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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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지기 2010-11-14 18:3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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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누가복음서 18:1-8 
설교일 2010-11-14 
설교장소 한울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주일 


■ 성서 본문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늘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으로 비유를 하나 말씀하셨다. “어느 고을에,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존중하지 않는, 한 재판관이 있었다. 그 고을에 과부가 한 사람 있었는데, 그는 그 재판관에게 줄곧 찾아가서, ‘내 적대자에게서 내 권리를 찾아 주십시오’ 하고 졸랐다. 그 재판관은 한동안 들어주려고 하지 않다가, 얼마 뒤에 이렇게 혼자 말하였다. ‘내가 정말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존중하지 않지만, 이 과부가 나를 이렇게 귀찮게 하니, 그의 권리를 찾아 주어야 하겠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가 자꾸만 찾아와서 나를 못 견디게 할 것이다.’”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는 이 불의한 재판관이 하는 말을 귀담아 들어라.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밤낮으로 부르짖는, 택하신 백성의 권리를 찾아주시지 않으시고, 모른 체하고 오래 그들을 내버려 두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얼른 그들의 권리를 찾아 주실 것이다.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 볼 수 있겠느냐?”

<이사야서 40:27-31>


■ 들어가는 이야기

오늘도 주님께서는 행복한 안식의 날을 주셨습니다. 주님을 만나고,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을 만나기 위해 주님의 집으로 나오신 여러분 모두 위에 하늘의 은총과 땅의 축복이 넘치도록 임하시기를 기원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복된 생활을 누리는 것은 여러분의 권리입니다. 그 권리를 여러분은 잘 누리고 있습니까? 오늘은 ‘권리 찾기’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 불의한 재판관 이야기

먼저, 여러분도 잘 아시는 내용입니다만,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를 되새겨 봅시다. 누가복음서 18장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비유를 하나 말씀하셨습니다. 어느 동네에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존중하지 않는, 한 재판관이 있었습니다. 그 고을에 혼자 사는 여자가 한 사람 있었는데, 그는 그 재판관에게 여러 차례 찾아가서 자기의 권리를 좀 찾아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그 재판관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습니다. 자기에게 관심이 없는 내용이어서 그랬겠지요. 그러다가 그 재판관은 여자가 하도 자기를 귀찮게 하니까, 어느 날 이렇게 혼잣말을 했습니다. “내가 정말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존중하지 않지만, 이 과부가 나를 이렇게 귀찮게 하니, 그의 권리를 찾아 주어야 하겠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가 자꾸만 찾아와서 나를 못 견디게 할 것이다.”

이런 비유를 드시면서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이 불의한 재판관이 하는 말을 귀담아 들어라.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밤낮으로 부르짖는, 택하신 백성의 권리를 찾아주시지 않으시고, 모른 체하고 오래 그들을 내버려 두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얼른 그들의 권리를 찾아 주실 것이다.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 볼 수 있겠느냐?” 여기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결론이 무엇입니까? 사람이 자기 권리를 찾지 못하는 것은 열성 부족 때문이고, 믿음 부족 탓이다, 이겁니다.

■ 우리 시대 이야기

그러면 우리들이 가진 권리는 무엇이겠습니까?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나라 헌법을 한번 봅시다. 대한민국 헌법 제 10조에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국민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가지지 못하고 행복하지 않게 된다면 그 책임은 국가에 있다는 말입니다. 국가가 존재하는 것은 세금 받아서 일부 사람들 배불리라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의 존엄성을 보장하고 그들을 행복하게 해주기 위한 것입니다. 헌법 제 11조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ㆍ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ㆍ경제적ㆍ사회적ㆍ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정말 그렇습니까? 제가 보기에 우리나라 국민들은 법 앞에 평등한 것이 아니라 돈 앞에 한 줄로 서 있습니다.

지난 주일에도 잠깐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서울 청계천 피복제조 노동자였던 전태일은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업주들은 한 끼 점심값에 200원을 쓰면서 어린 직공들은 하루 세 끼 밥값이 50원, 이건 인간으로서는 행할 수 없는 행위입니다…. 나이가 어리고 배운 것은 없지만 그들도 사람, 즉 인간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생각할 줄 알고, 좋은 것을 보면 좋아할 줄 알고, 즐거운 것을 보면 웃을 줄 아는 하나님이 만드신 만물의 영장, 즉 인간입니다. 다 같은 인간인데 어찌하여 빈(貧)한 자는 부(富)한 자의 노예가 되어야 합니까? 왜 빈한 자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안식일을 지킬 권리가 없습니까?” ― 조영래, ≪전태일 평전≫(돌베개, 1991), 207쪽. 그는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그리고 동료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 40년 전 11월 13일 자신의 몸을 불태웠습니다.

■ 누가 나설 것인가?

한 기업이 불법자금 수백억 원을 정치권에 갖다 바칠 때 그 기업의 직원들은 명퇴를 걱정해야 하고, 그 기업의 비정규직 직원들과 협력업체(하청업체) 직원들은 밥 굶지 않으려고 기를 써야 합니다. 검은 돈을 나누는 과정에서 개인 주머니로 꿀꺽 들어간 수많은 돈, 양지만 찾아다니는 정치철새들이 당을 옮기며 받은 몇 억 원씩의 돈, 민심을 왜곡시켜 표를 사는 데 들어간 엄청난 돈들은 중소기업 살리려다 자살한 힘없는 사장들의 목숨 값이며, 직장을 뺏기고 길거리로 내몰린 고개 숙인 사람들의 한 맺힌 돈이며, 주 5일 근무는 꿈도 꾸지 못하는 소규모 업체 직원들의 땀 값입니다.

똑같은 사람인데 어찌하여 누구는 돈 한 푼에 목숨을 걸어야 하고, 누구는 수백억씩 잘도 삼켜도 됩니까? 왜 누구는 한 끼 밥값으로 수십만 원, 하루 저녁 술값으로 수백만 원, 수천만 원을 쓰는데, 누구는 1만원으로 하루를 살아야 합니까? 천벌 받을 사람들은 따로 있는데 왜 선량한 사람들이 이리도 지지리 고생만 해야 합니까? 돈 많은 사람들이 물 쓰듯이 돈을 쓰며 사는 것은 결코 당연한 일이 아닙니다.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이 받아야 할 몫을 가로채는 행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땅에서는 자기 권리가 자기 것인지도 모르고 고생을 감수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스스로 권리를 찾아야 합니다. 어떻게 찾습니까? 지금은 ‘선거’라는 좋은 제도가 있습니다. 어떤 정당이 국민의 동등한 권리를 인정하고 존중하는가, 꼼꼼하게 살펴서 표를 줘야 합니다. 또한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은 언론ㆍ출판ㆍ집회ㆍ결사의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막아서는 안 된다고 헌법에 분명히 적혀 있습니다. 데모하는 것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보는 분들이 있습니다만, 그것은 선진국에서는 민주주의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잘 몰라서 그렇고, 우리 헌법에 관심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 맺는 말씀

이렇게 권리를 잃은 사람들이 스스로 나서서 자기 권리를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이 나서 주는 것도 아름답습니다. 홍세화 씨가 이런 말을 합디다. “흑인 인권운동에 백인이 나서야 하고, 여성운동에 남성이 나서야 하고, 이주노동자 인권운동에 내국인이 나서야 하고…, 장애인의 권리향상 운동에 비장애인이 나서야 하고…, 비정규직들을 위해 정규직들이 나서야 하고, 시간강사들의 지위개선에 교수님들이 나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 홍세화,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한겨레신문사, 2003), 88쪽. 저도 역시 그렇게 생각합니다.

처음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혼자 사는 그 여인은 불의한 재판관을 주야장창 찾아가서 자기 권리를 찾았습니다. 그것도 정당한 일입니다만, 여자를 위해서 남자가 나서 주고, 장애인을 위해서 비장애인이 나서 주고, 외국인노동자를 위하여 내국인들이 나서 주고,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하여 정규직 노동자들이 나서 주고, 가난한 사람들의 권리를 찾아주기 위해서 부자들이 나서준다면 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이 되겠습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 사람들의 권리를 위해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나의 권리, 남의 권리를 위해서 주님의 이름으로 나서야 합니다. 그냥 나서서 시늉만 할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 과부처럼 끈질기게 요구해야 합니다. 그러면 찾을 수 있습니다. 이제 저와 여러분은 우리의 권리를 위해서, 우리보다 약한 사람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서, 믿음을 가지고, 끈기를 가지고 나서는 주님의 제자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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