을 등기하면 법인등록번호라는 게 따로 생깁니다. 결국은 넷이 되어버립니다. 그러니까 이 설명도 맞지 않습니다.

■ 삼위일체란 무엇인가?

그러면 어떻게 설명하는 게 좋을까, 저 나름대로 오랫동안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지금 말씀드리는 설명이 정답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또 하나의’ 설명이겠지요. 여러분, ‘인연’(因緣)이란 말을 잘 아실 겁니다. 불교에서 쓰는 말입니다. 세상 이치라는 게 ‘인’(因)과 ‘연’(緣)이 씨줄과 날줄처럼 얽히고설켜서 현상을 만들어낸다는 뜻이지요.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여기 나무가 한 그루 있습니다. 나무가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씨앗이든 묘목이든 심어야 하지요. 나무가 있게 된 원인(原因), 그것을 ‘인’(因)이라고 합니다. 씨앗이든 묘목이든 심어놓기만 한다고 나무로 자라는 것은 아니지요. 나무가 나무로 자라기 위해서는 공기도 있어야 하고 흙도 있어야 하고 물도 있어야 하고 각종 영양소도 있어야 합니다. 벌도 있어야 하고 나비도 있어야 합니다. 나무를 나무로 자라게 하는 각종 외부요인이 있어야 하고 여러 가지 조건이 맞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연’(緣)이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인과 연이 있음으로 해서 비로소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나무가 되는 것이지요.

이제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성경 창세기 1장 1절에 보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태초’(太初)라는 것은 ‘맨 처음’이라는 뜻이지요. 맨 처음에 무엇인가가 있었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세상에 원인이 없이 되는 일이 있습니까? 없지요. 제가 이렇게 탁자를 쳐야 소리가 나지 않습니까? 지금 우리가 보고 느끼는 이 세상만사에는 다 원인이 있습니다. 그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고 또 올라가면 최초의 원인이 있겠지요. 그 최초의 원인, 곧 ‘태초에 계셨던 분’이 하나님입니다.

창세기 1장 2절은 이렇습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어둠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물 위에 움직이고 계셨다.” 태초에 우주는 혼돈하고 공허하며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다만 무엇인가가 움직이고 있었는데, 그것이 ‘하나님의 영’입니다. 그 뒤에 보면 하나님의 영은 ‘말씀’이라고 표현되어 나옵니다. 똑 같은 말씀이 요한복음서 1장 1-2절에 나오는데요,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이셨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것이 그로 말미암아 창조되었으니, 그가 없이 창조된 것은 하나도 없다”(요한복음서 1:3) 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분, 그게 누굽니까? 하나님의 영이라고 했지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영, 곧 말씀은 세상을 움직이는 힘입니다. 이 세상은 최초의 원인인 하나님이 계시고, 세상을 움직이는 힘인 하나님의 말씀 곧 하나님의 영이 있어서 창조된 것입니다.

우리가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할 때 뭐라고 합니까?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한 다음에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라고 하지 않습니까? “성령으로 잉태하사” 한 것은 태초의 원인인 하나님이 계셨고, 세상을 움직이는 힘인 하나님의 영이 활동을 하시니 예수님이 태어나셨다는 뜻입니다. 마태복음서 1:18에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태어나심은 이러하다.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나서,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 예수님을 태어나시게 한 직접적인 원인은 하나님이고, 그 예수님이 사람의 태아로 자라게 하신 조건, 곧 외적 요인은 성령입니다.

■ 성령에 대하여

다시 말씀 드리면 이렇습니다. 아까 나무 이야기를 다시 해봅시다. 나무가 있기 위해서는 씨앗이나 묘목, 곧 원인이 있어야 하지요. 마찬가지로, 예수님이 계시기 위해서는 원인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태어나시게 한 근본 원인이 하나님이십니다. 나무가 나무로 자라기 위해서는 필요한 조건들이 있어야 하듯이, 예수님을 예수님 되게 하는 데도 조건이 필요합니다. 이 모든 조건을 충족시켜주신 분이 성령입니다. 그렇게 태어나셔서 우리 눈으로 볼 수 있게 된 것이지요.

이처럼 세상만사가 다 인(因)과 연(緣), 곧 원인과 조건이 있어서 생겨난 것인데, 세상에 생겨난 존재 가운데서 하나님과 똑 같은 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가리켜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은 곧 하나님의 말씀이 됩니다. 이제 오늘 본문 말씀을 같이 봅시다. 예수님의 말씀 가운데 상당히 의미심장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10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누구든지 인자를 거슬러서 말하는 사람은 용서를 받을 것이지만, 성령을 거슬러서 모독하는 말을 한 사람은 용서를 받지 못할 것이다”(누가복음서 12:10).

여기서 ‘인자’는 물론 예수님입니다. 그런데 인자를 거슬러서 말하는 것은 용서를 받을 수 있지만, 성령을 거슬러서 모독하는 사람은 용서를 받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은 다 같은 격을 가지신 분인데, 이 말씀을 보면 성령이 더 높은 분인 것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예수님의 말씀은 성부, 성자, 성령의 등수나 우열을 따지자는 것이 아닙니다. 그 뜻은 이렇습니다. 나무를 보고 그 열매가 쓰다, 달다, 이렇게 표현할 수는 있다, 이겁니다. 사람마다 입맛이 다르니까 비록 예수님의 말씀이라고 하더라도 마음에 들 수도 있고 안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것까지는 용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부정(否定)하는 행위는 용서를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물과 공기와 흙 등, 나무가 자라기 위한 조건을 부정하는 것과 같습니다.

마가복음서에도 이 말씀이 나와 있는데, 거기 보면 예수님께서 왜 이런 말씀을 하셨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이 뭐라고 했는가 하면, 예수님보고 귀신의 두목의 힘을 빌려서 일을 하신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존재하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고, 예수님의 활동조건을 충족시켜주시는 분은 성령인데, 성령을 두고 귀신의 두목이라고 했으니, 그 죄를 어찌 용서 받을 수 있겠습니까?

■ 맺는 말씀

이제 제 이야기를 맺으면서, 오늘 본문말씀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다시 정리해봅시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도 하나님의 천사들 앞에서 그 사람을 시인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 앞에서 나를 부인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천사들 앞에서 부인당할 것이다”(8-9). 예수님은 세상의 근본 원인인 하나님으로부터 나셨다는 것, 그리고 성령으로 말씀하시고 성령으로 일을 하신다는 것, 이것을 시인하면 우리도 예수님과 같은 멋진 나무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그 다음 10절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인자를 거슬러서 말하는 사람은 용서를 받을 것이지만, 성령을 거슬러서 모독하는 말을 한 사람은 용서를 받지 못할 것이다.” 만에 하나,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거나, 그 말씀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할 수는 있지만, 예수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활동하신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성령에 대한 모욕이며, 이 죄는 결코 용서 받지 못할 것이라는 선언입니다.

그리고 10절 말씀은 이렇습니다. “너희가 회당과 통치자와 권력자 앞에 끌려갈 때에, ‘어떻게 대답하고, 무엇을 대답할까’, 또 ‘무슨 말을 할까’ 하고 염려하지 말아라. 너희가 말해야 할 것을 바로 그 시각에 성령께서 가르쳐 주실 것이다.” 예수님의 경우처럼, 우리를 이 땅에 내어주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존재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리고 이 땅에서 우리가 살 때에 모든 환경, 모든 조건을 만들어주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그러니까 주님의 뜻대로, 주님의 말씀대로 살다가 우리가 관원들에게 잡혀가는 일이 있더라도 걱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그것은 성령께서 책임을 지십니다. 성령은 우리 삶의 조건을 만들어주시는 분입니다. 위험에서 구해주실 수도 있고, 병을 고쳐주실 수도 있고, 성공하게 해주실 수도 있는 분이 성령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인 우리에게도 예수님과 똑 같은 삶의 원리가 적용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났습니다. 우리 삶의 모든 조건을 책임져 주시는 분은 성령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믿는 주님의 자녀들인 우리에게는, 성령께서, 언제나 안전한 조건, 언제나 건강한 조건, 언제나 주님의 뜻에 맞는 최적의 삶의 조건을 만들어주십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성령님과 가까워져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 위에, 성령의 충만하심이 지금부터 영원토록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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