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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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시편 31:14-16 
설교일 2021-03-28 
설교장소 구미 한울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주일 

성서 본문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주님만 의지하며, 주님이 나의 하나님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내 앞날은 주님의 손에 달렸으니, 내 원수에게서, 내 원수와 나를 박해하는 자들의 손에서, 나를 건져 주십시오. 주님의 환한 얼굴로 주님의 종을 비추어 주십시오.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으로 나를 구원하여 주십시오.

 

시편 31:14-16 ―

 

들어가는 말씀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도 여러분이 이렇게 건강한 모습으로 함께 예배를 드릴 수 있어서 기쁩니다. 제가 지금, 여러분이 건강한 모습일 거다, 이런 말씀을 드렸는데, 여러분이 이렇게 온라인 예배 화면 앞에 앉아 있다는 것 자체가 여러분이 건강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지요. 아무튼 여러분의 컨디션이 지금 이 시각, 최상이기를 바랍니다. 그렇지 않은 분들도 혹 계실지는 모르겠습니다만, , 아무튼 우리의 현재 상황은 과거의 결과입니다.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는가, 거기에 따라서 그게 현재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 현재가 저와 여러분의 미래를 만들 겁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저와 여러분 모두가 최상의 미래를 창조할 수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과거

 

오늘의 주제는 그리스도인의 과거, 현재, 미래인데요, 먼저 과거 이야기부터 하겠습니다. 과거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사람은 둘로 나뉜다고 합니다. 하나는 후회 형이고, 다른 하나는 회상 형입니다. 어떤 사람은 과거의 일에 대해서 땅이 꺼져라, 후회를 합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은 여유롭게 과거를 회상합니다. 어느 부부가 이혼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후회 형이었고요, 아내는 회상 형이었습니다. 남편은 아내와 싸운 일을 후회합니다. 이혼장에 도장을 찍은 것도 화가 납니다. “그때 이렇게 했더라면…” “그러지 않았더라면…하면서 전전긍긍, 어쩔 줄 모릅니다. 반면에, 아내 쪽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언젠가 둘이서 여행 갔던 카리브해의 아름다운 풍경을 떠올리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래, 그땐 정말 즐거웠지. 좋은 추억이네!”라면서 흐뭇한 표정을 짓습니다.

 

어떻습니까? 어느 쪽이 보기가 좋습니까? 후회파인 남편은 괴로웠던 일을 지금 한 번 더 겪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회상파인 아내는 과거의 아름다웠던 일을 기억하면서, 카리브해로 멋진 여행을 떠나는 기쁨을 한 번 더 누립니다. 남편은 괴로움을 반복해서 느끼고 있고, 아내는 기쁨을 한 번 더 누리고 있잖아요. 누가 더 이익입니까? 어차피 지금은 둘 다 혼자가 된 상태인데, 후회파인 남편은 헤어지고 난 지금도 괴로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회상파인 아내는 지금도, 이혼이라는 악재 속에서도 기쁨을 찾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후회파보다는 회상파가 더 오래 삽니다. 일반적으로 후회파는 오래 산다고 해도 기껏 70, 80세 정도예요. 그에 비해서 회상파는 90, 100세를 넘어서도 여전히 현역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토 도미오(오현숙 역), 《행복하다고 말하면 진짜 행복해진다》(대한교과서(), 2005), 140-141.

 

현재

 

그러니 후회파의 현재가 편안하겠습니까, 회상파의 현재가 편안하겠습니까? 당연히 회상파가 훨씬 더 편하게 삽니다.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에 미련을 두는 것 자체가 바보스러운 일이지요. 아무리 용을 써봐도 엎질러진 물을 도로 주워 담을 수 없잖아요. 그렇지 않아도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은데 왜 그런 쓸데없는 일에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합니까? 오늘까지만 살고 그만 살 것 같으면 모르겠는데, 우리에게는 아직 창창한 미래가 있지 않습니까? 지나간 거는 지나간 거고, 지금부터 다시 시작하면 됩니다. 올해 우리 교회의 기도 제목이다시 새날을 주소서!” 아닙니까? 이게 그 얘기예요.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든지, 새롭게 시작하자는 겁니다. 날마다 새날을 맞이하자는 거예요.

 

어떤 사람이 알프스 등산을 하고 있었습니다. 좁은 비탈길이 이어졌고 길은 미끄러웠습니다. 어떤 남자 하나가 어린 두 딸을 데리고 빠른 속도로 이 사람을 추월했습니다. 그런데 앞서 걷던 어린 딸이 갑자기 미끄러졌습니다. 다행스럽게도 꼬마는 가느다란 나무줄기를 가까스로 붙잡았습니다. 아이 옆은 암벽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위험하지는 않았지만 매우 가팔랐습니다. 아이의 입이 울 것처럼 씰룩거렸습니다. 그때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걱정하지 마.” 그러면서 태연스럽게 다시 말합니다. “다치진 않았니?” 아이가 고개를 끄덕이자 아버지가 손을 내밉니다. “잘했어, 릴리. 가자. 여기서 15분만 더 가면 오두막이야.” 1분 뒤에 세 사람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모퉁이를 돌아 사라졌습니다. 도리스 메르틴(배명자 역), 《아비투스》(다산북스, 2020), 전자책 39/367. 우리 인생도 그렇습니다. 넘어졌으면 다시 일어나면 그만이예요. 아이고, 큰일 날 뻔했네, 저 아래 절벽으로 떨어졌으면 어쩔 뻔했어? 그러면서 호들갑을 떨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이 아버지가 잘한 게 바로 이겁니다. 딸한테 큰 교훈을 몸으로 보여준 거예요. 넘어졌으면 다시 일어나서 가던 길을 가면 된다, 그건데, 사실 그게 잘 안 되기는 하지요? 그렇지만 매사에 그래야 합니다.

 

미래

 

이런 식으로, 의연하게 현재를 살면 미래는 밝은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미래라고 하는 것은 우리에게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지금도 고생스러운데 앞으로 더 고생스러우면 어쩌나, 그런 생각이 들지요. 제가 방금 고생을 말했는데요, 고생에는 세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사서 고생, 둘째는 거듭 고생, 그리고 셋째는 미리 고생이에요. ‘사서 고생은 이런 거예요.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았더니 암이래요. 처음 이런 소리를 들으면 하늘이 무너지지요. 의사가 말합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직 초기인데다가, 암 가운데서도 선생님에게 온 암은, 걸리는 사람도 많지만 대부분 나아서 잘 삽니다. 치료를 받으면 곧 괜찮아질 거예요.” 이렇게 말했는데도 환자는 걱정 때문에 밥이 안 넘어갑니다. 갑자기 암 걸려서 죽은 사람들이 마구 떠오릅니다. 이게 사서 걱정이예요.

 

그리고 거듭 고생은 뭐냐 하면, 이미 지나간 일을 두고 걱정을 계속하는 겁니다. 이렇게 하면 좋았을 걸, 저렇게 하면 좋았을 걸, 후회하면서 고생하는 걸 말합니다. 아니, 다 지나간 일인데, 지금 와서 걱정한다고 뭐가 달라집니까? 아니잖아요. 이것도 쓸데없는 걱정이고요, 나머지 하나, ‘미리 고생이란 아직 닥치지도 않은 미래의 일을 걱정하느라고 마음고생을 하는 겁니다. 몇 년 뒤에 지구가 멸망하면 어쩌지? 지금부터 20년쯤 뒤에, 내가 연금을 탈 때가 됐는데 연금기금이 고갈돼서 연금을 못 타면 어쩌지? 이런 것들이 미리 걱정에 속합니다. , 사람이 앞일을 걱정할 수도 있지요. 그런데 예수님만큼 미래가 위태위태했던 분이 어디 있습니까? 고난주간, 예수님의 생애 가운데서 마지막 한 주간을 생각해 보십시오. 사방이 지뢰밭입니다. 곳곳에 배신자들이 널려 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어떻게 대처하셨습니까? 마치 아무 일도 없는 사람처럼 천연덕스러운 태도를 보이셨습니다.

 

맺는 이야기

 

 

시편 31:15 말씀입니다. 내 앞날은 주님의 손에 달렸으니, 내 원수에게서, 내 원수와 나를 박해하는 자들의 손에서, 나를 건져 주십시오.” 내 앞날은 주님의 손에 달렸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앞날도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었습니다. 저나 여러분이나, 우리의 미래가 내 손에 달려 있다면 어떻게든 내가 노력을 해야지요. 그렇지만 저와 여러분을 포함한 모든 인간의 미래는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용을 써도 아무것도 변할 게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하나님께 맡겨야지요. 그래서 예수님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예수님은 평온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고통을 받으시면서도, 목숨이 끊어지기 직전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누가복음서 23:4-6). 이처럼 예수님은 극도로 불안한 미래를 안고 사셨지만, 그 미래를 하나님께 맡기셨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그 시점에서도, 내 영혼을 아버지께 맡깁니다, 그러셨어요. 그 결과, 어떻게 됐습니까? 예수님의 고난은 인류 구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역사를 만들었고요, 예수님의 목숨은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부활하셨습니다. 우리의 미래는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의 미래를 하나님께 맡김으로써 저와 여러분이 영생의 복락을 누리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1041 조금도 염려하지 마십시오!
1040 힘내라, 꼴찌!
1039 사랑 받는 사람의 특징
1038 먹을 만큼씩만 거두십시오!
1037 구하라, 찾아라, 두드려라!
1036 그리스도인의 기본요건(2) - 소통
1035 그리스도인의 기본요건(2) - 찬송
1034 그리스도인의 기본요건(1) - 기도
1033 기쁨 공장
1032 기쁨이 넘치는 도시
1031 평화와 밥
1030 잊을 것과 기억할 것
1029 생명을 지켜주는 열매, 절제
1028 온유한 사람이란?
1027 신실한 사람
1026 복을 베푸는 사람, 선한 사람
1025 정결한 예물, 친절
1024 마음의 피부, 인내
1023 평화 만들기, 세 가지 방법
1022 세 가지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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